9화(5,333자)

밥상 단톡방

귀신 노조 파업 · 기담오

「⁠막차 밥상 차려 주실 분 찾습니다⁠. 귀신분들 몫입니다⁠. 시 예산 아님⁠. 오픈채팅⁠」

소연은 종이 한 장에 이렇게 적고 아래에 오픈채팅방 정보무늬를 붙였다⁠. 정보무늬를 휴대전화로 비추면 단톡방으로 들어오는 그림이었다⁠. 종이를 시청역 개찰구 옆 기둥에 붙이려다 손을 멈췄다⁠. 시청 직원이 시청역에 종이를 붙이면 시청이 붙인 것이 되었다⁠. 소연은 공무원증을 카디건 안으로 집어넣고⁠, 종이를 김밥집 셔터에 붙였다⁠.

김밥집 할머니가 셔터를 반쯤 내리다 말고 종이를 읽었다⁠. 돋보기를 코에 걸고 두 번 읽었다⁠.

“⁠이거 너지⁠?⁠”

“⁠네⁠.⁠”

“⁠정보무늬가 뭐야⁠. 이 네모 바둑판⁠?⁠”

“⁠휴대전화로 비추시면 들어와져요⁠.⁠”

할머니가 휴대전화를 꺼내 바둑판을 비췄다⁠. 화면이 바뀌었다⁠. 「⁠막차 밥상 · 참여자 2명⁠」⁠. 할머니가 화면을 들여다보며 혀를 찼다⁠.

“⁠둘이네⁠. 너랑 나⁠.⁠”

“⁠시작이에요⁠.⁠”

“⁠시작은 다 둘이야⁠. 너희 엄마랑 나도 둘이었어⁠.⁠”

*

밤 열한 시⁠, 단톡방 참여자가 열둘이 되었다⁠. 할머니가 미화원 여사를 데려왔고⁠, 미화원 여사가 종각역 미화원 둘을 데려왔다⁠. 편의점 야간 알바가 폐기 도시락 사진을 올리며 들어왔다⁠. 첫날 밤 시청 앞에서 졸던 택시 기사가 들어왔고⁠, 2호선 막차를 이십 년 몬 기관사가 들어왔다⁠. 막차에서 조선 귀신에게 자리를 양보했던 회사원도 들어왔다⁠. 발목을 다친 대리기사는 깁스한 발 사진을 프로필로 걸고 들어왔다⁠.

단톡방은 쉬지 않고 울렸다⁠.

「⁠저 김밥 말 줄 알아요⁠. 군대에서 배움⁠」

「⁠귀신분들 알레르기 있으세요⁠? 땅콩 같은 거⁠」

「⁠신림역 귀신분 매운 거 드세요⁠?⁠」

「⁠몫 부를 때 뭐라고 해요⁠? 귀신님 드세요 하면 돼요⁠?⁠」

소연은 엄지로 답을 쳤다⁠. 「⁠이 역 귀신님들 몫입니다⁠, 하고 소리 내어 불러 주세요⁠. 부르지 않으면 못 드세요⁠」

「⁠소리 내어요⁠? 승강장에서요⁠? 저 낯가리는데⁠」

「⁠제가 같이 부를게요⁠」

기관사가 긴 글을 올렸다⁠. 「⁠막차 끝나고 차량기지 들어가기 전에 신림역에서 오 분 서 있을 수 있음⁠. 원래 서는 시간임⁠. 그 사이에 밥 놓으면 됨⁠. 그리고 하나 알려 드림⁠. 시청 을지로는 팥 때문에 귀신들 못 오고⁠, 신림은 아직 팥 없음⁠」

택시 기사가 이어서 올렸다⁠. 「⁠나 신림 삼십 년 다녔음⁠. 신림역 귀신 총각이 나 졸 때마다 목덜미 불어 줬음⁠. 오늘 내가 쏨⁠. 순대⁠」

「⁠순대는 귀신분들이 드시나요⁠」

「⁠몰라 내가 먹고 싶어서⁠」

*

자정 이십 분⁠, 신림역 승강장 끝 의자 둘을 붙여 상을 차렸다⁠. 은박지에 싼 김밥 다섯 줄⁠, 귤 한 봉지⁠, 편의점 알바가 들고 온 폐기 직전 도시락 넷⁠, 뚜껑을 덮은 컵라면 셋⁠, 택시 기사의 순대 한 접시⁠. 순대 옆에 소금이 아니라 막장이 놓여 있었다⁠. 택시 기사는 귀신이 소금을 싫어할지 몰라서 막장으로 바꿨다고 했다⁠.

막차가 들어왔다⁠. 기관사가 운전실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었다⁠. 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형광등이 징 울었다⁠.

신림역 귀신들이 떠올랐다⁠. 스물 남짓이었다⁠. 다들 붉은 머리띠를 맸고⁠, 피켓을 들었다⁠. 「⁠야근수당⁠」⁠, 「⁠쟁취하자⁠!⁠」⁠. 귀신들은 의자 위의 상을 보고 멈췄다⁠. 피켓이 천천히 내려갔다⁠.

열두 명이 상 앞에 나란히 모였다⁠. 다들 서로를 힐끔거렸다⁠. 낯가린다던 회사원이 넥타이를 고쳐 맸다⁠. 소연이 먼저 숨을 들이켰다⁠.

“⁠이건⁠, 신림역 귀신님들 몫입니다⁠!⁠”

“⁠신림역 귀신님들 몫입니다⁠!⁠”

열두 목소리가 엇박자로 승강장을 울렸다⁠. 김밥집 할머니 목소리가 제일 컸고⁠, 회사원 목소리가 제일 작았다⁠. 굴속에서 메아리가 돌아왔다⁠. 몫입니다⁠, 몫입니다⁠.

귀신들이 상 앞으로 내려왔다⁠. 맨 앞의 귀신은 체크 남방에 배낭을 멘 청년이었다⁠. 청년 귀신이 컵라면 뚜껑 위로 얼굴을 숙였다⁠. 뚜껑 틈에서 새어 나온 김이 실처럼 풀려 청년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청년의 하늘색이 한 겹 짙어졌다⁠. 뒤에서 할머니 귀신이 김밥에⁠, 양복 입은 귀신이 순대에 얼굴을 숙였다⁠. 김밥의 김이⁠, 도시락의 김이⁠, 순대의 김이 하나씩 빠지고⁠, 귀신들의 빛이 하나씩 짙어졌다⁠. 승강장 형광등이 귀신들 빛에 묻혀 흐려 보였다⁠.

“⁠매워요⁠.⁠” 청년 귀신이 말했다⁠. 목소리에 울음이 섞였다⁠. “⁠이거 빨간 봉지 라면이죠⁠? 나 이거 좋아했어요⁠. 시험 기간마다 먹었어요⁠.⁠”

“⁠그거 내가 끓였어⁠.⁠” 편의점 알바가 말했다⁠. “⁠폐기 아니고 새 거야⁠.⁠”

택시 기사가 순대 접시를 보다가 소연에게 속삭였다⁠.

“⁠아가씨⁠, 저 양복 양반이 내 순대 다 드셨는데⁠, 나 하나 먹어 봐도 돼⁠?⁠”

“⁠드셔 보세요⁠.⁠”

택시 기사가 순대 한 점을 막장에 찍어 입에 넣었다⁠. 씹다가 얼굴을 찡그렸다⁠.

“⁠아이고⁠, 이게 순대야⁠, 지우개야⁠.⁠”

*

계단 위에서 투둑⁠, 투둑 소리가 났다⁠. 마른 곡식 떨어지는 소리였다⁠. 맹지훈이 아르바이트생 둘을 데리고 내려오며 계단마다 팥을 흘리고 있었다⁠. 지훈은 승강장에 내려서서 상을 보고⁠, 둘러선 시민들을 보고⁠, 마지막으로 소연을 보았다⁠.

“⁠주무관님⁠. 오늘은 미끄러지실 일이 없으시겠네요⁠. 팥이 아니라 밥이니까⁠.⁠”

“⁠오늘 신림은 순서가 아니잖아요⁠. 을지로 하신다면서요⁠.⁠”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밥상이 차려진 역부터 하라는 시청 지시가 내려왔어요⁠.⁠” 지훈이 마대에 손을 넣었다⁠. “⁠밥을 주시면 귀신들이 파업을 계속합니다⁠. 여러분이 밥을 주시는 동안 귀신들은 사고를 막지 않고 버팁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아시죠⁠? 밥상이 인질극 자금이 되는 겁니다⁠.⁠”

“⁠인질은 무슨⁠.⁠” 김밥집 할머니가 앞으로 나왔다⁠. 키가 지훈의 가슴께밖에 안 됐다⁠. “⁠일 시켰으면 밥은 줘야지⁠.⁠”

“⁠일은 시청이 시켰죠⁠. 할머님이 시키신 게 아니고요⁠.⁠”

“⁠나는 우리 가게 셔터 손가락 조심하라는 소리 이십 년 들었어⁠. 그게 일 아니면 뭐야⁠.⁠”

지훈은 할머니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마대에서 팥 한 줌을 꺼내 상 위로 흩뿌렸다⁠. 팥알이 은박지 위에⁠, 귤 위에⁠, 컵라면 뚜껑 위에 투두둑 떨어졌다⁠. 상 앞에 있던 귀신들이 뜨거운 불에 덴 것처럼 뒤로 물러났다⁠. 청년 귀신이 먹다 만 컵라면 앞에서 손을 뻗었다가 팥알에 막혀 손을 거두었다⁠.

“⁠이 역은 오늘 정리 대상입니다⁠.⁠”

소연은 지훈 앞으로 나갔다⁠. 공무원증은 카디건 안에 들어가 있었다⁠.

“⁠저 지금 퇴근했어요⁠. 시민으로 왔습니다⁠.⁠”

“⁠주무관님은 퇴근하셔도 주무관님이시죠⁠.⁠” 지훈이 웃었다⁠. “⁠그리고 시민도 계약은 못 막으십니다⁠.⁠”

“⁠계약서에 정리 대상이 어디까지예요⁠?⁠”

지훈의 웃음이 잠깐 멈췄다⁠.

“⁠역사 안입니다⁠. 승강장과 대합실⁠.⁠”

“⁠출구 밖은요⁠?⁠”

“⁠출구 밖은 계약 범위가 아닙니다⁠.⁠”

소연은 돌아서서 시민들에게 손짓했다⁠. 열두 명이 상을 통째로 들었다⁠. 은박지에 붙은 팥알을 털어 내고⁠, 의자 둘에서 상을 떼어 들고⁠, 계단을 올라갔다⁠. 지훈이 깔아 둔 팥 줄을 피해 비상계단으로 돌았다⁠. 귀신들이 팥 줄 없는 비상계단을 따라 올라왔다⁠. 신림역 3번 출구 밖 인도 위에 상을 다시 차렸다⁠. 찬 바람이 불었다⁠. 택시 기사가 차를 대어 바람을 막았다⁠. 깁스한 대리기사는 한 발로 깡충거리며 귤 봉지를 날랐다⁠.

“⁠신림역 귀신님들 몫입니다⁠!⁠”

두 번째 부름은 첫 번째보다 박자가 맞았다⁠.

지훈은 출구 계단 꼭대기에 서서 내려다보았다⁠. 팥 마대를 어깨에 멘 채였다⁠. 한참 보다가 아르바이트생에게 말했다⁠.

“⁠출구 밖은 우리 일 아니다⁠. 철수⁠.⁠”

“⁠사장님⁠, 그럼 오늘 일당은요⁠?⁠”

“⁠나와⁠. 우리는 법대로 한다⁠.⁠”

새벽 세 시⁠, 출구 밖 상은 다 비어 있었다⁠. 김밥은 은박지째 식어 딱딱했고⁠, 귤은 껍질 속이 물렁해져 맛이 없었다⁠. 귀신들이 다 먹은 상이었다⁠. 시민들은 상을 치우며 식은 김밥을 하나씩 집어 맛을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맛이 빠진 밥을 맛보는 것이 무슨 놀이처럼 번졌다⁠.

“⁠진짜 아무 맛도 안 나네요⁠.⁠”

“⁠이게 다 드신 거래요⁠. 신기하다⁠.⁠”

“⁠나 내일도 올래⁠. 이거 보려고⁠.⁠”

배를 채운 신림역 귀신들은 출구 옆 화단 둘레에 둥글게 떠 있었다⁠. 빛이 짙어서 화단의 마른 국화가 하늘색으로 물들어 보였다⁠. 청년 귀신이 소연 곁으로 내려왔다⁠. 머리띠가 조금 느슨해져 있었다⁠.

“⁠주무관님⁠, 저 이상해요⁠. 배가 부르니까 일하고 싶어요⁠.⁠”

“⁠파업 중이시잖아요⁠.⁠”

“⁠그러니까요⁠. 위원장님이 칠백이 다 먹을 때까지는 손 놓으라고 하셨는데⁠, 저 아까부터 손이 근질근질해요⁠. 저기 저 아저씨 지금 버스 정류장에서 조시잖아요⁠. 저러다 버스 놓쳐요⁠.⁠”

정류장 의자에서 등산복 차림의 남자가 고개를 꾸벅꾸벅 떨구고 있었다⁠. 청년 귀신이 머리띠를 만지작거리다가 휙 날아가 남자의 목덜미에 후 하고 바람을 불었다⁠. 남자가 어깨를 움찔하며 깨어나 다가오는 첫 버스를 보고 벌떡 일어났다⁠. 청년 귀신이 돌아와 머리띠를 도로 단단히 맸다⁠.

“⁠방금 그건 안 본 걸로 해 주세요⁠. 위원장님한테 혼난단 말이에요⁠.⁠”

“⁠저도 퇴근해서 아무것도 못 봤어요⁠.⁠”

새벽 다섯 시⁠, 상황실 단톡방에 밤사이 신고 집계가 올라왔다⁠. 소연은 택시 뒷자리에서 표를 한 줄씩 내려 읽었다⁠. 서울 전체는 여전히 평소의 세 배였다⁠. 지역별 표의 한 줄만 달랐다⁠. 「⁠관악구 신림 일대 · 야간 사고 신고 0건⁠」⁠.

*

“⁠너 단톡방 방장이라며⁠.⁠”

이틀 뒤 아침 아홉 시⁠, 과장이 휴대전화 화면을 소연에게 내밀었다⁠. 기자의 문자였다⁠. 「⁠서울시 귀신관리과 주무관이 귀신 밥상 시민 모임을 운영한다는 제보가 있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퇴근하고 한 거예요⁠.⁠”

“⁠지방공무원법에 집단행위 금지 조항 있어⁠. 정치적 중립도 있고⁠.⁠” 과장이 돋보기를 이마에서 내렸다⁠. “⁠시청 교섭 담당이 귀신 편 시민 모임 방장이면⁠, 그게 집단행위야⁠. 감사 나오면 너 징계야⁠. 내가 막을 수가 없어⁠.⁠”

“⁠퇴근하고 밥 차리는 게 집단행위예요⁠?⁠”

“⁠네가 하면 그래⁠. 네가 시청이니까⁠.⁠” 과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가⁠, 금방 가라앉았다⁠. “⁠…⁠…나는 이번엔 아무것도 안 자르고 싶어⁠. 너도⁠.⁠”

소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과장이 화면을 끄며 말했다⁠.

“⁠방장 넘겨⁠. 김밥집 할머니한테⁠.⁠”

“⁠할머니가 단톡방 방장을 하실 수 있을까요⁠?⁠”

“⁠네 엄마 친구면 할 수 있어⁠.⁠”

오후에 단톡방에 공지가 올라왔다⁠. 「⁠방장이 바뀌었습니다⁠. 새 방장⁠: 시청역 김밥⁠」⁠. 첫 공지는 할머니가 올렸다⁠. 「⁠오늘부터 내가 방장⁠. 김밥 말 사람 저녁 열 시까지 가게로⁠. 단무지는 두 줄⁠」⁠. 참여자는 백사십을 넘어 있었다⁠.

*

자정 반⁠, 을지로입구역 승강장에는 칠백열이 아니었다⁠. 소연은 승강장을 둘러보다가 귀석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귀석의 무릎 위에 종이 다발이 놓여 있었다⁠. 종이마다 손바닥 자국이 하늘색으로 찍혀 있었다⁠.

“⁠무엇이오⁠, 그건⁠.⁠”

“⁠탈퇴서요⁠.⁠” 귀석이 다발을 들어 보였다⁠. 오백 살 먹은 손이 떨렸다⁠. “⁠총회 앞두고 이백 장이 들어왔소⁠. 대왕께 가겠다는 조합원들이오⁠. 밥상 차려 준다는 시민이 생겨서 고맙다고⁠, 그래도 가겠다고⁠.⁠”

“⁠이백이요⁠?⁠”

“⁠이백이오⁠.⁠” 귀석이 다발을 내려놓았다⁠. 굵은 눈썹이 무겁게 처졌다⁠. “⁠오백 년 지킨 밤이 이백 장 종이로 끝나오⁠. 가는 이들은 웃으며 가오⁠. 그게 더 아프오⁠.⁠”

9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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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밤에책2026.11.01· 9화

    탈퇴서 이백 장에서 울컥했어요. 웃으며 가는 게 더 아프다는 귀석 대사가 오래 남아요.

    • 기담오작가2026.11.01

      오백 년 지킨 밤이 종이 몇 장으로 정리되는 게 귀석에게는 제일 큰 패배였어요. 김밥집 할머니 단톡방도 끝까지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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