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419자)

총회

귀신 노조 파업 · 기담오

국장 회의실 화면에 서울 지하철 노선도가 떴다⁠. 2호선 초록 동그라미가 하나씩 붉게 칠해져 있었다⁠. 시청⁠, 을지로입구⁠, 을지로3가⁠, 신림⁠. 붉은 동그라미 옆마다 작은 글씨로 「⁠정리 완료⁠」가 붙어 있었다⁠. 맹지훈이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지금 속도로는 한 역에 하룻밤입니다⁠. 2호선만 쉰 역이 넘습니다⁠. 동짓날까지 다 못 합니다⁠.⁠”

“⁠그래서요⁠?⁠” 비서실장이 물었다⁠.

“⁠전면으로 하시죠⁠. 2호선 전 구간에 동시에 쇳소리를 틉니다⁠. 스피커는 역마다 이미 깔았습니다⁠. 하룻밤이면 끝납니다⁠.⁠”

소연은 회의실 맨 끝 의자에서 회의록을 받아 적다가 손을 멈췄다⁠. 7급 주무관이 국장 회의에 앉는 일은 회의록을 받아 적을 때뿐이었다⁠. 국장이 소연을 힐끔 보고 비서실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시장님 뜻은요⁠?⁠”

“⁠동짓날 전날까지 기다리십니다⁠. 신령님들 안을 귀신들이 받으면 끝⁠. 안 받으면 전면 퇴마⁠.⁠” 비서실장이 서류를 넘겼다⁠. “⁠그리고 시의회에서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귀신 밥상 시민 모임이 서울시 묵인 아래 돌아가느냐고요⁠.⁠”

국장이 다시 소연을 보았다⁠. 이번에는 힐끔이 아니었다⁠.

“⁠여 주무관⁠. 그 모임하고 시청은 아무 관계 없지⁠?⁠”

“⁠방장은 김밥집 할머니세요⁠.⁠”

“⁠그건 내가 묻는 말이 아니야⁠.⁠”

“⁠관계 없습니다⁠.⁠” 소연은 회의록에 「⁠관계 없음⁠」이라고 적었다⁠. 볼펜 끝이 종이를 조금 찢었다⁠.

지훈이 소연을 보았다⁠. 화면의 붉은 동그라미가 지훈의 얼굴에 비쳐 있었다⁠.

“⁠주무관님⁠, 오늘 밤 총회 가시죠⁠? 신령님들 안 전하러⁠.⁠”

“⁠제 업무니까요⁠.⁠”

“⁠잘 전해 주세요⁠. 받으시면 저는 일 안 해도 됩니다⁠. 저도 그게 제일 좋습니다⁠.⁠”

*

저녁 여섯 시⁠, 과장은 퇴근하지 않았다⁠. 패딩을 입은 채 책상에 앉아 1974년 상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연이 묶어 둔 영수증 다발 쉰 개가 상자 안에 해마다 차례로 서 있었다⁠. 과장이 2024년 다발을 꺼내 고무줄을 만지작거렸다⁠.

“⁠총회 가지⁠?⁠”

“⁠네⁠.⁠”

“⁠가서 대왕님 안 전하고⁠, 전면 퇴마 얘기도 전하고⁠.⁠”

“⁠네⁠. 제 업무니까요⁠.⁠”

“⁠그래⁠. 네 업무지⁠.⁠” 과장이 다발을 상자에 도로 넣었다⁠. “⁠여 주무관⁠. 나 이거 시장님께 들고 가 볼까 생각 중이야⁠.⁠”

“⁠영수증을요⁠?⁠”

“⁠쉰 해 동안 시청이 귀신 밥을 차렸다는 거⁠. 법에 없는 돈으로⁠. 그리고 그걸 내가 잘랐다는 거⁠.⁠” 과장이 돋보기를 이마에 올렸다⁠. “⁠들고 가면 감사 다시 나와⁠. 쉰 해 치⁠. 나는 주의가 아니라 징계고⁠.⁠”

“⁠그럼 왜 가세요⁠.⁠”

“⁠아직 안 간다고⁠. 생각 중이라고⁠.⁠” 과장은 상자 뚜껑을 덮었다⁠. “⁠생각만 하는 건 감사 안 나와⁠.⁠”

소연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단톡방이었다⁠. 방장 할머니가 공지를 올렸다⁠. 「⁠오늘 밤 사당 합정 신촌 세 군데⁠. 김밥 말 사람 가게로⁠. 오는 사람 귤 들고 와⁠. 귀신들 귤 좋아함⁠」⁠. 바로 밑에 회사원이 물었다⁠. 「⁠방장님 귀신분들이 귤 좋아하시는 건 어떻게 아세요⁠?⁠」 할머니의 답이 금방 올라왔다⁠. 「⁠내가 좋아함⁠」⁠.

참여자는 삼백을 넘어 있었다⁠. 과장이 소연의 어깨 너머로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혀를 찼다⁠.

“⁠방장 잘 넘겼네⁠.⁠”

*

자정 반⁠, 2호선 막차 운전실 뒤에 소연이 서 있었다⁠. 단톡방의 기관사가 소연을 태워 주었다⁠. 막차는 성수 차량기지로 들어가지 않고 회송 선로로 꺾였다⁠. 바퀴가 녹슨 레일을 긁으며 끼익 울었다⁠.

“⁠이 선로는 손님 태운 열차가 안 다녀요⁠. 옛날 노선이 바뀌면서 남은 승강장이 하나 있는데⁠, 거기 귀신들 모인대요⁠.⁠” 기관사가 속도를 줄였다⁠. “⁠우리 기관사들은 다 알아요⁠. 밤에 이 선로 지나가면 승강장에 사람들이 손 흔들어요⁠. 사람이 아니지만⁠.⁠”

열차가 멈췄다⁠. 기관사가 손전등을 건넸다⁠.

“⁠삼십 분 뒤에 다시 올게요⁠. 늦으면 첫차 전까지 여기 갇혀요⁠.⁠”

“⁠기관사님은 귀신 안 무서우세요⁠?⁠”

“⁠무서운 건 졸음이지⁠. 귀신은 졸음 깨워 줘요⁠.⁠”

옛 승강장은 컴컴했다⁠. 손전등 불빛이 바닥의 먼지를 비추었다⁠. 먼지가 한 손가락 두께로 쌓여 있었다⁠. 벽의 타일은 지금 역들보다 작았고⁠, 누렇게 바랜 역 이름판에 옛날 글씨체로 역 이름이 적혀 있었다⁠. 형광등은 하나도 없었다⁠.

형광등 대신 귀신들이 빛을 냈다⁠. 칠백열이 승강장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떠 있었다⁠. 하늘색 빛이 먼지 위에 깔려서⁠, 승강장 전체가 물 밑처럼 보였다⁠. 맨 앞에 접이식 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어디서 주워 왔는지 다리 하나가 짧아 기우뚱했다⁠. 탁자 뒤에 귀석이 떠 있었고⁠, 옆에 엄마가 탁자 모서리에 손을 짚고 서 있었다⁠. 태식은 탁자 위에 확성기를 세워 두고 사회를 보았다⁠.

“⁠자⁠, 서울귀신노동조합 임시 총회를 시작합니다⁠! 안건은 하나⁠. 남산 목멱대왕님의 제안을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 먼저 관의 교섭 담당 주무관님께서 제안 내용을 설명해 주시겠습니다⁠. 박수⁠!⁠”

박수 소리는 나지 않았다⁠. 손바닥 마주치는 모양만 승강장 가득 반짝였다⁠.

소연은 탁자 앞으로 나갔다⁠. 손전등을 끄자 귀신들 빛만 남았다⁠. 공무원증이 하늘색으로 물들었다⁠.

“⁠서울시 귀신관리과 주무관 여소연입니다⁠. 남산 신령님들의 제안을 전해 드립니다⁠. 동짓날까지 파업을 거두시면⁠, 신령님들이 조합원 모두를 저승으로 모셔 가십니다⁠. 팥 없이⁠, 쇳소리 없이⁠. 편히⁠.⁠”

소연은 숨을 한 번 쉬었다⁠.

“⁠그리고 시청의 입장을 전해 드립니다⁠. 제안을 안 받으시면⁠, 동짓날 전날 밤 2호선 전 구간에 전면 퇴마를 합니다⁠.⁠”

승강장이 조용해졌다⁠. 먼지 위로 귀신들의 빛이 흔들렸다⁠.

*

“⁠나는 가겠소⁠.⁠”

갓 쓴 귀신 하나가 피켓을 높이 들었다⁠. 「⁠쟁취하자⁠!⁠」 피켓 뒷면에 붓글씨가 새로 적혀 있었다⁠. 「⁠간다⁠」⁠.

“⁠오백 년이오⁠. 밤마다 남의 어깨에 바람 불었소⁠. 밥 준다는 시민이 생겼다니 됐소⁠. 그 밥은 남는 이들이 드시오⁠. 나는 눕고 싶소⁠.⁠”

“⁠나도 가겠소⁠.⁠”

“⁠나는 남소⁠. 우리 손녀 아직 막차 타오⁠.⁠”

“⁠손녀는 내년에도 막차 타오⁠. 언제까지 볼 거요⁠?⁠”

“⁠손녀가 시집갈 때까지⁠.⁠”

“⁠손녀가 몇 살이오⁠?⁠”

“⁠마흔둘이오⁠.⁠”

승강장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귀신의 웃음이 옛 타일 벽에 부딪혀 쩌렁쩌렁 돌았다⁠. 태식이 확성기를 들고 외쳤다⁠. “⁠조용⁠, 조용⁠! 손녀분 혼사는 다음 총회 안건으로⁠!⁠”

웃음이 가라앉자 귀석이 탁자를 짚었다⁠. 짚었지만 손이 탁자를 반쯤 지나갔다⁠. 탁자가 기우뚱했다⁠.

“⁠위원장도 한마디 하겠소⁠.⁠”

귀석이 전립을 벗었다⁠. 굵은 눈썹 아래 눈이 승강장을 한 바퀴 돌았다⁠. 칠백열을 하나씩 보는 눈이었다⁠.

“⁠나도 지쳤소⁠. 오백 년 순라를 돌았소⁠. 종루에서 숭례문까지⁠, 숭례문에서 다시 종루까지⁠. 길이 바뀌고 다리가 놓이고 굴이 뚫렸어도 나는 같은 밤을 돌았소⁠. 대왕 말씀이 틀린 데가 없소⁠. 죽은 자는 떠나야 하오⁠. 나도 떠날 때가 지났소⁠.⁠”

승강장 공기가 단번에 무거워졌다⁠. 귀신 몇이 피켓을 내렸다⁠.

엄마가 탁자 모서리에서 손을 뗐다⁠. 빛이 너무 옅어서 엄마 몸 너머로 먼지 앉은 역 이름판이 비쳤다⁠.

“⁠위원장님⁠.⁠”

“⁠부위원장⁠.⁠”

“⁠가셔도 돼요⁠. 오백 년이면 가셔도 돼요⁠.⁠” 엄마의 목소리에 잡음이 많았다⁠. 그래도 끊기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가시면⁠, 우리가 왜 파업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귀신들이 밥 달라고 떼쓰다가 신령님이 데려갔다⁠, 그렇게만 남아요⁠. 다음에 누가 밤에 일하다 쓰러져서 귀신이 돼도⁠, 그 사람은 또 굶어요⁠. 잘린 다음을 아무도 안 정했으니까⁠.⁠”

“⁠부위원장은 그래서 남는 것이오⁠?⁠”

“⁠저는 그거 정하고 갈 거예요⁠.⁠” 엄마가 고무장갑을 끼었다⁠. “⁠가는 분들은 웃으면서 가세요⁠. 남는 분들은 끝까지 하세요⁠. 둘 다 괜찮아요⁠. 그런데 위원장님은 남으셔야 해요⁠. 수염이 있잖아요⁠.⁠”

“⁠또 수염 이야기요⁠?⁠”

“⁠피켓 사진에 수염이 있어야 한다니까요⁠.⁠”

귀석이 엄마를 내려다보았다⁠. 엄마는 귀석보다 머리 하나가 작았다⁠. 귀석이 수염을 쓸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 손을 멈추고 전립을 다시 썼다⁠.

“⁠위원장이 먼저 떠나면 배가 산으로 가오⁠.⁠”

“⁠그건 사공이 많을 때 하는 말이에요⁠, 위원장님⁠.⁠”

“⁠알고 있소⁠. 일부러 틀렸소⁠. 분위기 띄우려고⁠.⁠”

태식이 확성기에 대고 크게 외쳤다⁠. “⁠위원장님 남으십니다⁠! 신청곡 들어갑니다⁠, 「⁠배가 산으로 가도 위원장은 남는다⁠」⁠!⁠”

*

표결은 피켓으로 했다⁠. 떠날 귀신은 피켓 뒷면의 「⁠간다⁠」를⁠, 남을 귀신은 앞면의 「⁠야근수당⁠」과 「⁠쟁취하자⁠!⁠」를 들었다⁠. 태식이 탁자 위에 올라가 한 무리씩 세었다⁠. 세는 데만 이십 분이 지나갔다⁠. 귀신들이 자꾸 자리를 옮겨서 태식이 세 번을 다시 세었다⁠.

“⁠떠나실 분 이백⁠! 남으실 분 오백열⁠!⁠”

떠나는 이백이 피켓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간다⁠」가 적힌 피켓이 먼지 위에 겹겹이 쌓였다⁠. 이백은 남는 오백열과 하나씩 인사를 나누었다⁠. 손이 서로를 지나가서 악수가 되지 않았다⁠. 다들 손을 맞대는 시늉만 했다⁠. 갓 쓴 귀신이 소연 앞에 와서 고개를 숙였다⁠.

“⁠관의 아씨⁠, 신세 졌소⁠.⁠”

“⁠제가 해 드린 게 없는데요⁠.⁠”

“⁠신림에서 순대 먹었소⁠. 막장에 찍은⁠. 그거면 되었소⁠.⁠”

이백이 승강장 끝 굴 입구로 줄지어 갔다⁠. 굴 속에서 솔 냄새가 흘러나왔다⁠. 남산까지 이어진 길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백의 하늘색이 굴 속으로 하나씩 사라졌다⁠. 남은 오백열이 아무 말 없이 굴을 보았다⁠. 귀석이 굴을 향해 방망이를 들어 올렸다⁠. 순라군이 교대할 때 하는 인사라고 태식이 소연에게 속삭였다⁠.

굴 반대편에서 바퀴 긁는 소리가 들렸다⁠. 기관사가 약속한 삼십 분을 조금 넘겨 돌아왔다⁠.

*

새벽 다섯 시⁠, 시청역 승강장 팥 줄 앞에 지훈이 서 있었다⁠. 첫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틈에서 소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손에 종이컵 커피 두 잔을 들고 있었다⁠. 한 잔을 소연에게 내밀었다⁠.

“⁠총회 결과 들었습니다⁠. 이백 떠나고 오백 남았다고요⁠.⁠”

“⁠빠르시네요⁠.⁠”

“⁠귀신 일은 귀신보다 기관사분들이 빠르세요⁠.⁠” 지훈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주무관님⁠, 거래 하나 하시죠⁠.⁠”

소연은 커피를 받지 않았다⁠. 지훈은 내민 손을 거두지 않았다⁠.

“⁠전면 퇴마를 하면 오백이 한꺼번에 서울 밖으로 밀려납니다⁠. 고양으로⁠, 성남으로⁠, 의정부로⁠. 다시는 못 돌아옵니다⁠. 저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비싸고⁠, 시끄럽고⁠, 민원이 와요⁠.⁠” 지훈이 승강장 끝 굴을 보았다⁠. “⁠이런 일은 늘 한두 명이 모읍니다⁠. 위원장하고 부위원장⁠. 집행부 둘만 모이는 자리를 알려 주시면⁠, 그 둘만 팥 원으로 모시겠습니다⁠. 쇳소리는 안 틉니다⁠. 대왕님께 모셔다 편히 보내 드리고요⁠. 그러면 나머지 오백은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집행부가 없으면 파업도 흩어지고⁠, 흩어지면 시장님도 전면 퇴마를 안 하십니다⁠.⁠”

“⁠엄마를 넘기라는 거잖아요⁠.⁠”

“⁠어머님을 쉬게 해 드리자는 겁니다⁠.⁠” 지훈이 커피 잔을 소연의 손에 쥐여 주었다⁠. 종이컵이 뜨거웠다⁠. “⁠어머님 빛 보셨죠⁠. 동짓날까지 못 버티세요⁠. 쇳소리 한 번이면 사라지실 겁니다⁠. 그 전에 편히 보내 드리는 게 나아요⁠. 오백도 지키고요⁠. 주무관님이 고르시는 겁니다⁠.⁠”

굴 저편에서 첫차 불빛이 번져 왔다⁠. 지훈이 소연에게 고개를 숙이고 개찰구로 걸어갔다⁠. 소연은 뜨거운 종이컵을 든 채 팥 줄 앞에 남았다⁠. 손바닥이 데일 것 같았는데⁠, 컵을 내려놓지 못했다⁠.

10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