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97자)

막차 밥상

귀신 노조 파업 · 기담오

“⁠한 번만 더 차면 너 현장에서 빠지고 징계위원회 간다⁠.⁠”

탁병수 과장이 출력한 종이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맑은밤퇴마의 보고서였다⁠. 「⁠현장 협조 담당 주무관이 팥 결계를 발로 훼손함⁠. 본인은 미끄러졌다고 진술함⁠. 팥은 둥글어서 그럴 수 있음⁠.⁠」

“⁠마지막 줄은 왜 쓴 거예요⁠?⁠”

“⁠비꼬는 거지⁠. 영업하는 사람들이 비꼬는 게 제일 무서워⁠.⁠” 과장은 보고서를 반으로 접었다⁠. “⁠여 주무관⁠. 우리 과는 둘이야⁠. 너 빠지면 나 혼자 밤에 나가야 돼⁠. 나 밤에 못 나가⁠. 무릎이 안 좋아⁠.⁠”

“⁠귀신분들도 무릎이 안 좋으세요⁠. 오백 년 서 있어서⁠.⁠”

“⁠귀신은 떠 있잖아⁠.⁠”

과장은 오후 두 시에 국장 회의에 들어갔다⁠. 시의회 예산 심의 전날이라 회의가 길어진다고 했다⁠. 사무실에 소연 혼자 남았다⁠. 배관이 데워지며 쇠 우는 소리를 냈다⁠.

소연은 벽의 서류 상자 탑 앞으로 갔다⁠. 맨 아래 상자 옆구리의 누런 딱지가 눈높이보다 한참 아래 있었다⁠. 「⁠역사 야간 잡비⁠」⁠. 위에 쌓인 상자를 하나씩 내려 바닥에 옮기는 데만 이십 분을 썼다⁠. 상자를 하나 내릴 때마다 먼지가 올라와 형광등 불빛 속에서 반짝였다⁠. 과장이 있었으면 재채기를 열 번은 했을 먼지였다⁠.

1974년 상자의 뚜껑을 열자 종이 냄새가 확 올라왔다⁠. 맨 위에 손으로 쓴 쪽지가 한 장 놓여 있었다⁠. 글씨가 반듯했고 잉크가 갈색으로 바래 있었다⁠.

「⁠귀신관리과 업무 지침 1호⁠. 지하철 역마다 막차 뒤 밥 한 상을 차린다⁠. 귀신분들 몫이다⁠. 이름을 모르면 ‘⁠이 역 귀신님들 몫입니다⁠’ 하고 소리 내어 부를 것⁠. 부르지 않으면 못 드신다⁠. 비용은 청소 용역 계약의 야간 잡비로 한다⁠.⁠」

쪽지 아래는 영수증이었다⁠. 고무줄로 묶은 영수증 다발이 해마다 하나씩⁠, 상자 밑바닥까지 차 있었다⁠. 소연은 다발 하나를 풀었다⁠. 1981년이었다⁠. 「⁠종각역 · 국밥 두 그릇⁠」⁠. 「⁠서울역 · 막걸리 한 되⁠」⁠. 막걸리 영수증 뒷면에 연필 글씨가 덧붙어 있었다⁠. 「⁠반 되는 기관사님이 드심⁠. 귀신님들 양해함⁠」⁠.

소연은 웃음이 터졌다⁠. 혼자 있는 방공호 창고에서 웃음소리가 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다발마다 역 이름과 밥이 적혀 있었다⁠. 김밥⁠, 국밥⁠, 떡⁠, 귤⁠, 컵라면⁠. 1990년대 다발에는 햄버거 영수증이 섞여 있었다⁠. 「⁠신촌역 · 햄버거 세트 · 귀신 학생들이 원함⁠」⁠. 2000년대 다발에는 삼각김밥이 많았다⁠. 쉰 해 동안 역마다⁠, 막차 뒤마다⁠, 누군가 밥을 차렸다⁠. 귀신들이 오백 년 동안 제삿밥을 한 그릇도 못 받았다는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이름을 불러 준 밥은 없었다⁠. 역 이름을 불러 준 밥은 쉰 해 동안 있었다⁠.

2015년 다발부터 같은 글씨가 자꾸 보였다⁠. 글자 끝이 모두 오른쪽 위로 살짝 들려 있었고⁠, 받침 ㄹ을 숫자 2처럼 썼다⁠.

「⁠시청역 · 김밥 두 줄 · 민정숙⁠」

「⁠시청역 · 김밥 두 줄 · 민정숙⁠」

「⁠시청역 · 김밥 세 줄 · 민정숙 · 오늘 추워서 한 줄 더⁠」

소연은 영수증을 한 장씩 넘겼다⁠. 손끝이 차가웠다⁠. 엄마의 글씨는 2024년 3월 영수증에서 끊겼다⁠. 다발 맨 밑에 다른 종이가 두 장 깔려 있었다⁠.

첫 장은 감사 지적서였다⁠. 「⁠청소 용역 계약 내 야간 잡비는 용역 목적 외 지출로 근거 법령 없음⁠. 전액 삭감하고 집행 책임자를 주의 조치할 것⁠.⁠」

두 번째 장은 같은 해 여름의 예산 조정 내역이었다⁠. 표 안에 줄이 두 개 그어져 있었다⁠. 「⁠역사 야간 잡비 — 전액 삭감⁠」⁠. 바로 아래 줄은 「⁠시청역 외 야간 환경미화 인원 조정 — 2인 1조에서 1인으로⁠」⁠. 표 맨 아래 담당자 이름이 찍혀 있었다⁠.

「⁠예산과 주무관 탁병수⁠」

배관이 식는 소리가 똑⁠, 하고 났다⁠. 소연은 종이를 무릎 위에 놓고 오래 앉아 있었다⁠. 형광등 하나가 가늘게 지지거렸다⁠.

*

저녁 일곱 시⁠, 소연은 시청역 1번 출구 계단 밑 휴게실 문을 두드렸다⁠. 막차 전이라 귀신은 보이지 않을 시각이었다⁠. 문을 연 사람은 예순이 넘은 여자였다⁠. 주황 조끼를 입었고⁠, 분홍 고무장갑 한 짝을 아직 손에 끼고 있었다⁠. 시청역의 하나 남은 야간 미화원이었다⁠. 미화원 여사는 소연의 공무원증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시청에서 또 뭘 줄이러 왔어요⁠?⁠”

“⁠아니요⁠. 여쭤볼 게 있어서요⁠.⁠”

“⁠줄일 사람도 없어요⁠. 나 하나야⁠.⁠”

미화원 여사는 그래도 문을 열어 주었다⁠. 전기장판 위에 보온 도시락이 뚜껑이 열린 채 놓여 있었다⁠. 저녁을 먹던 참이었다⁠. 소연이 엄마 이름을 말하자 미화원 여사의 젓가락이 멈췄다⁠.

“⁠정숙 언니 딸⁠?⁠”

“⁠네⁠.⁠”

“⁠어머⁠, 어머⁠.⁠” 미화원 여사가 고무장갑을 벗고 소연의 손을 잡았다⁠. 산 사람의 손이라 따뜻했다⁠. “⁠언니랑 나랑 십 년을 둘이 했어⁠. 언니가 물 뿌리고 내가 밀고⁠. 그해 여름에 용역 회사가 바뀌면서 한 사람씩 다른 역으로 갈라 보냈어⁠. 언니는 시청에 남고 나는 종각으로 갔다가⁠, 언니 그렇게 되고 나서 내가 여기로 왔어⁠.⁠”

미화원 여사가 천장 구석을 가리켰다⁠. 비스듬히 내려앉은 천장에 검은 곰팡이가 손바닥만큼 피어 있었다⁠.

“⁠이 방 그대로야⁠. 창문 없는 것도 그대로고⁠.⁠”

“⁠엄마가 막차 끝나고 김밥 놓으신 건 아세요⁠?⁠”

“⁠알지⁠. 나도 놨는걸⁠.⁠” 미화원 여사가 웃었다⁠. “⁠잡비 나올 때는 용역 회사 돈으로 놨고⁠, 끊기고 나서는 언니가 제 돈으로 놨어⁠. 나는 종각 가서 몇 번 놓다가 말았어⁠. 내 돈으로 매일은 못 하겠더라고⁠. 언니는 매일 했어⁠. 미련하게⁠.⁠”

미화원 여사는 보온 도시락 뚜껑을 닫았다⁠. 밥이 반쯤 남아 있었다⁠.

“⁠요즘 귀신들 파업한다며⁠? 잘한다 그래⁠. 언니가 만든 거면 끝까지 갈 거야⁠. 언니가 시작한 건 다 끝까지 갔어⁠. 계단 청소도⁠.⁠”

*

밤 열한 시 사십 분⁠, 소연은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과장님⁠, 사무실로 오셔야겠어요⁠.⁠”

“⁠지금⁠? 왜⁠.⁠”

“⁠1974년 상자 열었어요⁠.⁠”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한참 뒤에 과장이 말했다⁠. “⁠…⁠…마스크 쓰고 갈게⁠.⁠”

과장은 자정이 조금 지나 도착했다⁠. 체크무늬 잠옷 바지 위에 롱패딩을 입었고⁠, 얼굴의 절반을 하얀 마스크로 가렸다⁠. 사무실 바닥에 펼쳐진 영수증 다발들을 보자 과장이 문간에서 멈췄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이 바닥에서 소연의 손으로⁠, 소연의 손에 들린 예산 조정 내역으로 옮겨 갔다⁠.

“⁠거기 있었구나⁠.⁠”

“⁠과장님이 자르셨어요⁠.⁠”

“⁠내가 잘랐지⁠.⁠” 과장이 마스크를 턱으로 내렸다⁠. “⁠감사 지적이었어⁠. 위법 지출이야⁠. 쉰 해 동안 아무도 안 들여다봐서 이어졌을 뿐이지⁠, 처음부터 법에 없는 돈이었어⁠. 나는 감사관이 자르라는 걸 잘랐어⁠. 지금 다시 그 자리에 앉아도 잘라⁠. 그게 맞으니까⁠.⁠”

“⁠미화원 인원은요⁠?⁠”

“⁠그건 따로야⁠. 용역 단가 조정이었어⁠. 위에서 전체 용역비를 줄이라고 해서⁠, 역마다 야간 한 명씩⁠.⁠” 과장의 목소리가 조금 빨라졌다⁠. “⁠표 한 장에 같이 들어갔을 뿐이야⁠. 같은 날 같은 회의에서⁠.⁠”

“⁠시청역 야간 미화원이 그해 겨울에 혼자 계단 물청소를 하다가 쓰러졌어요⁠.⁠”

과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미화원이 우리 엄마예요⁠.⁠”

과장이 의자를 더듬어 앉았다⁠. 롱패딩이 의자 등받이에 눌려 쉭 소리를 냈다⁠. 과장은 돋보기안경을 꺼내 쓰지도 않고 손에 쥐었다⁠.

“⁠알았어⁠. 사흘 전에⁠.⁠” 과장이 말했다⁠. “⁠성함 듣고 알았어⁠. 휴게실에서 영수증 달라고 했던 분⁠. 김밥 영수증까지 다 달라고 했어⁠. 감사 받으려면 영수증이 있어야 했거든⁠. 그분이 제 돈으로 산 영수증도 섞여 있었어⁠. 나는 그것도 다 걷어 갔어⁠.⁠”

형광등이 징 울었다⁠.

막차가 시청역을 떠난 시각이었다⁠. 사무실 벽⁠, 서류 상자 탑 사이에서 하늘색 빛이 스며 나왔다⁠. 빛은 사람 모양으로 모였고⁠, 주황 조끼가 되고 분홍 고무장갑이 되었다⁠. 엄마는 벽에서 반쯤 몸을 빼고 사무실 바닥의 영수증을 내려다보았다⁠. 빛이 너무 옅어서 엄마 뒤의 1998년 상자 글씨가 엄마의 배를 지나 읽혔다⁠.

“⁠어머⁠, 이거 아직 있네⁠.⁠”

과장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스크가 턱에서 떨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민 여사님⁠.⁠”

“⁠탁 주무관⁠.⁠” 엄마가 과장을 보고 웃었다⁠. “⁠아니지⁠, 이제 과장님이시지⁠. 돋보기는 아직 이마에 올리시네⁠.⁠”

“⁠지금은 손에 들었습니다⁠.⁠”

“⁠손에 드셔도 이마 자국이 그대로예요⁠.⁠”

과장이 이마를 만졌다⁠. 이마 한가운데에 안경 코받침 자국이 빨갛게 나 있었다⁠. 소연은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 입술을 깨물었다⁠.

엄마가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고무장갑 낀 손으로 영수증 한 장을 가리켰다⁠. 「⁠시청역 · 김밥 세 줄 · 민정숙 · 오늘 추워서 한 줄 더⁠」⁠.

“⁠잡비 끊기고 나서도 김밥은 샀어⁠. 영수증만 안 받았지⁠. 줄 데가 없으니까⁠.⁠” 엄마가 소연을 올려다보았다⁠. “⁠두 줄씩⁠. 한 줄은 막차 끝나고 승강장 의자에 놓고 시청역 귀신님들 몫이라고 불렀고⁠, 한 줄은 집에 가져갔어⁠.⁠”

“⁠냉장고에⁠.⁠”

“⁠응⁠. 네 아침⁠.⁠”

“⁠엄마는⁠.⁠”

“⁠나는 안 먹었지⁠. 돈이 두 줄 치밖에 없었어⁠.⁠”

소연은 바닥의 영수증을 내려다보았다⁠. 육 년 동안 아침마다 냉장고에서 꺼내 먹은 김밥이 떠올랐다⁠. 은박지 위의 「⁠아침⁠」 두 글자⁠. 엄마는 늘 퇴근길에 먹고 왔다고 했다⁠. 소연은 의심하지 않았다⁠. 의심할 시간에 김밥을 한 개 더 먹었다⁠.

“⁠말을 하지⁠.⁠”

“⁠말하면 네가 안 먹잖아⁠.⁠”

엄마가 과장을 보았다⁠. 과장은 선 채로 엄마를 보고 있었다⁠. 손에 쥔 돋보기 다리가 휘어 있었다⁠.

“⁠탁 과장님⁠. 저 원망 안 해요⁠. 그때 그 돈 법에 없는 돈 맞아요⁠. 저도 알았어요⁠. 쉰 해 동안 다들 쉬쉬하면서 쓴 돈이에요⁠. 감사관이 들여다보면 잘리는 게 맞아요⁠.⁠”

“⁠민 여사님⁠.⁠”

“⁠그런데 잘린 다음이 없었잖아요⁠. 잘랐으면 그 대신 뭘 해야 할지 누가 정했어야죠⁠. 아무도 안 정했어요⁠. 귀신들은 하루아침에 굶었고⁠, 계단은 혼자 닦았고⁠.⁠” 엄마의 목소리에서 잡음이 걷혔다⁠. 한 마디씩 또렷했다⁠. “⁠저는 그거 하나 정하려고 노조 만들었어요⁠. 잘린 다음을⁠.⁠”

과장이 입을 열었다⁠.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과장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내가 잘랐습니다⁠.⁠”

과장이 허리를 굽혔다⁠. 체크무늬 잠옷 무릎이 바닥의 영수증 다발 앞까지 내려갔다⁠. 머리가 엄마의 고무장갑보다 낮아졌다⁠. 엄마는 과장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다가 손을 뻗었다⁠. 손이 정수리를 지나갔다⁠. 과장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차갑죠⁠.⁠”

“⁠네⁠.⁠”

“⁠정신 번쩍 들죠⁠. 우리 딸이 그러더라고요⁠.⁠”

엄마가 일어났다⁠. 벽 속으로 반쯤 들어가다가 돌아보았다⁠.

“⁠소연아⁠, 영수증 다시 묶어 놔⁠. 고무줄 삭았으면 새 걸로⁠. 그거 증거야⁠.⁠”

엄마가 벽 속으로 사라졌다⁠. 형광등이 한 번 더 징 울고 조용해졌다⁠.

과장은 무릎을 꿇은 채로 바닥의 영수증 다발을 하나씩 집어 들었다⁠. 1981년 다발을 들다가 재채기를 했고⁠, 1990년 다발을 들다가 또 했다⁠. 마스크는 바닥에 떨어진 채였다⁠. 과장은 마스크를 줍지 않았다⁠. 소연은 책상 서랍에서 새 고무줄 한 봉지를 꺼내 과장 옆에 쪼그려 앉았다⁠. 둘은 아무 말 없이 쉰 해 치 영수증을 해마다 한 다발씩 묶었다⁠. 2024년 다발은 소연이 묶었다⁠. 과장은 소연의 손을 보고 있다가 고무줄 하나를 더 건넸다⁠.

“⁠두 번 감아⁠. 그 해 건 얇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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