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38자)

시장실 점거

귀신 노조 파업 · 기담오

새벽 한 시 십 분⁠, 귀신관리과 간이침대 위에서 소연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당직실이었다⁠. 당직 주무관은 숨이 넘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장실에 귀신이 꽉 찼어요⁠. 문을 열었더니 의자에 수염 난 분이 앉아 계세요⁠.⁠”

“⁠문은 왜 여셨어요⁠?⁠”

“⁠라디오 소리가 나서요⁠. 시장님 라디오에서 투쟁가가 나와요⁠.⁠”

소연은 카디건을 걸치고 보온병을 챙겨 비상계단을 뛰어올랐다⁠. 지하 3층에서 시장실까지 아홉 개 층이었다⁠. 여섯 층째에서 숨이 턱에 닿았다⁠. 계단참에서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과장은 이번에는 신호 두 번 만에 받았다⁠. 잠옷 바람으로 뉴스 속보를 보고 있었다고 했다⁠.

“⁠시장실이야⁠?⁠”

“⁠네⁠.⁠”

“⁠택시 탄다⁠. 아무것도 약속하지 마⁠. 아무것도⁠.⁠”

시장실 앞 복도에서 청원경찰 둘이 문 옆 벽에 등을 붙이고 서 있었다⁠. 둘 다 경찰봉을 쥐고 있었지만 봉을 어디다 휘둘러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문틈으로 하늘색 빛과 노랫소리가 새어 나왔다⁠. 태식의 목소리였다⁠.

“⁠자⁠, 시장실에서 보내 드리는 첫 번째 신청곡⁠! 오백 년 만에 시청 꼭대기에 올라온 우리 조합원들께 바칩니다⁠. 「⁠높은 데 계신 분들 밥은 드셨소⁠」⁠!⁠”

소연은 문을 열었다⁠.

넓은 방이었다⁠. 창밖으로 서울광장의 스케이트장 불빛이 내려다보였다⁠. 방 안은 하늘색이었다⁠. 소파 위에⁠, 회의 탁자 위에⁠, 책장 칸칸에 귀신들이 앉아 있었다⁠. 벽에 걸린 서울 지도 앞에서는 갓 쓴 귀신들이 자기가 맡던 골목을 손가락으로 짚어 보고 있었다⁠. 시장의 책상에는 종이 상자 피켓이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교섭하라⁠」⁠. 책상 앞의 나무 명패는 뒤로 돌려져 있었고⁠, 앞에 종이를 접어 만든 명패가 세워져 있었다⁠. 「⁠위원장 장귀석⁠」⁠.

귀석은 시장의 가죽 의자 위 한 뼘 높이에 떠 있었다⁠. 다리를 꼬고⁠, 시장의 예산서를 무릎에 펴 놓고 한 장씩 넘기고 있었다⁠. 종이가 넘어갈 때마다 서걱 소리가 났다⁠.

“⁠주무관 아씨⁠, 오셨소⁠.⁠”

“⁠위원장님⁠, 거기서 내려오세요⁠.⁠”

“⁠앉지도 않았소⁠. 떠 있소⁠.⁠” 귀석이 예산서 한 장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것 보시오⁠. 「⁠야간 경관 조명 개선⁠」⁠. 다리에 불 켜는 돈이오⁠. 이건 「⁠겨울철 제설 장비 구입⁠」⁠. 눈 치우는 돈이오⁠. 이 두꺼운 책에 불 켜는 돈도 있고 눈 치우는 돈도 있는데⁠, 밥 한 그릇이 없소⁠.⁠”

“⁠그건 귀신 밥이라서⁠…⁠…⁠.⁠”

“⁠불을 켜면 사람이 덜 다치지⁠. 눈을 치우면 사람이 덜 넘어지지⁠. 우리가 하는 일이 그 일이오⁠. 불 켜는 데는 돈을 쓰면서 불 켜는 일을 오백 년 한 이한테는 한 푼도 못 쓴다⁠?⁠”

태식이 시장의 탁상 라디오 손잡이를 돌려 볼륨을 키웠다⁠. 라디오는 원래 클래식 방송에 맞춰져 있었는데⁠, 태식이 주파수 사이 어딘가에 귀신 목소리를 실어 투쟁가를 내보내고 있었다⁠. 첼로 소리와 투쟁가가 반씩 섞였다⁠.

창가에서 뽀득 소리가 났다⁠. 엄마가 걸레로 시장실 유리창을 닦고 있었다⁠. 빛이 어제보다 더 옅어서⁠, 창밖 광장의 불빛이 엄마의 몸을 지나 그대로 보였다⁠.

“⁠엄마⁠, 거기서 뭐 해⁠.⁠”

“⁠시장실 유리 닦는 거 처음이야⁠.⁠” 엄마가 걸레를 접었다⁠. “⁠여기는 낮에 다른 업체가 해⁠. 손자국이 많네⁠.⁠”

*

과장이 도착한 것은 두 시 십 분이었다⁠. 체크무늬 잠옷 바지 위에 무릎까지 오는 검은 롱패딩을 입었고⁠, 맨발에 슬리퍼를 신었다⁠. 돋보기안경은 이마가 아니라 패딩 주머니에 꽂혀 있었다⁠. 과장은 문간에서 방 안을 한 번 둘러보고 한 발 물러났다가⁠, 소연과 눈이 마주치자 다시 한 발 들어왔다⁠.

“⁠위원장님 되십니까⁠. 서울시 귀신관리과장 탁병수입니다⁠.⁠”

“⁠관의 우두머리요⁠?⁠”

“⁠우두머리는 아니고 중간입니다⁠. 중간의 중간⁠.⁠” 과장은 책상 위 서류 더미를 가리켰다⁠. “⁠위원장님⁠, 그 서류는 시장님 결재 서류라서요⁠. 순서가 섞이면 비서실이 큰일 납니다⁠.⁠”

“⁠섞지 않았소⁠. 읽었소⁠.⁠”

“⁠읽으시면 더 큰일인데요⁠.⁠”

책장 칸에 앉아 있던 갓 쓴 귀신 하나가 손을 들었다⁠. 회의에서 질문하는 손이었다⁠.

“⁠관의 중간 나리⁠, 하나 묻겠소⁠. 우리가 공무원이 되면 연금이 나오오⁠?⁠”

“⁠그건⁠, 삼십 년 넘게 근무하셔야⁠…⁠…⁠.⁠”

“⁠오백 년 했소⁠.⁠”

“⁠기여금을 내셔야 하고요⁠.⁠”

“⁠기여금이 무엇이오⁠?⁠”

“⁠월급에서 떼는 돈입니다⁠.⁠”

“⁠월급이 없었소⁠.⁠”

과장은 롱패딩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시장실이 얼음장처럼 차가운데 과장의 이마만 젖어 있었다⁠. 소연은 과장이 귀신 앞에서 땀 흘리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귀석은 예산서를 덮고 과장을 내려다보았다⁠. 과장은 슬리퍼 앞코를 모았다⁠. 소연은 과장이 엄마가 서 있는 창가를 한 번도 보지 않는 것을 보았다⁠. 엄마도 과장을 보지 않았다⁠. 엄마는 유리창의 같은 자리를 세 번째 닦고 있었다⁠.

세 시 반⁠, 복도에서 구둣발 소리가 빠르게 다가왔다⁠. 비서실장이 먼저 들어왔고⁠, 뒤따라 시장이 들어왔다⁠. 예순이 가까운 남자였다⁠. 회색 패딩 위에 목도리를 둘둘 감았고⁠, 머리 한쪽이 베개에 눌려 납작했다⁠. 시장은 문턱을 넘다 말고 멈췄다⁠.

칠백이 한꺼번에 시장을 보았다⁠. 시장도 칠백을 보았다⁠. 라디오에서 첼로와 투쟁가가 동시에 끝났다⁠.

“⁠…⁠…⁠.⁠”

시장은 목도리를 한 바퀴 풀었다⁠. 다시 한 바퀴 감았다⁠. 그러고는 귀석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실물로는 처음 뵙습니다⁠.⁠”

“⁠밤에 다녀 보지 않으셨구려⁠.⁠”

“⁠열한 시면 잡니다⁠. 아침 회의가 일곱 시라서요⁠.⁠”

“⁠우리는 열한 시에 출근하오⁠.⁠”

시장은 손님용 소파로 걸어갔다⁠. 소파 위 귀신들이 알아서 자리를 비켰다⁠. 시장은 소파 한가운데 앉으며 엉덩이 밑에서 올라오는 냉기에 몸을 움찔했다⁠. 귀석이 시장의 의자에서 내려와 맞은편 허공에 떴다⁠. 소연은 둘 사이 탁자 옆으로 갔다⁠. 손에 쥔 보온병이 땀으로 미끈거렸다⁠.

“⁠말씀 들었습니다⁠. 제삿밥⁠, 밀린 수당⁠, 쉼터⁠.⁠” 시장이 무릎 위에 두 손을 모았다⁠. “⁠먼저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위원장님께 세금을 한 푼도 드릴 수 없습니다⁠.⁠”

“⁠법이 없어서요⁠?⁠”

“⁠법이 없어서입니다⁠. 그리고 법이 없는 까닭이 있어서입니다⁠.⁠” 시장의 목소리가 낮고 고르게 깔렸다⁠. “⁠세금은 법이 허락한 데만 씁니다⁠. 제가 오늘 밤 위원장님 말씀이 옳다고 법 없이 돈을 쓰면⁠, 다음 시장은 자기 말이 옳다고 법 없이 씁니다⁠. 다음 시장은 저보다 나쁜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법 없는 돈은 한 번 열리면 안 닫힙니다⁠.⁠”

“⁠법이 오백 년 야근을 몰랐다면 법이 늦은 것이오⁠.⁠”

“⁠법이 늦으면 법을 고쳐야지⁠, 법을 건너뛰면 안 됩니다⁠.⁠”

“⁠그럼 고치시오⁠.⁠”

“⁠국회가 고칩니다⁠. 저는 못 합니다⁠.⁠”

창가에서 잡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시장님⁠.⁠”

엄마였다⁠. 걸레를 든 채 시장을 보고 있었다⁠. 시장이 고개를 돌려 창가의 옅은 귀신을 보았다⁠. 주황 조끼의 「⁠시청역 환경미화⁠」 글자를 읽는 눈이었다⁠.

“⁠그럼 시장님이 국회에 가서 말해 주세요⁠. 서울에 오백 년 동안 밤일한 사람들이 있는데 법이 없어서 밥을 못 준다고⁠. 시장님 말씀은 국회가 듣잖아요⁠. 우리 말은 낮에 안 들려요⁠.⁠”

시장은 한참 엄마를 보았다⁠. 대답하지 않았다⁠.

소연이 끼어들었다⁠. 비서실장의 말이 생각났다⁠.

“⁠시장님⁠, 혹시 감사패는 어떨까요⁠. 행사비로 할 수 있다고⁠…⁠…⁠.⁠”

칠백이 한꺼번에 소연을 보았다⁠. 시장실 온도가 단번에 떨어졌다⁠. 회의 탁자 위 물컵에 살얼음이 끼었다⁠.

“⁠감사패를 먹으라는 것이오⁠!⁠”

“⁠감사패는 씹히지도 않소⁠!⁠”

“⁠오백 년 일했는데 나무토막 하나요⁠!⁠”

태식이 라디오 볼륨을 끝까지 올렸다⁠. “⁠자⁠, 주무관님 제안에 화답하는 신청곡⁠! 「⁠나무토막은 됐소⁠」⁠!⁠”

“⁠그런 노래도 있어요⁠?⁠”

“⁠방금 만들었어요⁠!⁠”

소연은 두 손을 들었다⁠. “⁠취소합니다⁠. 감사패 취소합니다⁠.⁠”

시장이 웃음을 참느라 목도리에 입을 묻었다⁠. 웃음이 그치자 시장은 소연에게 손짓했다⁠. 소연이 몸을 굽히자 시장이 목소리를 낮췄다⁠.

“⁠여 주무관⁠. 저분들이 정말 사고를 막아 왔습니까⁠?⁠”

“⁠네⁠. 사흘째 야간 사고 신고가 평소의 세 배입니다⁠.⁠”

시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던 고개가 천천히 멈췄다⁠.

“⁠그럼 더더욱 돈 얘기는 못 합니다⁠. 사고를 막아 줄 테니 돈을 내라는 분들과 돈 얘기를 시작하면⁠, 서울의 밤이 저분들 손에 들어갑니다⁠.⁠”

*

다섯 시⁠, 비서실장이 서류철 하나를 시장 앞에 내밀었다⁠. 첫 장에 「⁠긴급 수의계약 요청 · 야간 시설 안전 관리 용역⁠」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래쪽에 업체 이름이 보였다⁠. 맑은밤퇴마⁠. 소연은 과장을 보았다⁠. 과장은 패딩 주머니의 돋보기를 만지작거리며 바닥을 보았다⁠.

“⁠시장님⁠.⁠” 소연이 말했다⁠. “⁠그 돈이면 밥이⁠…⁠…⁠.⁠”

“⁠이건 용역입니다⁠.⁠” 시장이 펜 뚜껑을 열었다⁠. “⁠저분들이 오늘 밤 사고를 막지 않겠다고 하시면⁠, 저는 사고를 막을 다른 방법을 사야 합니다⁠. 시장이 하는 일이 그겁니다⁠.⁠”

시장은 칠백이 보는 앞에서 서명했다⁠. 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시장실에 또렷이 울렸다⁠. 귀석이 수염을 쓸지 않았다⁠. 엄마는 걸레를 접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문이 열렸다⁠. 마흔 중반의 남자가 들어왔다⁠. 회색 정장에 흰 운동화를 신었고⁠, 어깨에 쌀자루만 한 마대를 메고 있었다⁠. 마대에서 마른 곡식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남자는 시장에게 허리를 숙이고⁠, 칠백을 향해 한 번 더 숙였다⁠. 손님 맞는 가게 주인의 인사였다⁠.

“⁠맑은밤퇴마 대표 맹지훈입니다⁠. 로비에서 세 시부터 기다렸습니다⁠. 계약 감사합니다⁠.⁠”

지훈은 명함을 꺼내 시장에게 한 장⁠, 과장에게 한 장⁠, 소연에게 한 장 건넸다⁠. 그러고는 마대 끈을 풀어 손을 넣었다⁠. 꺼낸 손에 붉은 팥이 한 줌 쥐어져 있었다⁠. 지훈은 시장실 카펫 위에 팥을 한 줄로 흘렸다⁠. 팥알이 카펫에 떨어지는 소리가 투둑투둑 이어졌다⁠.

팥 줄 가까이에 떠 있던 귀신들이 뜨거운 데 손을 댄 것처럼 몸을 젖혔다⁠. 갓 쓴 귀신 하나가 뒤로 밀려나 책장에 부딪혔다⁠. 책장은 흔들리지 않았고⁠, 귀신만 책장을 지나 벽 속으로 반쯤 들어갔다가 겨우 빠져나왔다⁠.

“⁠고객님들⁠.⁠” 지훈이 칠백을 향해 웃었다⁠. 매끄러운 목소리였다⁠. “⁠서울 시민 출근 전까지 깔끔하게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고객이 아니오⁠.⁠” 귀석이 말했다⁠.

“⁠오늘부터 고객님이십니다⁠. 저희 대상물이 되셨으니까요⁠.⁠”

“⁠대상물이라 했소⁠?⁠”

“⁠용역 계약서상 표현입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굴속에서 오는 것 같은 바람이 시장실 안을 한 바퀴 돌았다⁠. 서류 몇 장이 책상에서 날렸다⁠. 소연은 지훈의 명함을 내려다보았다⁠. 명함 뒷면에 작은 글씨가 있었다⁠. 「⁠사람의 밤을 사람에게⁠」⁠.

창밖 광장 너머로 동이 트지는 않았지만⁠, 지하 어딘가에서 첫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칠백의 하늘색이 발끝부터 옅어졌다⁠. 엄마가 제일 먼저 사라졌다⁠. 걸레가 창틀 위에 잠깐 남아 있다가 따라 사라졌다⁠. 귀석은 마지막까지 남아 지훈을 보았다⁠.

“⁠오늘부터 우리는 쫓기는 노조요⁠.⁠”

귀석이 사라졌다⁠. 시장실 카펫 위에 팥 한 줄과 종이 명패 하나가 남았다⁠. 시장이 허리를 숙여 종이 명패를 집었다⁠. 「⁠위원장 장귀석⁠」⁠. 시장은 명패를 버리지 않고 접어서 패딩 주머니에 넣었다⁠.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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