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527자)

가족 면담

귀신 노조 파업 · 기담오

“⁠어머니⁠?⁠”

탁병수 과장의 돋보기안경이 이마에서 미끄러져 책상 위에 떨어졌다⁠. 안경알이 결재판에 부딪혀 딱 소리를 냈다⁠. 아침 아홉 시였고⁠, 배관에서는 아직 쇠 우는 소리가 났다⁠.

“⁠네⁠. 부위원장님이 제 어머니세요⁠.⁠”

“⁠돌아가신 어머니⁠.⁠”

“⁠네⁠. 돌아가셔서 귀신이세요⁠.⁠”

과장은 안경을 주워 들고 한참 렌즈를 닦았다⁠. 닦을 데가 없는데도 닦았다⁠. 그러고는 서랍을 열어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사적 이해관계자 신고서⁠」⁠. 공무원이 맡은 일에 가족이 얽히면 먼저 알려야 한다는 법에 따른 서식이었다⁠.

“⁠써⁠.⁠”

소연은 볼펜을 들었다⁠. 「⁠사적 이해관계자와의 관계⁠」 칸에 「⁠모친⁠」이라고 썼다⁠. 다음 칸은 「⁠이해관계 내용⁠」이었다⁠. 소연은 한참 볼펜을 들고 있다가 썼다⁠. 「⁠교섭 상대방 노동조합 부위원장(⁠사망⁠)⁠」⁠.

과장이 신고서를 들고 읽다가 이마를 짚었다⁠.

“⁠돌아가신 분도 사적 이해관계자야⁠?⁠”

“⁠법무담당관실에 물어볼까요⁠?⁠”

“⁠묻지 마⁠. 물으면 기록이 남아⁠.⁠” 과장은 신고서를 반으로 접었다가 다시 펼쳤다⁠. 접은 자국이 「⁠사망⁠」 글자 위를 지나갔다⁠. “⁠아니다⁠. 오히려 잘됐어⁠. 가족이면 말이 통하잖아⁠. 설득해⁠. 엄마잖아⁠.⁠”

“⁠엄마라서 말이 안 통하는데요⁠.⁠”

“⁠그건 산 엄마 얘기고⁠.⁠”

과장은 신고서를 서랍에 넣고 서랍을 잠갔다⁠. 열쇠를 돌리다 말고 소연을 보았다⁠.

“⁠어머니 성함이 어떻게 되시지⁠?⁠”

“⁠민정숙이요⁠. 시청역 야간 미화원이셨어요⁠.⁠”

과장의 손이 열쇠 위에서 멈췄다⁠. 배관이 식는 소리가 똑⁠, 하고 한 번 났다⁠. 과장은 열쇠를 마저 돌리고 돋보기를 이마에 올렸다⁠. 평소보다 높이 올렸다⁠.

“⁠그래⁠. 시청역⁠. 계단 많은 역이지⁠.⁠”

과장은 더 말하지 않고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소연은 과장이 아무 창도 띄우지 않은 바탕화면을 오래 들여다보는 것을 보았다⁠.

*

열 시 반⁠, 귀신관리과 문을 누가 두드렸다⁠. 귀신관리과 문을 두드린 사람은 석 달 동안 택배 기사 하나뿐이었다⁠. 문을 열자 정장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시장 비서실장이었다⁠. 비서실장은 방공호 창고 안을 둘러보고 서류 상자 탑을 올려다보았다⁠. 천장의 배관에서 물방울이 비서실장의 구두 앞에 똑 떨어졌다⁠.

“⁠여기가 귀신관리과입니까⁠?⁠”

“⁠네⁠. 저희가 귀신관리과입니다⁠.⁠” 과장이 일어나 넥타이를 고쳤다⁠. “⁠여기까지 어쩐 일로⁠.⁠”

“⁠시장님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비서실장은 의자를 권하는 과장의 손을 사양하고 선 채로 말했다⁠. “⁠연말 전에 끝내십시오⁠. 다음 주부터 시의회 예산 심의입니다⁠. 귀신 밥값이 예산서에 한 줄이라도 올라가면 의원들이 그 한 줄로 석 달을 씁니다⁠. 그리고 한 번 주면 내년에도 줘야 하고⁠, 내년에 주면 다음 시장도 줘야 합니다⁠. 선례가 됩니다⁠.⁠”

“⁠돈 얘기 없이 끝내라는 말씀이시죠⁠.⁠” 소연이 물었다⁠.

“⁠돈 얘기 없이⁠.⁠”

“⁠귀신들 요구가 밥인데요⁠.⁠”

“⁠밥 말고 다른 걸로 하십시오⁠. 표창이라든지⁠. 감사패라든지⁠.⁠” 비서실장이 손목시계를 보았다⁠. “⁠감사패는 예산이 있습니다⁠. 행사비로⁠.⁠”

비서실장이 나가자 과장이 의자에 털썩 앉았다⁠. 소연은 비서실장이 서 있던 바닥의 물방울을 휴지로 닦았다⁠.

“⁠과장님⁠, 감사패는 행사비로 되는데 밥은 왜 안 돼요⁠?⁠”

“⁠감사패는 안 먹잖아⁠.⁠”

오후에는 법무담당관실에 전화를 걸었다⁠. 과장이 묻지 말라고 한 것은 이해충돌이었지 조례가 아니었다⁠. 법무담당관실 주무관은 소연의 질문을 끝까지 듣고 나서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니까 귀신 밥을 조례로 정할 수 있느냐는 거죠⁠?⁠”

“⁠네⁠.⁠”

“⁠조례는 시의회가 만드시는데⁠, 의원님들이 귀신 일로 조례를 내실까요⁠? 귀신은 투표를 안 하잖아요⁠.⁠”

“⁠막차 타는 시민들은 투표하는데요⁠.⁠”

“⁠아⁠, 그건 좋은 말씀이네요⁠. 그런데 귀신이 주민이면 주민세도 내셔야 하거든요⁠.⁠”

“⁠귀신은 돈이 없어요⁠.⁠”

“⁠그러니까요⁠. 돈이 없는 주민한테 돈을 주면 그건 복지고⁠, 복지는 또 다른 법이 있어서요⁠.⁠” 수화기 너머에서 서류 넘기는 소리가 났다⁠. “⁠검토해 보겠습니다⁠.⁠”

소연은 전화를 끊고 책상에 이마를 댔다⁠. 서울시청에서 검토해 보겠다는 말을 하루에 네 번 들었다⁠. 오백 년이면 몇 번일지 따지다가 그만두었다⁠.

*

밤 열한 시 사십 분⁠, 시청역 2번 출구 앞 김밥집은 셔터를 반쯤 내리고 있었다⁠. 소연이 허리를 굽혀 셔터 밑으로 들어가자 김밥집 할머니가 행주를 든 채 돌아보았다⁠. 김밥 마는 대나무 발이 도마 위에 말라 가고 있었다⁠.

“⁠끝났어요⁠, 아가씨⁠.⁠”

“⁠한 줄만요⁠. 남은 재료로요⁠.⁠”

할머니는 혀를 차면서도 대나무 발을 다시 폈다⁠. 밥을 펴고 시금치를 놓고 단무지를 놓는 손이 빨랐다⁠. 할머니는 김밥을 말다 말고 소연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한참 보다가 김 끝에 밥풀을 문질러 붙였다⁠.

“⁠정숙 씨 딸이지⁠?⁠”

소연은 대답을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눈매가 똑같네⁠. 엄마는 맨날 이 시간에 와서 두 줄 사 갔어⁠. 육 년 전 겨울까지⁠.⁠” 할머니는 김밥을 은박지에 싸며 덧붙였다⁠. “⁠요즘 밤에 역 앞이 휑해⁠. 귀신들 파업한다며⁠? 우리 가게 앞 귀신 총각이 셔터 내릴 때마다 손가락 조심하라고 해 줬는데⁠, 어제 나 셔터에 손 찧었어⁠.⁠”

“⁠죄송합니다⁠.⁠”

“⁠시청이 왜 죄송해⁠. 귀신이 죄송해야지⁠.⁠” 할머니가 손가락의 반창고를 보여 주었다⁠. “⁠그래도 밥은 줘⁠. 일 시켰으면 밥은 줘야지⁠. 우리 때는 그랬어⁠.⁠”

할머니는 김밥값을 받지 않았다⁠. 소연이 카드를 내밀자 할머니가 셔터 쪽으로 턱을 들었다⁠. “⁠얼른 가⁠. 나 문 닫아⁠.⁠”

*

자정 이십 분⁠, 소연은 시청역 1번 출구 계단 밑 철문을 찾아냈다⁠. 문에 「⁠관계자 외 출입 금지 · 환경미화 휴게실⁠」 글자가 붙어 있었다⁠. 손잡이를 돌리자 문이 끽 열렸다⁠.

두 평이 안 되는 방이었다⁠. 천장이 계단 모양으로 비스듬히 내려앉아 있어서 안쪽에서는 허리를 펼 수가 없었다⁠. 철제 사물함 둘⁠, 접이식 의자 하나⁠, 바닥에 깐 전기장판 하나⁠. 벽의 못에 분홍 고무장갑 한 켤레가 매달려 있었다⁠. 산 사람이 쓰는 장갑이었고⁠, 손가락 끝이 하얗게 닳아 있었다⁠. 지금 시청역 야간 미화원은 한 사람뿐이었고⁠, 자정에 위층 청소를 하러 올라갔다고 했다⁠. 전기장판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엄마는 전기장판 귀퉁이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었다⁠. 어젯밤보다 빛이 더 옅었다⁠. 철제 사물함의 녹슨 무늬가 엄마의 어깨를 지나 비쳐 보였다⁠.

“⁠왔어요⁠, 교섭 담당자님⁠.⁠”

“⁠오늘은 엄마로 왔어⁠.⁠”

“⁠그럼 들어와⁠. 신발 벗고⁠.⁠”

소연은 신발을 벗고 전기장판 반대편 귀퉁이에 앉았다⁠. 허리를 펼 수 없어서 고개를 숙인 채였다⁠. 카디건 주머니에서 은박지에 싼 김밥 한 줄을 꺼냈다⁠. 시청역 2번 출구 앞 김밥집에서 문 닫기 직전에 산 김밥이었다⁠. 은박지를 벌리자 참기름 냄새가 좁은 방에 퍼졌다⁠. 소연은 김밥을 엄마 앞에 놓았다⁠.

“⁠민정숙 부위원장님 몫입니다⁠.⁠”

엄마가 김밥을 보았다⁠. 귀신의 콧날이 한 번 움찔했다⁠. 엄마는 손등으로 은박지를 밀었다⁠. 손이 은박지에 닿자 은박지가 바스락 소리를 내며 한 뼘 미끄러졌다⁠. 김밥은 소연 무릎 앞까지 되돌아왔다⁠.

“⁠안 먹어⁠.⁠”

“⁠왜⁠?⁠”

“⁠나만 먹으면 그게 노조냐⁠?⁠”

“⁠엄마 빛이 없어지고 있잖아⁠.⁠”

“⁠그럼 없어지는 거지⁠.⁠” 엄마는 무릎을 끌어안았다⁠. “⁠칠백이 다 굶는데 부위원장이 딸한테 김밥 받아먹고 나가면⁠, 내일부터 누가 내 말을 들어⁠. 위원장님은 어제 너한테 삼각김밥 받아먹고 밤새 조합원들한테 사과했어⁠. 맛만 봤다고⁠.⁠”

“⁠다 드셨던데⁠.⁠”

“⁠다 드셨지⁠. 그래서 밤새 사과했지⁠.⁠”

소연은 은박지를 다시 엄마 앞으로 밀었다⁠. 엄마가 또 밀었다⁠. 김밥이 전기장판 위를 두 번 왕복했다⁠. 세 번째에 소연이 손을 멈췄다⁠.

“⁠엄마는 맨날 그랬어⁠. 남 먹이고 엄마는 안 먹고⁠. 퇴근할 때마다 김밥 사 와서 엄마는 한 개도 안 먹고 냉장고에 넣었잖아⁠. 그거 내가 아침마다 먹었어⁠.⁠”

“⁠그건 네 아침이었지⁠.⁠”

“⁠엄마 거였잖아⁠.⁠”

엄마가 대답하지 않았다⁠. 계단 위로 누가 지나가는 발소리가 났다⁠. 천장이 계단이라 발소리가 바로 머리 위에서 울렸다⁠. 엄마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

“⁠저 계단⁠.⁠”

“⁠응⁠.⁠”

“⁠물청소는 원래 둘이 하는 거야⁠. 하나는 물 뿌리고 하나는 밀대로 밀고⁠. 혼자 하면 물 뿌리러 올라갔다가 밀러 내려왔다가⁠, 그걸 백 번 해⁠.⁠” 엄마의 목소리에서 잡음이 잠깐 걷혔다⁠. “⁠그날은 혼자였어⁠. 위에서 세 번째 계단이었나⁠. 가슴이 꽉 쥐어지더라⁠. 밀대를 잡고 앉았는데 못 일어났어⁠. 첫차 기관사님이 찾았대⁠.⁠”

소연은 기억했다⁠. 2024년 12월⁠, 새벽 여섯 시에 원룸에서 전화를 받았다⁠. 모르는 번호였고⁠, 경찰이라고 했다⁠. 소연은 전화를 받으며 맨 먼저 엄마가 어제 냉장고에 넣어 둔 김밥을 보았다⁠. 은박지 위에 엄마 글씨로 「⁠아침⁠」이라고 적혀 있었다⁠.

“⁠왜 혼자였어⁠. 둘이 하는 거라며⁠.⁠”

엄마가 고무장갑 낀 손을 펴서 내려다보았다⁠.

“⁠사람을 줄였어⁠. 그해에⁠. 둘이 하던 걸 하나로⁠.⁠”

“⁠누가⁠?⁠”

“⁠위에서⁠.⁠”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됐고⁠. 그 얘기 하자고 부른 거 아니야⁠.⁠”

*

김밥이 식었다⁠. 엄마가 먹지 않았으니 김은 빠지지 않았고⁠, 그냥 겨울 방에서 식었다⁠. 소연은 은박지를 다시 오므렸다⁠.

“⁠요구가 밥 하나라며⁠. 그럼 다른 거 다 빼고 밥만 얘기하자⁠. 오백 년 수당은 빼⁠. 그건 진짜 안 돼⁠. 국장님이 기절하셔⁠.⁠”

“⁠수당은 위원장님 거야⁠. 위원장님이 정해⁠.⁠” 엄마가 벽의 못을 가리켰다⁠. 못에 매달린 산 사람의 고무장갑이 흔들렸다⁠. “⁠쉼터는 내가 넣은 거고⁠.⁠”

“⁠귀신 쉼터⁠?⁠”

“⁠귀신 쉼터 말고⁠. 여기⁠.⁠” 엄마가 손바닥으로 전기장판을 두드렸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지금 이 역 미화원 언니⁠, 혼자서 이 방 써⁠. 겨울에도 창문이 없어서 곰팡이 피어⁠. 귀신 쉼터 달라고 하면 시에서 웃겠지⁠. 웃다가⁠, 그럼 귀신 쉼터 대신 뭘 해 줄까 하겠지⁠. 그때 여기를 말하는 거야⁠.⁠”

“⁠엄마⁠, 그거 교섭 기술이야⁠?⁠”

“⁠시청역에서 십 년 쓸면 다 알아⁠.⁠”

소연은 웃음이 났다⁠. 웃음이 나오는 바람에 고개를 들다가 비스듬한 천장에 정수리를 박았다⁠. 쿵 소리가 났다⁠. 엄마가 놀라 손을 뻗었다가 손이 소연의 머리를 지나갔다⁠. 정수리가 얼음에 닿은 것처럼 차가워졌다⁠. 아픈 데가 금세 식었다⁠.

“⁠어머⁠, 미안⁠.⁠”

“⁠아니야⁠. 좋은데⁠. 얼음찜질⁠.⁠”

“⁠그럼 한 번 더 해 줘⁠?⁠”

“⁠됐어⁠.⁠”

엄마가 웃었다⁠. 잡음 사이로 웃음이 길게 이어졌다⁠. 웃음이 그치자 엄마가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소연을 보았다⁠. 교섭 담당자를 보는 눈이었다⁠.

“⁠관에서는 돈 얘기 말고 하라고 했지⁠?⁠”

“⁠어떻게 알아⁠?⁠”

“⁠관은 늘 그래⁠.⁠” 엄마가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도 비스듬한 천장에 머리가 닿지 않았다⁠. 귀신이라 천장을 그냥 지나갔다⁠. “⁠교섭 담당자님께 통보합니다⁠. 서울귀신노동조합은 내일 밤 막차 이후 시장 집무실로 갑니다⁠.⁠”

“⁠시장실은 못 들어가⁠. 경비도 있고 출입증도 있어야 하고⁠.⁠”

“⁠귀신이 문 열고 다니니⁠?⁠”

엄마의 머리가 천장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 천장 위가 계단이라⁠, 계단을 지나던 누군가가 발밑에서 귀신 머리가 쑥 솟는 것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엄마가 고개를 숙이고 혀를 쏙 내밀었다⁠.

“⁠미안합니다⁠. 청소 중이에요⁠.⁠”

소연은 휴게실을 나와 개찰구 앞 의자에서 식은 김밥을 먹었다⁠. 맛이 그대로였다⁠. 참기름 맛도⁠, 우엉 맛도 그대로였다⁠. 김밥집 할머니에게 단무지를 두 줄 넣어 달라고 하지 않았는데⁠, 단무지가 두 줄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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