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629자)

부위원장

귀신 노조 파업 · 기담오

국장의 서면 답변은 오후 다섯 시 오십구 분에 내려왔다⁠. 퇴근 일 분 전이었다⁠. 소연은 출력한 종이를 들고 소리 내어 읽었다⁠.

「⁠서울특별시는 법령에 근거 없는 지출을 할 수 없음⁠. 다만 귀신 여러분의 오랜 노고에 깊이 감사드림⁠.⁠」

“⁠과장님⁠, 감사드림이요⁠.⁠”

“⁠그게 어디야⁠. 국장님이 귀신한테 감사드린 거 처음이야⁠.⁠”

“⁠귀신들이 감사를 먹을 수는 없잖아요⁠.⁠”

“⁠감사는 공짜잖아⁠.⁠” 과장은 패딩을 걸치고 가방을 들었다⁠. “⁠오늘은 막차 타고 한 바퀴 돈다며⁠. 교통비는 개인 카드로 하고 출장 신청은 내일 해⁠. 귀신 출장은 처음이라 서식이 있나 모르겠다⁠.⁠”

사무실 구석 텔레비전에서 저녁 뉴스가 흘렀다⁠. 화면 아래로 자막이 지나갔다⁠. 「⁠행정안전부 “⁠귀신은 소관 아냐⁠” … 서울시에 자체 해결 요청⁠」⁠. 이어서 앵커가 서울의 밤 사고 신고가 사흘째 평소의 세 배라고 전했다⁠. 과장이 문을 나서다 말고 돌아보았다⁠.

“⁠여 주무관⁠. 저녁은 먹고 가⁠.⁠”

소연은 대답을 하려다 말았다⁠. 과장은 벌써 복도 끝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저녁은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때우기로 했다⁠. 이번에는 몫을 부르지 않고 제 입에 넣었다⁠. 따뜻했고⁠, 참치 맛이 났다⁠.

*

자정 이 분⁠, 내선순환 막차가 시청역에 들어왔다⁠. 소연은 맨 앞 칸에 올랐다⁠. 객실에는 산 사람이 다섯 있었다⁠. 넥타이를 반쯤 푼 회사원 하나가 손잡이에 매달려 졸았고⁠, 대리기사 둘이 휴대전화로 다음 콜을 보았고⁠, 커플 하나가 한 이어폰을 나눠 끼고 있었다⁠. 문이 닫혔다⁠.

형광등이 징 울었다⁠.

객실이 한꺼번에 하늘색으로 찼다⁠. 의자 위에도⁠, 손잡이 사이에도⁠, 선반 위에도 귀신이 떠 있었다⁠. 귀신끼리 몸이 겹쳐서 어디까지가 한 귀신이고 어디부터가 다음 귀신인지 알 수 없었다⁠. 객실 공기가 단번에 차가워졌다⁠. 커플이 서로 어깨를 붙였고⁠, 대리기사 하나가 점퍼 지퍼를 턱까지 올렸다⁠.

졸던 회사원이 눈을 떴다⁠. 눈앞에 붉은 머리띠를 맨 조선 귀신이 코가 닿을 듯이 떠 있었다⁠. 회사원은 비명을 지르는 대신 벌떡 일어나 제 자리를 가리켰다⁠.

“⁠앉으세요⁠. 연세가 있어 보이셔서⁠.⁠”

“⁠고맙소⁠. 오백 살이오⁠.⁠”

“⁠아⁠, 그럼 앉으셔야죠⁠.⁠”

조선 귀신은 회사원이 비켜 준 자리에 앉았다⁠. 앉아도 엉덩이가 의자에 닿지 않고 한 뼘 위에 떠 있었다⁠. 회사원은 다시 손잡이에 매달려 졸기 시작했다⁠.

천장 스피커가 지지직 울었다⁠. 기관사의 안내 방송이었다⁠.

“⁠승객 여러분께 안내 말씀 드립니다⁠. 오늘 이 열차에는 귀신 승객이 많이 타셔서 난방이 잘 들지 않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귀신 승객 여러분⁠, 손잡이에 매달려 그네 타지 마십시오⁠. 손잡이는 못 잡으셔도 흔들리는 건 보입니다⁠.⁠”

손잡이 몇 개가 쑥스럽게 멈췄다⁠.

귀석이 객실 한가운데로 내려왔다⁠. 태식이 확성기를 들고 귀석 뒤에 떴다⁠. 귀석이 소연을 보았다⁠.

“⁠관의 답을 가져왔소⁠?⁠”

소연은 국장의 답변서를 펴서 읽었다⁠. 「⁠서울특별시는 법령에 근거 없는 지출을 할 수 없음⁠. 다만 귀신 여러분의 오랜 노고에 깊이 감사드림⁠.⁠」 다 읽기도 전에 객실 여기저기서 야유가 터졌다⁠. 귀신의 야유는 굴속 바람 소리와 비슷해서⁠, 열차 소음과 섞이자 객실 전체가 우우 울었다⁠.

“⁠감사는 밥이 아니오⁠!⁠”

“⁠감사로 배가 부르면 우리가 오백 년 전에 배가 터졌소⁠!⁠”

태식이 확성기에 대고 외쳤다⁠. “⁠자⁠, 관의 감사 인사에 화답하여 신청곡 들어갑니다⁠. 「⁠감사는 됐고 밥을 다오⁠」⁠!⁠”

“⁠그런 노래가 있어요⁠?⁠”

“⁠방금 만들었어요⁠.⁠”

칠백이 태식의 즉석 노래를 따라 불렀다⁠. 가사는 「⁠감사는 됐고 밥을 다오⁠」 한 줄이 전부였고⁠, 한 줄을 여든 번쯤 되풀이했다⁠. 대리기사 하나가 휴대전화를 들어 영상을 찍다가 소연에게 물었다⁠.

“⁠이거 올려도 돼요⁠? 저작권 있어요⁠?⁠”

“⁠저작권자가 돌아가셔서요⁠.⁠”

“⁠그럼 괜찮겠네⁠.⁠”

소연은 귀석에게 바짝 다가갔다⁠. 열차가 을지로입구역을 지나며 크게 흔들렸다⁠.

“⁠위원장님⁠, 사흘째 사고가 세 배예요⁠. 마포대교에서 택시가 부딪쳤고⁠, 종로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계단에서 구르셨어요⁠. 크게 다치신 분은 아직 없지만⁠…⁠…⁠.⁠”

“⁠아직 없는 것은 우리가 손을 다 떼지 않았기 때문이오⁠.⁠” 귀석이 수염을 쓸었다⁠. “⁠조합원 중에 몰래 깨우는 이가 있소⁠. 나도 아오⁠. 모른 척하오⁠. 그러나 관이 계속 감사만 하면 모른 척도 그만두겠소⁠. 사흘 뒤면 2호선에서 1호선⁠, 3호선⁠, 한강 다리까지 넓히겠소⁠.⁠”

“⁠한강 다리까지요⁠?⁠”

“⁠한강 다리가 우리 조합원 제일 많은 곳이오⁠.⁠”

한강 다리를 말할 때만 귀석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소연은 다리 위에서 일하는 귀신들이 어떻게 귀신이 되었는지 묻지 않았다⁠. 객실 창밖으로 컴컴한 굴 벽이 흘러갔다⁠.

*

“⁠부위원장께서 끝 칸에서 기다리신다 하였소⁠.⁠”

귀석이 객실 뒤 연결문을 가리켰다⁠. 소연은 귀신들 사이를 헤치고 걸었다⁠. 귀신 몸을 지날 때마다 찬물에 팔을 담그는 느낌이 들었다⁠. 연결문을 열자 다음 칸이 나왔다⁠.

두 번째 칸에는 갓을 쓴 귀신들이 많았다⁠. 한양 도성 시절부터 밤길을 지킨 귀신들이 의자 끝에 꼿꼿이 앉아 있었다⁠. 세 번째 칸에는 지게를 진 귀신들이 있었다⁠. 지게 위에 연탄이 쌓여 있었는데 연탄도 하늘색이었다⁠. 다섯 번째 칸에서는 버스 안내원 차림의 젊은 여자 귀신들이 손잡이 아래에서 「⁠오라이⁠」를 연습했고⁠, 일곱 번째 칸에는 노란 안전모를 쓴 귀신들이 모여 있었다⁠. 안전모에 「⁠지하철 2호선 건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안전모 귀신 하나가 소연을 보고 객실 천장을 툭툭 두드렸다⁠.

“⁠이 굴⁠, 우리가 판 거요⁠. 팔십 년대에⁠.⁠”

소연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칸을 지날 때마다 귀신들의 옷이 바뀌었다⁠. 한 칸을 건널 때마다 열 해씩 앞으로 왔다⁠. 아홉 번째 칸에는 배달 가방을 멘 귀신⁠, 정장을 입은 귀신⁠, 등산복을 입은 귀신이 섞여 있었다⁠. 다들 소연이 지나가자 피켓을 내리고 길을 비켰다⁠.

열 번째 칸⁠, 맨 끝 칸 연결문 앞에서 소연은 손잡이를 잡고 잠깐 숨을 골랐다⁠. 문 너머에서 소리가 났다⁠. 마른걸레로 유리를 닦는 소리였다⁠. 뽀득⁠, 뽀득⁠. 한 번 닦고⁠, 걸레를 접어 다시 닦는 소리⁠.

소연은 문을 열었다⁠.

맨 끝 칸은 비어 있었다⁠. 귀신이 하나뿐이었다⁠. 노약자석 끝에 작은 몸 하나가 앉아 창문을 닦고 있었다⁠. 주황 형광 조끼를 입었고⁠, 양손에 분홍 고무장갑을 꼈다⁠. 조끼 등판에 「⁠시청역 환경미화⁠」 글자가 반쯤 벗겨져 있었다⁠. 다른 귀신보다 빛이 훨씬 옅어서⁠, 귀신 너머의 창문과 창문 너머의 굴 벽까지 다 비쳐 보였다⁠. 고무장갑만 조금 짙었다⁠.

귀신이 걸레를 접으며 고개를 돌렸다⁠. 짧은 파마머리 아래 둥근 이마⁠, 웃기 전에 먼저 접히는 눈가⁠.

소연의 손에서 보온병이 미끄러졌다⁠. 보온병이 바닥에 떨어져 데구루루 굴렀다⁠. 귀신이 반사처럼 몸을 굽혀 보온병을 주우려다 손을 멈췄다⁠. 고무장갑 낀 손이 보온병 위에서 한참 머뭇거렸다⁠. 가벼운 물건이 아니었다⁠.

“⁠교섭 담당자님⁠, 오셨어요⁠.⁠” 목소리가 가늘었다⁠. 라디오 주파수가 두 방송 사이에 걸려 지직거릴 때처럼⁠, 말끝마다 잡음이 섞였다⁠. “⁠서울귀신노동조합 부위원장 민정숙입니다⁠.⁠”

“⁠엄마⁠.⁠”

“⁠교섭 중에는 부위원장이라고 부르세요⁠.⁠”

“⁠엄마⁠.⁠”

“⁠부위원장⁠.⁠” 엄마가 고무장갑을 벗어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보온병 주워⁠. 뚜껑 열렸다⁠. 식어⁠.⁠”

소연은 무릎을 꿇고 보온병을 주웠다⁠. 뚜껑이 열린 채였다⁠. 손이 떨려서 뚜껑이 세 번 헛돌았다⁠. 네 번째에 겨우 닫혔다⁠. 열차가 덜컹 흔들렸고⁠, 소연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엄마는 육 년 전 마지막으로 본 날과 똑같은 조끼를 입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받은 유품 상자에 조끼는 없었다⁠. 고무장갑도 없었다⁠.

“⁠왜 여기 있어⁠.⁠”

“⁠일하지⁠.⁠”

“⁠엄마는 죽었잖아⁠.⁠”

“⁠그래서 귀신 노조 하지⁠. 산 사람 노조는 나 죽고 나서 없어졌어⁠.⁠” 엄마가 창문을 보았다⁠. “⁠앉아⁠. 무릎 시려⁠.⁠”

소연은 노약자석에 엄마와 한 칸 띄우고 앉았다⁠. 붙어 앉으면 찬 기운이 스며들 것을 알았다⁠. 엄마도 알아서 몸을 조금 더 창문에 붙였다⁠.

“⁠교섭 상대로 왜 나를 찍었어⁠.⁠”

“⁠일 잘하니까⁠.⁠”

“⁠발령 석 달이야⁠.⁠”

“⁠석 달이면 고참이라며⁠. 너네 과장이⁠.⁠”

엄마가 웃었다⁠. 웃음소리도 잡음 사이로 들렸다⁠. 소연은 웃지 못했다⁠.

“⁠부위원장님 요구가 뭔데요⁠.⁠”

존댓말이 저절로 나왔다⁠. 엄마의 눈가가 한 번 접혔다가 펴졌다⁠.

“⁠하나요⁠. 밥⁠. 칠백이 다 먹는 밥⁠. 이름 불러서 차린 밥⁠.⁠”

“⁠시에 돈이 없어⁠. 법에 없대⁠.⁠”

“⁠알아⁠.⁠” 엄마가 무릎 위 고무장갑을 쓰다듬었다⁠. “⁠그래도 해 봐⁠. 법이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니야⁠.⁠”

*

열차가 성수 차량기지로 들어갔다⁠. 기관사가 방송으로 종착을 알렸고⁠, 산 사람 승객들이 내렸다⁠. 넥타이를 푼 회사원은 내리면서 조선 귀신에게 꾸벅 인사했다⁠. 차량기지의 불이 하나씩 꺼지고⁠, 열차는 어둠 속에서 엔진 소리를 낮췄다⁠. 칠백은 내리지 않았다⁠. 열차 안에서 첫차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기관사는 객실 난방을 끄지 않고 운전실로 들어갔다⁠.

불 꺼진 객실에서 엄마의 빛만 희미하게 남았다⁠. 엄마는 창문에 이마를 대고 차량기지에 줄지어 선 열차들을 보다가 물었다⁠.

“⁠너네 과장⁠, 아직도 돋보기 이마에 올리고 다니냐⁠?⁠”

“⁠엄마가 우리 과장을 어떻게 알아⁠?⁠”

“⁠시청역에서 십 년을 쓸었는데 시청 사람을 모르겠니⁠.⁠” 엄마가 고무장갑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그 양반 그때는 예산과에 있었어⁠. 영수증 받으러 휴게실까지 내려왔었지⁠.⁠”

“⁠무슨 영수증⁠?⁠”

“⁠있어⁠, 그런 게⁠.⁠”

엄마는 더 말하지 않고 소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귀신의 눈이 가까이 오자 소연의 뺨에 찬 기운이 닿았다⁠.

“⁠너 저녁에 뭐 먹었어⁠.⁠”

“⁠삼각김밥⁠.⁠”

“⁠점심은⁠.⁠”

“⁠삼각김밥⁠.⁠”

“⁠아침은⁠.⁠”

“⁠커피⁠.⁠”

“⁠공무원이 되더니 편의점 직원이 됐네⁠.⁠” 엄마가 혀를 찼다⁠. 혀 차는 소리에도 잡음이 섞였다⁠. “⁠교섭 끝나면 밥부터 먹어⁠. 이건 부위원장 말 아니고 엄마 말이야⁠.⁠”

귀석이 맨 끝 칸으로 건너왔다⁠. 엄마를 보자 전립을 벗어 가슴에 댔다⁠. 소연은 오백 살 먹은 귀신이 누군가에게 전립을 벗는 것을 처음 보았다⁠.

“⁠부위원장⁠, 기운은 좀 어떠시오⁠.⁠”

“⁠괜찮아요⁠. 위원장님⁠, 담당자님 앞에서 그러지 마세요⁠.⁠”

“⁠아니오⁠. 말해야겠소⁠.⁠” 귀석이 소연을 돌아보았다⁠. 굴속 바람 같은 목소리가 객실 바닥으로 깔렸다⁠. “⁠칠백을 모은 분이 부위원장이오⁠. 육 년 동안 역마다 다니며 한 명씩 모았소⁠. 나는 수염이 있어 위원장이 된 것뿐이오⁠. 피켓 사진에 수염이 있어야 한다고 부위원장이 그러셨소⁠.⁠”

“⁠위원장님⁠.⁠”

“⁠그런데 부위원장은 육 년 동안 밥 한 술 못 받으셨소⁠. 이름 불러 차려 준 밥이 한 번도 없었소⁠. 그래서 빛이 저렇소⁠.⁠”

객실이 조용해졌다⁠. 엔진 소리마저 꺼졌다⁠. 소연은 엄마를 보지 못하고 보온병을 내려다보았다⁠. 육 년 동안 제사를 한 번도 차리지 않았다⁠. 원룸에 상을 펼 자리가 없다고 했고⁠, 바쁘다고 했다⁠. 둘 다 사실이었고 둘 다 핑계였다⁠.

“⁠위원장님⁠.⁠” 엄마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잡음이 더 많이 섞였다⁠. “⁠그런 말은 교섭에 필요 없어요⁠.⁠”

“⁠필요하오⁠. 교섭 담당자가 알아야 하오⁠.⁠”

굴 저편 차량기지 입구에서 불빛이 번져 왔다⁠. 첫차로 나갈 열차가 앞 선로에서 전조등을 켰다⁠. 불빛이 맨 끝 칸 창문에 닿았다⁠. 엄마의 발끝부터 하늘색이 풀어졌다⁠. 엄마는 사라지면서도 소연의 얼굴을 보았다⁠.

“⁠소연아⁠.⁠”

“⁠응⁠.⁠”

“⁠집에 가서 자⁠. 눈 밑이 그게 뭐냐⁠.⁠”

엄마가 사라졌다⁠. 노약자석 위에 분홍 고무장갑 한 켤레가 남아 있다가⁠, 엄마보다 한 박자 늦게 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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