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22자)

삼각김밥 한 개

귀신 노조 파업 · 기담오

귀신관리과 사무실 문에는 아직도 「⁠방공호 제3창고⁠」라는 글씨가 페인트로 남아 있었다⁠. 시청 지하 3층 복도 끝⁠, 보일러 배관이 천장을 지나가는 방이었다⁠. 배관이 데워지면 방 안에서 쇠 우는 소리가 났고⁠, 식으면 똑똑 물방울 소리가 났다⁠. 벽을 따라 누런 서류 상자가 천장까지 쌓여 있었다⁠. 상자 옆구리마다 연도가 적혀 있었는데⁠, 맨 아래 상자는 1974년이었다⁠.

아침 아홉 시 사 분⁠, 탁병수 과장이 돋보기안경을 이마에 올린 채 소연의 보고서를 읽었다⁠. 한 장이라더니 과장은 한 장을 다 읽는 데만 오 분을 넘겼다⁠. 다 읽고 나서 안경을 코로 내렸다⁠.

“⁠여기⁠, 발생 원인에 「⁠오백 년간 무급 야간 근로⁠」⁠. 이거 빼⁠.⁠”

“⁠사실인데요⁠.⁠”

“⁠사실이니까 빼⁠. 사실이 문서에 들어가면 책임질 사람이 생겨⁠.⁠”

과장은 볼펜으로 줄을 그었다⁠. 보고서는 열한 시에 국장실로 올라갔다가 열한 시 반에 내려왔다⁠. 반려 도장 옆에 국장의 글씨가 적혀 있었다⁠.

「⁠귀신의 법적 지위 불명확⁠. 사람인지 아닌지부터 정리해 올 것⁠」

소연은 반려 사유를 두 번 읽었다⁠. 귀신이 사람인지 아닌지를 정리하는 일은 소연의 업무 분장표 어디에도 없었다⁠.

“⁠과장님⁠, 귀신이 사람이면 어떻게 되고 아니면 어떻게 되는 건데요⁠?⁠”

“⁠사람이면 주민등록이 있어야 하고⁠, 아니면 우리가 돈 쓸 근거가 없어⁠.⁠” 과장은 결재판을 덮었다⁠. “⁠지방재정법 몰라⁠? 예산은 법령이나 조례에 근거가 있어야 써⁠. 귀신 밥값으로 김밥 한 줄이라도 나가 봐⁠. 감사관이 김밥 한 줄 영수증 들고 십 년을 쫓아다녀⁠.⁠”

“⁠그럼 퇴마 업체 견적서는요⁠? 그건 돈 나가잖아요⁠.⁠”

“⁠그건 용역이야⁠. 시설 관리 용역⁠. 쫓아내는 건 근거가 있어⁠.⁠”

“⁠쫓아내는 돈은 있고 밥 주는 돈은 없네요⁠.⁠”

“⁠밥은 급여야⁠. 급여를 주면 고용이고⁠, 고용을 하면 귀신이 공무원이 돼⁠.⁠” 과장이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위로 아홉 개 층을 올라가면 시장실이었다⁠. “⁠칠백 명이 한꺼번에 공무원이 되면 연금은 누가 내⁠.⁠”

소연은 대답을 못 했다⁠. 과장의 말에서 틀린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오백 년도 틀린 데가 없었다⁠. 법이 오백 년까지 닿지 않았을 뿐이었다⁠.

책상 위 휴대전화가 연달아 떨었다⁠. 동기 단톡방이었다⁠.

「⁠소연아 너네 과 아침 뉴스 나옴ㅋㅋㅋ⁠」

「⁠귀신 노조 실화냐⁠」

「⁠그냥 밥 한 번 사 줘라 우리 과장님도 밥 사면 다 풀림⁠」

소연은 「⁠우리 과장님은 밥을 안 사⁠」라고 쳤다가 지우고 휴대전화를 엎어 놓았다⁠.

오후 내내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낮에 귀신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밤 뉴스를 보고 거는 전화였다⁠. 첫 전화는 강남의 어느 아파트 관리소장이었다⁠. 밤마다 지하 주차장 귀신이 차 문 안 잠근 집을 알려 주었는데 어젯밤에는 안 알려 주어서 세 집이 털렸다고 했다⁠. 다음 전화는 대학생이었다⁠. 2호선 막차에서 졸 때마다 사당역에서 누가 귀에 대고 「⁠학생⁠, 내려⁠」 했는데⁠, 어젯밤에는 아무도 안 불러서 한 바퀴를 더 돌았다고 했다⁠. 한 바퀴는 한 시간 반이었다⁠.

“⁠그분한테 수당이 안 나왔다는 건 몰랐어요⁠. 제가 따로 드릴 수는 없나요⁠?⁠”

“⁠검토해 보겠습니다⁠.⁠”

소연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제 입을 손으로 막았다⁠. 과장 말투가 벌써 입에 붙어 있었다⁠.

네 시쯤 과장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과장은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네⁠, 비서실장님⁠. 네⁠. 네⁠, 있습니다⁠. 진짜로 있습니다⁠. 시장님께서 밤에 안 주무셔 봐서 그렇지⁠…⁠…⁠.⁠” 과장은 전화를 끊고 의자에 털썩 앉았다⁠.

“⁠시장님이 귀신이 진짜 있느냐고 물으셨대⁠.⁠”

“⁠뭐라고 하셨어요⁠?⁠”

“⁠있다고 했지⁠. 그랬더니 있으면 왜 우리 시 예산서에는 없냐고⁠.⁠”

소연은 대답 대신 벽의 서류 상자를 보았다⁠. 1974년 상자 옆에 1975년⁠, 1976년이 차례로 쌓여 있었다⁠. 맨 아래 상자 옆구리에 누렇게 바랜 종이 딱지가 붙어 있었다⁠. 「⁠역사 야간 잡비⁠」⁠. 소연이 상자 쪽으로 손을 뻗자 과장이 재채기를 했다⁠.

“⁠그거 건드리지 마⁠. 나 먼지 알레르기 있어⁠.⁠”

*

밤 열한 시 오십 분⁠, 시청역 7번 출구 앞 편의점 전자레인지가 땡 하고 울었다⁠. 소연은 참치마요 삼각김밥 하나를 데워 카디건 주머니에 넣었다⁠. 천팔백 원이었다⁠. 영수증은 받지 않았다⁠. 받아 봐야 쓸 데가 없었다⁠.

계산대의 야간 알바가 소연의 공무원증을 힐끔 보았다⁠.

“⁠귀신 드리는 거죠⁠?⁠”

“⁠어떻게 아셨어요⁠?⁠”

“⁠밤에 김밥 하나 데워서 안 먹고 주머니에 넣는 사람은 다 그래요⁠.⁠” 알바는 바코드 기계를 내려놓았다⁠. “⁠여기 출구 귀신 아줌마가 맨날 새벽에 제 졸음 깨워 줬거든요⁠. 어젯밤엔 안 깨워 줘서 폐기 시간을 놓쳤어요⁠. 점장님한테 혼났어요⁠.⁠”

“⁠죄송합니다⁠.⁠”

“⁠주무관님이 왜요⁠. 얼른 해결해 주세요⁠. 저 폐기 도시락 먹고 사는데⁠.⁠”

자정 넘어 막차 문이 닫히고 형광등이 징 울었다⁠. 칠백이 다시 떠올랐다⁠. 어젯밤보다 피켓이 늘어 있었다⁠. 「⁠교섭에 성실히 임하라⁠」⁠, 「⁠검토만 오백 년⁠」⁠. 누가 밤새 붓을 잡았는지 먹 냄새가 승강장에 희미하게 돌았다⁠. 귀석이 소연 앞에 내려왔다⁠.

“⁠관의 답을 가져왔소⁠?⁠”

“⁠답은 아직이고요⁠.⁠” 소연은 승강장 의자에 손수건을 깔고 삼각김밥을 꺼내 비닐을 벗겼다⁠. 김 가장자리가 바스락거렸다⁠. 김밥을 손수건 한가운데 놓고 귀석을 올려다보았다⁠. “⁠이건 장귀석 위원장님 몫입니다⁠.⁠”

귀석의 수염이 멈췄다⁠. 칠백의 웅성거림도 멈췄다⁠. 굴 저편에서 바람 지나가는 소리만 들렸다⁠.

“⁠내 몫이라 하였소⁠?⁠”

“⁠네⁠. 장귀석 위원장님 몫이요⁠. 제 돈으로 샀습니다⁠. 시청 돈 아니고요⁠.⁠”

귀석이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얼굴을 김밥 가까이 대고 숨을 들이쉬었다⁠. 삼각김밥에서 오르던 김이 실처럼 가늘게 풀려 귀석의 수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김이 다 빨려 들어가자 귀석의 하늘색이 한 겹 짙어졌다⁠. 흐리던 허리띠의 붉은빛이 또렷해졌고⁠, 수염 끝에 매달린 빛이 물방울처럼 맺혔다⁠.

“⁠오백 년이오⁠.⁠” 귀석의 목소리에서 굴속 바람 소리가 조금 걷혔다⁠. “⁠이름을 불러 차려 준 밥은 오백 년 만이오⁠.⁠”

귀석은 김밥에서 얼굴을 떼지 않았다⁠. 소연은 귀석의 어깨가 떨리는 것을 보았다⁠. 칠백이 숨을 죽이고 위원장을 보았다⁠. 맨 뒤 어딘가에서 누가 코를 훌쩍였다⁠.

귀석이 벌떡 몸을 폈다⁠.

“⁠그러나⁠! 이것은 받지 않은 것으로 하겠소⁠!⁠”

“⁠네⁠?⁠”

“⁠위원장이 혼자 밥을 받으면 어용이오⁠. 칠백 몫이 아니면 받을 수 없소⁠.⁠”

“⁠이미 드셨잖아요⁠.⁠”

“⁠맛만 보았소⁠.⁠”

“⁠다 드셨는데요⁠.⁠”

귀석은 대답 대신 수염을 쓸었다⁠. 수염 끝이 아직 반짝였다⁠. 소연은 손수건 위의 삼각김밥을 집어 한 입 베어 물었다⁠. 밥알이 차가웠다⁠. 방금 데운 김밥이 냉장고에서 사흘 묵은 것처럼 식어 있었다⁠. 맛도 없었다⁠. 간장 맛도 참치 맛도 빠지고 젖은 종이를 씹는 맛이었다⁠. 참치마요에서 마요 맛이 빠지면 무슨 맛이 되는지⁠, 소연은 처음 알았다⁠.

“⁠위원장님⁠, 맛만 보신 맛이 아닌데요⁠.⁠”

뒤에서 귀신 몇이 킥킥 웃었다⁠. 귀석이 돌아보자 웃음이 뚝 그쳤다⁠.

*

“⁠자⁠, 자⁠, 막차 승강장의 동지 여러분⁠!⁠”

종이 확성기 소리가 승강장 천장을 때렸다⁠. 귀석 뒤에서 귀신 하나가 둥실 올라왔다⁠. 나팔바지에 깃이 넓은 셔츠를 입었고⁠, 머리를 귀 밑까지 길렀다⁠. 종이를 둘둘 말아 만든 확성기를 입에 대고 있었다⁠.

“⁠명동 음악다방 출신 선전부장 엄태식⁠, 오늘도 동지 여러분의 밤을 책임집니다⁠. 신청곡 들어갑니다⁠. 위원장님 첫 밥 기념으로 보내 드리는⁠, 「⁠단결 투쟁가⁠」⁠!⁠”

칠백이 한꺼번에 노래를 시작했다⁠. 박자는 하나도 맞지 않았다⁠. 조선 귀신들은 느리게 늘였고⁠, 칠공년대 귀신들은 통기타 박자로 흔들었고⁠, 구십년대 귀신들은 랩처럼 끊었다⁠. 노랫소리가 굴속으로 빨려 들어갔다가 메아리로 되돌아왔다⁠. 소연의 고막이 웅웅 울렸다⁠. 귀신 목소리는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닌 데가 있었다⁠. 귓속 깊은 데서 바로 울렸다⁠.

태식이 확성기를 내리고 소연에게 윙크했다⁠.

“⁠주무관님⁠, 반응 좋죠⁠? 남산에서 목멱대왕께서 시끄럽다고 솔방울 던지셨대요⁠. 그 정도면 대박이에요⁠.⁠”

“⁠솔방울이요⁠?⁠”

“⁠신령님들은 화나면 솔방울 던지세요⁠. 맞으면 아파요⁠. 귀신인데도 아파요⁠.⁠”

소연은 귀석을 돌아보았다⁠. 어젯밤 집에 가서 두 시간을 찾아 읽은 법이 있었다⁠.

“⁠위원장님⁠, 이런 건 어떠세요⁠. 노동조합법에 필수 유지 업무라는 게 있어요⁠. 파업을 해도 병원 응급실처럼 꼭 돌려야 하는 일은 돌리는 거예요⁠. 졸음운전이나 계단 얼음 같은 건 응급실이랑 똑같잖아요⁠.⁠”

귀석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법은 노동조합에 쓰는 법이오⁠?⁠”

“⁠네⁠.⁠”

“⁠그럼 관이 그 법으로 우리를 노동조합이라 인정하는 것이오⁠?⁠”

소연은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필수 유지 업무를 들이밀면 귀신들이 근로자라는 말이 되었다⁠. 근로자라는 말이 되면 오늘 아침 국장의 반려 사유에 소연이 직접 답을 써 주는 것이었다⁠. 귀석이 소리 내어 웃었다⁠. 오백 년 만에 밥을 먹은 귀신의 웃음이라 쩌렁쩌렁했다⁠.

“⁠아씨는 머리가 좋소⁠. 머리 좋은 이가 관에 있으면 고생하오⁠.⁠”

“⁠그 말씀은 취소하겠습니다⁠.⁠”

“⁠무엇을⁠?⁠”

“⁠필수 유지 업무요⁠. 제가 말 안 한 걸로 하겠습니다⁠.⁠”

“⁠아까 내가 밥 안 받은 걸로 한 것처럼⁠?⁠”

“⁠네⁠. 그거랑 똑같이요⁠.⁠”

귀석이 수염 끝을 꼬며 칠백을 돌아보았다⁠. “⁠동지들⁠, 들었소⁠? 관도 말을 무를 줄 아오⁠. 오늘 교섭의 성과요⁠.⁠”

칠백이 박수를 쳤다⁠. 귀신의 박수는 소리가 나지 않아서⁠, 손바닥 마주치는 모양만 승강장 가득 반짝였다⁠.

*

새벽 네 시가 넘자 귀신들이 지친 피켓을 무릎에 얹고 앉았다⁠. 소연은 승강장 끝에서 보온병의 보리차를 마시며 상황실 단톡방을 내려 보았다⁠. 어젯밤의 세 배가 오늘 밤에도 세 배였다⁠. 종로에서 취객이 계단에서 굴렀고⁠, 마포대교 위에서 택시 두 대가 부딪쳤다⁠. 크게 다친 사람은 아직 없었다⁠. 아직이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넘어가지 않았다⁠.

태식이 확성기를 겨드랑이에 끼고 소연 옆으로 떠 왔다⁠. 디제이 말투가 빠진 목소리는 생각보다 낮았다⁠.

“⁠주무관님⁠, 이거요⁠. 부위원장님이 전해 드리라고⁠.⁠”

태식이 접은 종이 한 장을 의자 위에 내려놓았다⁠. 소연은 종이를 펼쳤다⁠. 볼펜 글씨였다⁠. 글자 끝이 모두 오른쪽 위로 살짝 들려 있었고⁠, 받침 ㄹ을 숫자 2처럼 썼다⁠.

「⁠교섭 담당자는 보온병 뚜껑 꼭 닫고 다니세요⁠. 보리차 식어요⁠.⁠」

소연은 보온병을 내려다보았다⁠. 뚜껑을 열어 둔 채였다⁠. 뚜껑 안쪽의 반쯤 지워진 「⁠민⁠」 자가 형광등 아래에서 희미하게 보였다⁠. 엄마는 날마다 이 말을 했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을 때도⁠, 전화를 끊을 때도⁠. 뚜껑 꼭 닫아⁠, 식어⁠.

“⁠이거 누가 쓰셨어요⁠?⁠”

“⁠부위원장님이요⁠.⁠” 태식이 확성기를 고쳐 쥐었다⁠. “⁠직접 오시면 좋은데⁠, 밥을 하도 못 드셔서 빛이 너무 흐리세요⁠. 막차 끝 칸에서 잘 안 나오세요⁠.⁠”

소연은 종이를 접어 카디건 안주머니에 넣었다⁠. 손끝이 차가웠다⁠. 귀석이 다가와 칠백을 향해 손을 들었다⁠.

“⁠동지들⁠! 관이 오늘도 답을 내지 않았소⁠. 내일 밤에는 우리가 막차를 타겠소⁠. 내선순환 한 바퀴⁠, 칠백이 다 타오⁠!⁠”

“⁠타오⁠! 타오⁠!⁠”

귀석이 소연을 내려다보았다⁠.

“⁠주무관 아씨도 타시오⁠. 부위원장께서 끝 칸에서 기다리신다 하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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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차승객2026.11.01· 2화

    막차에서 졸다가 늘 제때 깨는 게 귀신 덕분이었다니… 오늘부터 내릴 때 인사하고 내릴게요.

    • 기담오작가2026.11.01

      인사 받으면 귀석 위원장님이 아주 좋아하실 겁니다. 다만 수당 얘기는 따로 하실 거예요.

삼각김밥 한 개 · 귀신 노조 파업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