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742자)
무기한 파업
귀신 노조 파업 · 기담오
자정을 사 분 넘긴 시청역 2호선 승강장에서 여소연은 은색 보온병 뚜껑을 돌려 열었다. 보리차 김이 앞머리에 닿았다가 금방 식었다. 전광판에 「내선순환 막차 · 전역 출발」 글자가 흘렀고, 안전문 너머 굴속에서 바람이 먼저 밀려왔다. 쇠 냄새와 젖은 시멘트 냄새가 섞인 바람이었다.
안전문 유리에 소연의 모습이 비쳤다. 마른 몸에 앞머리 있는 검은 단발, 큰 눈 아래 내려앉은 다크서클, 흰 셔츠 위에 걸친 베이지 카디건. 목에 건 공무원증이 카디건 단추에 부딪혀 달각거렸다. 증 사진은 석 달 전에 찍은 것이라 지금보다 눈 밑이 훨씬 밝았다.
서울시청 지하 3층 귀신관리과. 과 이름을 말하면 동기들은 웃었고, 웃고 나서 회식 날짜를 물었다. 과 직원은 과장까지 둘이라 회식은 늘 일 인분 반이었다. 과장은 저녁 여섯 시면 퇴근했고, 밤 민원 전화는 소연의 휴대전화로 넘어왔다. 오늘 밤 첫 민원은 신도림역에서 왔다.
「귀신분이 제 우산을 펴 주셨는데 고맙다고 전해 주실 수 있나요?」
소연은 「전달하겠습니다」라고 답장을 보냈다. 전할 방법은 아직 몰랐다.
막차가 들어왔다. 문이 열리고, 졸린 승객 몇이 흘러나오고, 문이 닫혔다. 문이 닫히는 순간 천장 형광등이 한꺼번에 징 하고 울었다. 석 달 동안 밤마다 들은 소리였다. 귀신이 오는 소리.
승강장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반투명한 하늘색 사람들이 떠올랐다. 평소에는 열몇, 많아야 스물이었다. 오늘은 셀 수가 없었다. 계단 위에도, 안전문 앞에도, 천장 환풍구 둘레에도 떠 있었다. 다들 이마에 붉은 머리띠를 맸고, 종이 상자를 뜯어 만든 피켓을 하나씩 들었다. 피켓마다 붓글씨가 굵었다.
「야근수당」
「쟁취하자!」
한 귀신이 「야근수당」을 들면 옆 귀신이 「쟁취하자!」를 들었다. 둘이 나란히 서야 말이 되는 피켓이라, 짝을 잃은 귀신들은 제 짝을 찾느라 승강장을 이리저리 떠다녔다.
맨 앞의 귀신은 다른 귀신보다 빛이 조금 짙었다. 남색 순라군 옷에 붉은 허리띠를 둘렀고, 머리에는 챙 둥근 검은 전립을 썼다. 굵은 눈썹 아래로 덥수룩한 검은 수염이 가슴께까지 내려왔고, 등에는 방망이 한 자루를 비스듬히 메었다. 전립 아래 이마에 붉은 머리띠를 질끈 묶었다. 방망이를 멘 채 피켓까지 든 순라군을 소연은 처음 보았다.
“흠, 흠.” 순라군 귀신이 목을 가다듬었다. 목소리에 굴속 바람 같은 울림이 붙어 있었다. “관에서 나온 아씨는 들으시오.”
“주무관입니다.”
“주무관 아씨는 들으시오.”
귀신이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종이나 피켓처럼 가벼운 물건은 귀신 손에 잡혔다. 석 달 동안 소연이 배운 몇 안 되는 규칙이었다.
“우리 서울귀신노동조합은, 오늘 막차를 기하여, 무기한 파업에 들어가오. 막차에서 조는 이를 깨워 내릴 역에 내리게 하고, 얼어붙은 계단을 일러 주고, 졸며 차를 모는 자의 목덜미에 찬 바람을 불어 넣은 것이 오백 년이오. 그동안 야근 수당 한 푼, 제삿밥 한 그릇 받은 적이 없소.”
뒤에서 귀신들이 피켓을 흔들었다. “없소! 없소!”
“투쟁이오!”
“투쟁이오!” 칠백이 받았다. 형광등이 한꺼번에 깜박였다.
소연은 보온병 뚜껑을 닫았다. 손끝이 떨려서 뚜껑이 두 번 헛돌았다. 엄마가 밤 청소를 나갈 때 들던 보온병이었다. 뚜껑 안쪽에 엄마가 매직으로 쓴 「민」 자가 반쯤 지워져 있었다.
“위원장님이시죠? 성함이…….”
“장귀석이오. 오백 년 전 한양에서 순라를 돌았소.”
“장귀석 위원장님. 쟁의 행위는 사전에 신고를 하셔야 하는데요.”
“방금 했소.”
“서면으로요.”
귀석이 선언문을 내밀었다. 소연이 받아 들자 종이 끝이 얼음물에 담갔다 뺀 것처럼 차가웠다. 붓글씨 아래에 도장 대신 손바닥 자국이 찍혀 있었다. 손금 하나하나가 하늘색으로 번져 있었다.
“그런데 법적으로 노동조합은 근로자가 만드는 거라서요. 귀신분들이 근로자인지는 아직…….”
“우리가 근로를 안 했단 말이오?”
귀석이 손가락으로 소연의 가슴께를 쿡 찔렀다. 손가락이 공무원증을 지나고 카디건을 지나 소연의 몸 안으로 그대로 들어왔다. 찬물을 한 바가지 들이부은 것 같은 냉기가 갈비뼈 사이로 퍼졌다. 소연은 숨을 들이켜며 한 발 물러났다.
“이런.” 귀석이 손가락을 거두고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미안하오. 버릇이오. 산 사람 몸은 못 만지는데 자꾸 잊소.”
“괜찮습니다. 정신이 번쩍 드네요.”
소연은 휴대전화를 꺼내 과장에게 걸었다. 신호가 일곱 번 가고 나서야 탁병수 과장이 받았다.
“……여 주무관. 지금 몇 시야.”
“영 시 십 분입니다. 과장님, 귀신들이 파업을 선언했습니다.”
“무슨 파업.”
“무기한 파업입니다. 요구안은 제삿밥, 밀린 야근 수당, 귀신 쉼터입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이불 뒤척이는 소리가 났다.
“근거가 뭐야, 근거가.”
“귀신들 근거요?”
“아니, 우리가 들어줄 근거. 없잖아. 없으면 없다고 해. 말로 해. 말은 공짜야.” 긴 하품이 이어졌다. “교섭 담당 너야.”
“제가요?”
“발령 석 달이면 우리 과에선 고참이야. 내일 아침 아홉 시까지 보고서 올려. 한 장으로.”
전화가 끊겼다. 귀석이 수염을 쓸며 소연의 얼굴을 살폈다.
“관의 우두머리가 무어라 하오?”
“검토해 보겠다고 하십니다.”
“오백 년 동안 들은 말이오.”
*
영 시 사십 분, 시청역 4번 출구 계단 꼭대기가 얼어 있었다. 낮에 녹았던 눈이 밤 사이 다시 얼어 계단 모서리마다 유리처럼 반짝였다. 평소라면 계단 꼭대기에 할머니 귀신 하나가 앉아 올라오는 사람마다 “미끄러워, 난간 잡아” 하고 일러 주었다. 오늘 밤 할머니 귀신은 같은 자리에 앉아 팔짱을 끼고 있었다. 무릎 위에 작은 피켓이 놓여 있었다. 「쟁의 중」.
계단 아래에서 대리기사 한 사람이 휴대전화를 보며 뛰어 올라왔다. 할머니 귀신의 입술이 달싹였다가 꾹 다물렸다. 소연이 먼저 소리를 질렀다.
“미끄러워요! 난간 잡으세요!”
대리기사의 운동화가 꼭대기 계단에서 쭉 미끄러졌다. 한 손이 난간을 낚아챘고, 몸이 반 바퀴 돌았다가 멈췄다. 대리기사는 난간에 매달린 채 숨을 몰아쉬다가 할머니 귀신을 올려다보았다.
“할머니, 오늘은 왜 말씀을 안 해 주셨어요?”
“파업이야.” 할머니 귀신이 피켓을 들어 보였다. “미안해. 나도 입이 근질근질해 죽겠다.”
“아, 요즘 그 노조요?” 대리기사는 바지를 털고 일어나 소연의 공무원증을 보았다. “시청이세요? 빨리 좀 해결해 주세요. 귀신 아저씨들이 안 깨워 주니까 저 어제도 버스에서 자다가 종점 갔어요.”
“오늘부터 파업이라서요.”
“그럼 전에 종점 간 건 그냥 제가 잔 거네.”
대리기사가 골목으로 사라졌다. 소연의 휴대전화가 연달아 떨었다. 밤 민원 번호로 들어오는 문자였다.
「막차에서 잤는데 아무도 안 깨워 줘서 성수 차량기지까지 왔어요. 여기 어디예요?」
「귀신이 안 보여서 오히려 무서워요. 원래 보여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합정역 귀신 총각이 오늘 인사도 안 받아 줍니다. 제가 뭘 잘못했나요?」
소연은 문자마다 같은 답을 보내다가 손가락을 멈췄다. 시청 상황실 단톡방에 공지가 올라왔다.
「01:30 기준 서울 야간 안전사고 신고 접수, 전날 같은 시각의 세 배. 원인 파악 중」
이어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행정안전부 당직실이라고 했다. 당직 근무자는 목소리를 낮췄다.
“서울에서 귀신이 파업했다는 제보가 왔는데요. 이게 저희 소관인가요?”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아, 네. 그럼 소관 아닌 걸로 하겠습니다.”
*
새벽 세 시, 시청 앞 세종대로 횡단보도에 빨간불이 켜져 있었다. 소연은 보고서 첫 줄을 휴대전화에 쳤다가 지웠다. 「서울귀신노동조합 쟁의 발생 보고」. 제목은 금방 나왔는데 다음 줄이 나오지 않았다. 발생 원인 칸에 무엇을 써야 할지 몰랐다. 오백 년이라고 쓰면 국장이 웃을 테고, 제삿밥이라고 쓰면 국장이 화를 낼 터였다.
정지선 맨 앞에 개인택시 한 대가 멈춰 있었다. 신호가 초록으로 바뀌었는데 택시가 움직이지 않았다. 운전석의 기사가 고개를 가슴에 묻고 있었다. 조수석에 하늘색 귀신 하나가 앉아 있었다. 스무 살 남짓한 청년 귀신이었고, 머리띠를 이마에 단단히 묶고 팔짱을 끼고 있었다. 평소라면 기사의 목덜미에 후 하고 찬 바람을 불었을 귀신이었다.
뒤차가 경적을 울렸다. 기사는 깨지 않았다. 신호가 다시 노랑으로 넘어가는 사이, 택시 앞바퀴가 슬금슬금 굴러 횡단보도로 나갔다. 브레이크에서 발이 풀린 차였다. 건너편에서 배달 오토바이가 달려오고 있었다.
소연은 차도로 뛰어들어 택시 창문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쾅, 쾅. 청년 귀신이 깜짝 놀라 소연을 보았고, 기사가 그제야 고개를 들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오토바이가 택시 범퍼 한 뼘 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배달 기사가 헬멧 안에서 뭐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바람에 다 흩어졌다.
택시 기사가 창문을 내렸다. 눈이 벌겠다.
“아이고, 내가 졸았나. 총각, 왜 안 깨웠어?”
청년 귀신이 미안한 얼굴로 머리띠를 가리켰다. “아저씨, 저 오늘 파업이에요.”
“파업? 귀신이?” 기사는 소연을 보았다. “아가씨는 누구요? 귀신 대신 나왔어요?”
“시청에서 나왔습니다.”
“시청이 귀신 일을 다 하네. 고생이 많아.”
택시가 떠났다. 청년 귀신은 조수석에서 내려 소연 옆에 떠 있다가, 손을 뻗어 소연의 어깨를 두드리려다 말았다. 손이 어깨를 지나갈 줄 아는 손이었다.
“고마워요. 저 진짜 깨우고 싶었어요.”
“그럼 깨우시지 그랬어요.”
“위원장님이 투쟁은 한 사람이 깨지면 칠백이 깨진대요.” 청년 귀신이 머리띠를 고쳐 맸다. “밥 나오면 제일 먼저 깨울게요.”
*
새벽 다섯 시 이십 분, 소연은 다시 시청역 승강장으로 내려갔다. 다리가 계단 수를 하나씩 기억하고 있었다. 승강장 의자에 앉아 보온병의 마지막 보리차를 따랐다. 식어서 김도 오르지 않았다.
귀석이 소연 앞에 내려와 떴다. 칠백은 여전히 승강장을 메우고 있었지만 피켓을 든 팔들이 조금씩 처졌다. 밤새 들고 있기에는 종이 상자도 무거웠다.
“답을 가져왔소?”
“답은 아니고요, 부탁입니다.” 소연은 컵을 내려놓았다. “사람 목숨이 걸린 일만이라도 해 주시면 안 될까요? 계단 얼음이라든지, 졸음운전이라든지요.”
“그런 일이 우리 일의 전부요.” 귀석의 수염이 흔들렸다. “목숨 안 걸린 일은 산 사람도 알아서 하오. 우리가 오백 년 해 온 것이 목숨 걸린 일뿐이었소. 그걸 빼면 파업이 무슨 파업이오?”
“그러다 누가 크게 다치면요?”
“그러니 서두르시오.”
귀석이 몸을 돌리다 말고 소연을 다시 보았다. 굴속 바람 같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남산 목멱대왕께서 아시면 내 경을 치겠지만, 그건 그때 일이오. 그리고 하나 더. 주무관 아씨를 교섭 상대로 달라고 콕 집은 분은 우리 부위원장이오.”
“부위원장님이 누구신데요?”
“밥을 못 드셔서 기운이 없소. 오늘은 못 나오셨소.”
굴 저편에서 불빛이 번져 왔다. 첫차였다. 불빛이 승강장 바닥에 닿자 칠백의 하늘색이 발끝부터 옅어졌다. 피켓이 하나씩 바닥으로 떨어졌다. 종이 상자가 시멘트 바닥에 닿는 소리가 탁, 탁,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귀석의 수염이 마지막으로 사라졌고, 머리띠의 붉은빛이 한 박자 늦게 꺼졌다.
첫차 문이 열렸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바닥에 깔린 피켓을 밟지 않으려고 까치발로 건넜다. 누군가 피켓 하나를 주워 들고 중얼거렸다. “쟁취하자? 뭘? 요즘 광고 희한하네.”
휴대전화가 떨었다. 탁병수 과장의 문자였다.
「시장님 아침 보고 전에 참고. 근거 법령 없음. 귀신하고 돈 얘기 금지. 첨부 확인」
첨부 파일 이름은 「맑은밤퇴마_견적서」였다. 소연은 파일을 열었다. 첫 줄이 굵은 글씨였다.
「서울 전역 귀신 일괄 퇴치 · 동절기 특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