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306자)

첫 제사

귀신 노조 파업 · 기담오

「⁠현장 협조 담당 주무관이 팥 결계를 발로 걷어참⁠. 본인은 미끄러진 것이 아니라 찬 것이라고 진술함⁠. 진술이 정확함⁠.⁠」

과장이 맑은밤퇴마의 두 번째 보고서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이번 보고서에는 비꼬는 줄이 없었다⁠. 과장은 한참 보고서를 내려다보다가 서랍에서 다른 종이를 꺼냈다⁠. 「⁠직무 배제 통보⁠」⁠. 아래에 작은 글씨로 징계위원회 회부 예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오늘부터 교섭 담당 아니야⁠. 현장 협조도 아니고⁠.⁠” 과장은 종이를 소연 앞으로 밀었다⁠. 손가락 끝이 떨렸다⁠. “⁠국장님 지시야⁠. 나도 도장 찍었어⁠.⁠”

“⁠네⁠.⁠”

“⁠나는 이번엔 아무것도 안 자르고 싶었는데⁠.⁠” 과장이 돋보기를 이마에서 내렸다⁠. “⁠어제 감사관실 갔었어⁠. 1974년 상자 얘기 꺼내려고⁠. 감사관이 듣더니 그러더라⁠. 쉰 해 치 감사를 하려면 쉰 해 치 사람을 다 불러야 한다고⁠. 반은 돌아가셨다고⁠. 돌아가신 분들 진술은 어떻게 받냐고⁠.⁠”

“⁠밤에 받으시면 돼요⁠.⁠”

과장이 웃었다⁠. 웃다가 그쳤다⁠.

사무실 구석 텔레비전에서 아침 뉴스가 흘렀다⁠. 시장의 얼굴이 화면에 나왔다⁠. 화면 아래 자막이 지나갔다⁠. 「⁠서울시 “⁠귀신 파업 사실상 종료⁠”⁠」⁠. 다음 자막이 바로 따라 붙었다⁠. 「⁠간밤 야간 사고 신고 평소의 다섯 배 … 마포대교 택시 운전자 중상⁠」⁠. 앵커가 두 자막을 나란히 읽다가 말을 더듬었다⁠.

과장이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껐다⁠.

“⁠집에 가⁠. 쉬어⁠. 이건 진짜 과장 말이야⁠.⁠”

*

김밥집 할머니는 김밥 두 줄을 말아 은박지에 쌌다⁠. 한 줄에 단무지를 두 줄씩 넣었다⁠. 소연이 카드를 내밀자 할머니가 손등으로 밀어냈다⁠.

“⁠제사 지내는 집에서 돈 받는 거 아니야⁠.⁠”

“⁠제사인 거 어떻게 아셨어요⁠?⁠”

“⁠네 얼굴에 써 있어⁠. 그리고 단톡방에 미화원 언니가 자랑했어⁠. 너한테 밥상 빌려줬다고⁠.⁠”

미화원 여사가 빌려준 밥상은 다리 하나가 짧은 접이식 밥상이었다⁠. 소연은 원룸 바닥에 밥상을 펴고 다리 밑에 휴대전화 충전기 상자를 괴었다⁠. 원룸은 여섯 평이었다⁠. 침대와 책상 사이에 밥상 하나가 겨우 들어갔다⁠. 엄마가 살아 있을 때 상 펼 자리가 없다고 했던 원룸이었다⁠. 펴 보니 자리가 있었다⁠.

밥상 위에 무엇을 어떻게 놓는지 몰랐다⁠. 소연은 단톡방에 물었다⁠. 답이 쏟아졌다⁠.

「⁠홍동백서요 붉은 건 동쪽 흰 건 서쪽⁠」

「⁠조율이시 대추 밤 배 감⁠」

「⁠원룸에 동쪽이 어디예요⁠? 창문 있는 데가 동쪽⁠?⁠」

「⁠아 그냥 좋아하시던 거 놓으면 돼요 저희 집은 할아버지 제사에 소주 놔요⁠」

「⁠지방 써야 돼요 지방⁠」

「⁠지방이 뭐예요⁠? 기름⁠?⁠」

「⁠종이에 돌아가신 분 이름 쓰는 거요⁠」

소연은 홍동백서도 조율이시도 하지 않았다⁠. 원룸에 동쪽이 어디인지도 몰랐다⁠. 밥상 한가운데 김밥 두 줄을 놓았다⁠. 왼쪽에 귤 세 개⁠, 오른쪽에 종이컵에 탄 믹스커피 한 잔⁠. 엄마는 휴게실에서 늘 믹스커피를 두 봉지씩 털어 넣어 마셨다⁠. 밥상 맨 앞에 생활용품점에서 산 새 분홍 고무장갑 한 켤레를 놓았다⁠. 포장 비닐도 뜯지 않았다⁠.

종이 한 장을 반으로 접어 세웠다⁠. 소연은 볼펜으로 종이 한가운데 세 글자를 썼다⁠. 「⁠민정숙⁠」⁠. 받침 ㄹ이 없는 이름이라 엄마처럼 숫자 2로 쓸 데가 없었다⁠. 소연은 잠깐 고민하다가 이름 밑에 한 줄을 보탰다⁠. 「⁠보온병 뚜껑 닫았음⁠」⁠.

*

새벽 영 시 십 분⁠, 원룸 창밖으로 막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원룸은 지상 구간 선로 옆이었다⁠. 바퀴 소리가 멀어지자 천장 형광등이 징 울었다⁠.

소연은 밥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목이 마른 것처럼 칼칼했다⁠. 침을 한 번 삼켰다⁠.

“⁠민정숙 몫입니다⁠.⁠”

방이 조용했다⁠. 냉장고가 웅 울었다⁠.

“⁠엄마 몫이야⁠. 엄마⁠.⁠”

창틀에서 희미한 분홍빛이 떠올랐다⁠. 고무장갑 한 켤레였다⁠. 고무장갑만 창유리를 지나 방 안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장갑 위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고무장갑은 밥상 앞까지 와서 멈췄다⁠. 손가락 하나가 까딱였다⁠. 소연은 숨을 멈추고 기다렸다⁠.

고무장갑이 김밥 위로 낮게 내려갔다⁠.

김밥에서 김이 한 올 풀렸다⁠. 은박지 틈에서 실처럼 가늘게⁠, 고무장갑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한 올이 두 올이 되고⁠, 두 올이 한 줄기가 되었다⁠. 고무장갑 위로 손목이 생겼다⁠. 팔이 생기고⁠, 주황 조끼의 어깨가 생겼다⁠. 하늘색이 아주 옅게⁠, 물에 탄 물감처럼 번지며 엄마의 모양을 되짚어 그렸다⁠. 짧은 파마머리⁠, 둥근 이마⁠. 눈가가 마지막으로 생겼다⁠. 웃기 전에 먼저 접히는 눈가였다⁠.

엄마가 김밥에서 얼굴을 들었다⁠. 빛은 여전히 옅었다⁠. 엄마 너머로 원룸 벽지의 꽃무늬가 비쳤다⁠. 그래도 얼굴이 있었다⁠.

“⁠늦었다⁠.⁠”

목소리가 잡음 속에서 겨우 건져 올린 것처럼 작았다⁠.

“⁠응⁠. 늦었어⁠.⁠”

“⁠육 년⁠.⁠”

“⁠응⁠.⁠”

엄마가 밥상을 둘러보았다⁠. 귤⁠, 믹스커피⁠, 비닐도 안 뜯은 고무장갑⁠, 접어 세운 종이⁠. 종이 밑줄의 「⁠보온병 뚜껑 닫았음⁠」에서 눈이 멈췄다⁠. 엄마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홍동백서는 안 했네⁠.⁠”

“⁠원룸에 동쪽이 어딘지 몰라서⁠.⁠”

“⁠나도 몰라⁠.⁠” 엄마가 믹스커피 위로 얼굴을 숙였다⁠. 김이 빨려 들어갔다⁠. 엄마가 얼굴을 찡그렸다⁠. “⁠달다⁠. 두 봉지 넣었지⁠.⁠”

“⁠엄마 맨날 두 봉지 넣었잖아⁠.⁠”

“⁠그러니까 달다는 거야⁠. 맛있다는 말이야⁠.⁠”

소연은 웃었다⁠. 웃으면서 눈가를 손등으로 문질렀다⁠. 엄마가 고무장갑 손을 들었다가 소연의 뺨에 닿기 전에 멈췄다⁠. 손이 지나가면 차가울 것을 엄마도 소연도 알았다⁠. 엄마는 손을 내려 밥상 모서리에 얹었다⁠.

“⁠나 혼자 먹이면 뭐 하냐⁠.⁠”

“⁠엄마 하나라도⁠.⁠”

“⁠사백열이 굶어⁠.⁠” 엄마가 고개를 저었다⁠. “⁠태식 씨는 밀려났고⁠.⁠”

“⁠내가 그랬어⁠. 내가 지훈한테 휴게실 알려 줬어⁠.⁠”

“⁠알아⁠. 잘 골랐다니까⁠.⁠” 엄마가 소연을 보았다⁠. 교섭 담당자를 보는 눈도 아니고⁠, 딸을 보는 눈도 아닌⁠, 둘 다인 눈이었다⁠. “⁠근데 고른 다음은 네가 정해⁠. 잘린 다음을 아무도 안 정했다고 내가 그랬지⁠. 너 지금 잘렸잖아⁠. 교섭에서⁠.⁠”

“⁠응⁠.⁠”

“⁠그럼 다음을 정해⁠. 시청이 못 하면 시민으로 해⁠. 너 오늘 퇴근했잖아⁠.⁠”

*

새벽 한 시 반⁠, 소연은 밥상 앞에 앉은 채 단톡방에 긴 글을 썼다⁠. 쓰다가 지우고 다시 썼다⁠. 맹지훈과 한 거래⁠. 휴게실⁠. 쇳소리⁠. 서울 밖으로 밀려난 백⁠. 엄마⁠. 다 쓰고 나서 맨 끝에 한 줄을 보탰다⁠. 「⁠오늘 밤부터 동짓날까지⁠, 2호선 모든 역 출구 밖에 밥상을 차려 주실 수 있을까요⁠? 남은 사백열 귀신 몫입니다⁠.⁠」

전송 단추를 누르고 휴대전화를 밥상 위에 엎어 놓았다⁠. 엄마가 엎어진 휴대전화를 내려다보았다⁠.

“⁠안 봐⁠?⁠”

“⁠무서워⁠.⁠”

휴대전화가 떨었다⁠. 한 번⁠, 두 번⁠, 그러다 멈추지 않고 떨었다⁠. 밥상 위에서 휴대전화가 혼자 조금씩 움직였다⁠. 엄마가 고무장갑 손가락으로 휴대전화를 뒤집으려다 손이 화면을 지나갔다⁠. 화면은 귀신 손가락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 요물이 나를 몰라보네⁠.⁠”

“⁠위원장님 말투 따라 하지 마⁠.⁠”

소연이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주무관님 잘못 아니에요⁠」

「⁠아니 잘못 맞음 근데 같이 함⁠」

「⁠저 2호선 교대역 근처 사는데 교대 맡을게요⁠」

「⁠강변 비었으면 저희 회사 야근조가 함⁠」

「⁠태식 디제이님 신청곡 뭐 좋아하셨어요⁠? 틀어 놓을게요⁠」

「⁠이거 기사 보고 들어왔는데 몫 부를 때 뭐라고 부르면 돼요⁠?⁠」

방장 할머니의 공지가 맨 위에 고정되었다⁠. 「⁠역마다 담당 정함⁠. 아래 표 보고 이름 쓰고 들어가⁠. 모르면 나한테 전화⁠」⁠. 표는 할머니가 휴대전화로 손글씨를 찍어 올린 사진이었다⁠. 역 이름 옆에 사람 이름이 하나둘 붙고 있었다⁠.

참여자 수가 천을 넘었다⁠.

*

새벽 세 시⁠, 소연은 숭례문으로 가는 길에 시청역 2번 출구 앞을 지났다⁠. 김밥집 셔터 앞 인도에 밥상 셋이 붙어 있었다⁠. 시민 스무 명쯤이 패딩 차림으로 둘러서서 귤을 까고 있었다⁠. 밥상 위에서 귀신 서른 남짓이 김밥과 컵라면에 얼굴을 숙이고 있었다⁠. 빛이 짙었다⁠. 형광등도 없는 길바닥이 하늘색으로 환했다⁠.

“⁠시청역 귀신님들 몫입니다⁠!⁠”

누가 다시 불렀다⁠. 한 시간째 부르는 중이라고 했다⁠. 새로 온 귀신이 있을 때마다 다시 불렀다⁠. 회사원이 소연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주무관님⁠, 아니 이제 시민님⁠. 이거 보세요⁠. 다들 드세요⁠.⁠”

길 건너 버스 정류장 의자에서 노인 하나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외투 단추를 반만 채웠고⁠, 무릎 위에 비닐봉지를 쥐고 있었다⁠. 영하 9도였다⁠. 밥상 앞에서 국밥을 먹던 할머니 귀신이 고개를 들어 노인을 보았다⁠. 4번 출구 계단 꼭대기를 지키던 할머니 귀신이었다⁠. 할머니 귀신의 입술이 달싹였다가 꾹 다물렸다⁠.

“⁠할머니⁠, 저분 깨워 주세요⁠.⁠”

“⁠못 해⁠.⁠” 할머니 귀신이 머리띠를 만졌다⁠. “⁠위원장 명이야⁠. 밥은 고맙게 먹었어⁠. 그래도 못 해⁠. 밥 먹었다고 혼자 깨우면 칠백이 깨진대⁠. 사백열인가⁠.⁠”

소연은 길을 건너 노인의 어깨를 흔들었다⁠. 노인이 눈을 떴다⁠. 소연의 얼굴을 한참 보다가 중얼거렸다⁠.

“⁠귀신이우⁠?⁠”

“⁠시민이에요⁠. 들어가세요⁠, 할아버지⁠. 얼어요⁠.⁠”

노인이 비닐봉지를 들고 일어났다⁠. 길 건너 밥상 앞에서 할머니 귀신이 소연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미안하다는 인사인지 고맙다는 인사인지⁠, 소연은 둘 다로 받았다⁠.

*

새벽 네 시⁠, 숭례문 앞은 텅 비어 있었다⁠. 차가 몇 대 지나갔고⁠, 성문의 처마 끝이 조명을 받아 누렇게 빛났다⁠. 성문 앞 돌바닥에 귀석이 혼자 떠 있었다⁠. 방망이를 등에 메고⁠, 성문을 등지고⁠, 종로 방향을 보고 있었다⁠. 순라를 도는 자세였다⁠. 머리띠는 아직 이마에 묶여 있었다⁠.

소연은 국밥 한 그릇을 들고 다가갔다⁠. 남대문시장 앞 밤 국밥집에서 포장해 온 국밥이었다⁠. 뚜껑을 열자 김이 찬 공기 속으로 확 올랐다⁠.

“⁠위원장님⁠.⁠”

“⁠교섭은 없다고 하였소⁠.⁠”

“⁠교섭 아니에요⁠. 저 교섭 담당 잘렸어요⁠.⁠” 소연은 국밥을 성문 앞 돌계단 위에 내려놓았다⁠. “⁠장귀석 위원장님 몫입니다⁠.⁠”

귀석이 국밥을 내려다보았다⁠. 굵은 눈썹이 움찔했다⁠. 김이 귀석 쪽으로 흘러갔다⁠. 귀석은 얼굴을 숙이지 않았다⁠. 김은 귀석의 수염 앞에서 그냥 흩어졌다⁠.

“⁠받지 않겠소⁠.⁠”

“⁠그럼 들어만 주세요⁠. 동짓날 막차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만나 주세요⁠. 시청도⁠, 신령님들도⁠, 지훈도⁠, 다 한 자리에서요⁠.⁠”

“⁠아씨는 이제 관이 아니라면서 무슨 수로 다 부르오⁠?⁠”

“⁠모르겠어요⁠. 그래도 부를 거예요⁠.⁠”

귀석이 성문을 돌아보았다⁠. 성문 너머로 종로가 길게 뻗어 있었다⁠. 신호등이 아무도 없는 길에서 혼자 초록으로 바뀌었다⁠.

“⁠아씨는 오백 년 전 이 문 앞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

“⁠모르죠⁠.⁠”

“⁠인정 종이 친 뒤였소⁠.⁠” 귀석의 목소리가 굴속 바람에서 돌바닥 위 바람으로 낮아졌다⁠. “⁠밤 통행을 막는 종이오⁠. 종이 치면 누구도 길에 나오면 안 되었소⁠. 나오는 자를 잡는 것이 내 일이었소⁠.⁠”

귀석이 등의 방망이를 뽑아 돌바닥에 세웠다⁠. 방망이는 바닥에 닿지 않고 한 뼘 위에 떠 있었다⁠.

“⁠이 문 앞에서 한 여인을 잡았소⁠.⁠”

1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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