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306자)

꽹과리

귀신 노조 파업 · 기담오

「⁠전면 퇴마 일정 변경⁠: 동짓날 전날 → 12월 18일 밤⁠. 시의회 예산 의결 전 마무리 지시⁠」

비서실장의 문자는 아침 여덟 시 사십 분에 왔다⁠. 소연은 시청 지하 3층 계단을 내려가다 계단참에서 걸음을 멈추고 문자를 다시 읽었다⁠. 12월 18일 밤은 오늘 밤이었다⁠.

과장은 사무실에 없었다⁠. 책상 위에 메모가 한 장 놓여 있었다⁠. 「⁠감사관실 다녀옴⁠. 묻지 마⁠」⁠. 1974년 상자는 뚜껑이 닫힌 채 책상 밑에 있었다⁠.

오전 내내 단톡방이 울렸다⁠. 기자들이 막차 밥상 이야기를 기사로 썼고⁠, 기사 밑에 댓글이 수백 개 달렸다⁠. 「⁠귀신한테 밥 주면 내 세금은⁠?⁠」 「⁠시 예산 아니라잖아 좀 읽어⁠」 「⁠신림 사고 0건이던데⁠」 「⁠귀신 노조 위원장 수염 실화임⁠?⁠」 방장 할머니가 공지를 올렸다⁠. 「⁠기사 보고 들어온 사람들 환영⁠. 김밥 말 줄 모르면 귤 까⁠. 오늘 밤 열 군데⁠」⁠. 참여자는 육백을 넘었다⁠.

열 군데는 모두 출구 밖이었다⁠. 퇴마 계약 범위 밖⁠. 소연은 공지를 보다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출구 밖 밥상 열 군데로 오백을 다 숨길 수는 없었다⁠. 2호선에만 역이 쉰 개가 넘었고⁠, 전면 퇴마는 역사 안 전체에서 한꺼번에 울릴 터였다⁠.

점심시간에 소연은 시청 옥상 정원으로 올라갔다⁠. 바람이 찼다⁠.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에서 사람들이 빙빙 돌았다⁠. 낮이라 귀신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소연은 휴대전화를 꺼내 지훈의 명함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한 번 가고 지훈이 받았다⁠.

“⁠주무관님⁠. 기다렸습니다⁠.⁠”

“⁠조건이 있어요⁠.⁠”

“⁠말씀하세요⁠.⁠”

“⁠쇳소리는 절대 안 트세요⁠. 집행부 둘만이에요⁠. 팥 원에서 바로 남산 대왕님께 모셔 가세요⁠. 그리고 나머지 오백은 오늘 밤 안 건드리시는 거예요⁠. 시장님께는 집행부가 없으니 파업이 끝났다고 보고하세요⁠.⁠”

“⁠약속드리겠습니다⁠.⁠” 지훈의 목소리가 매끄러웠다⁠. “⁠장소와 시각은요⁠?⁠”

소연은 스케이트장을 내려다보았다⁠. 아이 하나가 넘어졌다가 엄마 손을 잡고 일어났다⁠. 소연은 한참 말을 하지 못했다⁠. 지훈은 재촉하지 않았다⁠.

“⁠새벽 한 시⁠. 시청역 1번 출구 계단 밑 미화원 휴게실이요⁠. 거기는 직원 공간이라 팥이 없어요⁠. 매일 밤 집행부가 거기서 회의해요⁠.⁠”

“⁠감사합니다⁠. 어머님 편히 모시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소연은 옥상 난간을 붙잡았다⁠. 손바닥이 쇠에 붙을 만큼 차가웠다⁠. 엄마도 쉬어야 한다는 지훈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동짓날까지 못 버틴다는 말도⁠. 소연은 두 말이 다 맞다고 생각했고⁠, 맞다고 생각하는 자기가 싫었다⁠.

*

새벽 영 시 오십 분⁠, 미화원 휴게실 문을 열자 전기장판의 온기가 발목에 닿았다⁠. 산 사람 미화원 여사는 위층 청소를 하러 올라간 뒤였다⁠.

귀석은 비스듬한 천장에 전립 끝이 닿을 듯 말 듯 떠 있었고⁠, 태식은 사물함 위에 걸터앉아 너덜너덜한 확성기를 테이프로 감고 있었다⁠. 엄마는 전기장판 귀퉁이에 앉아 있었다⁠. 이틀 전 총회 때보다 더 옅었다⁠. 사물함의 녹슨 무늬가 엄마의 얼굴을 가로질러 다 보였다⁠. 분홍 고무장갑만 조금 짙었다⁠.

“⁠교섭 담당자님 오셨네⁠.⁠” 태식이 손을 흔들었다⁠. “⁠오늘 밤 전면 퇴마라면서요⁠? 우리 출구 밖으로 다 뜁니다⁠. 열 군데⁠. 나는 신촌 맡았어요⁠. 신촌 밥상에 햄버거 나온대요⁠.⁠”

“⁠앉아⁠.⁠” 엄마가 말했다⁠. 목소리에 잡음이 말보다 많았다⁠. “⁠무릎 시려⁠.⁠”

소연은 신발을 벗고 전기장판 반대편에 앉았다⁠. 고개를 숙인 채였다⁠. 휴대전화 시계를 보았다⁠. 영 시 오십삼 분⁠.

“⁠시청 입장은 그대로예요⁠.⁠” 소연이 말했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높았다⁠. “⁠전면 퇴마요⁠. 대왕님 안은 아직 열려 있고요⁠.⁠”

“⁠그건 아는 얘기고⁠.⁠” 엄마가 소연을 보았다⁠. “⁠너 얼굴이 왜 그래⁠.⁠”

“⁠밤새워서⁠.⁠”

“⁠너 밤새운 얼굴 아니야⁠.⁠”

문밖에서 투둑⁠, 투둑 소리가 났다⁠. 마른 곡식 떨어지는 소리⁠. 귀석이 고개를 돌렸다⁠. 태식이 확성기를 떨어뜨렸다⁠. 문틈 아래로 붉은 팥알이 굴러 들어왔다⁠. 팥알은 문턱을 따라 줄지어 휴게실 벽을 타고 한 바퀴 돌았다⁠. 아르바이트생 둘이 문을 반쯤 열고 팥을 흘려 넣고 있었다⁠. 팥 줄이 휴게실 바닥을 한 바퀴 다 감자 원이 되었다⁠. 원 안에 귀석과 태식과 엄마가 있었다⁠.

지훈이 문간에 나타났다⁠. 회색 정장에 흰 운동화⁠. 허리를 숙여 들어오며 고개를 숙였다⁠.

“⁠위원장님⁠, 부위원장님⁠. 남산 대왕님께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편히 가시게요⁠.⁠”

귀석이 방망이를 뽑았다⁠. 엄마는 움직이지 않았다⁠. 엄마는 지훈을 보지 않고 소연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소연은 엄마의 눈을 피하지 못했다⁠.

“⁠네가 골랐구나⁠.⁠”

“⁠엄마⁠, 오백이⁠…⁠…⁠.⁠”

“⁠알아⁠.⁠”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잡음 속에서 이 말만 또렷했다⁠. “⁠잘 골랐어⁠. 나라도 그랬을 거야⁠.⁠”

귀석이 방망이를 들어 소연을 가리켰다⁠. 방망이 끝이 떨렸다⁠.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지훈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지훈이 화면을 보고⁠,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다⁠. 전화를 받지 않고 끊었다⁠. 그러고는 소연을 보았다⁠. 매끄럽던 얼굴이 처음으로 굳어 있었다⁠.

“⁠죄송합니다⁠, 주무관님⁠. 시청 지시가 방금 바뀌었습니다⁠. 집행부 확보 즉시 전면 실시⁠.⁠”

“⁠약속하셨잖아요⁠.⁠”

“⁠저는 계약대로 합니다⁠.⁠” 지훈이 주머니에서 리모컨을 꺼냈다⁠. “⁠계약 당사자는 시청이고⁠, 주무관님은 아니시니까요⁠.⁠”

지훈이 단추를 눌렀다⁠.

깨갱⁠, 깨갱⁠, 깨개갱⁠.

쇳소리가 휴게실 벽을 뚫고 들어왔다⁠. 휴게실 안만이 아니었다⁠. 머리 위 계단에서⁠, 개찰구에서⁠, 승강장에서⁠, 굴속 저 멀리 을지로에서⁠, 신림에서⁠, 2호선 쉰 개 역 스피커가 한꺼번에 울었다⁠. 쇳소리가 굴을 타고 서로 부딪쳐 하나의 거대한 꽹과리가 되었다⁠. 소연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전기장판 위에 엎드렸다⁠. 이빨 뿌리가 울리고 눈알이 울렸다⁠.

팥 원 안에서 귀신들이 바람 맞은 연기처럼 흔들렸다⁠. 원 안은 쇳소리에 밀려도 원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팥 줄이 감옥이자 둑이 되었다⁠. 태식만 원 가장자리⁠, 문턱 가까운 자리에 있었다⁠. 문틈으로 들어온 쇳소리가 태식을 정통으로 때렸다⁠. 태식의 몸이 팥 줄에 밀려 붙었다가⁠, 소연이 시청역 승강장에서 앞코로 흩었던 것처럼 문턱 쪽 팥 몇 알이 쇳소리에 튀어 굴렀다⁠. 틈이 생겼다⁠.

태식이 틈으로 빨려 나갔다⁠.

“⁠주무관님⁠!⁠” 태식의 목소리가 계단 위로⁠, 개찰구로⁠, 굴속으로 멀어졌다⁠. “⁠신청곡 빚⁠, 못 갚고 가요⁠!⁠”

태식의 목소리가 쇳소리에 묻혔다⁠.

엄마가 일어났다⁠. 귀석 앞으로 갔다⁠. 머리 하나가 큰 귀석을 두 팔로 감쌌다⁠. 쇳소리가 울릴 때마다 엄마의 등에서 빛이 한 겹씩 떨어져 나갔다⁠. 엄마의 주황 조끼가 흐려졌다⁠. 짧은 파마머리가 흐려졌다⁠. 귀석이 엄마의 어깨를 붙잡으려다 손이 엄마를 지나갔다⁠. 귀신끼리도 서로를 붙잡지 못했다⁠.

“⁠부위원장⁠! 비키시오⁠!⁠”

엄마는 비키지 않았다⁠.

*

쇳소리가 그쳤다⁠. 귀가 먹먹했다⁠. 소연은 전기장판 위에서 고개를 들었다⁠. 휴게실 형광등이 지지직거리다 겨우 켜졌다⁠.

팥 원 안에 귀석이 있었다⁠. 방망이를 떨어뜨린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귀석 앞⁠, 전기장판 귀퉁이에 분홍 고무장갑 한 켤레가 희미하게 떠 있었다⁠. 고무장갑 위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주황 조끼도⁠, 파마머리도⁠, 눈가도 보이지 않았다⁠. 고무장갑 손가락 하나가 아주 천천히 까딱였다⁠.

“⁠엄마⁠.⁠”

고무장갑이 대답 대신 한 번 더 까딱였다⁠. 목소리가 없었다⁠. 잡음도 없었다⁠.

지훈이 문간에서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화면에 상황 보고가 올라와 있었다⁠. 「⁠2호선 전 구간 1차 실시 완료⁠. 서울 경계 밖 이동 추정 약 100⁠. 역사 안 잔류 0⁠. 출구 밖 다수 확인됨(⁠계약 범위 외⁠)⁠」⁠. 출구 밖 밥상 열 군데에 숨은 귀신들은 쇳소리를 피했다⁠. 역사 안에 남아 있던 귀신 백이 밀려났다⁠. 태식은 백 가운데 하나였다⁠.

지훈이 팥 원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대왕님께 모셔다⁠…⁠…⁠.⁠”

소연이 일어났다⁠. 운동화를 신지 않은 발로 팥 원을 걷어찼다⁠. 한 번⁠, 두 번⁠, 세 번⁠. 팥알이 휴게실 바닥에 흩어지고 사물함 밑으로 굴러 들어갔다⁠. 원은 더 이상 원이 아니었다⁠. 소연은 귀석과 고무장갑 앞을 막았다⁠. 발바닥에 팥알이 박혀 아팠다⁠.

“⁠약속 깨셨잖아요⁠.⁠”

“⁠시청이 바꿨습니다⁠.⁠”

“⁠시청은 저예요⁠. 오늘 밤 여기 시청은 저 하나예요⁠.⁠” 소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업무 방해로 보고하세요⁠. 미끄러진 거 아니에요⁠. 찬 거예요⁠.⁠”

지훈이 소연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그러고는 리모컨을 주머니에 넣었다⁠.

“⁠보고하겠습니다⁠.⁠” 지훈이 문손잡이를 잡았다⁠. “⁠대왕님께 모셔 가는 건 오늘은 안 하겠습니다⁠. 계약서에 그 항목은 원래 없었으니까요⁠.⁠”

지훈이 나갔다⁠. 계단 위로 흰 운동화 소리가 멀어졌다⁠.

*

귀석이 일어났다⁠. 방망이를 주워 등에 꽂았다⁠. 전립을 고쳐 썼다⁠. 소연을 보지 않고 고무장갑을 보았다⁠.

“⁠관의 앞잡이⁠.⁠”

“⁠위원장님⁠.⁠”

“⁠관의 앞잡이라 했소⁠.⁠” 귀석의 목소리가 굴속 바람처럼 낮게 깔렸다⁠. 처음 만난 밤의 목소리보다 더 차가웠다⁠. “⁠부위원장께서 잘 골랐다 하셨으니 나는 탓하지 않겠소⁠. 그러나 이제부터 아씨와 나 사이에 교섭은 없소⁠.⁠”

귀석이 휴게실 문을 지나 계단을 올라갔다⁠. 개찰구 위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출구 밖으로 숨었던 귀신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동지들⁠! 오늘부터 전면 파업이오⁠! 목숨 걸린 일도 손 놓으시오⁠! 몰래 깨우던 이들도 이제 깨우지 마시오⁠! 위원장이 명하오⁠!⁠”

새벽 다섯 시 십 분⁠, 상황실 단톡방에 공지가 올라왔다⁠.

「⁠04⁠:40 마포대교 북단 졸음운전 추정 택시 단독 사고⁠. 운전자 중상⁠, 병원 이송⁠」

마포대교 위에도 한강 다리 귀신들이 있었다⁠. 몰래 깨우던 귀신들이었다⁠. 위원장의 명이 다리까지 닿기까지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막차 밥상 단톡방도 밤새 울렸다⁠. 소연은 휴게실 바닥에 앉은 채 화면을 내려 보았다⁠.

「⁠신촌 밥상 햄버거 세트 놨는데 디제이 귀신분 안 오셨어요⁠. 기다릴까요⁠?⁠」

「⁠합정은 다 오셨어요⁠. 근데 다들 표정이 안 좋으세요⁠. 꽹과리 소리 났대요⁠」

「⁠사당 귀신 할머니가 우리 영감 못 봤냐고 물어보세요⁠. 어떡해요⁠」

「⁠저 출구 밖에서 들었어요⁠. 역 안에서 귀신들 소리 지르는 거⁠. 바람 소리 같았어요⁠」

마지막으로 방장 할머니의 공지가 올라왔다⁠. 할머니는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없이 썼다⁠.

「⁠안온귀신몫도그냥둬 치우지마 아침에내가치움⁠」

신촌 밥상의 회사원이 사진을 한 장 올렸다⁠. 신촌역 출구 밖 인도 위⁠, 햄버거 세트가 종이봉투째 놓여 있었다⁠. 봉투 옆에 누가 종이컵으로 확성기 모양을 만들어 세워 두었다⁠. 감자튀김에서 아직 김이 오르고 있었다⁠.

휴게실 바닥에서 고무장갑이 희미하게 떠 있었다⁠. 소연은 고무장갑 앞에 무릎을 꿇었다⁠. 첫차가 들어오면 고무장갑도 사라질 터였다⁠. 다음 막차에 다시 나타날지는 아무도 몰랐다⁠. 소연은 보온병 뚜껑을 열어 고무장갑 옆에 놓았다⁠. 보리차 김이 올라와 고무장갑 손가락 사이로 흩어졌다⁠. 이름을 부르지 않은 보리차라 김은 빠지지 않고 그냥 식었다⁠.

11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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