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538자)
짜장면
학생 귀신을 만난 은퇴 교장 · 하청오
짜장면은 오전 열한 시 반에 왔다. 읍내 중국집 배달 오토바이가 정문 앞에서 멈추고, 헬멧을 쓴 청년이 철가방을 든 채 돌기둥 밖에 서 있었다.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자 청년이 한 걸음 물러났다.
“사장님, 그 학교 맞죠? 영상에 나온 거.”
“맞아요. 짜장면 시킨 학교요.”
“여기서 드리면 안 될까요? 저 그 영상 열 번 봤거든요.”
“열 번이나 봤으면 안에 아무것도 없는 거 알잖아요.”
“열 번 봐서 무서운 거예요.” 청년이 철가방을 돌기둥 위에 올려놓았다. 짜장면 세 그릇과 단무지, 양파, 춘장이 나왔다. 청년은 계산을 받자마자 오토바이에 올랐다가, 시동을 걸기 전에 6학년 교실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근데 사장님, 짜장면은 누가 먹어요?”
“졸업생이요.”
청년이 헬멧 안에서 눈을 깜박였다. 오토바이가 신작로로 빠르게 멀어졌다. 금요일 밤에 내려온 딸이 돌기둥 옆에서 웃음을 참다가 결국 쪼그려 앉았다.
“엄마, 저 사람 오늘 밤에 커뮤니티에 글 쓴다. 귀신 학교에 짜장면 배달 갔다고.”
“쓰라고 해. 짜장면은 맛있다고 쓰면 돼.”
*
고묵순은 열두 시에 왔다. 순천에서 첫차를 타고 읍내에서 택시를 탔다고 했다. 쉰여덟 살, 키가 작고 어깨가 단단했다. 반찬가게 앞치마를 벗지 않은 채였다. 양손에 보냉 가방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정문 돌기둥 앞에서 고묵순이 멈췄다. 은행나무를 보고, 운동장을 보고, 6학년 교실 창문을 보았다.
“여기가 이렇게 작았어요?”
“그때는 열 살이었으니까요.”
“열 살 때는 운동장 끝이 안 보였어요.” 고묵순이 가방을 고쳐 들었다. “우리 오빠는 저 은행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갔어요. 내려올 때 바지가 찢어져서 엄마한테 맞았어요.”
신작로에서 발소리가 났다. 백춘금이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오다가, 돌기둥 앞의 고묵순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사십팔 년 전에 열세 살과 열 살이었다. 고묵순이 먼저 백춘금의 봉지를 보았다. 봉지 밖으로 다슬기 냄새가 났다.
“혹시 덕골 구판장.”
“예.”
“춘금이 언니요?”
백춘금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끄덕였다. 고묵순이 보냉 가방을 내려놓고 백춘금의 손을 잡았다. 다슬기 껍데기에 베인 자국이 많은 손이었다.
“다슬기 고마웠어요. 열두 해 동안. 이름 안 쓰고 보내도 언니가 알고 보내 주는 거 알았어요. 덕골 다슬기는 언니네 것밖에 없응께.”
백춘금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손을 빼려다가 빼지 않았다. “나는.” 백춘금이 말했다. “나는 만덕이 동생한테 할 말이 없어.”
“언니가 왜 할 말이 없어요. 언니도 그날 거기 있었잖아요.” 고묵순이 손을 놓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죽을 때까지 그 말을 했어요. 춘금이는 살아서 다행이다, 한 명이라도 살아서 다행이다.”
백춘금이 손을 빼고 몸을 돌렸다. 비닐봉지를 돌기둥 위에 놓고 신작로로 걸어갔다. 빨리 걸었다. 봉지 안에는 다슬기 무침 세 통이 들어 있었다. 이번에도 단무지는 없었다.
6학년 교실 문 앞에서 고묵순은 한 번 숨을 들이쉬었다. 반찬가게 문을 열 때처럼 어깨를 펴고 문을 밀었다.
교실 맨 앞 책상에 고만덕이 앉아 있었다. 아침부터 세수를 열 번은 한 얼굴이었다. 문이 열리자 고만덕이 벌떡 일어났다. 고묵순은 문간에서 멈췄다. 보냉 가방 하나가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고묵순은 고만덕을 보았다. 실뜨기였다. 고묵순이 열 살 때 오빠에게 가르쳐 준 것은 실뜨기였다. 오빠는 손가락이 굵어서 젓가락 모양을 만들 때마다 실을 놓쳤고, 동생은 오빠 손가락에 실을 다시 걸어 주며 혀를 찼다. 가르쳐 본 사람은 보았다.
“오빠.”
“묵순이 늙었다.” 고만덕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는데, 말은 아침에 연습한 말이 아니었다. “엄마보다 늙었다.”
“오빠는 안 늙었네. 얄밉게.”
교실 아이들이 웃었다. 고묵순도 웃었다. 웃으면서 울었다. 쉰여덟 살의 울음은 소리가 크지 않았다. 앞치마 끝으로 눈을 누르고, 누른 채로 웃었다. 딸이 문간에서 고개를 돌렸다. 딸은 고만덕을 볼 수 없었다. 고묵순이 아무것도 없는 책상을 향해 오빠라고 부르는 것은 볼 수 있었다.
고묵순이 떨어뜨린 보냉 가방을 주워 고만덕의 책상 위에 열었다. 계란말이, 멸치볶음, 다슬기 무침, 김. 마지막으로 삶은 계란 두 알이 나왔다. 고묵순이 계란 하나를 책상 모서리에 톡 쳐서 껍데기를 벗겼다. 껍데기 벗기는 손이 빨랐다. 반찬가게 사장의 손이었다. 칼을 꺼내 계란을 반으로 갈랐다. 노른자가 노랗게 드러났다. 반쪽을 오빠 앞에 놓고, 반쪽을 자기 앞에 놓았다.
고만덕이 자기 앞의 반쪽을 오래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검지를 뻗어 계란 반쪽을 동생 쪽으로 밀었다. 계란은 무거웠다. 분필보다 무거웠다. 고만덕의 손가락이 계란을 지나가고, 지나가고, 세 번째에야 계란이 일 센티쯤 움직였다. 접시 위에서 계란이 동생 앞의 반쪽에 닿았다. 두 반쪽이 다시 한 알처럼 붙었다.
“반 줬다.” 고만덕이 말했다. “졸업식 끝나고 반 준다 했잖여.”
고묵순은 계란을 보았다. 앞치마를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다가 계란 두 반쪽을 한 손에 쥐고 한입에 넣었다. 볼이 불룩해졌다. 고만덕이 동생의 볼을 보고 배를 잡고 웃었다.
“돼지네, 돼지.”
“오빠가 할 말이 아니여.”
짜장면은 딸이 그릇마다 비벼 놓았다. 고만덕은 짜장면 그릇에 코를 박고 숨을 들이켰다. 이깨순이 옆에서 따라 했고, 도판식도 따라 했다. 아이들이 짜장면 그릇 셋에 머리를 맞대고 냄새를 먹었다. 고묵순과 딸과 나는 남은 짜장면을 먹었다. 불어서 면이 뚝뚝 끊겼다. 맛있었다.
*
젓가락을 내려놓은 고만덕이 교탁 앞으로 나왔다. 아이들을 한 번 돌아보고 나를 보았다.
“교장 선생님. 나 졸업장 주세요.”
교실이 조용해졌다. 고묵순이 숨을 멈췄다. 맨 앞줄 가운데에서 서봉님이 일어났다.
“안 돼.”
“반장.”
“우리 같이 받기로 했잖여. 열두 명 같이. 춘금이 먼저 받고, 그다음에 같이. 반장 허락 없이 아무도 안 받기로 했잖여.”
“반장, 나는 묵순이한테 계란 줬어.” 고만덕이 말했다. 반장 앞에서 고만덕의 목소리는 처음으로 작아지지 않았다. “반 준다 했고, 반 줬어. 나는 다 했어. 짜장면 냄새도 먹었어. 가고 싶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잖여!”
“모르지.” 고만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반장, 여기 있는 것도 우리가 알고 있는 거 아니잖여.”
서봉님의 주먹이 치마 옆에서 하얘졌다. 서봉님이 나를 보았다. 반장이 교장에게 판결을 구하는 눈이었다.
“봉님아.” 나는 교탁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선생님은 졸업장을 줄 수 있는 사람이야. 받고 싶은 사람한테 줘. 받기 싫은 사람한테는 안 줘. 반장이 대신 받을 수도 없고, 반장이 대신 거절할 수도 없어.”
“교장 선생님은 우리 반 아니잖아요.”
“맞아. 그래서 선생님은 반장 말도 듣고 만덕이 말도 들어.”
서봉님이 입술을 깨물었다. 고만덕을 보고, 고묵순을 보고, 다시 고만덕을 보았다. 그러다 의자에 앉았다. 앉아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반대한다는 말도, 허락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반장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등이었다.
나는 교장실에 가서 고만덕의 두루마리를 가져왔다. 연보라 머리끈을 풀었다. 1979년의 먹글씨가 드러났다. 돋보기를 찾다가 그만두었다. 내용은 읽지 않아도 알았다. 서른여덟 해 동안 해마다 이월에 읽었다.
“졸업장. 고만덕.”
내 목소리가 교실에 울렸다. 고만덕이 교탁 앞에서 차렷 자세를 했다.
“위 사람은 본교 소정의 전 과정을 마쳤으므로 이 증서를 줌. 1979년 2월 15일. 덕골국민학교장.” 나는 한 줄을 더 붙였다. 연혁지에도 졸업장에도 없는 줄이었다. “2027년 4월 3일, 덕골초등학교 교장 임길례가 대신 줌.”
두 손으로 졸업장을 내밀었다. 고만덕이 두 손으로 받았다. 받는 손이 떨렸는데, 졸업장은 떨어지지 않았다. 고만덕이 허리를 숙였다. 아이들이 손뼉을 쳤다. 처음에는 도판식 혼자, 다음에는 다 같이. 고묵순이 따라서 손뼉을 쳤다. 딸도 손뼉을 쳤다. 딸은 무엇에 손뼉을 치는지 보지 못하면서 쳤다. 서봉님은 창밖을 본 채로, 마지막에 손뼉을 두 번 쳤다.
고만덕은 졸업장을 가슴에 안고 교실 문을 나갔다. 복도를 지나 운동장으로 나갔다. 아이들이 창가로 몰려들었다. 고묵순이 창틀을 붙잡았다. 고만덕이 은행나무 밑을 지났다. 줄을 잡지 않았는데 멈추지 않았다. 은행나무를 지나 운동장 끝까지 걸어갔다. 정문 돌기둥 앞에서 고만덕이 돌아보았다. 손을 흔들었다. 정오의 햇빛이 고만덕을 지나갔다. 햇빛이 지나간 자리가 점점 옅어졌다. 손을 흔드는 손이 마지막까지 남았다가, 햇빛 속으로 섞였다.
돌기둥 위에 두루마리 하나가 남아 있었다. 고묵순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갔다. 쉰여덟 살의 뜀박질이었다. 돌기둥 앞에서 두루마리를 집어 들고, 오래 서 있었다. 동섭 이장이 해마다 사탕 봉지를 두던 자리였다.
고묵순은 해 질 무렵에 순천으로 돌아갔다. 택시를 기다리며 두루마리를 보냉 가방 안쪽에 세워 넣었다. 접히지 않게 반찬통 사이에 끼웠다.
“선생님, 다른 집들도 찾을게요. 귀분이네 오빠는 광주에 있고, 쌍둥이네 막내는 서울 어디 산다고 들었어요. 이사 간 집들끼리는 연락을 안 했어요. 서로 얼굴 보면 그날이 생각난다고.” 고묵순이 택시 문을 열었다. “이제 생각나도 돼요. 우리 오빠는 계란 반 주고 갔다고 말해 줄 거예요.”
*
택시가 떠난 뒤 6학년 교실로 돌아갔다. 고만덕의 책상 위에 짜장면 그릇이 그대로 있었다. 서봉님이 고만덕의 의자를 책상 밑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반장이 하는 일이었다.
“교장 선생님. 만덕이 어디 갔어요?”
“선생님도 몰라.”
“모르는 데로 보내도 돼요?”
나는 교탁 옆 낮은 의자에 앉았다. 앉으니 서봉님과 눈높이가 같아졌다.
“봉님아. 선생님은 서른여덟 해 동안 아이들을 모르는 데로 보냈어. 중학교로, 고등학교로, 서울로, 외국으로. 어디로 가는지 알고 보낸 적은 한 번도 없어. 졸업식 날마다 운동장에서 손 흔들고, 교무실 들어와서 혼자 울었어. 교장은 운동장에서 울면 안 되니까.”
서봉님이 나를 보았다. 오래 보았다.
“교장 선생님도 울어요?”
“이월마다.”
서봉님은 대답하지 않고 고만덕의 짜장면 그릇 옆에 놓인 나무젓가락을 두 손으로 집었다. 젓가락을 그릇 위에 가지런히 걸쳐 놓았다. 서봉님의 팔이 떨렸는데, 젓가락은 떨어지지 않았다.
*
밤 열 시에 딸이 숙직실 방문을 열었다.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얼굴이 낮과 달랐다.
“엄마. 이거 봐.”
지역 인터넷 신문 기사였다. 「‘귀신 학교’ 땅 주인 전직 교장, 재직 중 체험학습 사고 축소 의혹」 기사에는 2019년 가을의 날짜와 수원의 학교 이름이 적혀 있었다. 비 오는 날의 체험학습. 다리를 다친 4학년 아이. 감봉을 받고 학교를 떠난 담임. 「당시 학교 관계자에 따르면 출발을 강행한 사람은 교장이었으며, 보고서의 안전 수칙 문구는 교장의 묵인 아래 들어갔다.」 기사 맨 아래에 덕산토건이 후원하는 지역 문화 행사 광고가 붙어 있었다.
“엄마.” 딸이 휴대전화를 내렸다. “이거 사실이야?”
딸의 손에 낮의 짜장면 냄새가 아직 남아 있었다. 나는 에어 매트리스 위에서 일어나 앉았다. 돋보기를 찾지 않았다. 딸의 얼굴은 돋보기 없이도 잘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