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415자)
훈화
학생 귀신을 만난 은퇴 교장 · 하청오
딸은 숙직실 문을 닫고 에어 매트리스 끝에 앉았다. 휴대전화는 화면을 아래로 해서 무릎 위에 엎어 두었다. 기사 제목이 보이지 않게 엎은 것이었다. 나는 일어나 앉아 무릎을 세웠다. 무릎이 시큰거렸다. 딸은 내 무릎을 보았다가 내 얼굴을 보았다.
“사실이야.” 내가 말했다.
딸은 대답하지 않았다. 듣겠다는 얼굴이었다. 회사에서 고객사의 해명을 들을 때의 얼굴일 것이다.
“2019년 10월이었어. 4학년이 농촌 체험학습을 가는 날이었어. 새벽부터 비가 왔어. 담임이 교무실에 와서 미루자고 했어. 4학년 3반 담임, 서른두 살 남자 선생님. 나는 미루면 교육청 실적 보고 날짜를 못 맞춘다고 했어. 버스도 계약했고, 농장도 기다린다고. 비는 그칠 거라고.”
“그쳤어?”
“안 그쳤어. 농장 비탈에서 아이 하나가 미끄러졌어. 정강이뼈가 부러졌어. 아이 엄마가 병원 복도에서 담임 멱살을 잡았어. 나는 병원에 갔는데, 복도 끝에서 멈췄어. 들어가지 않았어.” 나는 무릎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교육청에 올릴 보고서를 담임이 썼어. 맨 끝에 안전 수칙 안내 완료라고 넣었어. 안내는 했어. 우산 챙기라는 안내. 나는 그 문장을 보고 아무 말도 안 했어. 그 문장이 있으면 담임 책임이 되고, 없으면 교장 책임이 되니까. 담임은 감봉 받고 이듬해 학교를 떠났어. 나는 정년까지 교장을 했고, 퇴임식 날 상도 받았어.”
딸이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기사 화면이 다시 나왔다. 딸은 기사를 보지 않고 꺼 버렸다.
“엄마. 그 선생님한테 사과했어?”
“안 했어.”
“왜?”
“사과하면 내가 한 일이 되니까.” 말하고 나서 나는 내 목소리를 들었다. 이장의 목소리와 같았다. “학교가 애들 죽은 일로 기억되믄 그 학교는 끝이요.” 덕산토건 회장의 목소리와도 같았다. “안타까운 사고였지요.” “엄마가 이 학교에 와서 이장님한테, 회장님한테 하는 말을, 엄마는 엄마한테 한 번도 안 했어.”
딸이 오래 말이 없었다. 숙직실 창밖에서 개구리가 울기 시작했다. 사월 첫 개구리였다.
“엄마, 나 열 살 때 학예회 날 기억나?”
“엄마 못 갔지.”
“나 그날 무대에서 대사 까먹었어. 내가 우니까 담임 선생님이 무대 옆에서 대사를 입 모양으로 알려 줬어. 끝나고 선생님이 나 안아 주면서 그랬어. 틀려도 끝까지 서 있었으니까 잘한 거라고.” 딸이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엄마. 끝까지 서 있어. 틀렸어도. 그리고 그 선생님한테 전화해.”
*
아침에 경로당 앞을 지나는데 창문이 열렸다. 할머니 하나가 휴대전화를 흔들었다. 「충격! 귀신 학교 여교장의 과거」 썸네일에 내 얼굴과 빨간 화살표가 박혀 있었다.
“교장 선생, 이거 사실이여?”
“사실이에요, 어머님.”
할머니가 휴대전화를 내렸다. 사실이 아니라는 대답을 기다리던 얼굴이었다. 사실이라는 대답 다음에 할 말을 준비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라믄 왜 이 사람들은 충격이라고 써 놨어? 사실이믄 충격이 아니제.”
옆의 할머니가 화투패를 섞으며 말했다. “요새는 사실이 다 충격이여.”
군청은 읍내 한가운데 있었다. 오전 열 시에 군수의 기자 브리핑이 있다고 했다. 브리핑실 앞 복도에 지역 기자 몇과 카메라 하나가 서 있었다. 나는 복도 끝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십 분 뒤에 브리핑실 문이 열리고 군수와 덕산토건 회장이 나란히 나왔다. 군수는 기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엘리베이터로 갔다. 회장은 나를 보았다. 감색 양복에 굵은 시계였다. 회장이 기자들을 지나 나에게 걸어왔다.
“임 교장 선생님. 기사 보셨지요. 저도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기사 밑에 회장님 회사 광고가 있더군요.”
“지역 신문은 지역 회사 광고로 삽니다. 저희가 기사를 쓰지는 않지요.” 회장이 복도 창가로 나를 이끌었다. 기자들이 들리지 않는 자리였다. “선생님,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회사 직원이 예순 명입니다. 곡성에서 예순 명 월급 주는 회사는 몇 안 됩니다. 체험관 공사가 날아가면 그 예순 명 가운데 스무 명이 여름을 못 넘깁니다. 저희 아버지는 1979년에 둑을 지었고, 그 둑이 지금도 곡성 논 절반에 물을 댑니다. 그날 일은 사고였습니다. 군수가 정한 행사였고, 아버지는 시공사였습니다.”
“아이들을 수문 밑에 세운 사진이 있어요.”
“사진은 누가 봐도 행사 사진입니다.” 회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선생님. 선생님도 다섯 글자를 쓰게 두신 분 아닙니까. 아이가 다치고, 담임이 책임지고, 교장은 정년을 채우고. 선생님은 그걸로 서른여덟 해를 지키셨어요. 학교를 지키신 거지요. 저도 회사를 지키는 겁니다. 사람은 다 그렇게 삽니다.”
복도 창밖으로 읍내 장터가 보였다. 장날이었다. 할머니들이 고추 모종을 펼쳐 놓고 앉아 있었다.
“회장님 말이 맞아요. 저도 그렇게 살았어요.” 나는 회장을 보았다. “그래서 압니다. 그렇게 살면 다섯 글자가 남아요. 사십팔 년이 지나도 연혁지에 남아요. 회장님 선친의 이름은 동판에 남았고요. 수문 바퀴 돌린 사람 이름은 없어요. 아이들 이름은 철없는 애들로 남았어요. 저는 이번에는 다섯 글자를 안 쓰려고요.”
회장이 웃었다. 웃음 끝이 조금 굳었다.
“임시회는 4월 10일입니다. 선생님, 계약 해제되시면 수리비는 제가 개인적으로 챙겨 드리겠습니다. 그 말씀은 유효합니다.”
군청 주차장 구석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연락처 맨 아래에 다섯 해 동안 한 번도 누르지 않은 이름이 있었다. 4학년 3반 담임. 신호가 네 번 가고 남자 목소리가 받았다. 뒤에서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났다. 학원 쉬는 시간의 소리였다.
“교장 선생님?”
번호를 지우지 않은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선생님, 임길례입니다. 기사 보셨을 거예요. 기사 때문에 전화한 게 아니에요. 기사가 아니었으면 전화를 못 했을 거라서, 그게 부끄러워서 전화했어요.” 나는 주차장 시멘트 바닥의 금을 내려다보았다. “2019년 10월에 출발을 밀어붙인 사람은 저였어요. 보고서의 문장을 보고도 가만있은 사람도 저였고요. 선생님이 지신 책임은 제 책임이었어요. 미안합니다.”
전화 너머에서 아이들 소리만 들렸다. 누가 선생님 하고 불렀고, 남자가 손으로 수화기를 막는 소리가 났다. 다시 돌아온 목소리는 낮았다.
“교장 선생님, 그 말 다섯 해 기다렸습니다.” 남자가 숨을 쉬었다. “지금은 못 받겠습니다. 받으면 제가 다섯 해를 헛산 것 같아서요. 나중에. 나중에 받을게요.”
“네. 기다릴게요.”
전화가 끊겼다. 나는 주차장에 한참 서 있었다. 사과는 받는 사람이 받을 때 사과가 된다. 서른여덟 해 동안 아이들에게 가르친 말이었다. 가르치기는 쉬웠다.
*
오후에 마상태가 안전진단 업체 직원 둘을 데리고 학교에 왔다. 직원들은 복도 벽에 망치를 대고 두드리고, 금 간 자리에 자를 대고 사진을 찍었다. 6학년 교실 옆 벽을 두드리자 벽 안쪽에서 똑같이 똑똑 소리가 돌아왔다. 직원이 다시 두드렸다. 똑똑. 직원이 세 번 두드렸다. 똑똑똑. 도판식이었다. 직원이 망치를 든 채 동료를 돌아보았다. “형, 이 벽 대답하는데요.” “속이 비어서 울리는 거야.” 동료가 말했다. 동료는 이후로 6학년 교실 옆 벽은 두드리지 않았다. 마상태는 조끼 차림이었다. 순천에서 본 쉰여섯 살 아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6학년 교실 앞에서 마상태가 망설였다.
“선생님, 이 교실도 봐야 합니다.”
“들어오세요. 아이들이 기다려요.”
마상태는 직원들을 복도에 두고 혼자 들어왔다. 교실 안을 둘러보는 눈이 지난번과 달랐다. 빈 책상을 하나씩 짚어 가는 눈이었다. 고만덕의 자리에서 눈이 멈췄다. 짜장면 그릇은 내가 치웠지만 나무젓가락 한 벌이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칠판 앞에서 분필이 움직였다. 하귀분이었다. 마상태가 숨을 들이켰다. 분필이 허공에 떠서 칠판에 선을 그었다. 네모 하나. 네모 안에 동그라미 하나. 네모 위쪽에 작은 단추. 사진기였다. 하귀분이 그림 아래에 글씨를 썼다. 「아저씨 사진 어떻게 찍어요?」
마상태가 뒷걸음질을 쳤다. 책상 모서리에 허리를 부딪쳤다. “선생님. 이거.”
“귀분이에요. 그림 잘 그리는 아이요. 지난번에 과장님이 휴대전화로 교실 찍는 거 봤대요. 그림을 빛으로 그리는 기계인 줄 알았대요. 어떻게 하는 건지 배우고 싶대요.”
마상태는 칠판 글씨를 오래 보았다. 손이 조끼 주머니로 갔다가 멈췄다가 다시 갔다. 휴대전화를 꺼냈다. 사진기 화면을 켰다. 칠판을 향해 휴대전화를 들고, 아무도 없는 교탁 옆 허공에 대고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여기. 이 동그란 거 누르면 찍혀요. 손 떨리면 흔들리니까 숨 참고 눌러요. 두 손으로 잡고요.”
군청 과장의 손가락이 동그란 단추를 눌렀다. 찰칵 소리가 났다. 화면에 칠판이 찍혔다. 칠판 앞에, 분필을 쥔 여자아이가 마상태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단발머리, 소매가 손등을 덮은 블라우스, 「6-1 하귀분」 명찰.
마상태가 화면에서 고개를 들었다. 화면 밖에도 하귀분이 서 있었다. 마상태의 눈이 하귀분 뒤로 갔다. 책상마다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열한 명. 까까머리, 양 갈래 머리, 몸에 맞지 않는 교복. 아이들이 일제히 마상태를 보았다.
“아저씨가 가르쳐 줬다.” 하귀분이 말했다. “이제 아저씨도 보이지요?”
마상태의 입술이 움직였는데 소리가 나지 않았다. 마상태는 하귀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휴대전화를 내렸다. 맨 앞줄 가운데에서 서봉님이 일어났다. 서봉님이 마상태 앞으로 걸어왔다. 반장의 걸음이었다.
“아저씨. 아저씨 아버지 미워하지 마요.” 서봉님이 말했다. “아저씨 아버지는 울었어요. 둑 위에 주저앉아서. 우리 교장 선생님은 안 울었어요. 군수도 안 울었어요. 털모자 아저씨만 울었어요.”
마상태가 무릎을 꿇었다. 넘어진 것이 아니라 꿇었다. 열세 살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는 무릎이었다. 마상태는 서봉님 앞에서 오래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복도에서 안전진단 직원이 문을 두드렸다. “과장님, 이 교실 사진 찍을까요?” 마상태는 대답하지 않았다.
*
밤 열한 시에 정문 앞에 흰 승합차가 멈췄다. 마상태가 서류 봉투를 들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왔다. 은행나무 밑을 지나 숙직실 앞까지 왔다. 정문 밖에서 서류를 내밀던 사람이 처음으로 안까지 걸어 들어왔다.
“군청 문서고에 다녀왔습니다. 1979년 상자요. 과장 열쇠로 열었습니다.” 마상태가 봉투를 내밀었다. 손가락에 먼지가 묻어 있었다. “준공식 행사 계획서예요. 군수 결재가 있습니다.”
봉투 안의 복사본은 누렇게 바랜 원본을 그대로 옮긴 것이었다. 타자기 글씨였다. 행사 순서, 내빈 명단, 그리고 맨 아래 줄. 「학생 동원 13명 — 수문 개방 시연 시 하류 빙판 위 배치(사진 촬영용). 인솔: 덕골국민학교.」 줄 옆에 군수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아버지한테 오늘 저녁에 다시 갔어요. 이거 낸다고 말씀드렸어요.” 마상태가 말했다. “아버지가 모자를 쓰고 그러셨어요. 가라. 니 이름으로 가라.”
“과장님 자리가.”
“압니다.” 마상태가 웃었다. 매끄러운 데가 하나도 없는 웃음이었다. “선생님, 4월 10일 임시회에 이거 제 이름으로 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