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594자)

털모자

학생 귀신을 만난 은퇴 교장 · 하청오

딸을 읍내 터미널까지 데려다주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가서 고속버스로 갈아타는 길이었다⁠. 딸은 터미널 의자에 앉아 나에게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화면에 영어로 된 메일이 떠 있었다⁠.

“⁠엄마 메일함에 이거 와 있었어⁠. 영국 동영상 채널이래⁠. 유령 찾는 채널⁠. 귀신 학교 촬영하고 싶다고⁠, 하룻밤 숙박비를 내겠대⁠.⁠”

“⁠얼마⁠?⁠”

“⁠엄마⁠, 지금 값을 묻는 거야⁠?⁠”

“⁠교장은 견적서부터 봐⁠.⁠”

딸이 웃었다⁠. 웃다가 메일 끝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우리는 늘 존중하는 마음으로 촬영합니다⁠. 고인들에게도요⁠.⁠」 딸이 메일의 마지막 문장을 소리 내어 번역해 주고는 휴대전화를 거두었다⁠.

“⁠엄마⁠, 답장은 내가 할게⁠. 아직 안 된다고⁠.⁠” 딸이 버스표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돌렸다⁠. “⁠엄마 혼자 싸우지 마⁠. 내가 금요일에 또 올게⁠. 팀장님한테는 이번엔 귀신 말고 엄마 무릎이라고 할게⁠.⁠”

“⁠무릎은 멀쩡해⁠.⁠”

“⁠사다리 세 칸에서 엄마 무릎이 뭐라고 했는지 나 다 들었어⁠.⁠”

버스가 출발하고⁠, 딸이 창문 너머로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흔들었다⁠. 이번에는 남편 대신 내가 엄지를 들었다⁠. 딸이 창문에 대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 엄마 그거 하지 마⁠.

*

터미널에서 돌아오는 길에 구판장 셔터가 올라가 있었다⁠. 백춘금은 방송을 하지 않고 다슬기를 고르고 있었다⁠. 빈 껍데기를 골라내는 손이 빨랐다⁠. 내가 들어가자 손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김밥은 먹었소⁠?⁠”

“⁠만덕이가 냄새로 먹었어요⁠.⁠”

백춘금의 손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만덕이는 냄새로도 두 줄은 먹었을 것이여⁠.⁠”

나는 계산대에 기대 서서 둑 위에서 본 것을 말했다⁠. 동백 털모자⁠, 완장⁠, 요양원 사진⁠. 백춘금은 다 듣고 나서 다슬기 소쿠리를 내려놓았다⁠.

“⁠마 씨 아재여⁠. 상태 아버지⁠.⁠” 백춘금이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순천 동백요양원에 있소⁠. 우리 엄니가 거기 있다가 돌아가셨어⁠. 마 씨 아재가 한 방 건너에 있었어⁠. 엄니 문병 가믄 아재가 복도에서 나를 보고 고개를 돌렸어⁠. 이십 년을 그렇게 돌렸어⁠.⁠”

백춘금이 계산대 밑 서랍을 열었다⁠. 주문서 묶음 사이에서 쪽지 하나를 꺼냈다⁠. 순천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이건 뭐예요⁠?⁠”

“⁠해마다 이월에 다슬기 주문이 와⁠. 이름은 안 쓰고 주소만⁠. 순천에서⁠. 열두 해째요⁠. 받는 사람 이름 칸에 묵순이라고만 적혀 있어⁠. 성도 안 쓰고⁠.⁠” 백춘금이 쪽지를 내 쪽으로 밀었다⁠. “⁠만덕이 동생이요⁠. 덕골 다슬기 아니믄 안 먹는다고⁠, 택배 기사한테 한 말을 기사가 나한테 전해 줬어⁠. 나는 한 번도 전화 안 했소⁠. 무슨 낯으로⁠.⁠”

“⁠제가 해도 될까요⁠?⁠”

백춘금은 대답하지 않고 다슬기 소쿠리를 다시 들었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대답이었다⁠.

*

순천 동백요양원은 시내에서 버스로 이십 분을 더 가는 언덕 위에 있었다⁠. 주차장 가장자리에 동백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고⁠, 꽃이 다 지고 잎만 반질거렸다⁠. 버스에서 내리자 주차장에 흰색 승합차가 보였다⁠. 옆구리에 「⁠곡성군청⁠」 글자가 붙어 있었다⁠.

마상태가 승합차 옆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나를 보고 담배를 떨어뜨렸다⁠. 신발로 비벼 끄면서 걸어왔다⁠.

“⁠선생님이 여길 왜 오세요⁠.⁠”

“⁠과장님 아버님을 뵈러요⁠.⁠”

“⁠안 됩니다⁠.⁠” 마상태가 내 앞을 막았다⁠. 조끼를 입지 않은 마상태는 군청 과장보다 쉰여섯 살 아들에 가까워 보였다⁠. “⁠아버지 여든둘이세요⁠. 작년에 뇌경색 오셨고요⁠. 그런 분 앞에서 사십팔 년 전 일을 들이밀면⁠, 선생님은 그게 교육자가 할 일입니까⁠?⁠”

“⁠과장님은 안에 들어가서 여쭤보셨어요⁠?⁠”

마상태의 입이 닫혔다⁠.

“⁠주차장에서 두 시간째 담배 피우고 계셨지요⁠. 발밑에 꽁초가 일곱 개예요⁠.⁠”

마상태가 자기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꽁초가 정말로 일곱 개였다⁠. 나는 세지 않았다⁠. 교장은 세지 않아도 안다⁠.

“⁠저는 들어가지 않을게요⁠. 과장님이 들어가세요⁠. 아버님이 저를 보자고 하시면 그때 부르시고요⁠.⁠”

마상태가 오래 나를 보다가 돌아서서 건물로 들어갔다⁠. 나는 동백나무 그늘의 벤치에 앉았다⁠. 휴대전화를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단톡방에서 남편이 동백꽃 사진을 보냈다⁠. 아파트 화단의 동백이라고 했다⁠. 엄지는 없었다⁠. 나는 처음으로 남편에게 엄지를 보냈다⁠.

사십 분 뒤에 마상태가 현관에서 나를 불렀다⁠. 얼굴이 하얬다⁠.

“⁠아버지가 학교 산 선생을 보자고 하십니다⁠.⁠”

*

방은 이 인실이었다⁠. 창가 침대에 노인이 앉아 있었다⁠. 몸은 작았고 손등에 검버섯이 번져 있었다⁠. 왼쪽 입꼬리가 조금 처져 있었다⁠. 머리맡 옷걸이에 동백 털모자가 걸쳐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노인이 옷걸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마상태가 모자를 내려 노인 손에 쥐여 주었다⁠. 노인은 모자를 두 손으로 받아 머리에 썼다⁠. 귀 덮개를 내리고⁠, 방울을 손으로 한 번 만졌다⁠. 실내는 따뜻했다⁠. 노인은 모자를 쓰고 나서야 나를 보았다⁠.

“⁠학교를 샀소⁠?⁠”

“⁠네⁠.⁠”

“⁠애들이 아직 거기 있소⁠?⁠”

마상태가 숨을 들이켰다⁠. 나는 노인의 눈을 보았다⁠. 흐린 눈이었는데 흔들리지 않았다⁠.

“⁠6학년 교실에 있어요⁠. 열두 명 다요⁠.⁠”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지 않았다⁠. 사십팔 년 동안 그런 대답을 기다린 사람처럼 끄덕였다⁠.

“⁠수리계였소⁠. 둑 수문 맡은 사람⁠. 준공식 날 군수가 그랬어⁠. 도지사가 손 들믄 돌려라⁠. 물 나오는 거 사진에 박혀야 된다⁠. 나는 둑 밑을 봤소⁠. 애들이 얼음 위에 서 있었소⁠. 교장한테 말했어⁠. 저기 애들 있소⁠. 교장이 그랬어⁠. 얼음이 두껍소⁠. 사진 한 장 박으믄 끝이요⁠.⁠” 노인이 모자 덮개를 손으로 눌렀다⁠. “⁠군수가 내 어깨를 쳤어⁠. 마 주사⁠, 오늘 일 잘하믄 정식 공무원 되네⁠. 나는 임시직이었소⁠. 그해 봄에 상태가 태어날 참이었고⁠.⁠”

마상태가 침대 끝을 붙잡았다⁠.

“⁠도지사가 손을 들었어⁠. 나는 돌렸소⁠. 반 바퀴만 돌리고 손을 멈췄어⁠. 반 바퀴믄 물이 조금만 나올 줄 알았소⁠. 반 바퀴로 충분했어⁠.⁠” 노인이 눈을 감았다⁠. “⁠쩡 소리가 났어⁠. 추 선생이 물에 뛰어드는 걸 봤소⁠. 나는 둑 위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어⁠.⁠”

“⁠아버지⁠.⁠” 마상태가 말했다⁠. 목이 쉬어 있었다⁠.

“⁠그해 봄에 정식 공무원 됐다⁠. 너 태어나고 백일 되던 날이었다⁠.⁠” 노인이 눈을 떴다⁠. 아들을 보았다⁠. “⁠그 모자는 니 엄마가 그날 아침에 줬어⁠. 춥다고⁠. 준공식 가는 날⁠.⁠”

방 안이 조용했다⁠. 옆 침대 노인의 산소 기계가 일정한 간격으로 쉭 소리를 냈다⁠. 노인이 나를 다시 보았다⁠.

“⁠선생⁠. 내가 가야 쓰겄소⁠. 그 애들한테⁠.⁠”

“⁠아버지⁠, 못 가요⁠.⁠” 마상태가 바로 말했다⁠. “⁠의사가 외출 안 된대요⁠.⁠”

노인은 아들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모자를 벗어 무릎 위에 올려놓고⁠, 동백 무늬를 손가락으로 하나씩 짚었다⁠. 짚다가 멈춘 자리에서 손가락이 떨렸다⁠.

*

복도에서 마상태가 나를 따라 나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상태가 내 팔을 잡았다⁠. 놓았다가 다시 잡았다⁠.

“⁠선생님⁠, 들으셨지요⁠? 우리 아버지 임시직이었어요⁠. 시키는 대로 한 사람이에요⁠. 반 바퀴만 돌렸어요⁠. 동판에 이름도 없는 사람이에요⁠. 이게 밖으로 나가면 사람들은 군수 이름도 도지사 이름도 기억 못 해요⁠. 털모자 쓴 사람이 돌렸다⁠, 그것만 기억해요⁠. 그 사람 아들이 군청 과장이다⁠, 그것까지 기억하고요⁠.⁠”

“⁠아이들 이름은 사십팔 년 동안 아무도 기억 안 했어요⁠. 철없이 얼음 지치다 죽은 애들⁠. 그것만요⁠.⁠”

“⁠압니다⁠!⁠” 마상태의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간호사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가 들어갔다⁠. 마상태가 목소리를 낮췄다⁠. “⁠압니다⁠, 선생님⁠.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여든둘이고⁠, 사십팔 년 동안 겨울에 저수지 근처도 못 간 사람이에요⁠. 그 사람을 살인자로 죽게 할 수는 없어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마상태는 타지 않았다⁠. 나 혼자 탔다⁠.

*

순천 시내로 나오는 버스 안에서 쪽지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다섯 번 가고 여자 목소리가 받았다⁠. 반찬가게 소음이 뒤에서 들렸다⁠.

“⁠고묵순 씨 되세요⁠?⁠”

“⁠누구세요⁠?⁠”

“⁠덕골초등학교를 산 사람입니다⁠. 임길례라고 합니다⁠.⁠”

전화 너머가 조용해졌다⁠. 반찬가게 소음만 계속됐다⁠. 한참 뒤에 여자가 말했다⁠.

“⁠우리 오빠 학교요⁠?⁠”

“⁠네⁠. 만덕이가 묵순 씨 계란 이야기를 해요⁠. 졸업식 날 반 주겠다고 했는데 못 줬다고요⁠.⁠”

전화기 너머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플라스틱 반찬통 같은 소리였다⁠. 여자는 줍지 않았다⁠. “⁠토요일에 갈게요⁠.⁠” 여자가 말했다⁠. “⁠가게 문 닫고 갈게요⁠.⁠”

*

해 질 녘에 학교로 돌아와 6학년 교실 문을 열었다⁠. 고만덕이 맨 앞 책상까지 뛰어나왔다⁠. 아이들은 내가 순천에 간 것을 알았다⁠. 아침에 터미널로 나서는 나를 창문으로 다 보았다⁠.

“⁠교장 선생님⁠, 묵순이 찾았어요⁠?⁠”

“⁠찾았어⁠. 토요일에 온대⁠.⁠”

고만덕이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뛰어올랐다가 내려오는데 발소리가 나지 않았다⁠. 고만덕은 자기 발을 내려다보고⁠, 다시 뛰었다⁠. 두 번째에는 책상 다리를 차서 덜컥 소리를 냈다⁠. 소리가 나자 만족한 얼굴을 했다⁠.

“⁠묵순이 지금 뭐 해요⁠?⁠”

“⁠반찬가게 해⁠. 순천에서⁠.⁠”

“⁠반찬가게⁠!⁠” 고만덕이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들었냐⁠? 우리 묵순이가 반찬가게 사장이다⁠. 계란말이도 팔겄네⁠.⁠” 고만덕이 다시 나를 보았다⁠. “⁠교장 선생님⁠, 나 세수해야 돼요⁠. 묵순이가 오빠 얼굴 꼬질꼬질하다 하믄 안 돼요⁠.⁠”

“⁠만덕아⁠, 너는 세수 안 해도 돼⁠.⁠”

“⁠해야 돼요⁠. 졸업식 날도 엄마가 세수 두 번 시켰어요⁠.⁠” 고만덕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문질러도 손은 얼굴을 지나갔다⁠. 고만덕은 상관하지 않고 계속 문질렀다⁠. “⁠그리고 교장 선생님⁠, 짜장면이요⁠. 졸업식 끝나면 읍내 가서 짜장면 먹기로 했어요⁠. 추 선생님이 사 준다고 했어요⁠. 나 짜장면 한 번도 못 먹어 봤어요⁠.⁠”

“⁠덕골까지 배달이 올까⁠?⁠”

“⁠배달이 뭐예요⁠?⁠”

아이들이 배달이라는 말을 서로 주고받으며 웃었다⁠. 식당에서 음식을 집까지 갖다준다는 말을 아이들은 믿지 않았다⁠. 이깨순이 “⁠서울 사람들은 독한 게 아니라 게으르네⁠.⁠” 하고 결론을 내렸다⁠.

서봉님만 웃지 않았다⁠. 창가에 서서 어두워지는 운동장을 보다가 나에게 물었다⁠.

“⁠교장 선생님⁠. 털모자 아저씨 만났어요⁠?⁠”

“⁠만났어⁠.⁠”

“⁠울었어요⁠?⁠”

“⁠모자를 쓰고 나서 말씀하셨어⁠. 반 바퀴만 돌렸다고⁠.⁠”

서봉님은 한참 말이 없었다⁠. 은행나무 가지가 저녁 바람에 흔들렸다⁠. 연둣빛 눈이 어제보다 조금 커져 있었다⁠.

“⁠반 바퀴로 충분했어요⁠.⁠” 서봉님이 말했다⁠. 노인과 같은 말이었다⁠. 서봉님은 노인의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

밤 아홉 시에 학교 정문으로 흰 승합차가 들어왔다⁠. 마상태가 내렸다⁠. 정문 돌기둥 앞에 선 채로⁠, 은행나무 아래까지 나간 나에게 서류 두 장을 내밀었다⁠. 하나는 「⁠덕골초등학교 건물 정밀 안전진단 요청서⁠」였고⁠, 하나는 「⁠매매계약 해제 요청 — 4월 10일 군의회 임시회 추가 안건⁠」이었다⁠.

“⁠지붕 수리 끝난 거 압니다⁠. 안전진단 나오면 그래도 위험 판정 나옵니다⁠. 1960년대 시멘트 건물이니까요⁠. 위험 건물은 개인한테 못 팝니다⁠. 체험관은 군이 보강 공사를 해서 엽니다⁠.⁠” 마상태의 목소리는 다시 매끄러웠다⁠. 매끄러움을 되찾으려고 오래 연습한 목소리였다⁠. “⁠임시회 날짜는 그대로입니다⁠. 4월 10일⁠.⁠”

“⁠아버님은 아이들한테 가고 싶다고 하셨어요⁠.⁠”

“⁠아버지는 아무 데도 안 가십니다⁠.⁠” 마상태가 서류를 내 손에 쥐여 주었다⁠. 6학년 교실 창문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창문에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눈이었다⁠. 그러고 나서 나를 보았다⁠.

“⁠선생님⁠. 저는 아버지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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