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50자)

수문

학생 귀신을 만난 은퇴 교장 · 하청오

월요일 아침 딸은 서울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숙직실 문밖에서 들으려고 들은 것은 아니었다⁠. 딸 목소리가 원래 컸다⁠.

“⁠팀장님⁠, 저 연차 이틀만 더 쓸게요⁠. 아뇨⁠, 아픈 건 아니고요⁠. 네⁠? 아⁠, 엄마 일이요⁠. 엄마가 산 학교에 애들이⁠. 네⁠, 애들이요⁠. 아니요⁠, 손주 아니고요⁠.⁠” 딸이 잠깐 말을 멈췄다⁠. “⁠팀장님⁠, 귀신 믿으세요⁠? 아뇨⁠, 그냥 여쭤본 거예요⁠. 네⁠, 수요일에 출근할게요⁠.⁠”

딸이 전화를 끊고 숙직실로 들어왔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팀장님이 귀신 때문에 연차 쓰는 사람은 처음 본대⁠.⁠”

“⁠팀장님이 귀신을 못 봐서 그래⁠.⁠”

“⁠엄마도 처음엔 못 봤잖아⁠.⁠”

“⁠엄마는 처음부터 봤어⁠.⁠”

딸은 휴대전화로 어젯밤의 사진을 다시 열었다⁠. 둑 위 수문 바퀴에 두 손을 얹은 남자⁠. 손가락 두 개로 화면을 벌리자 남자의 모습이 커지면서 흐려졌다⁠. 털모자의 모양만 남았다⁠. 귀를 덮는 덮개가 양옆으로 내려왔고⁠, 정수리에 동그란 방울이 하나 달려 있었다⁠. 모자 둘레로 꽃무늬 띠가 한 줄 돌아갔다⁠. 얼굴은 모자 그림자 속에 묻혀서 코끝만 보였다⁠.

“⁠엄마⁠, 사진은 저수지에 가서 보면 더 잘 보이지 않을까⁠? 각도 맞춰서⁠.⁠”

“⁠아이들도 데려갈 거야⁠.⁠”

딸이 휴대전화를 내렸다⁠. “⁠엄마⁠. 걔들이 거기 가고 싶어 할까⁠?⁠”

*

저수지까지는 신작로를 따라 이 킬로미터였다⁠. 체육 창고의 줄넘기 줄을 다시 꺼냈다⁠. 이번에는 열두 명이 다 줄을 잡았다⁠. 서봉님이 아이들에게 물었고⁠, 아이들이 하나씩 고개를 끄덕였다⁠. 맨 마지막에 하귀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분필 한 토막을 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딸이 줄 맨 끝을 잡겠다고 했다⁠. 아이들을 볼 수는 없었지만⁠, 줄 끝이 땅에 끌리는 것은 볼 수 있었다⁠.

“⁠희아 누나가 꼬리 선생님이네⁠.⁠” 고만덕이 말했다⁠.

“⁠만덕이가 너보고 꼬리 선생님이래⁠.⁠”

“⁠꼬리 선생님⁠.⁠” 딸이 줄 끝을 들어 보였다⁠. “⁠나쁘지 않네⁠. 승진이다⁠.⁠”

정문을 나서려는데 돌기둥 옆에 백춘금이 서 있었다⁠. 손에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은행나무는 보지 않고 신작로만 보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봉지를 딸에게 내밀었다⁠. 나에게가 아니라 딸에게였다⁠.

“⁠김밥이요⁠. 소풍 간담서⁠. 경운기 할배가 아침부터 동네에 다 말하고 다녀서⁠.⁠”

“⁠어머⁠, 감사합니다⁠.⁠” 딸이 봉지를 받았다⁠. 김밥 냄새가 봉지 밖으로 새어 나왔다⁠. 참기름 냄새였다⁠.

“⁠애들이 소풍 가는디 김밥은 있어야제⁠.⁠” 백춘금이 말했다⁠. 말하고 나서 자기가 한 말에 놀란 얼굴을 했다⁠. 아이들이라는 말을 이 마을에서 처음 소리 내어 한 사람처럼⁠.

줄 맨 앞의 서봉님이 백춘금을 보았다⁠. 백춘금은 서봉님이 서 있는 자리를 보지 않았다⁠. 대신 줄넘기 줄이 팽팽하게 들려 있는 높이를 보았다⁠. 열세 살 아이의 손 높이였다⁠.

“⁠춘금아⁠.⁠” 서봉님이 불렀다⁠.

백춘금은 대답하지 않고 돌아서서 걸어갔다⁠. 대여섯 걸음 가다가 멈추고⁠, 등을 보인 채 말했다⁠. “⁠단무지는 빼고 쌌어⁠. 봉님이 단무지 싫어하잖여⁠.⁠”

고만덕이 봉지에 코를 박고 숨을 들이켰다⁠. “⁠교장 선생님⁠, 냄새는 나요⁠. 냄새는 먹어져요⁠.⁠”

신작로 가장자리로 걸었다⁠. 경운기가 한 대 지나가면서 운전하던 할아버지가 우리를 오래 돌아보았다⁠. 예순세 살 여자와 서른네 살 여자가 줄넘기 줄 하나를 앞뒤로 들고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할아버지는 경운기를 길가에 세우고 휴대전화를 꺼냈다⁠. 저녁이면 경로당에 사진이 돌 것이다⁠.

일 킬로미터쯤 걸었을 때 아이들의 말소리가 줄었다⁠. 일 킬로미터 반쯤에서는 말소리가 그쳤다⁠. 신작로가 오르막으로 꺾이고⁠, 오르막 끝에 시멘트 둑이 보였다⁠. 둑은 사진보다 낮았다⁠. 사십팔 년 동안 둑 아래 강바닥에 흙이 쌓여서였다⁠.

둑 밑 강가에서 서봉님이 멈췄다⁠. 줄이 내 손바닥에서 팽팽해졌다⁠.

“⁠교장 선생님⁠. 저는 여기 있을게요⁠.⁠”

“⁠그래⁠.⁠”

나는 줄을 당기지 않았다⁠. 멈춘 아이를 당기면 아이는 멈춘 자리에 박힌다⁠. 서른여덟 해 동안 배운 것 가운데 하나였다⁠. 아이들 열한 명이 서봉님 뒤에서 기다렸다⁠. 아무도 서봉님을 앞질러 가지 않았다⁠. 강물이 봄볕 아래서 얕게 소리를 냈다⁠. 얼음은 한 조각도 없었다⁠.

한참 뒤에 서봉님이 줄을 쥔 손을 고쳐 잡았다⁠. “⁠가요⁠.⁠” 서봉님이 말했다⁠. “⁠반장이 맨 앞이에요⁠.⁠”

*

둑 위에는 사람이 있었다⁠. 흰 승합차가 둑길 끝에 서 있었고⁠, 마상태가 덕산토건 작업복 남자들과 줄자를 잡고 둑길을 재고 있었다⁠. 작업복 남자 하나가 수문 옆 난간에 종이를 붙이고 있었다⁠. 「⁠야간 공포 투어 코스 4번 — 얼음 위의 아이들⁠」

딸이 종이의 글자를 보고 줄 끝을 놓칠 뻔했다⁠.

“⁠엄마⁠.⁠”

“⁠알아⁠.⁠”

마상태가 우리를 발견했다⁠. 줄자를 작업복 남자에게 넘기고 걸어왔다⁠. 걸어오는 동안 웃음을 얼굴에 올렸는데⁠, 웃음이 끝까지 올라오지 못했다⁠.

“⁠선생님⁠, 여기까지 줄넘기 하러 오셨어요⁠?⁠”

“⁠과장님⁠, 4번 코스 이름은 누가 지었어요⁠?⁠”

“⁠가칭입니다⁠.⁠”

“⁠가칭이 많네요⁠.⁠”

마상태가 종이를 흘끗 보았다⁠. “⁠선생님⁠, 사람들은 슬픈 데는 안 옵니다⁠. 무서운 데는 옵니다⁠. 무서운 데 와서 소리 지르고⁠, 웃고⁠, 사진 찍고⁠, 국밥 먹고 갑니다⁠. 저는 덕골에 국밥집이 다시 열리는 걸 보고 싶은 겁니다⁠.⁠”

수문은 둑 가운데에 있었다⁠. 1979년의 쇠 수문 옆에 회색 전동 장치가 새로 붙어 있었고⁠, 옛 손잡이 바퀴는 녹이 슨 채 장식처럼 남아 있었다⁠. 바퀴 옆 시멘트 벽에 동판 하나가 박혀 있었다⁠. 「⁠덕골 저수지 준공 기념⁠. 1979년 2월 15일⁠.⁠」 아래에 도지사와 군수와 덕산토건 사장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동판은 해마다 누가 닦는 것처럼 반짝였다⁠.

딸이 휴대전화를 들고 사진의 각도를 맞추었다⁠. 둑 위 난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자리였다⁠. 화면 속 1979년의 수문과 눈앞의 수문이 겹쳤다⁠. 화면 속 얼음 위의 자리에⁠, 지금은 마른 강바닥과 갈대가 있었다⁠. 서봉님이 난간 앞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이들이 서봉님 옆에 나란히 붙었다⁠.

저수지는 둑 너머로 넓게 펼쳐져 있었다⁠. 봄 물이 산 그림자를 거꾸로 담고 있었다⁠. 고만덕이 난간에 턱을 괴고 말했다⁠. “⁠물 많다⁠.⁠” 도판식이 말했다⁠. “⁠우리 때는 공사 중이라 반밖에 없었어⁠.⁠” 이깨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귀분이 치마 주머니에서 분필 토막을 꺼냈다⁠. 둑길 시멘트 바닥에 쪼그려 앉아⁠, 난간 아래 강바닥의 한 자리를 내려다보며 바닥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동그라미 열세 개를 두 줄로⁠. 그리고 맨 앞 동그라미 하나에만 점을 찍었다⁠.

“⁠과장님⁠, 이 사진 좀 보세요⁠.⁠” 내가 딸의 휴대전화를 마상태에게 내밀었다⁠.

마상태가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준공식 사진이네요⁠. 군청 기록에도 비슷한 게 있을 겁니다⁠.⁠”

“⁠아이들이 서 있는 자리를 보세요⁠. 수문 바로 밑이에요⁠.⁠”

“⁠물이 그렇게 세게 나올 줄 누가 알았겠어요⁠. 겨울이었고⁠, 얼음이 두꺼웠을 거고⁠. 사고였습니다⁠, 선생님⁠. 안타까운 사고⁠.⁠”

서봉님이 마상태를 보았다⁠. 마상태는 서봉님을 보지 못했다⁠. 서봉님이 나를 보았다⁠.

“⁠교장 선생님⁠, 제 말 저 아저씨한테 해 주세요⁠.⁠”

“⁠그래⁠.⁠”

서봉님이 수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반장이 아침 조회에서 출석 보고를 하는 자세였다⁠. 두 손을 치마 옆에 붙이고⁠, 턱을 들었다⁠.

“⁠열 시에 도지사가 테이프를 잘랐어요⁠. 박수 쳤어요⁠. 사진 아저씨가 우리보고 웃으라 했어요⁠. 도지사가 둑 위에서 손을 들었어요⁠. 이렇게요⁠.⁠” 서봉님이 오른손을 머리 위로 들었다⁠. “⁠군수가 우리 교장 선생님을 봤어요⁠. 우리 교장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털모자 아저씨가 바퀴를 돌렸어요⁠. 추 선생님이 강가에서 소리 질렀어요⁠. 아직 애들 안 비켰다고요⁠. 아무도 안 들었어요⁠. 물이 나왔어요⁠. 쩡 소리가 났어요⁠.⁠”

나는 서봉님의 말을 한 문장씩 마상태에게 옮겼다⁠. 내 목소리는 서봉님의 목소리보다 한 박자씩 늦었다⁠. 늦게 오는 목소리가 둑 위에 차례로 쌓였다⁠. 마상태의 얼굴이 처음에는 웃고⁠, 다음에는 굳고⁠, 끝에서는 아무 표정도 남지 않았다⁠.

“⁠선생님⁠.⁠” 마상태가 말했다⁠. “⁠지금 누구 말을 옮기시는 겁니까⁠?⁠”

“⁠반장이요⁠. 서봉님이요⁠. 과장님 바로 옆에 서 있어요⁠.⁠”

마상태가 자기 옆의 빈 난간을 보았다⁠. 바람이 불어 난간의 종이가 펄럭였다⁠. 「⁠얼음 위의 아이들⁠」 마상태가 손을 뻗어 종이를 떼려다가 멈췄다⁠.

*

딸이 화면을 두 손가락으로 벌렸다⁠. 털모자를 쓴 남자가 커졌다⁠. 둑 위의 실제 햇빛이 화면에 비쳐 들어서⁠, 딸이 손바닥으로 그늘을 만들었다⁠. 나는 돋보기를 찾았다⁠. 가슴을 두 번 두드리고 줄을 당겨 코에 걸었다⁠. 털모자 둘레의 꽃무늬 띠가 보였다⁠. 회색 털실 바탕에 붉은 꽃이 한 송이씩 떠 있었다⁠. 꽃잎이 다섯 장⁠, 가운데에 노란 점⁠. 동백이었다⁠. 남자의 왼팔에 완장이 있었다⁠. 완장 글씨는 뭉개져서 「⁠곡성군⁠」 세 글자만 읽혔다⁠.

“⁠과장님⁠, 이 모자⁠.⁠”

마상태는 이미 보고 있었다⁠. 마상태의 눈이 화면에 박혀 있었다⁠. 마상태가 조끼 주머니에서 자기 휴대전화를 꺼냈다⁠. 손가락이 사진첩을 거꾸로 넘겼다⁠. 넘기다가 멈췄다⁠. 화면에 요양원 방 하나가 나왔다⁠. 침대 머리맡에 노인이 앉아 있었고⁠, 노인 뒤 벽의 옷걸이에 털모자 하나가 걸쳐 있었다⁠. 회색 털실 바탕에 붉은 동백이 한 송이씩 떠 있는 모자였다⁠. 정수리에 방울이 하나 달려 있었다⁠.

“⁠우리 엄마가 뜬 모자예요⁠.⁠” 마상태가 말했다⁠. 목소리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아버지 군청 들어가던 해에 떠 줬대요⁠. 아버지가 삼십 년을 썼어요⁠. 퇴직하고도 썼어요⁠. 요양원 갈 때도 저 모자 하나는 꼭 챙겨 가셨어요⁠. 지난달에 가서 찍은 거예요⁠. 아버지 생신이라서⁠.⁠”

서봉님이 마상태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화면 속 노인을 오래 보았다⁠.

“⁠털모자 아저씨⁠, 늙었다⁠.⁠” 서봉님이 말했다⁠. “⁠저 아저씨도 울었어요⁠. 바퀴 돌리고 나서 둑 위에 주저앉아서 울었어요⁠. 내가 물속에서 봤어요⁠.⁠”

나는 서봉님의 마지막 말을 옮기지 않았다⁠. 옮길 수가 없었다⁠. 딸이 내 팔을 붙잡았다⁠.

마상태가 휴대전화를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수문 옆 동판을 보았다⁠. 동판에 새긴 이름들 아래⁠, 기계를 돌린 사람의 이름은 없었다⁠. 마상태가 줄자를 든 작업복 남자들을 돌아보았다⁠.

“⁠오늘 측량은 여기까지 합시다⁠.⁠”

“⁠과장님⁠, 4번 코스는요⁠?⁠”

“⁠여기까지 하자고요⁠!⁠”

작업복 남자들이 흠칫 물러났다⁠. 마상태가 숨을 고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아버지는 겨울에 저수지 근처를 안 갔어요⁠. 낚시도 안 했고⁠, 둑길로 드라이브 가자 해도 안 갔어요⁠.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제가 어릴 때 저수지에서 수영하고 오면 회초리를 들었어요⁠. 그 집 애들처럼 되고 싶냐고⁠.⁠” 마상태가 웃으려다 말았다⁠. “⁠그 집 애들이 누군지 한 번도 안 물어봤어요⁠.⁠” 마상태는 수문 옆 난간에서 「⁠얼음 위의 아이들⁠」 종이를 떼어 냈다⁠. 접고⁠, 또 접고⁠, 손바닥 안에 들어갈 만큼 접었다⁠. 그러고는 나를 보았다⁠. 눈가가 붉었고⁠, 목소리는 아까보다 더 조용했다⁠.

“⁠선생님⁠. 수문 바퀴 돌린 사람⁠, 우리 아버지예요⁠.⁠”

7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수문 · 학생 귀신을 만난 은퇴 교장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