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540자)
사진관
학생 귀신을 만난 은퇴 교장 · 하청오
딸은 6학년 교실 문간에서 신발을 벗으려다 말았다. 교실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는 학교는 딸이 다닌 학교가 아니었다. 딸은 운동화 진흙을 문지방에 대고 털고 들어왔다. 고만덕의 책상 앞까지 걸어와서, 고만덕의 의자를 빼고 앉았다.
“엄마, 여기 앉아도 돼?”
“거기 만덕이 자리야.”
딸이 의자에서 엉덩이를 반쯤 들었다. 고만덕은 딸의 무릎 위에 겹쳐 앉은 채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겹친 자리에서 딸의 청바지 무릎과 고만덕의 검정 학생복 무릎이 서로를 지나가 있었다.
“교장 선생님, 이 누나 엉덩이가 내 자리에 들어와 있어요.”
“희아야, 만덕이가 일어나 달래.”
딸이 벌떡 일어났다. 일어나서 의자를 원래대로 밀어 넣고, 의자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딸은 회사에서 고객사 의자에게도 인사를 하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이 책상을 두드리며 웃었다. 딸 귀에는 책상이 저 혼자 덜컥거리는 소리로 들렸다. 딸이 내 팔을 붙잡았다.
“엄마. 바람이지?”
“창문 다 닫혀 있어.”
“엄마가 나 놀리는 거면, 진짜로 화낼 거야.”
“엄마가 너 놀린 적 있어?”
“초등학교 때 산타 할아버지.”
이깨순이 산타 이야기에 크게 웃었다. 하귀분이 칠판 앞으로 걸어갔다. 몽당분필을 집어 들고 칠판에 선을 긋기 시작했다. 분필이 칠판을 긁는 소리가 교실을 채웠다. 딸의 손이 내 팔을 꽉 쥐었다. 분필은 허공에 떠서 혼자 움직였다. 동그란 얼굴 하나, 단발머리, 큰 안경. 귀걸이 두 개. 하귀분은 그림을 다 그리고 아래에 글씨를 썼다. 「서울 누나」
딸이 칠판 앞으로 걸어갔다. 손끝으로 귀걸이 그림을 만졌다. 분필 가루가 손끝에 묻었다. 딸은 자기 귀를 만졌다. 오늘 아침에 단 은색 귀걸이가 두 개 있었다.
“엄마.” 딸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이 애가 나를 그렸어?”
“귀분이야. 그림을 제일 잘 그려.”
딸은 오래 칠판 앞에 서 있었다. 그러다 휴대전화를 꺼내 그림을 찍었다. 찍고 나서 칠판을 향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의자에게 하는 인사가 아니었다.
“고마워, 귀분아. 근데 나 얼굴 이렇게 안 동그래.”
하귀분이 분필을 들고 얼굴 선을 조금 깎았다. 딸이 웃음을 터뜨렸다. 웃다가 눈가를 손등으로 문질렀다. 교실에 온 뒤 딸이 처음 웃은 웃음이었다.
밤에 숙직실에서 딸이 누운 채 말했다. 천장을 보는 목소리였다.
“엄마. 그래도 나는 계약금 받고 나왔으면 좋겠어. 저 애들 불쌍한 거랑, 엄마 퇴직수당 날아가는 거랑은 다른 문제야. 엄마 무릎도 안 좋잖아.”
“알아.”
“아는데 왜 그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딸은 대답을 기다리다가 먼저 잠들었다. 딸의 숨소리가 열 살 때와 똑같았다.
고백하자면 나는 딸의 열 살을 잘 모른다. 딸이 열 살이던 해에 나는 처음으로 교감이 되었다. 학예회 날에는 우리 학교 학예회가 있었고, 운동회 날에는 우리 학교 운동회가 있었다. 딸의 학교 행사에는 남편이 갔다. 남편은 사진을 찍어 와서 엄지를 들었다. 나는 남의 집 아이들 정수리를 세는 데 서른여덟 해를 썼고, 내 딸의 정수리는 잠든 뒤에야 세었다. 딸이 계약금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열 살에 혼자 학예회 무대에 서 본 아이의 목소리였다.
*
사진 찍는 아저씨. 백춘금이 그렇게 말했다. 웃으라고 해서 웃고 있었다고. 경로당 할머니들에게 물었더니, 덕골에도 한때 사진관이 있었다고 했다. 장터 길가의 「덕골사진관」 주인 영감은 돌아가셨고, 아흔을 앞둔 안주인이 아직 사진관 건물 뒤채에 산다고 했다.
사진관 할머니는 귀가 어두웠고 눈은 밝았다. 내가 인사를 하기도 전에 딸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얼굴이 서울이네. 증명사진 하나 박고 가.”
“할머니, 저 사진 찍으러 온 거 아니에요.”
“사진관에 왔으믄 사진을 박어야제.”
할머니는 앞채 가게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먼지 앉은 진열장에 누렇게 바랜 돌 사진과 결혼사진이 줄지어 있었다. 할머니가 삼각대 위의 커다란 나무 사진기에서 천을 걷었다. 딸이 의자에 앉혀졌다. 할머니가 천을 뒤집어쓰고 사진기 뒤로 들어갔다.
“턱 당기고. 더 당기고. 웃지 마. 증명사진은 웃는 거 아니여.”
“필름은 있어요, 할머니?”
“없제.” 할머니가 천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필름이 없어도 사진은 박는 것이여. 영감이 그랬어. 사람 얼굴을 한 번 똑바로 보는 게 사진이라고.”
딸은 턱을 당긴 채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떨었다. 할머니가 셔터를 눌렀다. 찰칵 소리가 났다. 아무것도 찍히지 않은 사진이 딸의 얼굴을 한 번 똑바로 보았다.
나는 그제야 1979년 2월 15일을 물었다. 할머니는 사진기 천을 개키며 한참 말이 없었다.
“군청에서 불렀제. 준공식 사진 박으라고. 영감이 사진 박고 와서 사흘을 안 먹었어. 나흘째 되는 날 군청 사람들이 와서 필름을 다 가져갔어. 현상한 것도, 안 한 것도.” 할머니가 개킨 천을 진열장 위에 놓았다. “한 통만 빼고.”
*
다락은 뒤채 부엌 천장에 있었다. 사다리를 놓자 딸이 먼저 올라갔다. 내 무릎은 사다리 세 칸에서 항의를 했다. 다락 안은 낮은 천장 아래 상자와 보따리로 가득했다. 딸이 휴대전화 손전등을 켰다. 할머니가 아래에서 소리쳤다. “분유 깡통이여! 노란 거!”
깡통을 찾기 전에 딸이 사진 액자 하나를 들어 올렸다. 유리에 금이 간 단체 사진이었다. 학교 정문 돌기둥 앞에 아이들 열세 명이 두 줄로 서 있었고, 줄 끝에 스물 몇 살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머리를 짧게 깎고, 양복 윗도리 단추를 끝까지 채운 남자였다. 액자 아래 흰 글씨가 박혀 있었다. 「1978. 가을. 덕골국민학교 6학년」 앞줄 가운데 양 갈래 머리의 여자아이가 턱을 들고 있었다. 바로 옆의 단발머리 여자아이는 웃다가 눈을 감아 버렸다. 백춘금이었다.
“엄마, 이 사람 이장 할아버지야?”
“이장님 스물네 살 때.”
딸이 액자를 휴대전화 불빛에 기울였다. 젊은 추동섭의 한 손이 맨 앞 여자아이의 어깨에 얹혀 있었다. 줄을 맞추려고 얹은 손이었다. 교사들은 사진 찍을 때 반장 어깨에 손을 얹는다. 나도 그랬다.
노란 분유 깡통은 다락 맨 안쪽, 낡은 이불 보따리 밑에 있었다. 뚜껑이 녹슬어 붙어 있었다. 딸이 손톱으로 뚜껑 가장자리를 긁었다. 마당에서 차 소리가 났다. 문이 열리고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할머님, 계세요? 군청 관광과입니다.”
다락 틈으로 내려다보니 마당에 흰 승합차와 검은 승용차가 서 있었다. 마상태가 서류철을 들고 서 있었고, 옆에 덕산토건 작업복을 입은 남자 둘이 있었다. 할머니가 부엌문 앞을 막았다.
“무슨 일이여?”
“할머님, 이 건물 지난주에 덕산토건이 사들인 것 아시지요? 체험관 코스에 추억의 사진관을 넣으려고요. 오늘 안 쓰는 짐을 좀 정리하려고 왔습니다. 다락은 위험해서 저희가 치워 드리겠습니다.”
“건물은 팔았어도 짐은 안 팔았어.”
“할머님, 그래서 짐 정리를 도와드리는 겁니다.”
나는 사다리를 내려갔다. 내려가는 일은 오르는 일보다 두 배 더뎠다. 무릎이 한 칸마다 항의를 했다. 마상태가 부엌문 앞에서 나를 보고 웃음을 고쳐 썼다.
“선생님이 여기 계셨네요.”
“과장님이 다락을 아시네요.”
“군청 사람은 군 안의 다락을 다 압니다.” 마상태가 다락 쪽으로 눈을 올렸다. “선생님, 위에 따님 계시지요? 내려오시라고 하세요. 거기 있는 물건은 1979년 군청 행사 기록입니다. 군 기록물이에요. 선생님이 가져가시면 곤란합니다.”
“사진관 영감님이 찍은 필름이에요.”
“군청이 돈 주고 찍게 한 필름이지요.”
딸이 다락 입구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손에 노란 깡통이 들려 있었다. 마상태가 딸을 올려다보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바꾸었다.
“따님, 반가워요. 서울에서 일하시지요? 제가 따님께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회장님이 어머님 계약금에 이자를 쳐 드리고, 그동안 들어간 수리비도 다 돌려드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지붕 고친 거, 보일러 바꾼 거 전부요. 어머님 퇴직수당 한 푼도 안 날아갑니다. 그 깡통만 저희한테 주시면요.”
딸이 깡통을 내려다보았다. 깡통을 쥔 손가락이 하얬다. 지난밤 딸이 천장을 보며 한 말이 다락 입구에 같이 걸쳐 있었다. 엄마 퇴직수당 날아가는 거랑은 다른 문제야.
“따님이 어머님 제일 걱정하시잖아요.” 마상태가 말했다.
딸이 사다리를 내려왔다. 깡통을 품에 안고 한 칸씩 내려왔다. 바닥에 내려서서 마상태 앞으로 걸어갔다. 마상태가 손을 내밀었다. 딸은 마상태를 지나쳐 사진관 할머니 앞으로 갔다.
“할머니, 이거 할머니 거예요?”
“우리 영감 거여.”
“저희가 가져가도 돼요?”
할머니가 딸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아까 필름 없는 사진기로 본 얼굴이었다. “가져가. 영감이 사십팔 년 숨긴 것이여. 숨긴 것은 꺼내라고 숨긴 것이여.”
딸이 마상태를 돌아보았다. “과장님. 저희 엄마 걱정은 제가 해요. 저희 엄마 퇴직수당도 제가 걱정할게요.” 딸이 깡통을 가방에 넣고 지퍼를 닫았다. “이건 할머니가 저희 줬어요.”
마상태가 손을 거두었다. 작업복 남자 하나가 앞으로 나서려 하자 마상태가 팔을 들어 막았다. 마상태는 할머니를 보았고, 할머니는 부엌문 앞에서 비키지 않았다.
“선생님.” 마상태가 나를 보았다. “선생님이 지금 무슨 판을 여시는지 아십니까? 그 깡통 열리면 덕골이 체험관을 못 가집니다. 체험관을 못 가지면, 덕골은 아무것도 못 가집니다.”
“아이들은 사십팔 년 동안 아무것도 못 가졌어요.”
*
해 질 녘에 6학년 교실 창가로 갔다. 딸이 분유 깡통 뚜껑을 칼끝으로 비틀어 열었다. 안에는 기름종이에 싼 필름 한 통이 들어 있었다. 필름을 천천히 풀어 창유리에 대자 서쪽 햇빛이 필름을 통과했다. 검고 흰 것이 뒤바뀐 작은 네모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딸이 휴대전화에서 필름 스캔 앱을 열었다. 화면에 대고 필름을 비추자 뒤집힌 색이 바로잡혔다. 나는 돋보기를 찾아 가슴을 두드리고, 코에 걸고, 딸의 화면 위로 몸을 숙였다. 아이들이 내 등 뒤로 몰려왔다. 열두 명의 숨이 없는 숨이 목덜미 뒤에 모였다.
첫 장은 둑 위의 천막이었다. 두 번째 장은 테이프를 자르는 가위였다. 세 번째 장에서 딸이 손가락을 멈췄다.
사진은 둑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각도였다. 둑의 시멘트 벽이 사진 가운데를 비스듬히 가르고, 벽 한가운데에 쇠로 된 수문이 있었다. 수문 바로 밑으로 강이 하얗게 얼어 있었다. 얼음 위에 아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열세 명. 몸에 맞지 않는 교복. 손마다 작은 깃발. 아이들은 둑 위를 올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사진 찍는 아저씨가 웃으라고 했으니까.
맨 앞에 양 갈래 머리의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맨 앞이 나예요.” 서봉님이 말했다.
“물 나오는 데 바로 밑이에요.” 하귀분이 화면 속 수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분필을 쥐던 손가락이었다. “사진 아저씨가 거기 서라 했어요. 물 나오는 거랑 같이 찍혀야 한다고요. 물이 처음 나오는 거, 도지사가 보는 거, 우리가 깃발 흔드는 거, 한 장에 다 나와야 한다고요.”
딸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진 속 수문 옆에 사람이 하나 있었다. 둑 위 손잡이 바퀴에 두 손을 얹고, 귀를 덮는 털모자를 쓴 남자였다. 남자의 얼굴은 모자 그림자에 반쯤 묻혀 있었다.
딸이 나를 보았다. 딸의 목소리가 떨렸다.
“엄마. 이 사람들, 알고 세웠어. 물이 나올 자리인 줄 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