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355자)

얼음판

학생 귀신을 만난 은퇴 교장 · 하청오

사흘째 아침⁠, 정문 앞에 승용차가 일곱 대 서 있었다⁠. 어제까지 하루에 마을버스 네 번과 이장 트럭 한 번이 지나가던 신작로였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높이 들고 6학년 교실 창문을 찍었다⁠. 셀카봉 끝에 휴대전화를 매단 청년 하나가 화면에 대고 속삭였다⁠. “⁠여러분⁠, 지금 제가 그 학교 앞에 와 있습니다⁠. 120만 조회 수의 그 창문입니다⁠.⁠”

120만이라는 숫자를 들은 것은 아침 일곱 시였다⁠. 딸이 단톡방에 링크를 올렸다⁠. 군청 공식 채널에 올라온 영상이었다⁠. 「⁠드론으로 본 곡성의 봄 — 덕골초등학교⁠」 운동장과 은행나무를 훑고 지나가던 화면이 6학년 교실 창문 앞에서 멈췄다⁠. 유리 너머로 어룽한 형체 몇이 책상에 앉아 있었다⁠. 영상 아래 댓글이 영어와 일본어와 한국어로 섞여 쌓여 있었다⁠. 「⁠저 창문 왼쪽 두 번째 봐⁠」 「⁠Is that a kid⁠?⁠」 「⁠곡성은 원래 그런 데야⁠」

「⁠희아⁠: 엄마 저거 뭐야⁠. 엄마 학교야⁠? 엄마도 봤어⁠?⁠」

「⁠남편⁠: (⁠엄지척 이모티콘⁠)⁠」

「⁠희아⁠: 아빠 이건 엄지 아니야⁠.⁠」

나는 단톡방을 닫고 정문으로 나갔다⁠. 서른여덟 해 교문 지도는 이럴 때 쓰라고 몸에 들어 있었다⁠.

“⁠여기는 사유지입니다⁠. 한 줄로 서 주세요⁠.⁠”

구경꾼들이 얼떨결에 한 줄로 늘어났다⁠. 맨 앞의 셀카봉 청년이 물었다⁠. “⁠줄 서면 들어가요⁠?⁠”

“⁠줄 서면 나가는 길이 잘 보여요⁠.⁠”

뒤에서 웃음이 났다⁠. 웃음 사이로 흰색 승합차가 들어왔다⁠. 마상태가 내리자마자 나에게 허리를 반쯤 숙였다⁠. 웃음을 참는 얼굴이었다⁠.

“⁠선생님⁠, 보셨지요⁠? 하룻밤에 120만입니다⁠. 군수님이 아침에 매입 신청서에 결재하셨습니다⁠. 국비 공모도 이 영상 하나로 서류가 반은 끝났어요⁠.⁠”

“⁠제 학교 교실을 제 허락 없이 찍으셨어요⁠.⁠”

“⁠군청 드론이 군청 하늘에서 찍었습니다⁠. 교실은 안 찍었고요⁠, 창문을 찍었습니다⁠. 창문은 밖을 향해 있지요⁠.⁠”

마상태의 말은 매끄러웠다⁠. 매끄러운 말은 대개 연습한 말이다⁠. 나는 돋보기를 찾다가 가슴에서 줄을 쥐었다⁠.

“⁠과장님은 창문 안에서 뭘 보셨어요⁠?⁠”

마상태의 눈이 6학년 교실 창문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먼지요⁠. 선생님이 먼지라고 하셨잖아요⁠.⁠” 마상태가 웃었다⁠. “⁠먼지 덕분에 덕골에 차가 일곱 대 왔습니다⁠. 저 일곱 대가 구판장에서 음료수를 하나씩 사 가면⁠, 춘금 씨 가게는 오늘 장사를 한 겁니다⁠.⁠”

“⁠그럼 과장님⁠, 창문 안으로 한번 들어와 보세요⁠. 먼지를 가까이서 보시게⁠.⁠”

마상태는 잠깐 망설이다가 따라왔다⁠. 복도는 아침 햇빛으로 환했다⁠. 6학년 교실 문을 열자 아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고만덕이 “⁠저 아저씨 누구여⁠?⁠” 하고 물었고⁠, 이깨순이 “⁠조끼에 글씨 써 붙인 거 보니 높은 사람이다⁠.⁠” 하고 대답했다⁠. 마상태는 교실 한가운데까지 걸어 들어가 천장을 올려다보고⁠, 창틀을 손가락으로 쓸어 보고⁠, 책상 하나를 톡톡 두드렸다⁠. 고만덕이 앉아 있는 책상이었다⁠.

“⁠좋네요⁠. 나무 책상이 그대로 있어요⁠. 이 분위기를 살려야 합니다⁠.⁠”

도판식이 살금살금 마상태 뒤로 가서 목덜미에 대고 후 하고 바람을 불었다⁠. 마상태가 어깨를 움츠리고 목을 문질렀다⁠.

“⁠창문 틈 바람이 세네요⁠. 체험관 할 때 이것도 살려야겠습니다⁠.⁠”

아이들이 책상을 두드리며 웃었다⁠. 마상태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조끼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교실 사진을 찍고⁠, 찍은 사진을 확대해 들여다보다가⁠, 나에게 화면을 보여 주었다⁠. 빈 책상 열두 개가 햇빛 속에 줄지어 있었다⁠.

“⁠보세요⁠, 아무것도 없잖아요⁠. 선생님⁠, 저도 이 동네에서 났습니다⁠. 우리 딸도 서울로 갔고⁠, 제 또래 동창은 곡성에 셋 남았어요⁠. 셋이서 동창회를 합니다⁠. 노래방 가면 마이크가 남아요⁠.⁠” 마상태가 교실 문을 나서며 말했다⁠. “⁠빈 교실에 사람 오게 하는 게 제 일입니다⁠. 귀신이든 먼지든요⁠.⁠”

교실 문이 닫히자 서봉님이 말했다⁠. “⁠저 아저씨⁠, 둑에서 본 아저씨랑 똑같이 생겼어요⁠. 털모자 쓴 아저씨요⁠.⁠”

“⁠누구⁠?⁠”

서봉님은 대답하지 않고 창밖을 보았다⁠. 나는 서봉님의 말을 잊지 않으려고 손바닥에 볼펜으로 「⁠마⁠」라고 한 글자 썼다⁠.

*

구판장 앞에는 정말로 승용차 손님이 둘 서 있었다⁠. 백춘금은 거치대에 꽂은 휴대전화 앞에서 다슬기 봉지를 흔들고 있었다⁠. “⁠오늘 귀신 학교 보러 오신 분들⁠! 다슬기 수제비 드시고 가쇼⁠. 귀신은 공짜고 수제비는 팔천 원⁠!⁠” 방송 화면에 하트가 몇 개 떠올랐다⁠.

손님이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나는 계산대 위에 두루마리 하나를 놓았다⁠. 고무줄 대신 연보라 머리끈으로 묶어 온 졸업장이었다⁠. 백춘금이 방송 화면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이게 뭐요⁠.⁠”

“⁠1979년 2월 15일 졸업장이에요⁠. 이름이 백춘금으로 되어 있어요⁠.⁠”

“⁠나는 그 학교 안 다녔소⁠.⁠”

“⁠금고에 열세 장이 있었어요⁠. 열두 장은 6학년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 이름이에요⁠.⁠”

백춘금의 손이 휴대전화 위에서 떨렸다⁠. 손등에 다슬기 껍데기에 베인 자국이 여러 줄 있었다⁠. 백춘금은 두루마리에 손을 대지 않았다⁠. 대신 계산대 밑에서 다슬기 한 봉지를 꺼내 내 앞으로 밀었다⁠.

“⁠이거 사 가시오⁠. 사천 원⁠.⁠”

“⁠춘금 씨⁠.⁠”

“⁠다슬기 안 살 거면 나가시오⁠. 방송 중이요⁠.⁠”

나는 사천 원을 내고 다슬기를 들었다⁠. 두루마리는 계산대에 둔 채 나왔다⁠. 문을 나서자마자 뒤에서 두루마리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지 않았다⁠. 백춘금은 두루마리를 주워 드는 손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할 사람이었다⁠.

다슬기 봉지를 들고 신작로를 걸어 학교로 돌아왔다⁠. 오르막에서 왼쪽 무릎이 시큰거렸다⁠. 수원에서는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내 무릎 대신 일했다⁠. 덕골에서는 내 무릎이 일해야 했다⁠. 단톡방에 다슬기 사진을 올렸다⁠.

「⁠나⁠: 저녁은 다슬기국⁠.⁠」

「⁠남편⁠: (⁠엄지척 이모티콘⁠) 다슬기는 간에 좋음⁠」

「⁠희아⁠: 아빠가 문장을 썼다⁠. 엄마 거기 진짜 무슨 일 있는 거지⁠?⁠」

딸은 눈치가 빨랐다⁠. 어릴 때부터 내가 교장실에서 늦게 들어온 날이면 현관에서 내 신발 소리만 듣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았다⁠. 나는 답을 쓰다가 지웠다⁠.

*

오후에 6학년 교실에서 처음으로 수업 비슷한 것을 했다⁠. 칠판에 「⁠오늘 아침에 먹은 것⁠」이라고 쓰고 아이들에게 차례로 말해 보라고 했다⁠. 아이들은 아침을 먹지 않았다⁠. 아이들의 아침은 사십팔 년째 1979년 2월 15일 아침이었다⁠.

“⁠보리밥에 김치요⁠.⁠”

“⁠고구마요⁠. 쪄서 식은 거요⁠.⁠”

고만덕 차례에서 고만덕이 손가락을 꼽았다⁠. “⁠보리밥 두 그릇⁠, 김치⁠, 무시래기 된장국⁠, 계란 하나요⁠. 졸업식이라고 엄마가 계란 줬어요⁠. 동생이 울었어요⁠. 동생 묵순이는 계란 못 받아서요⁠.⁠”

“⁠계란을 먹고 어디 갔니⁠?⁠”

“⁠학교 왔지요⁠. 추 선생님이 운동장에 줄 세웠어요⁠. 읍내 중학교에서 빌려 온 교복을 한 벌씩 줬어요⁠. 그래서 다 안 맞아요⁠.⁠” 고만덕이 자기 소매를 들어 보였다⁠. 소매 끝이 손가락 마디를 덮었다⁠. “⁠트럭이 왔어요⁠. 군청 트럭이요⁠. 짐칸에 다 타라고 했어요⁠. 깃발 한 개씩 줬어요⁠. 태극기요⁠.⁠”

“⁠졸업식은⁠?⁠”

“⁠오후 두 시였어요⁠. 오전엔 저수지에 갔어요⁠. 둑 다 지었다고 큰 잔치 한다고요⁠. 도지사가 온다고요⁠. 우리가 깃발 흔들어야 사진이 잘 나온다고요⁠.⁠”

교실이 조용했다⁠. 하귀분이 칠판 앞에서 분필을 쥔 채 멈췄다⁠. 이깨순이 고개를 숙였다⁠. 서봉님만 정면을 보고 있었다⁠.

“⁠저수지에 가서 둑 밑으로 내려갔어요⁠. 강이 얼어 있었어요⁠. 추 선생님이 여기 서라고⁠.⁠”

“⁠고만덕⁠.⁠”

서봉님의 목소리였다⁠. 크지 않았다⁠. 고만덕의 입이 그대로 닫혔다⁠. 반장이 이름을 부르면 말을 멈추는 교실이었다⁠. 사십팔 년 동안 그래 온 교실이었다⁠.

나는 연혁지를 교탁에 펴 놓고 있었다⁠. 「⁠졸업식 거행⁠. 오전 열 시⁠.⁠」 아이들은 오전 열 시에 트럭 짐칸에서 깃발을 들고 있었다⁠. 「⁠졸업식 후 저수지 얼음판에서 사고⁠.⁠」 아이들은 졸업식에 가 보지도 못했다⁠. 마을이 사십팔 년 동안 해 온 이야기가 연혁지 한 장 위에서 거꾸로 뒤집혔다⁠. 졸업식 끝나고 철없는 애들이 지들끼리 얼음 지치러 갔다가⁠. 경로당 할머니들이 어제 떡을 씹으며 그렇게 말했다⁠.

“⁠봉님아⁠.⁠” 나는 반장을 불렀다⁠. “⁠만덕이가 하는 말을 왜 막니⁠?⁠”

“⁠반장 명령이에요⁠.⁠” 서봉님이 대답했다⁠. “⁠우리 반 일은 우리 반이 알아요⁠. 교장 선생님은 졸업장만 주시면 돼요⁠. 그런데 졸업장은 안 받을 거예요⁠.⁠”

열세 살의 논리였다⁠. 열세 살의 논리는 대개 어른의 논리보다 단단하다⁠.

*

해가 산등성이로 기울 무렵 정문으로 이장 트럭이 들어왔다⁠. 구경꾼 차들은 다 빠진 뒤였다⁠. 추동섭은 정문 돌기둥 앞에서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려 기둥 밖에 멈춰 서 있었다⁠. 돌기둥 안으로는 한 발도 들이지 않았다⁠. 손에 서류 봉투가 들려 있었다⁠.

나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정문으로 갔다⁠. 은행나무 밑을 지날 때 등 뒤에서 아이들이 창가로 몰려드는 소리가 났다⁠.

“⁠마을 동의서요⁠. 마을 사람 서른한 명 도장 다 받았소⁠. 선생 도장만 없소⁠.⁠”

“⁠제 도장이 왜 들어가요⁠? 저는 체험관에 반대인데요⁠.⁠”

“⁠선생이 이 마을에 살라면⁠, 마을 사람이요⁠.⁠” 추동섭이 봉투를 내밀었다⁠. “⁠마을이 하자는 대로 해야 사요⁠.⁠”

“⁠이장님⁠. 오늘 만덕이가 그러더군요⁠. 1979년 2월 15일 아침에 추 선생님이 운동장에 줄을 세웠다고요⁠. 군청 트럭에 태웠다고요⁠.⁠”

추동섭의 봉투가 허공에서 멈췄다⁠. “⁠만덕이가⁠.⁠”

“⁠교실에 있어요⁠. 열두 명 다요⁠. 이장님도 교단에 서 보셨으니까 보실 거예요⁠.⁠”

“⁠헛소리 마시오⁠.⁠”

“⁠그럼 왜 사십팔 년 동안 정문 안으로 안 들어오세요⁠?⁠”

추동섭이 입을 열었을 때⁠, 운동장 건너 6학년 교실 창문에서 목소리가 났다⁠. 아이 목소리였다⁠. 바람이 없는 저녁이라 목소리는 곧장 정문까지 건너왔다⁠.

“⁠추 선생님⁠!⁠”

추동섭의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창문 가운데에 서봉님이 서 있었다⁠. 양 갈래 머리 끝의 빨간 고무줄이 마지막 햇빛에 붉게 빛났다⁠. 추동섭의 손에서 봉투가 떨어졌다⁠. 무릎이 한 번 꺾였다가 다시 버텼다⁠. 노인은 창문을 보았고⁠, 창문의 아이는 노인을 보았다⁠. 나는 두 사람 사이에서 숨을 참았다⁠.

“⁠선생님이 줄 세웠잖아요⁠.⁠” 서봉님이 외쳤다⁠. “⁠맨 앞에 나 세웠잖아요⁠. 반장이니까 맨 앞이라고⁠.⁠”

추동섭은 대답하지 않았다⁠. 흙바닥에 떨어진 모자를 주워 들고 먼지를 털었다⁠. 털고 또 털었다⁠. 모자에서 더 털 먼지가 없어진 뒤에야 나를 보았다⁠. 눈가가 붉었고⁠, 목소리는 이상할 만큼 평평했다⁠.

“⁠연혁지 봤다 했소⁠.⁠”

“⁠네⁠.⁠”

“⁠학교 책임 없음⁠. 그 다섯 글자⁠, 내가 썼소⁠. 교장 선생이 쓰라 했고⁠, 내 손으로 썼소⁠.⁠” 추동섭이 모자를 눌러썼다⁠. “⁠선생도 교장 했으면 알 거 아니요⁠. 학교가 애들 죽은 일로 기억되믄 그 학교는 끝이요⁠. 차라리 귀신집이 낫소⁠. 귀신집은 사람들이 웃고 가제⁠.⁠”

추동섭은 떨어진 봉투를 줍지 않고 트럭에 올랐다⁠. 트럭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신작로로 나갔다⁠. 봉투는 흙바닥에 그대로 두었다⁠. 고개를 들자 6학년 교실 창문에 열두 개의 얼굴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서봉님만 창문에서 등을 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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