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70자)

금고

학생 귀신을 만난 은퇴 교장 · 하청오

아침에 눈을 뜨자 숙직실 창문에 얼굴 셋이 붙어 있었다⁠. 까까머리 둘과 양 갈래 머리 하나였다⁠. 유리 너머로 아이들의 이마가 햇빛에 비쳐 보였고⁠, 이마 너머로 복도 벽의 게시판이 비쳐 보였다⁠. 에어 매트리스 위에서 몸을 일으키자 셋이 한꺼번에 고개를 숙였다⁠.

“⁠교장 선생님 일어나셨다⁠!⁠”

“⁠코 고셨어요⁠. 우리 할아버지보다 크게⁠.⁠”

“⁠고만덕⁠, 너는 남의 코 고는 소리를 왜 세냐⁠.⁠”

어젯밤 나는 6학년 교실에서 나와 숙직실 문을 걸어 잠갔다⁠. 귀신이 문고리를 가릴 리 없다는 것은 알았지만⁠, 서른여덟 해 동안 몸에 붙은 순서였다⁠. 문단속을 하고⁠, 가스 밸브를 보고⁠, 창문을 확인했다⁠. 그러고 나서 한 시간쯤 천장을 보고 누워 있다가 잠이 들었다⁠. 무섭지 않았다고 쓰면 거짓말이다⁠. 무서움보다 먼저 온 것은 오래된 피로였다⁠. 열두 명 앞에 서면 내 몸은 아직도 교장이었다⁠.

세수를 하고 복도로 나가자 아이들이 나를 따라 줄줄이 운동장으로 나왔다⁠. 도판식이라는 명찰을 단 아이가 앞장서서 뛰다가⁠, 은행나무 밑에서 발을 멈췄다⁠. 뛰던 몸이 유리벽에 부딪힌 것처럼 제자리에서 흔들렸다⁠.

“⁠여기까지예요⁠.⁠” 서봉님이 말했다⁠. “⁠은행나무 너머로는 못 가요⁠. 학교 안에서는 어디든 가는데⁠, 나무를 지나면 발이 안 떨어져요⁠.⁠”

“⁠언제부터⁠?⁠”

“⁠졸업식 날부터요⁠.⁠”

서봉님은 더 말하지 않았다⁠. 나는 은행나무 밑동을 손바닥으로 짚었다⁠. 껍질이 거칠고 따뜻했다⁠. 아이들은 나무 그림자 안쪽에 모여 서서 정문 밖 신작로를 내다보았다⁠. 신작로 위로 마을버스가 지나갔다⁠. 아이들 열두 명의 눈이 버스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저 버스는 읍내 가요⁠?⁠”

“⁠읍내 가지⁠.⁠”

“⁠차장 누나는 어디 탔어요⁠?⁠”

“⁠요즘은 차장이 없어⁠. 기사님이 혼자 다 해⁠.⁠”

“⁠혼자 돈도 받고 문도 닫고 운전도 해요⁠?⁠” 이깨순이 입을 벌렸다⁠. “⁠서울 사람들은 독하네⁠.⁠”

아이들에게서 하나씩 들었다⁠. 아이들은 해가 떠 있을 때도 교실에 있고⁠, 아무나 아이들을 보지는 못했다⁠. 학교가 문을 닫기 전까지 이십 년 동안 소사 아저씨가 복도를 쓸었지만⁠, 아저씨는 한 번도 아이들을 보지 못했다⁠. 6학년 교실은 1979년 봄부터 못질을 해서 창고로 썼다⁠. 새로 온 선생님들이 가끔 문틈으로 들여다보았다⁠. 선생님들은 보았다⁠. 보고는 다들 이듬해 봄에 다른 학교로 떠났다⁠.

“⁠선생님들은 다 봤어요⁠. 교단에 서 본 사람은 다 봐요⁠.⁠” 서봉님이 말했다⁠. “⁠교장 선생님이 처음으로 문 열고 들어왔어요⁠.⁠”

*

교장실 금고는 내 키만 했다⁠. 문짝 가운데에 숫자 다이얼이 붙어 있었고⁠, 다이얼 숫자는 손때에 닳아 반쯤 지워져 있었다⁠. 읍내 열쇠집에 전화하자 주인이 출장비부터 불렀다⁠. 산골이라 왕복 기름값이 붙는다고 했다⁠. 전화를 끊는데 등 뒤에서 도판식이 헛기침을 했다⁠.

“⁠교장 선생님⁠, 그거 우리가 알아요⁠.⁠”

“⁠금고 번호를⁠?⁠”

“⁠판식이가 교장실 창문에 매달려서 훔쳐봤어요⁠.⁠” 고만덕이 일렀다⁠. “⁠숙제 검사 도장 꺼내는 거 볼라고요⁠. 도장 훔쳐 갖고 지 숙제에 꽝꽝 찍을라고⁠.⁠”

“⁠고자질하지 마라⁠, 만덕아⁠.⁠” 도판식이 귀까지 빨개졌다⁠. “⁠오른쪽으로 세 바퀴 돌려서 삼⁠, 왼쪽으로 두 바퀴 돌려서 일⁠,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돌려서 오요⁠.⁠”

“⁠삼⁠, 일⁠, 오⁠.⁠”

“⁠교장 선생님 생일이었어요⁠. 삼월 십오일⁠.⁠”

돋보기를 찾느라 가슴을 두 번 두드리고⁠, 코에 걸고⁠, 다이얼을 돌렸다⁠. 손가락 끝에 톱니가 하나씩 걸리는 감촉이 왔다⁠. 마지막 숫자에서 안쪽 빗장이 뚝 하고 빠졌다⁠. 철문이 무거운 숨을 내쉬듯 열렸다⁠. 아이들이 교장실 문간에 몰려서 환호했다⁠. 도판식이 제일 크게 소리를 질렀고⁠, 서봉님이 도판식의 뒤통수를 한 대 쳤다⁠. 손은 머리를 지나가 버렸는데⁠, 도판식은 아프다는 시늉을 성실하게 했다⁠.

금고 안은 세 칸이었다⁠. 맨 위 칸에는 나무 상자 하나가 있었다⁠. 뚜껑을 열자 붉은 인주가 굳은 학교 직인이 비단 천에 싸여 있었다⁠. 가운데 칸에는 두꺼운 책 한 권이 있었다⁠. 표지에 「⁠덕골국민학교 연혁지⁠」라고 붓글씨가 적혀 있었다⁠. 맨 아래 칸에는 종이 두루마리가 고무줄에 묶여 있었다⁠. 고무줄은 손을 대자마자 삭아서 끊어졌다⁠.

졸업장이었다⁠. 두루마리 하나를 펴자 누런 상장 용지 위에 먹글씨가 나타났다⁠. 「⁠졸업장⁠. 서봉님⁠. 위 사람은 본교 소정의 전 과정을 마쳤으므로 이 증서를 줌⁠. 1979년 2월 15일⁠. 덕골국민학교장⁠.⁠」 교장 이름 아래에 직인이 찍혀 있었다⁠. 문간의 아이들에게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고개를 들자 서봉님이 문간에서 한 발 물러서 있었다⁠.

나는 두루마리를 하나씩 폈다⁠. 고만덕⁠, 도판식⁠, 이깨순⁠, 하귀분⁠, 쌍둥이 형제의 것 두 장⁠. 아이들 명찰의 이름이 하나씩 나왔다⁠. 열두 장을 펴고 났는데 손에 한 장이 더 남아 있었다⁠. 열세 장이었다⁠. 마지막 두루마리에는 「⁠백춘금⁠」이라고 적혀 있었다⁠. 교실에서 들은 이름 가운데 백춘금은 없었다⁠.

연혁지를 펼쳤다⁠. 1979년 2월 15일 칸에 단정한 펜글씨가 있었다⁠. 「⁠제33회 졸업식 거행⁠. 오전 열 시⁠. 졸업생 13명⁠.⁠」 바로 아래 칸은 사흘 뒤 날짜였다⁠. 「⁠졸업생 일부⁠, 졸업식 후 저수지 얼음판에서 사고⁠. 학교 책임 없음⁠.⁠」 마지막 다섯 글자는 다른 펜으로⁠, 꾹꾹 눌러 쓴 글씨였다⁠.

돋보기를 벗고 다시 썼다⁠. 졸업식을 했다면 졸업장은 아이들 손에 있어야 했다⁠. 열세 장이 전부 금고 안에 있었다⁠. 어제 이깨순은 졸업식이 오후 두 시라고 했다⁠. 연혁지는 오전 열 시라고 했다⁠.

다른 펜으로 꾹꾹 눌러 쓴 다섯 글자를 오래 보았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런 글씨를 안다⁠. 쓰는 사람이 종이에 대고 자기를 설득하는 글씨다⁠. 2019년 가을⁠, 수원의 우리 학교 4학년 아이 하나가 비 오는 날 체험학습에서 미끄러져 다리를 다쳤다⁠. 교육청에 올릴 보고서 끝에 담임이 「⁠안전 수칙 안내 완료⁠」라는 문장을 넣었다⁠. 출발을 밀어붙인 사람은 나였고⁠, 비 소식에 미루자던 담임의 말을 자른 사람도 나였다⁠. 나는 「⁠안전 수칙 안내 완료⁠」를 지우라고 하지 않았다⁠. 담임은 감봉을 받았고 이듬해 학교를 떠났다⁠. 나는 교장으로 정년을 채웠다⁠.

금고 문을 닫지 않고 연혁지를 품에 안았다⁠. 책이 생각보다 무거웠다⁠.

*

오후에 경로당에서 설명회가 열린다는 문자가 왔다⁠. 「⁠덕골 주민 여러분께 — 귀신 학교 체험관 설명회⁠. 떡과 음료 제공⁠. 곡성군청 관광과⁠.⁠」 발신자는 마상태였다⁠. 같은 문자가 마을 사람 모두에게 갔고⁠, 경로당 마루는 할머니들로 가득 찼다⁠. 떡과 음료의 힘이었다⁠.

마상태는 벽에 빔프로젝터를 쏘았다⁠. 화면에는 외국인 여행객들이 손전등을 들고 폐교 복도를 걷는 영상이 나왔다⁠. 영어 자막이 지나갔다⁠. 「⁠한국의 폐교는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장소⁠」 할머니 한 분이 돋보기를 쓰고 자막을 읽다가 옆 사람에게 물었다⁠. “⁠저 코쟁이들이 우리 학교에 온다고⁠?⁠”

“⁠오시면 하룻밤에 민박비가 오만 원입니다⁠, 어머님⁠.⁠”

“⁠오만 원이믄 귀신 나와도 재워 주제⁠.⁠”

웃음이 터졌다⁠. 경로당 텔레비전에서는 소리를 줄인 뉴스가 흘러갔다⁠. 신입생이 한 명도 없는 초등학교가 올해 또 늘었다는 자막이었다⁠. 할머니들은 아무도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다⁠.

마루 맨 앞자리에 노인 하나가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 어제 정문 앞에서 모자챙을 내린 트럭의 노인이었다⁠. 마상태가 노인을 소개했다⁠. “⁠덕골 추동섭 이장님께서 마을을 대표해 체험관에 찬성해 주셨습니다⁠.⁠” 박수가 나왔다⁠. 추동섭은 박수 사이로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나는 손을 들었다⁠. 서른여덟 해 동안 학부모 총회에서 손을 든 사람들 얼굴을 보았는데⁠, 손을 드는 자리에 앉아 본 적은 많지 않았다⁠.

“⁠임길례입니다⁠. 학교를 산 사람입니다⁠. 이장님께 하나 여쭤도 될까요⁠?⁠”

마루가 조용해졌다⁠. 추동섭이 팔짱을 풀지 않고 나를 보았다⁠.

“⁠오늘 교장실에서 학교 연혁지를 봤습니다⁠. 1978학년도 6학년 담임 칸에 추동섭 선생님 이름이 있더군요⁠. 이장님 맞으시지요⁠?⁠”

할머니 몇이 떡을 씹다가 멈췄다⁠. 마상태가 리모컨을 든 채 이장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추동섭이 천천히 일어났다⁠. 키가 컸고⁠, 일흔이 넘었는데도 허리가 꼿꼿했다⁠. 교단에 오래 서 본 사람의 허리였다⁠.

“⁠가르친 건 맞소⁠. 그래서 하는 말이요⁠.⁠” 곡성 말이 낮게 깔렸다⁠. “⁠그 학교는 헐든지 귀신집을 하든지⁠, 둘 중 하나요⁠. 산 사람 쉼터는 안 되요⁠. 우리 마을은 과장님 말에 따르기로 했소⁠.⁠”

“⁠졸업장은 열세 장이 금고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연혁지에는 오전 열 시에 졸업식을 했다고 적혀 있고요⁠. 졸업식을 했다면 졸업장은 왜 금고에 있었을까요⁠?⁠”

“⁠교장 선생이 안 나눠 줬겄제⁠.⁠”

“⁠사흘 뒤에 다른 펜으로 학교 책임이 없다고 쓴 분은 누굴까요⁠?⁠”

추동섭의 턱 근육이 한 번 움직였다⁠. 대답 대신 모자를 집어 들었다⁠. “⁠나는 이장이지 연혁지 쓰는 사람 아니요⁠. 과장님⁠, 나머지는 알아서 하시오⁠.⁠” 추동섭이 마루를 내려가 신발을 꿰었다⁠. 마상태가 서둘러 리모컨을 눌렀고⁠, 화면에 다음 영상이 떴다⁠. 「⁠공포 미로 — 1979년의 교실⁠」

휴대전화가 주머니에서 떨었다⁠. 딸이 영상 통화를 걸어왔다⁠. 경로당 밖으로 나가 받자 화면 가득 딸의 미간이 나왔다⁠.

“⁠엄마⁠, 귀신 학교라며⁠? 회사 사람이 기사 링크를 보냈어⁠. 우리 엄마가 귀신 학교 땅 주인이래⁠.⁠”

“⁠귀신 학교 아니고 덕골초등학교야⁠.⁠”

“⁠엄마 뒤에 할머니들이 왜 다 엄마를 봐⁠?⁠”

돌아보니 경로당 창문마다 할머니들 얼굴이 붙어 있었다⁠. 서울 딸과 통화하는 새 주인을 구경하는 얼굴들이었다⁠. 나는 손을 흔들었다⁠. 할머니들도 손을 흔들었다⁠. 딸이 화면 속에서 한숨을 쉬었다⁠.

“⁠엄마⁠, 퇴직수당 다 넣은 거 알지⁠? 계약금 돌려준다는 말 나오면 그냥 받고 와⁠.⁠”

“⁠희아야⁠, 엄마 지금 설명회 중이야⁠.⁠”

“⁠엄마가 설명회를 들어⁠? 엄마가 하는 게 아니고⁠?⁠”

전화를 끊고 마루로 돌아왔다⁠. 마루 끝에서 할머니 한 분이 일어나 소리쳤다⁠. “⁠춘금아⁠! 다슬기 무침 남은 거 좀 가져와라⁠!⁠”

부엌에서 대답이 나왔다⁠. “⁠갑니다아⁠!⁠” 어제 구판장에서 다슬기 봉지를 흔들던 여자가 쟁반을 들고 나왔다⁠. 내 얼굴을 보자 쟁반 위의 접시가 한 번 달그락 흔들렸다⁠.

*

해 질 녘에 6학년 교실로 돌아갔다⁠. 아이들은 각자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하귀분이 칠판 앞에서 몽당분필로 은행나무를 그리고 있었다⁠. 분필 가루가 아주 조금씩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열세 번째 두루마리를 교탁 위에 폈다⁠. 돋보기를 쓰지 않아도 아이들은 먹글씨를 읽을 수 있었다⁠. 서봉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찰 아래 블라우스 단추를 손가락으로 쥐었다 놓았다⁠.

“⁠백춘금이 누구니⁠?⁠”

“⁠우리 반이요⁠. 열세 번째요⁠.⁠” 서봉님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반장 목소리에서 벗어났다⁠. “⁠교장 선생님⁠. 춘금이는 살았어요⁠?⁠”

열두 명이 한꺼번에 나를 보았다⁠. 창밖에서 마지막 햇빛이 은행나무 가지 끝에서 미끄러져 내려갔다⁠. 나는 경로당 부엌에서 쟁반을 든 채 접시를 흔들던 손을 떠올렸다⁠. 다슬기를 잡은 사람이 자기라고 큰 소리로 말하던 목소리와⁠, 학교 이야기에 휴대전화 화면을 손바닥으로 덮던 손을⁠.

“⁠살았어⁠. 마을 어귀에서 가게를 해⁠.⁠”

서봉님이 의자에 도로 앉았다⁠. 앉으면서 두 손으로 책상 모서리를 붙잡았다⁠. 손가락 너머로 나뭇결이 보였다⁠.

“⁠그럼 졸업장은 춘금이가 먼저 받아야 돼요⁠. 춘금이가 안 받으면⁠, 나도 안 받아요⁠.⁠”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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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산책2026.11.01· 2화

    창문에 얼굴 셋이 붙어 있는데 이마 너머로 게시판이 비친다는 문장에서 귀신인 걸 알았어요. 무서운데 귀여워요.

    • 하청오작가2026.11.01

      아이들은 아직 자기가 비친다는 걸 몰라요. 교장 선생님이 코 고는 걸 먼저 알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