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469자)

차렷, 경례

학생 귀신을 만난 은퇴 교장 · 하청오

삼월 이일 아침 여덟 시 사십 분⁠, 나는 덕골초등학교 정문 앞에 서 있었다⁠. 서른여덟 해 동안 개학 날 아침이면 이 시각에 교문 옆에 서서 아이들 정수리를 셌으니⁠, 몸이 시계보다 먼저 시각을 알았다⁠. 녹슨 철문은 쇠사슬로 두 번 감겨 있었다⁠. 교육지원청에서 받은 열쇠는 다섯 개였고⁠, 자물쇠에 맞는 열쇠는 늘 그렇듯 맨 마지막 것이었다⁠.

운동장에는 봄 햇빛이 고르게 깔려 있었다⁠. 흙 위로 냉이가 듬성듬성 올라왔고⁠, 운동장 가운데 은행나무는 아직 잎 하나 없이 가지만 하늘로 뻗고 있었다⁠. 단층 교사는 여섯 칸 교실이 한 줄로 이어진 시멘트 건물이었다⁠. 창틀은 나무였고 유리는 반쯤 남아 있었다⁠. 1999년에 문을 닫은 학교였다⁠. 섬진강 상류 산골 마을 덕골에 아이가 더 태어나지 않아서였다⁠.

목에 건 줄을 더듬어 돋보기를 찾았다⁠. 금테 돋보기는 은줄 끝에 매달려 가슴께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퇴임식 날 교감이 선물한 줄인데⁠, 줄을 단 뒤로 돋보기를 잃어버린 적은 없고 찾아 헤맨 적은 하루에도 열 번이었다⁠. 돋보기를 코에 걸고 계약서 사본을 다시 읽었다⁠. 「⁠매수인 임길례⁠. 매매 대금 중 계약금 납부 완료⁠. 잔금 기한 2027년 4월 30일⁠.⁠」 연보라 카디건 주머니에 사본을 접어 넣었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가족 단톡방이었다⁠.

「⁠희아⁠: 엄마 도착했어⁠? 사진 보내 봐⁠. 진짜 귀신 나오게 생겼으면 바로 계약 물러⁠.⁠」

「⁠남편⁠: (⁠엄지척 이모티콘⁠)⁠」

남편은 무슨 말에든 엄지를 들었다⁠. 내가 폐교를 사겠다고 했을 때도⁠, 딸이 엄마 정신 차리라고 했을 때도 엄지였다⁠. 수원 아파트에서 파크골프 채를 닦으며 보냈을 엄지였다⁠. 운동장 사진을 한 장 찍어 올렸다⁠. 딸이 바로 답했다⁠.

「⁠희아⁠: 엄마⁠. 거기 사람이 안 살아⁠.⁠」

「⁠나⁠: 이제 산다⁠.⁠」

교무실 열쇠를 찾는 사이⁠, 정문 밖에서 경적이 두 번 울렸다⁠. 흰색 승합차 옆구리에 「⁠곡성군청⁠」 글자가 붙어 있었다⁠. 차에서 내린 남자는 군청 마크가 박힌 등산 조끼를 입고⁠, 한 손에 태블릿⁠, 한 손에 드론 조종기를 들고 있었다⁠. 쉰 중반쯤의 얼굴에 웃음이 먼저 와 있었다⁠.

“⁠임길례 교장 선생님 맞으시죠⁠? 군청 관광과장 마상태입니다⁠. 환영 현수막을 걸어 드리려고 왔습니다⁠.⁠”

젊은 직원 둘이 정문 돌기둥 사이에 현수막을 펼쳤다⁠. 「⁠오싹한 곡성⁠, 머무는 곡성 — 귀신 학교 체험관(⁠가칭⁠) 부지⁠」 나는 돋보기를 벗어 다시 줄 끝에 늘어뜨렸다⁠.

“⁠환영이라면서 부지라고 쓰셨네요⁠.⁠”

“⁠가칭입니다⁠, 가칭⁠.⁠” 마상태가 태블릿을 내 눈앞에 들었다⁠. “⁠선생님⁠, 이것 좀 보세요⁠. 이 학교 6학년 교실 창문에 밤마다 뭐가 비친다는 소문이 마을에 쫙 퍼져 있습니다⁠. 작년에 지나가던 화물차 기사가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왔는데⁠, 조회 수가 이렇게⁠.⁠”

화면 속 사진은 흐렸다⁠. 창문 유리에 어룽어룽한 얼룩 몇 개가 비쳐 있었다⁠. 내 눈에는 먼지였다⁠.

“⁠먼지네요⁠.⁠”

“⁠먼지가 관광 자원입니다⁠.⁠” 마상태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은 일본⁠, 대만⁠, 유럽에서도 한국 폐교 탐방 영상을 찾아봅니다⁠. 폐교에 귀신 이야기가 붙으면 버스가 옵니다⁠. 버스가 오면 식당이 열리고⁠, 식당이 열리면 젊은 사람이 하나라도 남습니다⁠. 우리 군은 정부가 인구 감소 지역으로 찍어 놓은 데예요⁠. 지난해에만 면사무소 두 곳에서 출생 신고가 한 건도 없었습니다⁠.⁠”

“⁠저는 마을 쉼터를 하려고 샀습니다⁠. 할머니들 한글 교실⁠, 손주들 오면 숙제 봐 주는 방⁠, 비 오는 날 화투 치는 방⁠.⁠”

“⁠화투 치는 방이 체험관 안에 들어가면 되죠⁠.⁠” 마상태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겼다⁠. 설계도 그림이었다⁠. 교실 여섯 칸 가운데 6학년 교실 자리에 빨간 글씨가 박혀 있었다⁠. 「⁠공포 미로 — 1979년의 교실⁠」

“⁠1979년이요⁠?⁠”

마상태의 웃음이 반 박자 늦게 돌아왔다⁠. “⁠옛날 교실 분위기를 낸다는 뜻입니다⁠. 선생님⁠, 계약서 특약 보셨지요⁠? 잔금 전에 군이 공익사업으로 매입을 신청하고 군의회가 승인하면 계약이 풀립니다⁠. 계약금은 돌려드리고요⁠. 저는 싸우러 온 사람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체험관 운영에 함께해 주시면⁠, 매점 하나는 선생님 몫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교장한테 매점을 주시겠다고요⁠.⁠”

“⁠교장 선생님 매점이면 애들이 줄을 잘 서겠지요⁠.⁠”

웃음이 터질 뻔했다⁠. 웃음을 삼키고 정문 쪽으로 걸어가 현수막 끈을 풀었다⁠. 직원 둘이 서로 얼굴을 보았다⁠. 마상태가 따라왔다⁠.

“⁠선생님⁠, 군청 재산을 함부로 만지시면⁠.⁠”

“⁠현수막은 군청 재산이고⁠, 돌기둥은 제 재산입니다⁠. 잔금 치를 때까지는 반쯤 제 재산이고요⁠. 반쪽 돌기둥에 반쪽 현수막을 다시 거시려면⁠, 매점 말고 다른 걸 들고 오세요⁠.⁠”

마상태가 드론 조종기를 고쳐 쥐었다⁠. 조끼 주머니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덕골초등학교 폐교 재산 매입 신청서(⁠안⁠)⁠」 봉투 위에 볼펜으로 날짜가 적혀 있었다⁠. 4월 10일⁠, 군의회 임시회⁠.

“⁠한 달 남았습니다⁠. 그 안에 마음 바뀌시면 연락 주세요⁠. 아⁠, 선생님⁠.⁠” 승합차 문을 열던 마상태가 돌아보았다⁠. “⁠6학년 교실은 해 지기 전에 나오세요⁠. 마을 어르신들이 그러십니다⁠.⁠”

*

교무실 바닥은 쥐똥과 낙엽이 반반이었다⁠. 빗자루를 찾아 들고 오후 내내 쓸었다⁠. 교장실 벽에는 역대 교장 사진이 액자째 남아 있었고⁠, 1979년 칸의 액자만 유리가 깨져 있었다⁠. 교장실 구석에는 내 키만 한 회색 철제 금고가 있었다⁠. 다섯 개 열쇠 가운데 어느 것도 맞지 않았다⁠.

점심은 마을 어귀 구판장에서 사 온 컵라면이었다⁠. 구판장 주인은 예순쯤 된 여자였는데⁠, 휴대전화를 거치대에 꽂아 놓고 다슬기 봉지를 흔들며 방송을 하고 있었다⁠. “⁠섬진강 다슬기 오늘 아침 거⁠, 잡은 사람이 나여⁠, 나⁠!⁠” 컵라면 값을 받는 동안에도 방송은 끊기지 않았다⁠. 덕골초등학교를 샀다고 하자 주인이 휴대전화 화면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그 학교를 왜 사요⁠?⁠”

“⁠쉼터 하려고요⁠.⁠”

주인은 거스름돈을 세 번 다시 세더니⁠, 화면에서 손을 떼고 다시 다슬기 봉지를 흔들었다⁠. 내가 문을 나설 때까지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1톤 트럭 한 대가 정문 앞에서 속도를 줄였다⁠. 짐칸 옆판에 흰 페인트로 「⁠덕골 이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운전석의 노인은 일흔은 넘어 보였고⁠, 챙이 낡은 모자를 눌러쓴 채 6학년 교실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손을 들어 인사하자 노인은 모자챙을 더 내렸다⁠. 트럭은 흙먼지를 한 줄 남기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정문 돌기둥 아래에는 비닐에 싼 사탕 봉지 하나가 빛이 바랜 채 놓여 있었다⁠. 봉지 안의 눈깔사탕은 서로 엉겨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단톡방에 사탕 봉지 사진을 올렸다⁠. 딸이 먼저 답했다⁠.

「⁠희아⁠: 엄마 그거 먹지 마⁠. 그리고 그거 왜 찍었어⁠? 무서워⁠.⁠」

「⁠남편⁠: (⁠엄지척 이모티콘⁠)⁠」

「⁠희아⁠: 아빠 제발 읽고 눌러⁠.⁠」

해가 서쪽 산등성이로 기울 무렵⁠, 복도 끝 6학년 교실 앞에 이르렀다⁠. 문 위의 교실 팻말은 반쯤 떨어져 「⁠6-1⁠」만 남아 있었다⁠. 미닫이문 손잡이에 손을 올리자 손바닥에 먼지 대신 차가운 쇠가 닿았다⁠. 다른 교실 손잡이는 다 먼지투성이였다⁠. 이 손잡이만 누가 날마다 쥐었다 놓은 것처럼 반들거렸다⁠.

문을 밀었다⁠. 늦은 햇빛이 큰 나무 창틀을 넘어 교실 안으로 비스듬히 쏟아졌다⁠. 먼지가 빛 속에서 천천히 돌았다⁠. 나무 책상이 두 줄로 놓여 있었고⁠, 책상마다 아이가 하나씩 앉아 있었다⁠.

열두 명이었다⁠. 남자아이들은 검정 학생복에 까까머리였고⁠, 여자아이들은 흰 칼라 블라우스 위에 곤색 치마를 입었다⁠. 옷이 몸에 하나도 맞지 않았다⁠. 소매가 손등을 덮은 아이도 있었고⁠, 단추가 터질 듯한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의 몸 너머로 창틀의 나뭇결이 비쳐 보였다⁠. 햇빛이 아이들을 지나가면서 조금 옅어졌다⁠.

나는 돋보기를 찾았다⁠. 가슴께에서 줄 끝을 더듬다가⁠, 돋보기가 이미 코에 걸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돋보기를 벗었다가 다시 썼다⁠. 아이들은 그대로였다⁠.

맨 앞줄 가운데 앉은 여자아이가 일어났다⁠. 양 갈래로 땋은 머리 끝에 빨간 고무줄을 묶었고⁠, 블라우스 가슴에 「⁠6-1 서봉님⁠」 명찰을 달았다⁠. 서봉님이 교실을 한번 둘러보고 배에 힘을 주었다⁠.

“⁠차렷⁠!⁠”

열한 명이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소리는 났는데 먼지는 일지 않았다⁠.

“⁠교장 선생님께⁠, 경례⁠!⁠”

“⁠안녕하십니까⁠!⁠”

열두 개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교실을 울렸다⁠. 손바닥이 땀으로 젖었다⁠. 서른여덟 해 동안 수천 번 받은 인사였다⁠. 몸은 머리보다 빨랐다⁠. 나는 허리를 반쯤 숙여 답례를 하고⁠, 교탁 앞으로 걸어가 서 있었다⁠. 개학 날 아침처럼⁠.

“⁠그래⁠, 반가워요⁠. 다들 앉아요⁠.⁠”

아이들이 앉았다⁠. 뒷줄의 까까머리 남자아이 하나가 옆 아이에게 속삭였다⁠. “⁠봐라⁠, 교장 선생님 맞당께⁠. 안경을 목에 걸고 댕기잖여⁠.⁠” 명찰에 「⁠고만덕⁠」이라고 적혀 있었다⁠. 볼이 사과처럼 빨갰다⁠.

“⁠새 교장 선생님은 여자네⁠.⁠” 창가 줄의 여자아이가 말했다⁠. 「⁠이깨순⁠」

“⁠여자 교장도 있다냐⁠?⁠”

“⁠있응께 서 있겄제⁠.⁠”

나는 교탁을 손바닥으로 두 번 두드렸다⁠. 버릇이었다⁠. 아이들이 입을 다물었다⁠. 버릇은 사십팔 년을 건너서도 통했다⁠.

“⁠여러분 이름은 명찰로 읽었어요⁠. 선생님 이름은 임길례예요⁠. 오늘부터 이 학교 주인이에요⁠.⁠”

“⁠주인은 교장 선생님이 아니라 학생이라고 교장 선생님이 그랬는디요⁠.⁠” 고만덕이 손을 들고 말했다⁠.

“⁠어느 교장 선생님이⁠?⁠”

“⁠우리 교장 선생님이요⁠. 조회 때마다요⁠. 말씀이 길었어요⁠. 한 시간⁠.⁠”

“⁠한 시간은 아니었다⁠.⁠” 서봉님이 앞을 본 채 말했다⁠. “⁠오십 분⁠.⁠”

아이들이 킥킥 웃었다⁠. 웃음소리가 창틀에 부딪혀 돌아왔다⁠. 나는 교탁 위에 놓인 출석부를 보았다⁠. 표지가 누렇게 바랬고⁠, 「⁠1978학년도 6학년 1반⁠」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었다⁠. 손을 뻗었다가 거두었다⁠. 아이들 이름은 아이들 입으로 듣고 싶었다⁠.

“⁠오늘 몇 월 며칠인지 아는 사람⁠?⁠”

“⁠이월 십오일이요⁠!⁠” 열두 명이 한꺼번에 대답했다⁠.

“⁠졸업식 날이요⁠.⁠” 이깨순이 덧붙였다⁠. “⁠오후 두 시⁠.⁠”

창밖의 해가 산등성이에 얹혀 있었다⁠. 운동장의 은행나무 그림자가 교실 안까지 길게 들어왔다⁠. 나는 계약서 사본이 든 카디건 주머니를 손으로 눌렀다⁠. 지금은 2027년 3월 2일 오후 다섯 시 사십 분이었다⁠. 저 아이들의 달력에서는 아직 1979년 2월 15일이었다⁠.

서봉님이 다시 일어났다⁠. 반장의 얼굴이었다⁠. 할 말을 미리 여러 번 연습한 얼굴이었다⁠.

“⁠교장 선생님⁠, 하나만 여쭤도 돼요⁠?⁠”

“⁠그래요⁠.⁠”

“⁠졸업장 주러 오신 거면 도로 가셔요⁠.⁠”

교실이 조용해졌다⁠. 고만덕이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서봉님의 등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서봉님의 두 손이 치마 옆에서 주먹을 쥐고 있었다⁠. 주먹 너머로 책상 모서리의 나뭇결이 보였다⁠.

나는 교탁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교장이 교탁에서 손을 떼면 아이들은 말이 끝난 줄 안다⁠.

“⁠선생님은 아직 졸업장이 어디 있는지도 몰라요⁠. 그래도 하나는 알아요⁠. 졸업장 안 받겠다는 학생이 먼저 일어나서 인사부터 하는 학교는 처음 와 봐요⁠.⁠”

서봉님의 턱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 창밖에서 승합차 소리가 다시 났다⁠. 정문 너머에서 드론이 날아올라 운동장 위를 맴돌았다⁠. 렌즈가 6학년 교실 창문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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