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5,364자)
교단
학생 귀신을 만난 은퇴 교장 · 하청오
추동섭은 복도 끝까지 걸어와 6학년 교실 문 앞에서 멈췄다. 군청 자물쇠에 열쇠를 꽂았다. 손이 떨려서 열쇠가 구멍을 두 번 비켜 갔다. 세 번째에 들어갔다. 철컥 소리가 났다. 열흘 전에 자기 손으로 채운 자물쇠를 자기 손으로 풀었다. 쇠고리에서 자물쇠를 빼내 양복 주머니에 넣고, 미닫이문 손잡이를 쥐었다. 날마다 누가 쥐었다 놓은 것처럼 반들거리는 손잡이였다.
문이 열렸다.
교실 안에 아침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와 있었다. 큰 나무 창틀이 바닥에 긴 그림자를 깔았다. 아이들 열한 명이 각자 자리에 앉아 있었다. 고만덕의 자리만 비어 있었고, 책상 위에 나무젓가락 한 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맨 앞줄 가운데에서 서봉님이 일어났다. 반장의 얼굴이었다. 할 말을 사십팔 년 동안 연습한 얼굴이었다.
“차렷!”
열 명이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추 선생님께, 경례!”
“안녕하십니까!”
추동섭이 문간에서 허리를 숙였다. 답례가 아니었다. 허리를 숙인 채 오래 일어나지 못했다. 복도에 모인 가족들이 숨을 죽였다. 아이들을 볼 수 있는 사람도, 볼 수 없는 사람도 숨을 죽였다.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늙은 담임이 빈 교실에 대고 허리를 숙이는 모습이었다. 빈 교실에 대고 숙인 허리만으로 충분했다.
추동섭이 허리를 펴고 교단으로 걸어갔다. 교탁 앞에 서서 교탁에 두 손을 얹었다. 손바닥이 교탁의 나뭇결을 쓸었다. 추동섭이 교실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을 하나씩 짚어 가는 눈이었다.
“출석 부르겄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추동섭이 목을 가다듬고 다시 했다.
“서봉님.”
“예.”
“도판식.”
“예!”
이름이 하나씩 불렸다. 이깨순, 하귀분, 쌍둥이 형, 쌍둥이 동생. 아이들이 하나씩 대답했다. 복도의 가족들은 아이들 대답을 듣지 못했다. 이장이 이름을 부르고 잠깐 멈추는 사이를 들었다. 멈출 때마다 가족 하나가 숨을 들이켰다. 고만덕의 이름에서 추동섭이 멈췄다. 빈자리의 나무젓가락을 보았다.
“고만덕.”
“졸업했어요.” 서봉님이 대답했다. “2주 전에요. 계란 반 주고요.”
추동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이름을 불렀다.
“백춘금.”
복도에서 백춘금이 대답했다. “예.”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은 예순한 살이 문간에 서서 열세 살처럼 대답했다.
*
추동섭이 교탁에서 손을 떼지 않고 말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었고, 복도의 가족들에게 하는 말이었고, 딸이 들고 있는 휴대전화와 영국 사람들의 생방송 카메라에 들어가는 말이었다.
“1979년 2월 15일 아침 여덟 시에 내가 너희를 운동장에 줄 세웠다. 군청에서 공문이 왔다. 저수지 준공식에 6학년을 데려오라고. 읍내 중학교에서 교복을 빌렸다. 너희 몸에 하나도 안 맞았다. 군청 트럭에 태웠다. 둑 밑으로 내려가라는 말은 교장 선생이 했고, 수문 밑 얼음 위에 서라는 자리는 사진 아저씨가 정했다. 너희를 거기 세운 손은 내 손이다. 봉님이를 맨 앞에 세운 것도 내 손이다.”
복도의 누군가가 울음을 삼켰다.
“물이 나오기 전에 내가 소리 질렀다. 아직 애들 안 비켰다고. 아무도 안 들었다. 쩡 소리가 났다. 내가 물에 들어가서 손을 뻗었다. 춘금이 손이 닿았다. 봉님이 손은 한 뼘 모자랐다.” 추동섭의 손이 교탁 위에서 주먹을 쥐었다. “사흘 뒤에 학교 연혁지에 내가 썼다. 졸업식 오전 열 시 거행. 졸업식 후 얼음판 사고. 학교 책임 없음. 너희들이 지들끼리 얼음 지치러 갔다고 마을 사람들 앞에서 말한 것도 나다. 열흘 전에 군의회에서 또 그렇게 말했다.”
“알아요.” 서봉님이 말했다. “다 봤어요. 창문으로.”
“그랬겄제.” 추동섭이 서봉님을 보았다. “봉님아, 니가 반장이라 맨 앞이었다. 반장 시킨 것도 나다.”
“선생님이 시켜서 한 거 아니에요. 내가 손 들었어요.” 서봉님의 턱이 올라갔다. “반장은 내가 하고 싶어서 했어요.”
복도 뒤쪽에서 지팡이 짚는 소리가 났다. 경로당에서 똥광을 내려놓던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가족들 사이를 헤치고 교실 문간까지 와서, 문틀을 붙잡았다.
“이장 혼자 그런 거 아니여.” 할머니가 교실 안을 향해 말했다. 할머니 눈에는 빈 교실이었다. “나도 도장 찍었어. 봉투 받고. 애들이 지들끼리 갔다는 종이에. 우리 집 전깃불 그해 겨울에 들어왔어.”
할머니 뒤에서 다른 할머니가 말했다. “나도 찍었어.” 또 한 분이 말했다. “우리 영감이 찍고, 나는 옆에 있었어.” 일곱 명이 하나씩 말했다. 말하는 사이마다 가족들이 할머니들을 보았다. 사십팔 년 전 이웃이던 얼굴들이었다. 아무도 할머니들에게 소리치지 않았다. 고묵순이 할머니의 지팡이 짚은 손을 잡았다.
*
백춘금이 교실로 들어왔다. 교단 앞까지 와서 추동섭 옆에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가족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둑 위에서 물 내려오는 소리가 먼저 났어요. 사진 아저씨가 웃으라 해서 우리는 웃고 있었어요. 쩡 하고 얼음이 기울었어요. 봉님이가 내 등을 두 손으로 밀었어요. 나는 추 선생 손에 닿았어요.” 백춘금이 숨을 골랐다. “사십팔 년 동안 아무한테도 안 했던 말이요. 오늘 처음 해요.”
서봉님이 자리에서 백춘금을 올려다보았다. 백춘금이 서봉님을 내려다보았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복도 끝에서 마상태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휴대전화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었다. 화면에 요양원 방이 나와 있었다. 침대 머리맡에 노인이 앉아 있었다. 동백 털모자를 쓰고, 귀 덮개를 내리고 있었다. 의사가 외출을 막아서, 마상태가 영상 통화를 걸었다고 했다.
“아버지, 교실이에요.” 마상태가 화면을 교실 안으로 돌렸다.
화면 속 노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화면에는 빈 교실이 보였을 것이다. 노인은 빈 교실을 오래 보았다. 그러다 모자 덮개를 손으로 눌렀다.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가 작아서 마상태가 음량을 끝까지 올렸다.
“미안하다. 반 바퀴만 돌렸는디, 반 바퀴도 돌리지 말았어야 했다.”
교실이 조용했다. 서봉님이 마상태의 휴대전화 앞으로 걸어갔다.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노인은 서봉님을 보지 못했다. 서봉님은 노인을 보았다.
“털모자 아저씨. 울지 마요.” 서봉님이 말했다. “아저씨는 그날도 울었잖아요. 이제 그만 울어도 돼요.”
마상태가 서봉님의 말을 화면에 대고 한 마디씩 옮겼다. 군청 과장이 하던 매끄러운 말투가 아니었다. 아버지에게 받아쓰기를 불러 주는 어린 아들의 말투였다. 화면 속 노인이 모자를 벗어 무릎에 놓았다. 동백 무늬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복도에서 구두 소리가 났다. 회장이 교실 문간에 나타났다. 생방송 카메라가 회장을 비췄다. 회장은 교실 안을 둘러보았다. 회장 눈에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빈 책상과 교단 위의 노인 둘과 울고 있는 어른들이 보였다.
“이장님, 어르신들. 말씀 잘 들었습니다.” 회장이 교실 안으로 한 걸음 들어왔다. “제 아버지가 그 자리에 계셨다는 것도 압니다. 아버지 회사는 시공사였고, 수문을 연 건 군 행사였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대신해 사과할 수 있습니다. 오늘 여기서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회장이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인 채로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체험관을 멈추는 일은 사과와 다릅니다. 국비가 들어왔고, 직원 예순 명이 이 공사를 보고 있습니다. 이 학교에 아무것도 안 들어오면, 오 년 뒤에 덕골은 사람이 안 사는 마을이 됩니다. 그때는 누가 이 교실을 기억합니까?”
회장이 말을 마치고 고개를 들 때, 도판식이 살금살금 회장 뒤로 갔다. 목덜미에 대고 후 하고 바람을 불었다. 회장이 어깨를 움츠리고 목을 문질렀다. “창문 틈 바람이 세네요.” 교실 아이들이 책상에 엎드려 소리 죽여 웃었다. 서봉님이 도판식을 노려보았고, 도판식은 사십팔 년 묵은 장난이 하나 남아 있었다는 얼굴로 제자리에 돌아갔다.
회장의 말은 틀린 데가 없었다. 복도의 할머니들이 서로를 보았다. 마을버스 여섯 번, 국밥집, 민박비 오만 원. 할머니들이 손을 든 까닭이 하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교탁 옆으로 갔다. 추동섭이 교단에서 반 걸음 비켜 주었다. 나는 교탁에 손을 얹지 않았다. 교장이 교탁에 손을 얹으면 아이들은 교장 말을 들어야 하는 줄 안다. 지금은 내가 들어야 하는 자리였다.
“회장님 말씀이 맞아요. 저도 회장님처럼 살았어요.” 나는 복도의 가족들을 보았다. 카메라가 나를 비췄다. “2019년 가을에 저는 수원의 초등학교 교장이었습니다. 비 오는 날 체험학습 출발을 밀어붙였고, 4학년 아이 하나가 다리를 다쳤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보고서에 안전 수칙 안내 완료라고 썼고, 저는 그 다섯 글자를 그대로 두었습니다. 담임은 감봉을 받고 학교를 떠났고, 저는 정년을 채웠습니다. 제가 이 학교를 사서 아이들을 만났을 때, 저는 이장님을 탓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교실이 조용했다. 딸이 휴대전화를 든 채 나를 보았다.
“그래서 압니다. 다섯 글자를 쓰면 학교는 지켜져요. 마을도 지켜지고 회사도 지켜져요. 지켜지지 않는 건 다섯 글자 밑에 깔린 사람이에요. 덕골은 사십팔 년 동안 다섯 글자 위에서 살았어요. 오늘 이장님이 다섯 글자를 지우셨어요. 할머니들이 도장을 지우셨고요. 체험관이 들어오든 안 들어오든, 이 교실이 귀신 학교로 남으면 다섯 글자는 다시 써지는 거예요.”
카디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떨었다. 문자였다. 4학년 3반 담임이었다. 「교장 선생님, 생방송 보고 있습니다. 나중에가 오늘이네요. 받겠습니다.」
나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손이 떨려서 두 번 만에 넣었다.
*
아홉 시 오십 분에 정문으로 군수의 차가 들어왔다. 착공식 천막 앞에서 군수가 내렸다. 천막 아래에 아무도 없었다. 떡 상자들만 탁자 위에 쌓여 있었다. 군수가 비서와 함께 운동장을 가로질러 6학년 교실 복도로 왔다. 복도를 가득 채운 가족들과 할머니들과 생방송 카메라를 보고, 교실 문간에서 걸음을 멈췄다.
회장이 군수에게 다가가 낮게 말했다. 군수는 회장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교실 안을 보았다. 교단 앞의 늙은 담임과 꽃무늬 블라우스의 예순한 살 여자와, 빈 책상 열한 개를 보았다. 군수는 오래 문간에 서 있었다. 그러고는 비서에게 말했다.
“착공식, 오늘은 안 합니다. 의회에 재의 요구 올리세요.”
“군수님, 국비가.” 회장이 말했다.
“국비는 내가 반납하든 돌려쓰든 하겠습니다. 회장님, 오늘 여기서 착공식 테이프를 자르면, 사십팔 년 뒤에 누가 또 이 교실에 와서 다섯 글자를 지워야 합니다.” 군수가 회장을 보았다. “나는 그 사람 되기 싫습니다.”
회장이 입을 다물었다. 웃음은 얼굴에 없었다. 회장은 교실 안을 한 번 더 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빈 교실을. 그러고는 복도 벽에 등을 붙이고 길을 비켰다. 나가지는 않았다.
맨 앞줄 가운데에서 서봉님이 일어났다. 의자를 밀고, 두 손을 치마 옆에 붙이고, 턱을 들었다. 첫날 저녁과 같은 자세였다. 할 말은 첫날과 달랐다.
“교장 선생님. 졸업식 해 주셔요.” 서봉님이 말했다. “춘금이부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