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357자)

자물쇠

학생 귀신을 만난 은퇴 교장 · 하청오

자물쇠 채운 교실의 창문은 운동장 쪽으로 나 있었다⁠. 창틀이 낮아서 운동장에 서면 유리가 내 가슴께에 왔다⁠. 밤에 딸과 나는 숙직실에서 의자 두 개를 들고 나와 6학년 교실 창 밑에 놓았다⁠. 유리 너머에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열한 명이 창유리에 이마를 대고 있었다⁠. 유리에 김이 서리지 않았다⁠.

“⁠교장 선생님⁠, 우리 이제 못 나가요⁠?⁠”

“⁠문이 잠긴 거야⁠. 너희가 잠긴 게 아니고⁠.⁠”

“⁠그게 그거잖아요⁠.⁠” 도판식이 말했다⁠.

딸은 의자에 앉아 창유리를 보았다⁠. 딸 눈에는 유리 너머 빈 교실과 책상뿐이었다⁠. 그래도 딸은 창유리에 손바닥을 댔다⁠. 유리 안쪽에서 이깨순이 딸의 손바닥에 자기 손바닥을 맞댔다⁠. 딸은 몰랐다⁠.

“⁠희아 누나 휴대전화에서 노래 나와요⁠?⁠” 이깨순이 물었다⁠. “⁠만덕이가 그러는데 그 기계에서 노래도 나온대요⁠.⁠”

“⁠희아야⁠, 깨순이가 노래 듣고 싶대⁠.⁠”

딸이 휴대전화로 노래를 틀었다⁠. 요즘 아이돌 노래였다⁠. 박자가 빠르고 전자음이 통통 튀었다⁠. 이깨순이 처음에는 얼굴을 찌푸렸다⁠. 남진이 아니었다⁠. 후렴에서 이깨순의 어깨가 저절로 들썩였다⁠.

“⁠이거 어떻게 춰요⁠?⁠”

“⁠깨순이가 춤 배우고 싶대⁠.⁠”

딸이 휴대전화를 창틀에 세우고 일어났다⁠. 운동장 흙바닥 위에서⁠, 창유리를 거울 삼아 후렴 동작을 했다⁠. 팔을 앞으로 뻗고⁠, 손목을 꺾고⁠, 한 발을 뒤로 빼면서 어깨를 튕기는 동작이었다⁠. 서른네 살 회사원의 춤은 뻣뻣했다⁠. 딸은 회식 자리에서 억지로 배운 춤이라고 했다⁠.

“⁠천천히 할게⁠. 하나⁠, 둘⁠, 팔 뻗고⁠. 셋⁠, 넷⁠, 손목⁠.⁠”

유리 너머에서 이깨순이 따라 했다⁠. 처음에는 손목을 반대로 꺾었다⁠. 딸이 창유리 너머 빈 자리를 향해 다시 했다⁠. “⁠아니⁠, 손목은 안으로⁠. 안으로 꺾어⁠.⁠” 딸은 보이지 않는 학생에게 동작을 고쳐 주고 있었다⁠. 내가 옮겨 준 말을 듣고⁠, 빈 유리를 향해 하나씩⁠. 이깨순이 손목을 안으로 꺾었다⁠. 어깨를 튕겼다⁠. 도판식이 옆에서 따라 하다가 발이 꼬여 넘어졌다⁠. 아이들이 웃었다⁠.

“⁠셋⁠, 넷⁠, 어깨⁠. 그렇지⁠. 잘한다⁠.⁠”

딸이 “⁠잘한다⁠”라고 말한 순간이었다⁠. 딸의 몸이 굳었다⁠. 팔을 뻗은 채로 멈췄다⁠. 창유리 안쪽에⁠, 딸과 똑같이 팔을 뻗은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흰 칼라 블라우스⁠, 곤색 치마⁠, 「⁠6-1 이깨순⁠」 명찰⁠. 이깨순의 손목이 안으로 꺾여 있었다⁠.

“⁠엄마⁠.⁠” 딸이 팔을 내리지 못하고 말했다⁠. “⁠보여⁠.⁠”

이깨순이 유리 너머에서 손을 흔들었다⁠. 딸의 눈이 이깨순 뒤로 갔다⁠. 열한 명이 창가에 붙어 있었다⁠. 하귀분이 칠판에 그린 서울 누나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도판식이 바닥에서 일어나며 엉덩이를 털었다⁠. 맨 뒤에서 서봉님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반장은 춤을 추지 않았다⁠.

딸이 창유리에 이마를 댔다⁠. 유리 너머에서 이깨순도 이마를 댔다⁠. 딸은 울지 않으려고 했고⁠, 울었다⁠.

“⁠깨순아⁠, 누나 춤 못 추지⁠?⁠”

“⁠잘 춰요⁠. 손목만 빼고요⁠.⁠” 이깨순이 말했다⁠. 딸이 이깨순의 말을 직접 들었다⁠. 딸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들이 창가에서 하나둘 흩어진 뒤에도 서봉님은 맨 뒤에 팔짱을 끼고 있었다⁠. 딸이 유리 너머 서봉님을 보았다⁠. 둘은 처음 서로를 보는 사이였다⁠. 서봉님이 먼저 팔짱을 풀고 창가로 왔다⁠.

“⁠누나⁠.⁠”

“⁠응⁠.⁠”

“⁠누나는 엄마가 교장이라 좋았어요⁠?⁠”

딸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한 번 보고⁠, 다시 서봉님을 보았다⁠.

“⁠아니⁠. 하나도 안 좋았어⁠. 엄마는 우리 학교 학예회에 한 번도 안 왔어⁠. 다른 학교 학예회에 가 있었거든⁠.⁠” 딸이 유리에 손가락을 댔다⁠. “⁠근데 지금은 좀 좋아⁠. 우리 엄마가 너희 교장 선생님이라서⁠.⁠”

서봉님은 딸의 손가락 끝을 보다가 자기 손가락을 유리에 마주 댔다⁠. 반장의 얼굴이 아니었다⁠. 언니를 처음 만난 열세 살의 얼굴이었다⁠. 나는 숙직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엿들으면 안 되는 대화가 있다⁠. 교장이 되기 전에 배운 것이었다⁠.

*

새벽 다섯 시 반에 추동섭의 집 마당에 들어갔다⁠. 이장은 일찍 일어난다⁠. 서른여덟 해 동안 학교 근처 이장들을 만나며 배운 것이었다⁠. 추동섭은 툇마루 끝에 앉아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나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올 줄 알았소⁠.⁠”

“⁠여쭤볼 게 있어서요⁠.⁠”

“⁠앉으시오⁠.⁠”

툇마루에 나란히 앉았다⁠. 마당 너머로 산 능선이 희게 밝아 왔다⁠. 추동섭이 주머니에서 비닐봉지 하나를 꺼냈다⁠. 눈깔사탕 봉지였다⁠. 첫날 정문 돌기둥 아래에서 본 봉지와 같은 상표였다⁠.

“⁠해마다 이월 십오일에 갖다 뒀소⁠. 졸업식 끝나믄 사탕 한 봉지씩 주기로 했었응께⁠. 사십팔 봉지요⁠.⁠” 추동섭이 봉지를 무릎 위에 올렸다⁠. “⁠선생이 묻고 싶은 거⁠, 왜 거짓말했냐 그거지라⁠.⁠”

“⁠네⁠.⁠”

추동섭이 마당의 경운기를 보았다⁠. 녹슨 바퀴에 새벽이슬이 맺혀 있었다⁠.

“⁠교장 선생이 그랬소⁠. 사고 날 사흘째 되는 날⁠. 군수가 준공식에서 애들 세운 거 나오믄 담임이 인솔 책임으로 잡혀간다고⁠. 그라믄 애들 집에 위로금도 안 나간다고⁠. 애들이 지들끼리 갔다고 하믄 군에서 위로금을 주고⁠, 덕산이 마을에 전기를 넣고 다리를 놓는다고⁠.⁠” 추동섭이 사탕 봉지를 쥐었다⁠. “⁠나는 스물네 살이었소⁠. 애들 부모님들이 봉투 받는 걸 봤소⁠. 그 봉투가 그 집들이 받을 수 있는 전부였소⁠. 그래서 썼소⁠. 학교 책임 없음⁠.⁠”

“⁠이장님은 아이들 부모님을 위해서 쓰셨다고요⁠.⁠”

“⁠그라고 나를 위해서⁠.⁠” 추동섭이 짧게 말했다⁠. “⁠둘 다요⁠. 둘 중 하나만이라고 하믄 그것도 거짓말이제⁠.⁠”

새가 울기 시작했다⁠. 추동섭이 계속 말했다⁠.

“⁠도장 찍은 어른들이 아직 일곱 살아 있소⁠. 다 여든다섯이 넘었어⁠. 경로당에 앉아서 화투 치는 그 양반들이요⁠. 이게 다 나오믄⁠, 그 양반들은 애들 목숨 대신 전깃불 받은 사람들로 죽소⁠. 이사 간 집들은 사십팔 년 만에 그날로 다시 끌려오고⁠. 나 혼자 안고 가믄⁠, 나 하나로 끝나요⁠. 그래서 귀신집이 낫다 했소⁠. 사람들이 웃고 가믄⁠, 아무도 그날을 안 물으니께⁠.⁠”

“⁠봉님이는 사십팔 년 동안 물었어요⁠.⁠”

추동섭의 손에서 사탕 봉지가 바스락거렸다⁠.

“⁠봉님이를 내가 맨 앞에 세웠소⁠.⁠” 추동섭이 말했다⁠. 목소리가 갑자기 낮아졌다⁠. “⁠반장이니께 맨 앞이라고⁠, 내 손으로 어깨를 잡아서 세웠소⁠. 사진 아저씨가 더 앞으로 하라 해서⁠, 수문 밑으로 한 발 더⁠. 그 애가 춘금이를 밀 때⁠, 나는 춘금이 손을 잡았소⁠. 봉님이 손이 아니라⁠. 봉님이 손은 내 손에서 한 뼘이었소⁠.⁠” 추동섭이 자기 손바닥을 펴서 보았다⁠. “⁠한 뼘이었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툇마루 아래 고무신 한 짝이 뒤집혀 있었다⁠.

*

대문이 덜컥 열렸다⁠. 백춘금이 들어왔다⁠. 앞치마 차림이었고⁠,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있었다⁠. 숨이 차 있었다⁠. 추동섭과 나를 툇마루에서 함께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이장님⁠, 선생⁠. 둘 다 여기 있으니 잘됐소⁠.⁠”

“⁠춘금이 니가 이 새벽에 웬일이냐⁠.⁠”

“⁠우리 아들이 어젯밤에 전화했어⁠.⁠” 백춘금이 휴대전화를 들어 보였다⁠. “⁠의회 일 다 들었대⁠. 경로당 할매들이 단톡방에 다 올렸대⁠. 아들이 그랬어⁠. 엄마⁠, 하우스는 내가 다시 지을게⁠. 대출은 내가 갚을게⁠. 엄마가 사십팔 년 동안 그 학교 앞으로 안 지나다닌 거⁠, 나 다 알아⁠. 이제 지나다녀⁠.⁠”

백춘금이 마당 한가운데에서 앞치마 끈을 고쳐 맸다⁠.

“⁠선생⁠, 나 증언하요⁠. 얼음이 깨지기 전에 둑 위에서 물 내려오는 소리가 먼저 났다고⁠. 사진 아저씨가 웃으라 했다고⁠. 봉님이가 나를 밀었다고⁠.⁠” 백춘금이 추동섭을 보았다⁠. “⁠이장님⁠. 이장님이 내 손 잡아서 내가 살았소⁠. 고맙다는 말을 사십팔 년 동안 못 했소⁠. 오늘 하요⁠. 고맙소⁠. 그라고 이제 같이 가요⁠. 혼자 안고 가지 말고⁠.⁠”

추동섭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탕 봉지를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앉아 있었다⁠.

“⁠졸업장도 받을라요⁠.⁠” 백춘금이 말했다⁠. “⁠봉님이가 내가 먼저 받아야 지도 받는다 했담서⁠. 그라믄 내가 먼저 받아야제⁠.⁠”

*

오전에 마상태가 학교 정문 앞에 왔다⁠. 양복도 조끼도 아닌 등산복 차림이었다⁠. 군청 신분증은 반납했지만 주머니에서 열쇠 하나를 꺼냈다⁠.

“⁠관광과 예비 열쇠예요⁠. 정문 쇠사슬 거요⁠. 반납 목록에 없더라고요⁠.⁠” 마상태가 열쇠를 내 손바닥에 놓았다⁠. “⁠교실 열쇠는 이장님한테만 있어요⁠. 그건 제가 어떻게 못 합니다⁠.⁠”

“⁠과장님⁠, 이거 또 무단 반출이에요⁠.⁠”

“⁠백수는 반출할 데가 없어요⁠. 그냥 들고 다니는 거죠⁠.⁠”

오후에 고묵순이 전화를 했다⁠. 광주의 하귀분 오빠⁠, 서울의 쌍둥이네 막내⁠, 부산의 도판식 누나⁠, 다섯 집을 찾았다고 했다⁠. 이사 간 집들끼리 사십팔 년 만에 처음 단톡방을 열었다고 했다⁠. 단톡방 이름은 고묵순이 지었다⁠. 「⁠덕골 6학년 1반 가족⁠」

“⁠선생님⁠, 다들 오겠대요⁠. 날만 잡아 주세요⁠.⁠”

나는 날을 잡았다⁠. 4월 19일⁠. 착공 하루 전 아침⁠.

15일에 숙직실 짐을 뺐다⁠. 짐이라고 해야 에어 매트리스와 이불 한 채⁠, 전기 주전자⁠, 냄비 하나였다⁠. 경로당 할머니들이 손수레를 끌고 왔다⁠. 부르지 않았는데 왔다⁠. 할머니 셋이 에어 매트리스 바람을 빼겠다고 매트리스 위에 나란히 앉았다⁠. 바람 빠지는 소리가 길게 났다⁠. 할머니 하나가 엉덩이를 들썩이며 말했다⁠. “⁠아이고⁠, 교장 선생 침대가 방귀를 뀌네⁠.⁠” 다른 할머니들이 웃다가 매트리스에서 굴러떨어졌다⁠.

짐은 백춘금이 구판장 뒷방에 두라고 했다⁠. 손수레를 끌고 정문을 나서는데⁠, 경로당에서 똥광을 내려놓던 할머니가 내 카디건 소매를 잡았다⁠. 의회 방청석에서 거짓말이라고 중얼거린 할머니였다⁠.

“⁠교장 선생⁠. 19일에 나도 가⁠.⁠”

“⁠어머님⁠, 그날 착공식에도 떡이 나온대요⁠.⁠”

“⁠떡은 착공식 가서 먹고⁠, 박수는 졸업식 가서 칠라네⁠.⁠” 할머니가 자기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도장 찍은 손이어도 박수는 칠 수 있제⁠?⁠”

“⁠칠 수 있어요⁠.⁠”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고 손수레 뒤를 밀었다⁠. 손수레가 신작로 내리막을 덜컹거리며 내려갔다⁠.

*

12일 오후 정문 돌기둥에 새 현수막이 올라갔다⁠. 덕산토건 작업복 남자들이 사다리를 대고 걸었다⁠. 「⁠덕골 귀신 학교 체험관 착공식 — 2027년 4월 19일 오전 열 시⁠. 군수님 참석⁠」 회장이 검은 승용차에서 내려 현수막을 올려다보았다⁠.

“⁠착공은 20일 아니었나요⁠?⁠”

“⁠군수님 일정이 19일밖에 안 되십니다⁠. 하루 당겼어요⁠. 착공식만 하고⁠, 공사는 20일부터 들어갑니다⁠.⁠” 회장이 나를 보았다⁠. 늘 그렇듯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마을 분들 다 오시라고 했습니다⁠. 떡도 넉넉히 합니다⁠. 선생님도 오세요⁠. 15일에 짐 빼시고⁠, 손님으로요⁠.⁠”

“⁠19일 오전 열 시⁠.⁠” 나는 현수막의 글자를 소리 내어 읽었다⁠. 사십팔 년 전 2월 15일 오전 열 시에⁠, 둑 위에서 도지사가 테이프를 잘랐다⁠. “⁠회장님⁠. 같은 날 아침에 이 학교에서 졸업식이 있습니다⁠.⁠”

“⁠무슨 졸업식이요⁠?⁠”

“⁠1978학년도 덕골국민학교 졸업식이요⁠. 사십팔 년 미뤄진 졸업식이요⁠. 졸업생 가족들이 전국에서 옵니다⁠.⁠” 나는 마상태가 준 열쇠를 손바닥에 쥐었다⁠. 돋보기가 가슴께에서 흔들렸다⁠. “⁠아침 여덟 시 사십 분에 시작합니다⁠. 회장님 착공식보다 한 시간 이십 분 먼저요⁠.⁠”

12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자물쇠 · 학생 귀신을 만난 은퇴 교장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