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340자)

임시회

학생 귀신을 만난 은퇴 교장 · 하청오

4월 10일 아침 단톡방에 남편의 긴 문장이 올라왔다⁠. 남편이 엄지 말고 문장을 쓴 것은 올해 들어 두 번째였다⁠.

「⁠남편⁠: 여보 오늘 의회라며⁠. 파크골프 대회 기권했음⁠. 동호회 사람들이 나보고 배신자래⁠. 잔금 모자라면 아파트 담보로 알아봐도 됨⁠. 희아한테 물어봤는데 희아도 된대⁠.⁠」

「⁠희아⁠: 아빠 그거 내가 된다고 한 거 아니고 알아는 보라고 한 거야⁠.⁠」

「⁠남편⁠: (⁠엄지척 이모티콘⁠)⁠」

「⁠희아⁠: 아빠⁠…⁠…⁠」

나는 숙직실 창가에서 단톡방을 읽고 휴대전화를 가슴에 대고 잠깐 서 있었다⁠. 서른여덟 해 동안 남편은 내 학교 일에 한 번도 의견을 낸 적이 없었다⁠. 의견을 내지 않는 것이 남편의 응원이었다⁠. 오늘은 남편이 의견을 냈다⁠. 배신자 소리를 들으면서⁠.

「⁠나⁠: 담보는 안 돼⁠. 고마워⁠.⁠」

「⁠남편⁠: (⁠엄지척 이모티콘⁠) 그래도 기권은 했음⁠」

나는 남편의 엄지를 오래 보았다⁠. 이번 엄지에는 파크골프 대회 하나가 들어 있었다⁠. 동호회에서 일 년 내내 연습해서 나가는 대회였다⁠.

*

백춘금의 전화는 아침 여덟 시에 왔다⁠. 어젯밤 구판장에서 백춘금은 의회에 같이 가겠다고 했다⁠. 얼음이 깨질 때 둑 위에서 물 내려오는 소리가 먼저 났다고⁠, 소리 이야기 한마디는 하겠다고 했다⁠. 전화 속 목소리는 어젯밤과 달랐다⁠.

“⁠선생⁠, 미안하요⁠. 나는 못 가요⁠.⁠”

“⁠춘금 씨⁠, 지금 갈게요⁠.⁠”

“⁠오지 마시오⁠.⁠”

나는 갔다⁠. 구판장 셔터는 반쯤 올라가 있었다⁠. 백춘금은 계산대 앞에 앉아 다슬기를 고르지 않고 있었다⁠. 손이 무릎 위에 놓여 있었다⁠. 계산대 위에 서류 두 장이 엎어져 있었다⁠.

“⁠어젯밤 열한 시에 덕산 사람이 왔소⁠.⁠” 백춘금이 엎어진 서류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우리 아들이 작년에 귀농해서 딸기 하우스를 짓는디⁠, 대출 보증을 덕산토건이 서 줬어⁠. 나는 몰랐소⁠. 아들이 말을 안 했어⁠. 그리고 이거⁠.⁠” 백춘금이 다른 서류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군에서 경로당 급식에 우리 다슬기 넣어 주는 계약⁠. 내년부터 안 한다고⁠.⁠”

“⁠춘금 씨⁠.⁠”

“⁠선생은 학교 날아가믄 수원 가믄 되제⁠. 우리 아들은 하우스 날아가믄 어디 가요⁠?⁠” 백춘금이 나를 보았다⁠. 눈이 말라 있었다⁠. 울 만큼 울고 난 눈이었다⁠. “⁠사십팔 년 전에도 이랬소⁠. 봉투 하나⁠, 전봇대 하나⁠, 다리 하나⁠. 우리 엄니는 도장 찍고 나를 붙잡고 울었어⁠. 니가 살았응께 찍는다고⁠. 나는 그 도장 위에서 사십팔 년을 살았소⁠. 이번에도 찍소⁠.⁠”

“⁠봉님이가 춘금 씨 졸업장을 셔터 앞에 두고 갔어요⁠.⁠”

“⁠알아요⁠!⁠” 백춘금이 계산대를 내리쳤다⁠. “⁠알아요⁠. 내가 돌기둥에 도로 갖다 놨응께⁠. 선생⁠, 나는 봉님이가 밀어서 산 사람이요⁠. 산 사람이 산 사람 지켜야제⁠. 우리 아들 지켜야제⁠. 봉님이도 그라라고 밀었을 것이여⁠.⁠”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백춘금의 말은 틀린 데가 없었다⁠. 셔터 밖에서 마을버스가 경적을 울렸다⁠. 의회 가는 버스였다⁠.

*

군의회 본회의장의 방청석은 이 층에 있었다⁠. 경로당 할머니들이 열 명 넘게 와 있었다⁠. 어떤 분은 체험관에 찬성하러⁠, 어떤 분은 구경하러 왔다⁠. 대부분은 둘 다였다⁠. 딸이 서울에서 첫차로 내려와 내 옆에 앉았다⁠. 할머니 하나가 딸에게 사탕을 건넸다⁠. 딸은 사탕을 받고 고개를 숙였다⁠.

“⁠서울 처녀⁠, 엄마 편 들러 왔능가⁠?⁠”

“⁠네⁠.⁠”

“⁠잘했네⁠. 우리 손주는 내 편 안 들어⁠.⁠”

본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복도 끝 화장실 앞에서 마상태를 만났다⁠. 마상태는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세 번째 고쳐 매고 있었다⁠. 손이 떨려서 매듭이 자꾸 비뚤어졌다⁠.

“⁠선생님⁠, 교장 선생님들은 조회 때 안 떨리세요⁠? 전교생 앞에서요⁠.⁠”

“⁠떨려요⁠. 서른여덟 해 내내⁠.⁠”

“⁠그럼 어떻게 하세요⁠?⁠”

“⁠단상 모서리를 두 손으로 잡아요⁠. 그리고 맨 뒷줄에서 제일 딴짓하는 아이 하나만 봐요⁠. 그 아이한테만 말하는 거예요⁠. 그러면 전교생이 들어요⁠.⁠”

마상태가 넥타이 매듭을 쥔 채 나를 보았다⁠. “⁠의회에서 제일 딴짓하는 사람은 누굴까요⁠?⁠”

“⁠방청석 할머니들이요⁠. 사탕 까먹고 계실 거예요⁠.⁠”

마상태가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웃고 나니 매듭이 반듯하게 매어졌다⁠. 마상태가 휴대전화를 꺼내 나에게 보여 주었다⁠. 영국 동영상 채널의 새 영상 예고였다⁠. 「⁠한국의 유령 학교⁠, 곧 정부에 팔린다⁠」 댓글 맨 위에 영어로 한 줄이 있었다⁠. 「⁠아이들은 어디로 가나요⁠?⁠」

“⁠딸이 보내 줬어요⁠. 서울에서⁠.⁠” 마상태가 휴대전화를 넣었다⁠. “⁠우리 딸이 제 영상을 처음 봤대요⁠. 군청 채널 구독도 했대요⁠.⁠”

안건 순서는 두 번째였다⁠. 「⁠덕골초등학교 폐교 재산 군 매입 및 기존 매매계약 해제 요청의 건⁠」 관광과장 자리에서 마상태가 일어났다⁠. 조끼 대신 양복을 입고 있었다⁠. 단상에 서서 서류를 펴고⁠, 의원석을 한 번 둘러보았다⁠.

“⁠관광과장 마상태입니다⁠. 매입안 설명에 앞서⁠, 이 안건과 관련된 자료 하나를 의회에 제출합니다⁠. 1979년 2월 15일 덕골 저수지 준공식 행사 계획서입니다⁠. 당시 군수 결재 문서입니다⁠.⁠”

의원석이 술렁였다⁠. 마상태가 문서의 맨 아래 줄을 읽었다⁠. 학생 동원 열세 명⁠. 수문 개방 시연 때 하류 빙판 위 배치⁠. 사진 촬영용⁠. 마상태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떨리지 않으려고 단상 모서리를 붙잡은 손이 하얬다⁠.

“⁠당시 수문을 연 사람은 군청 수리계 임시직 직원이었습니다⁠. 제 아버지입니다⁠.⁠”

방청석이 조용해졌다⁠. 할머니들이 서로를 보았다⁠. 딸이 내 손을 잡았다⁠.

의원석 끝에서 군청 법무팀장이 손을 들었다⁠. “⁠의장님⁠, 이 문서는 군 기록물 관리 규정에 따라 반출 승인을 받지 않은 문서입니다⁠. 과장이 개인적으로 문서고에서 꺼낸 것으로 압니다⁠.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내부 초안을 의회 자료로 볼 수는 없습니다⁠.⁠”

“⁠초안이 아니라 결재본입니다⁠. 도장이 있습니다⁠.⁠”

“⁠과장님⁠, 무단 반출 여부부터 감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법무팀장이 차분하게 말했다⁠. 의원 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의장이 마이크를 당겼다⁠.

“⁠관련자 증언을 듣겠습니다⁠. 덕골 이장님⁠, 1979년 당시 덕골국민학교 6학년 담임이셨다고요⁠.⁠”

추동섭이 의원석 뒤 증언석으로 걸어 나왔다⁠. 양복이 몸에 조금 컸다⁠. 오래 장롱에 있던 양복이었다⁠. 증언석 마이크 앞에서 추동섭은 방청석을 올려다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눈을 피하지 않았다⁠. 피하지 않고 말했다⁠.

“⁠그날 졸업식 끝나고⁠, 애들이 지들끼리 저수지에 갔소⁠. 얼음 지치러⁠. 내가 말렸는디 안 들었소⁠.⁠”

방청석 맨 앞줄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경로당에서 똥광을 내려놓던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사탕 껍질을 쥔 채 혼잣말을 했다⁠. “⁠거짓말⁠.⁠” 소리는 작았는데 방청석이 조용해서 다 들렸다⁠. 옆자리 할머니가 할머니의 무릎을 툭 쳤다⁠. 할머니는 입을 다물고 사탕 껍질을 손안에서 구겼다⁠. 구기고 또 구겼다⁠. 의원석의 누구도 방청석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방청석에서 내가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밀리면서 바닥을 긁었다⁠.

“⁠추 선생님⁠!⁠”

의장이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방청석은 발언할 수 없습니다⁠.⁠”

“⁠봉님이가 맨 앞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반장이니까 맨 앞이라고 세우셨잖아요⁠. 연혁지 다섯 글자⁠, 선생님이 쓰셨다고 저한테 말씀하셨잖아요⁠!⁠”

“⁠방청인 퇴장시키세요⁠.⁠”

직원 둘이 계단을 올라왔다⁠. 딸이 내 카디건 소매를 붙잡았다가 놓았다⁠. 나는 직원들에게 팔을 맡기고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면서 증언석을 보았다⁠. 추동섭은 마이크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두 손으로 증언대 모서리를 쥐고 있었다⁠. 의회 마룻바닥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 얼음 아래를 보는 눈이었다⁠.

표결은 복도의 스피커로 들었다⁠. 찬성 일곱⁠, 반대 하나⁠. 가결⁠. 덕골초등학교는 군이 매입하고⁠, 개인과의 매매계약은 특약에 따라 해제한다⁠. 체험관 보강 공사는 4월 20일에 시작한다⁠.

다음 안건이 나오기 전에 행정과장이 짧게 알렸다⁠. 관광과장 마상태⁠, 문서 무단 반출 건으로 오늘 자로 직위해제⁠. 감사가 끝날 때까지 대기 발령⁠.

*

복도 끝에서 마상태가 나왔다⁠. 양복 윗도리를 팔에 걸치고 있었다⁠. 내 앞에서 멈춰서 웃었다⁠.

“⁠선생님⁠, 저 오늘부터 백수입니다⁠. 군청 다닌 지 삼십일 년 만에⁠.⁠”

“⁠과장님⁠.⁠”

“⁠이제 과장 아닙니다⁠.⁠” 마상태가 넥타이를 풀었다⁠. “⁠아버지한테 전화했어요⁠. 잘했다고 하셨어요⁠. 모자 쓰고 하셨을 거예요⁠.⁠”

딸이 방청석에서 내려와 내 옆으로 왔다⁠. 회장이 의원들과 악수를 하며 복도를 지나갔다⁠. 나를 보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수리비 말씀은 유효하다는 고개였다⁠. 나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계약 해제 통지서는 오후 세 시에 문자로 왔다⁠. 계약금은 돌려준다고 했다⁠. 지붕 공사비와 보일러 값은 돌려준다는 말이 없었다⁠. 퇴직수당의 절반이 지붕 위에 올라가 있었다⁠. 딸이 통지서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 퇴직수당 날아간다던 딸이었다⁠.

의회 앞 정류장 의자에 둘이 나란히 앉아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경로당 할머니들이 우리를 지나 먼저 버스에 올랐다⁠. 할머니 하나가 버스 계단에서 돌아보더니 내 손에 사탕 두 개를 쥐여 주고 올라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탕은 손바닥 온기에 조금 물러 있었다⁠.

고백하자면 가결 소리를 들은 순간 나는 안도했다⁠. 끝났다는 안도였다⁠. 내가 졌으니 내 손으로 더 할 일이 없다는 안도였다⁠. 서른여덟 해 동안 교육청 공문이 내려오면 나는 공문을 따랐다⁠. 공문을 따르면 내 책임이 아니었다⁠. 안도는 정류장 의자에 앉은 오 분 동안 이어지다가⁠, 사탕 껍질을 까는 손에서 끝났다⁠. 6학년 교실의 아이들 열한 명은 공문을 따른 어른들 때문에 사십팔 년째 거기 있었다⁠.

“⁠엄마⁠.⁠” 딸이 말했다⁠. “⁠이제 어떡해⁠?⁠”

“⁠짐 싸야지⁠. 15일까지⁠.⁠”

“⁠그거 말고⁠.⁠”

나는 사탕을 입에 넣었다⁠. 박하 맛이었다⁠. “⁠아직 모르겠어⁠. 선생님도 모르는 날이 있어⁠.⁠”

*

해 질 녘에 학교로 돌아왔다⁠. 정문 앞에 이장 트럭과 군청 승용차가 서 있었다⁠. 군청 직원 둘이 정문 쇠사슬에 새 자물쇠를 채우고 있었다⁠. 추동섭이 돌기둥 밖에 서 있었다⁠. 장롱 양복을 벗고 작업복 차림이었다⁠.

“⁠군 재산이 됐소⁠. 선생 짐은 15일까지 빼시오⁠.⁠” 추동섭이 열쇠 하나를 손바닥에 올려 보였다⁠. “⁠군청이 이장한테 열쇠를 맡겼소⁠. 마을 일이라고⁠.⁠”

“⁠이장님⁠, 6학년 교실은요⁠.⁠”

추동섭은 대답하지 않고 정문 옆 쪽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십팔 년 동안 정문 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사람이 오늘은 들어갔다⁠. 군청 열쇠를 쥐고⁠. 나와 딸이 뒤따랐다⁠. 추동섭은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은행나무 밑을 지날 때 걸음이 한 번 흔들렸다가 이어졌다⁠. 복도 끝 6학년 교실 앞에서 추동섭이 멈췄다⁠.

교실 문 유리 안쪽에 아이들이 서 있었다⁠. 열한 명⁠. 맨 앞에 서봉님⁠.

추동섭이 군청에서 받은 쇠고리를 문틀에 박았다⁠. 망치질이 복도를 울렸다⁠. 서봉님은 유리 너머에서 망치를 든 손을 보았다⁠. 추동섭은 유리를 보지 않았다⁠. 쇠고리 두 개를 박고⁠, 자물쇠를 걸었다⁠.

“⁠이장님⁠. 봉님이가 보고 있어요⁠.⁠”

“⁠알고 있소⁠.⁠” 추동섭이 자물쇠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철컥 소리가 났다⁠. “⁠사십팔 년 내내 알고 있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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