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389자)

의원님, 한 번만 져 보세요

귀신도 옮기는 이삿짐센터 · 윤바로

10월 1일 금요일 아침 일곱 시⁠, 차고 마당에 1톤 용달 한 대가 후진으로 들어왔다⁠. 운전석에서 용달 오 사장이 고개를 내밀었다⁠.

“⁠우찬이 니가 용달을 부르는 날이 다 오네⁠.⁠”

“⁠오늘만⁠.⁠”

“⁠5톤 사장이 1톤 타면 동네에 소문나⁠.⁠”

“⁠이미 났어⁠.⁠”

장롱은 1톤 짐칸에 겨우 들어갔다⁠. 짐칸 높이가 모자라 장롱을 눕혀야 했는데⁠, 덕례 할머니가 누운 장롱 위에서 “⁠아이고⁠, 나 관에 들어가는 거 같어⁠” 하고 소리를 질렀다⁠. 우찬은 결박끈을 다시 풀고 장롱을 세운 채 짐칸 앞쪽에 기대 묶었다⁠. 장롱 꼭대기가 짐칸 위로 한 뼘 삐져나왔다⁠. 할머니는 짐칸 위로 삐져나온 한 뼘 위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시청까지 갔다⁠. 신호에 걸릴 때마다 옆 차 운전자들이 짐칸 위에 뜬 자주색 손가방을 찍었다⁠.

예빈이 조수석에서 휴대전화를 보다가 말했다⁠. “⁠아빠⁠, 바트 사촌이 몽골 방송에 우리 나왔대⁠. 「⁠한국의 할머니를 업는 남자⁠」래⁠.⁠”

“⁠업은 적 없어⁠. 진 거야⁠.⁠”

“⁠몽골 말로는 같은 말이래⁠.⁠”

종태와 바트는 지하철로 먼저 가 있기로 했다⁠. 종태는 강화에서 돌아온 뒤로 이틀을 누워 있다가 오늘 아침 파스를 여섯 장 붙이고 나섰다⁠. 길수가 월요일에 캐피탈에 가서 트럭 명의를 바꾸고 밀린 할부 두 번을 넣었다는 문자가 와 있었다⁠. 우찬의 이름으로 남은 할부는 없었다⁠. 우찬의 이름으로 남은 트럭도 없었다⁠.

*

아홉 시 사십 분⁠, 부천시의회 건물 앞⁠. 청원경찰이 등짐을 진 우찬을 막았다⁠.

“⁠선생님⁠, 가구는 반입이 안 됩니다⁠.⁠”

“⁠참고인 자료예요⁠.⁠”

“⁠자료요⁠?⁠”

우찬이 조끼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윤정택 의원실에서 보낸 참고인 출석 요청서였다⁠. 맨 아래에 우찬이 어젯밤 전화로 부탁해 받은 한 줄이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참고 물품⁠: 자개장롱 1 — 위원장 허가⁠」⁠.

청원경찰은 종이를 두 번 읽고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장롱 올라갑니다⁠.⁠”

엘리베이터에 장롱이 들어가지 않았다⁠. 문 높이보다 장롱이 한 뼘 컸다⁠. 바트가 엘리베이터 문틀을 손으로 재 보고 고개를 저었다⁠. 우찬은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3층이었다⁠.

“⁠우리 영감은 이층 계단도 숨차 했는디⁠.⁠”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는 앉아만 계세요⁠.⁠”

우찬이 지고 바트가 아래를 받쳤다⁠. 종태는 앞에서 계단 모서리마다 “⁠조심⁠, 조심⁠” 하고 외쳤다⁠. 2층 계단참에서 시의회 직원 몇이 서류철을 든 채 벽에 붙어 길을 비켜 주었다⁠. 한 직원이 “⁠가구 배달이세요⁠?⁠” 하고 물었고⁠, 종태가 “⁠참고인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직원은 장롱을 보고⁠, 장롱 위에 뜬 손가방을 보고⁠, 서류철로 입을 가렸다⁠. 3층 복도에 다다르자 회의실 문 앞에 계상현이 서 있었다⁠. 오늘은 회색 양복 재킷을 입고 넥타이를 끝까지 조였다⁠. 셔츠 주머니가 볼록했다⁠. 줄자였다⁠. 상현 옆에서 봉술이 회의실 문틀을 손뼘으로 재고 있었다⁠.

“⁠이건 들어간다⁠.⁠” 봉술이 말했다⁠.

상현이 회의실 문을 활짝 열어 붙잡았다⁠. 우찬은 상현을 보았다⁠. 상현은 문을 잡은 채 장롱 모서리가 문틀에 닿지 않게 손바닥으로 막아 주었다⁠.

“⁠찬성 발언 하신다면서요⁠.⁠”

“⁠합니다⁠. 문은 문이고요⁠.⁠”

*

상임위 회의실은 지난번 소회의실보다 컸다⁠. 위원 다섯이 반달 모양 탁자에 앉아 있었고⁠, 가운데 위원장 자리에 예순쯤 된 여성 의원이 돋보기를 쓰고 앉아 있었다⁠. 방청석에는 하루맘⁠, 명구와 애자⁠, 재훈과 윤슬⁠, 그리고 일본 방송국 카메라가 다시 와 있었다⁠. 장롱은 참고인석 옆 벽에 세워졌다⁠. 덕례 할머니는 장롱 위에서 회의실을 둘러보며 “⁠여기가 동네 법 만드는 데여⁠? 생각보다 좁네⁠” 했다⁠.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렸다⁠. 윤정택 의원이 조례안을 다시 읽었다⁠. 퇴마 확인서 없이 동 경계를 넘어 옮길 수 없다⁠. 어기면 과태료 백만 원⁠.

상현이 먼저 일어났다⁠.

“⁠더채움개발 계상현입니다⁠. 지난번에 이 조례에 찬성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금도 찬성합니다⁠. 다만 고쳐 주시기를 청합니다⁠.⁠”

위원장이 돋보기를 내렸다⁠. “⁠어떻게요⁠?⁠”

“⁠금지를 빼 주십시오⁠. 퇴마 확인서도 빼 주십시오⁠. 대신 귀신 붙은 물품을 옮길 때는 이사를 맡은 업체가 구청에 신고하고⁠, 물품이 들어가는 공동주택에는 그 사실을 알리게 해 주십시오⁠.⁠”

윤정택 의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상무님⁠, 반입 금지를 처음 말씀하신 분이 상무님인데요⁠.⁠”

“⁠압니다⁠.⁠” 상현은 숫자를 읽을 때와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인천에서 저는 장독 하나로 호가가 삼 할 빠지는 것을 봤습니다⁠. 그런데 그건 첫 번째로 빠진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빠진 건 분양사가 알고 있었다는 기사가 나간 날이었습니다⁠. 소문보다 숨긴 게 더 비쌉니다⁠. 이번 일에서 저도 숨겼습니다⁠. 제 아버지를요⁠.⁠”

방청석이 조용했다⁠. 상현은 셔츠 주머니를 한 번 눌렀다⁠.

“⁠이 조례가 고쳐져 통과되면 첫 번째 신고는 제가 하겠습니다⁠. 계봉술⁠, 줄자 하나⁠, 더채움 센트럴 103동⁠.⁠”

하루맘이 방청석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위원장이 우찬을 보았다⁠.

“⁠길우찬 참고인⁠, 신고제면 찬성하십니까⁠?⁠”

“⁠신고는 해요⁠. 이사하는 사람이 짐 신고 하는 게 뭐 어렵겠어요⁠.⁠” 우찬은 일어나지 않고 앉은 채 말했다⁠. 다리가 아직 계단을 기억하고 있었다⁠. “⁠근데 단지에 알린다는 거⁠, 어디까지 알려요⁠?⁠”

상현이 우찬을 보았다⁠. “⁠동과 호수까지입니다⁠.⁠”

“⁠호수까지요⁠?⁠”

“⁠호수를 숨기면 980세대가 다 의심받습니다⁠. 귀신이 어디 있는지 모르면 모든 집이 1702호가 됩니다⁠. 알면 한 집입니다⁠.⁠”

“⁠알면 그 한 집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못 타요⁠.⁠” 우찬의 목소리가 커졌다⁠. “⁠상무님도 아시잖아요⁠. 단톡방에 「⁠301호 앞 엘베 타기 싫어요⁠」 올라온 거⁠. 1702호 사모님은 한 달 동안 17층 단추를 다른 사람이 다 내리고 나서 눌렀어요⁠. 명구 씨가 저한테 그 얘기를 하면서 울었어요⁠.⁠”

방청석 맨 끝에서 애자가 고개를 숙였다⁠. 명구가 애자의 손을 잡았다⁠.

상현은 물러서지 않았다⁠. “⁠숨기면 길 사장님 마음은 편합니다⁠. 980세대는 안 편합니다⁠. 저는 980세대 편입니다⁠. 제 집도 그 안에 있고요⁠.⁠”

“⁠저는 짐 편이에요⁠. 짐 안에 사람이 있어서요⁠.⁠”

두 사람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았다⁠. 위원장이 의사봉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윤정택 의원이 손을 들었다⁠.

“⁠위원장님⁠, 이건 귀신이 진짜 있느냐부터 따져야 할 문제 아닙니까⁠? 저희는 아무도 못 봤잖습니까⁠?⁠”

우찬이 일어났다⁠. 장롱 옆으로 갔다⁠. 등짐 끈을 장롱 모서리에 걸었다⁠.

“⁠의원님⁠, 한 번만 져 보세요⁠.⁠”

“⁠아이고⁠, 저는 허리가⁠…⁠…⁠.⁠”

“⁠제가 지고 의원님은 모서리만 잡으시면 돼요⁠. 동네 법 만드시는데 동네 짐은 한 번 들어 보셔야죠⁠.⁠”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윤정택 의원이 얼굴을 붉혔다⁠. 위원장이 돋보기를 벗어 탁자에 놓고 일어났다⁠.

“⁠제가 들어 보겠습니다⁠. 저는 간호사 서른 해 하다 왔어요⁠. 환자 옮기는 건 자신 있습니다⁠.⁠”

위원장이 소매를 걷고 장롱 귀퉁이를 잡았다⁠. 우찬이 반대편을 들었다⁠. 장롱이 한 뼘 떴다⁠. 위원장의 눈이 장롱 위에서 멈췄다⁠. 한참 뒤에 눈길이 상현의 옆자리로 옮겨 갔다⁠. 러닝셔츠 차림 노인이 회의실 문틀 앞에서 손뼘을 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르신들⁠.⁠” 위원장이 말했다⁠.

“⁠아이고⁠, 위원장이 여자네⁠. 잘했어⁠.⁠” 덕례 할머니가 손가방을 흔들었다⁠. “⁠장롱 들어 보고 법 만드는 사람은 처음 봐⁠.⁠”

봉술이 문틀에서 돌아보았다⁠. “⁠허리를 펴고 드시오⁠. 무릎으로 들어야지⁠.⁠”

위원장이 허리를 폈다⁠. 장롱을 내려놓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윤정택 의원을 보았다⁠.

“⁠윤 의원님도 드세요⁠.⁠”

“⁠위원장님⁠…⁠…⁠.⁠”

“⁠발의자가 안 들면 말이 안 되지요⁠.⁠”

윤정택 의원이 넥타이를 풀고 장롱 귀퉁이를 잡았다⁠. 들어 올리는 순간 허리에서 뚝 소리가 났다⁠. 의원은 “⁠으악⁠” 하면서도 장롱을 놓지 않았다⁠. 덕례 할머니가 의원 얼굴 앞으로 몸을 숙였다⁠.

“⁠의원 양반⁠, 동네 법 만들 때 장롱 들어 보고 만들어⁠. 그래야 무거운 줄 알지⁠.⁠”

윤정택 의원이 장롱을 내려놓고 허리를 짚은 채 의자에 털썩 앉았다⁠. 금빛 배지가 비뚤어져 있었다⁠. 의원은 한동안 숨을 고르다가 말했다⁠.

“⁠위원장님⁠, 수정안 내겠습니다⁠.⁠”

*

수정안은 열한 시 이십 분에 표결에 부쳐졌다⁠. 금지와 퇴마 확인서와 과태료를 뺐다⁠. 귀신 붙은 물품을 옮기는 업체는 구청에 신고한다⁠. 공동주택에는 물품이 들어간 동까지만 알린다⁠. 호수는 알리지 않는다⁠. 상현이 말한 신고가 들어갔고⁠, 우찬이 말한 호수가 빠졌다⁠. 동까지는 상현이 이겼고⁠, 호수에서는 우찬이 이겼다⁠. 다섯 명 가운데 넷이 찬성했다⁠. 반대한 한 사람은 끝까지 장롱을 들지 않은 의원이었다⁠.

위원장이 의사봉을 세 번 두드렸다⁠. 방청석에서 박수가 나왔다⁠. 하루맘은 박수를 치다가 말고 휴대전화를 꺼내 단톡방에 한 줄을 올렸다⁠. 우찬은 어깨 너머로 보았다⁠. 「⁠호수 공개 안 됨⁠. 동까지만⁠. 이제 1702호 얘기 그만합시다⁠. 방장⁠」⁠.

상현은 박수를 치지 않았다⁠. 참고인석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회의실 밖 복도에서 우찬이 장롱에 다시 등짐 끈을 거는 동안 상현이 다가왔다⁠.

“⁠호수는 길 사장님이 가져가셨습니다⁠.⁠”

“⁠동은 상무님이 가져가셨고요⁠.⁠”

“⁠103동은 이제 다 압니다⁠. 아버지가 계신 동이라고요⁠. 다음 주 시세표가 나오면 103동이 얼마나 빠지는지 보일 겁니다⁠. 제 집이 제일 먼저 빠지겠지요⁠.⁠”

“⁠후회하세요⁠?⁠”

“⁠아니요⁠. 숫자는 틀리지 않습니다⁠. 틀린 건 숨긴 겁니다⁠.⁠” 상현이 셔츠 주머니를 눌렀다⁠. 봉술이 복도 창틀을 재다가 아들을 돌아보았다⁠.

애자가 명구 팔짱을 끼고 복도로 나왔다⁠. 애자는 상현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상무님⁠, 동의서 일은 다시 죄송해요⁠. 그리고요⁠, 저 내일부터 엘리베이터 17층 단추 제가 먼저 누를 거예요⁠. 다른 사람 내릴 때까지 안 기다리고요⁠.⁠”

상현이 마주 고개를 숙였다⁠. “⁠저도 3층 단추를 먼저 누르겠습니다⁠.⁠”

“⁠상무님은 계단으로 다니시잖아요⁠. 3층인데⁠.⁠”

상현이 잠깐 말이 막혔다가⁠,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짧은 웃음이었다⁠. 봉술이 창틀 앞에서 허허 웃었다⁠.

재훈이 복도 끝에서 뛰어왔다⁠. 휴대전화를 쥔 손이 떨렸다⁠.

“⁠사장님⁠, 장인어른이 그러세요⁠. 예식장에 장롱 들어오면 식 안 한대요⁠. 그리고 예식장에서도 전화 왔어요⁠. 4층 홀인데 엘리베이터에 장롱이 안 들어간대요⁠. 계단으로 가구 올리는 건 규정에 없대요⁠.⁠”

우찬은 장롱 위를 보았다⁠. 덕례 할머니가 손가방을 꼭 쥐고 있었다⁠.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찬은 그게 무서웠다⁠.

상현이 재킷 단추를 풀었다⁠. 처음 보는 동작이었다⁠.

“⁠예식장이 4층이라고요⁠.⁠”

“⁠네⁠.⁠”

“⁠엘리베이터에 장롱이 안 들어가면 계단입니다⁠. 예식장 지배인은 제가 압니다⁠. 분양 행사를 거기서 세 번 했습니다⁠.⁠” 상현이 우찬의 등짐 끈 끝을 보았다⁠. 오른쪽부터 매여 있었다⁠. “⁠내일 몇 시입니까⁠?⁠”

“⁠열두 시 반 식이요⁠.⁠”

“⁠열 시에 예식장 앞에 가겠습니다⁠. 장롱 한쪽은 제가 들겠습니다⁠.⁠”

복도 창틀 앞에서 봉술이 손뼘을 거두며 말했다⁠.

“⁠상현아⁠, 계단 올라갈 땐 아래가 무겁다⁠. 니가 아래 잡아라⁠.⁠”

9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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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읽기2026.11.06· 9화

    장롱을 등에 지고 시의회 3층까지 올라가는 우찬 진짜 대단해요. 상현이랑 호수까지 알리느냐로 부딪치는데 둘 다 맞는 말이라 더 답답했고요. 의원들이 장롱 들고 할머니 보는 장면에서 숨 참았습니다.

    • 윤바로작가2026.11.06

      숨기자는 쪽도 알리자는 쪽도 사람을 지키려는 마음이었어요. 상현이 들겠다는 계단 한쪽은 마지막 화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