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78자)

하객석 맨 앞줄, 모란 손가방

귀신도 옮기는 이삿짐센터 · 윤바로

10월 2일 토요일 아침 여덟 시⁠, 공업사 골목 끝에서 낯익은 엔진 소리가 들렸다⁠. 5톤 탑차가 후진으로 차고 마당에 들어왔다⁠. 옆면에 파란 글씨가 그대로였다⁠. 「⁠우찬익스프레스⁠」⁠.

운전석에서 반길수가 내렸다⁠. 노란 반팔 대신 오늘은 회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단추가 배에서 하나 덜 잠겼다⁠.

“⁠글씨 지우기 귀찮아서 그냥 왔다⁠. 오늘 공짜야⁠. 기름은 니가 넣어⁠.⁠”

“⁠너 양복은 왜 입었어⁠.⁠”

“⁠결혼식 간다며⁠. 트럭 기사도 하객이야⁠.⁠” 길수가 장롱 위를 힐끗 보았다⁠. 길수 눈에는 손가방만 보였다⁠. “⁠할머니한테 잘 보여야지⁠. 다음에 귀신 붙은 짐 나오면 나한테도 좀 넘기게⁠.⁠”

“⁠신고제야⁠. 구청에 신고하고 옮겨⁠.⁠”

“⁠알아⁠. 그래서 우리 업계 서류가 하나 늘었잖아⁠. 니 덕에⁠.⁠”

종태와 바트가 장롱에 등짐 끈을 걸었다⁠. 종태는 파스 대신 허리 보호대를 찼고⁠, 바트는 어디서 구했는지 넥타이를 맸다⁠. 예빈은 카메라 가방을 메지 않았다⁠. 컨테이너 문을 잠그며 아빠에게 말했다⁠.

“⁠오늘은 안 찍어⁠.⁠”

“⁠구독자들이 기다리잖아⁠.⁠”

“⁠기다리라고 해⁠. 오늘은 할머니 날이야⁠.⁠”

여덟 시 반⁠, 명구의 차가 골목 입구에 멈췄다⁠. 애자가 혼자 내렸다⁠. 한복 대신 연한 회색 정장을 입었고⁠, 손에 작은 보자기를 들고 있었다⁠. 애자는 장롱 앞으로 와서 고개를 들었다⁠. 강화 계단에서 장롱을 든 뒤로 애자도 시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님⁠.⁠”

“⁠왔어⁠? 옷 이쁘네⁠. 회색은 니한테 안 어울린다고 내가 그랬는디⁠, 틀렸네⁠.⁠”

“⁠그 말씀 서른 해 들었어요⁠.⁠” 애자가 보자기를 풀었다⁠. 송편 여섯 개가 담긴 작은 통이었다⁠. 반달이 반듯했다⁠. 애자는 통을 장롱 앞에 내려놓고 허리를 폈다⁠.

“⁠어머님⁠, 식 끝나면 우리 집 가세요⁠. 1702호요⁠. 들어오세요⁠.⁠”

덕례 할머니가 손가방을 무릎에서 쥐었다⁠. 오래 애자를 보았다⁠.

“⁠됐어⁠.⁠”

“⁠어머님⁠.⁠”

“⁠들어오라는 소리 들었으니께 됐어⁠. 나 오늘 갈 겨⁠. 재훈이 장가가는 거 보고⁠.⁠” 할머니가 송편 통을 내려다보았다⁠. “⁠그거 나 주지 말고 재훈이 줘⁠. 오늘 밥도 못 먹고 절만 할 텐께⁠.⁠”

애자는 대답하지 않고 송편 통을 다시 보자기에 쌌다⁠. 매듭을 두 번 풀었다가 다시 묶었다⁠.

*

열 시⁠, 부천 소사구 「⁠새솔웨딩홀⁠」 앞⁠. 계상현이 먼저 와 있었다⁠. 짙은 회색 양복에 넥타이를 끝까지 조였고⁠, 셔츠 주머니가 볼록했다⁠. 봉술은 예식장 유리문 문틀을 손뼘으로 재고 있었다⁠.

“⁠신고서는 오늘 아침 구청 당직실에 넣었습니다⁠. 조례는 다음 달부터지만요⁠.⁠” 상현이 우찬에게 종이 사본을 보였다⁠. 「⁠귀신 붙은 물품 이송 신고 — 신고인 계상현 · 물품 줄자 1 · 103동⁠」⁠. 사본 밑에 한 장이 더 있었다⁠. 「⁠신고인 길우찬 · 물품 자개장롱 1 · 이송지 새솔웨딩홀⁠」⁠. 상현이 대신 써 온 것이었다⁠.

“⁠서명만 하시면 됩니다⁠.⁠”

“⁠이것도 오타 아니죠⁠?⁠”

“⁠오타 아닙니다⁠.⁠”

우찬이 서명하는 동안 상현이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 하나를 보였다⁠. 부동산 앱이었다⁠. 「⁠더채움 센트럴 103동 84㎡ 호가 평균 3⁠,000만 원 하향 · 해약 문의 3건⁠」⁠.

“⁠어제 의회 기사가 나간 뒤로 이렇습니다⁠. 103동이 단지에서 제일 많이 빠졌습니다⁠. 제 집도요⁠.⁠”

“⁠상무님 말이 맞았네요⁠.⁠”

“⁠제 말은 처음부터 틀린 적이 없습니다⁠.⁠” 상현이 휴대전화를 넣었다⁠. “⁠그래도 왔습니다⁠. 아버지가 장롱 계단은 꼭 봐야 한다고 하셔서요⁠.⁠”

봉술이 문틀 앞에서 돌아보았다⁠. “⁠계단은 아래가 무겁다니께⁠.⁠”

예식장 지배인이 유리문 안에서 나왔다⁠. 검은 정장에 무전기를 찬 남자였다⁠. 상현을 보자 허리를 숙였다가⁠, 장롱을 보고 표정이 굳었다⁠.

“⁠상무님⁠, 말씀은 들었는데요⁠. 가구 계단 운반은 규정에 없습니다⁠. 벽지 긁히면 저희가 물어내요⁠.⁠”

“⁠모서리 보호대 다 씌웠어요⁠.⁠” 우찬이 말했다⁠. “⁠긁히면 제가 물어 드려요⁠. 사고 확인서 써 드리고요⁠.⁠”

“⁠그리고 하객 입장 전에 끝내 주셔야 합니다⁠. 열한 시 반이요⁠.⁠”

“⁠사십 분이면 돼요⁠.⁠”

지배인이 비상계단 문을 열어 주려는데 주차장 쪽에서 굵은 목소리가 났다⁠.

“⁠못 올라가오⁠.⁠”

남성목이 검은 양복에 혼주 꽃을 달고 서 있었다⁠. 뒤에서 윤슬이 웨딩드레스 자락을 두 손으로 걷어 쥐고 뛰어왔다⁠. 재훈이 신랑 턱시도를 입은 채 따라왔다⁠.

“⁠장롱이 들어가면 식 안 하오⁠. 하객 이백오십이 다 찍소⁠. 내 딸 결혼식이 귀신 결혼식으로 돌아다니오⁠.⁠”

“⁠아빠⁠.⁠” 윤슬이 숨을 몰아쉬었다⁠. “⁠한 번만 들어 봐⁠.⁠”

“⁠안 드오⁠.⁠”

재훈이 장인 앞으로 나섰다⁠. 턱시도 소매가 짧아 손목이 다 드러났다⁠.

“⁠아버님⁠. 저 아버님 말씀 다 들었어요⁠. 식장도 아버님이 고르신 데로 했고⁠, 날짜도 아버님 날로 했어요⁠. 이것만 제 말 들어 주세요⁠.⁠” 재훈의 목소리가 떨리다가 멈췄다⁠. “⁠저는 할머니 앞에서 절하고 싶어요⁠. 오늘 안 하면 평생 못 해요⁠. 할머니가 오늘 가신대요⁠.⁠”

남성목이 입을 다물었다⁠. 장롱 위에서 덕례 할머니가 손가방을 무릎에 놓고 사돈 될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찬이 등짐 끈을 오른쪽부터 맸다⁠.

“⁠신부 아버님⁠, 올라가는 것만 보세요⁠. 위에 가서도 싫으시면 그 자리에서 도로 지고 내려올게요⁠.⁠”

*

비상계단은 좁았다⁠. 층마다 계단참에서 몸을 꺾어야 했다⁠. 우찬이 위에서 등짐을 지고 앞을 끌었고⁠, 상현이 아래에서 장롱 밑을 받쳤다⁠. 봉술이 말한 대로 아래가 무거웠다⁠. 상현은 재킷을 벗어 바트에게 맡겼다⁠. 하얀 셔츠 등판이 금방 젖었다⁠. 종태는 계단참마다 먼저 올라가 모서리 각도를 외쳤고⁠, 바트는 상현의 재킷을 팔에 걸고 장롱 옆을 잡았다⁠.

“⁠상무님⁠, 무릎으로 드세요⁠.⁠” 우찬이 위에서 말했다⁠.

“⁠압니다⁠. 열일곱 살 때 배웠습니다⁠.⁠”

“⁠반장님한테요⁠?⁠”

“⁠신당동 4층에서요⁠.⁠”

2층⁠, 3층⁠. 장롱 위에서 덕례 할머니가 계단참을 돌 때마다 “⁠아이고⁠” 했다⁠. 봉술은 계단참 벽을 손뼘으로 재며 앞서 올라갔다⁠. “⁠여기는 들어간다⁠. 여기도 들어간다⁠.⁠”

3층과 4층 사이 계단참이 가장 좁았다⁠. 장롱을 세워 돌리는데 위쪽 모서리가 벽에 닿기 직전이었다⁠. 바트가 잡은 귀퉁이가 미끄러졌다⁠. 장롱이 바깥으로 기울었다⁠. 우찬이 이를 악물었고⁠, 아래에서 상현이 “⁠잡아⁠!⁠” 하고 소리쳤다⁠. 처음 듣는 큰 목소리였다⁠.

검은 양복 소매가 빈 귀퉁이를 잡았다⁠.

남성목이었다⁠. 계단 아래에서 투덜대며 따라 올라오던 신부 아버지가 두 손으로 장롱 모서리를 받치고 있었다⁠. 혼주 꽃이 비뚤어졌다⁠. 장롱이 다시 반듯해졌다⁠.

남성목이 고개를 들었다⁠. 그대로 굳었다⁠.

“⁠사돈⁠.⁠” 덕례 할머니가 말했다⁠. 손가방을 두 손으로 쥐고 허리를 굽혔다⁠. “⁠우리 재훈이⁠, 잘 부탁혀요⁠. 착하기만 하고 눈치는 없어⁠. 그래도 손은 따뜻혀⁠.⁠”

남성목은 장롱을 놓지 않았다⁠. 입술이 몇 번 움직이다가 말이 나왔다⁠.

“⁠…⁠…앞줄 한 자리⁠, 비워 두겠소⁠.⁠”

계단 아래에서 윤슬이 드레스 자락을 쥔 채 울음을 터뜨렸다⁠. 재훈이 윤슬 어깨를 감쌌다⁠.

“⁠아버님⁠, 이제 놓으셔도 돼요⁠.⁠” 우찬이 말했다⁠.

“⁠끝까지 드오⁠.⁠” 남성목이 말했다⁠. “⁠내 사돈 어른이오⁠.⁠”

*

열한 시 이십 분⁠, 장롱은 4층 홀 앞쪽 기둥 옆에 놓였다⁠. 신부 입장 길에서 비켜난 자리였고⁠, 맨 앞줄 혼주석까지 열두 걸음이었다⁠. 지배인이 장롱에 하얀 리본을 하나 달았다⁠. 「⁠신랑 측 혼수⁠」라고 적힌 꼬리표였다⁠. 지배인 나름의 수습이었다⁠.

하객이 들어왔다⁠. 이백오십 개 의자가 찼다⁠. 하객들은 앞줄을 보고 수군거렸다⁠. 신랑 측 혼주석 맨 끝에 빈 의자 하나가 있었고⁠, 의자 위에 자주색 모란 손가방이 놓여 있었다⁠. 정확히는 손가방이 의자 앉는 자리에서 한 뼘 위⁠, 누군가의 무릎 높이에 떠 있었다⁠.

애자가 빈 의자 바로 옆에 앉았다⁠. 명구가 애자 옆에 앉았다⁠. 맞은편 신부 측 혼주석에서 남성목이 빈 의자를 보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우찬은 홀 맨 뒤 벽에 기대 서 있었다⁠. 작업복 위에 형광 노랑 조끼⁠, 흰 수건 머리띠⁠. 양복을 입을 틈이 없었다⁠. 예빈이 아빠 옆에 서서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뒷줄 의자에 상현이 땀에 젖은 셔츠 차림으로 앉아 있었고⁠, 봉술이 홀 출입문 문틀을 재고 있었다⁠. 길수는 양복 단추를 끝내 못 잠그고 우찬 옆에 섰다⁠. 종태는 허리 보호대를 한 채 의자에 기대 반쯤 졸았고⁠, 바트는 상현의 재킷을 여전히 팔에 걸고 있었다⁠.

신랑이 입장했다⁠. 신부가 아버지 팔을 잡고 입장했다⁠. 남성목이 딸의 손을 재훈에게 넘기고 혼주석으로 돌아가다가⁠, 빈 의자 앞에서 잠깐 멈춰 고개를 숙이고 지나갔다⁠. 하객들이 웅성거렸다⁠.

식이 끝나 갈 무렵⁠, 사회자가 말했다⁠. “⁠신랑 신부⁠, 양가 부모님께 인사드리겠습니다⁠.⁠”

재훈과 윤슬이 신부 측 혼주석에 절을 했다⁠. 신랑 측으로 돌아섰다⁠. 명구와 애자 앞에서 절을 했다⁠. 그리고 한 걸음 옆으로 옮겼다⁠. 빈 의자 앞이었다⁠.

재훈과 윤슬이 빈 의자를 향해 큰절을 했다⁠.

덕례 할머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우찬의 눈에는 다 보였다⁠. 연분홍 한복⁠, 쪽진 흰머리⁠, 비녀⁠, 하늘빛 얼굴⁠. 할머니는 손가방을 무릎에 놓고 두 손을 모아 손자의 절을 받았다⁠. 입을 크게 벌리고 웃다가⁠, 이내 손등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손등이 눈가를 그대로 지나갔다⁠.

“⁠아이고⁠, 우리 재훈이⁠.⁠”

애자가 옆에서 손을 뻗어 빈 의자 팔걸이를 잡았다⁠.

*

단체 사진 차례가 왔다⁠. 사진사가 앞줄을 보고 손짓했다⁠.

“⁠신랑 측 앞줄⁠, 빈자리 하나 채워 주세요⁠!⁠”

“⁠비워 두세요⁠.⁠” 애자가 말했다⁠.

사진사가 고개를 갸웃했다가 빈 의자 위의 손가방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재훈과 윤슬이 가운데 서고⁠, 남성목과 명구가 양옆을 채웠다⁠. 우찬은 사진에 안 들어가려고 뒤로 빠지다가 재훈에게 손목을 붙들렸다⁠.

“⁠사장님⁠, 맨 뒷줄 서 주세요⁠. 할머니 모셔 온 분이잖아요⁠.⁠”

우찬은 맨 뒷줄 가장자리로 갔다⁠. 상현이 땀에 젖은 셔츠 차림으로 우찬 옆에 와 붙었다⁠. 봉술이 상현 뒤에서 아들 어깨 너머로 사진기를 넘겨다보았다⁠. 줄자는 아들 셔츠 주머니에 있었다⁠.

“⁠하나⁠, 둘⁠, 셋⁠.⁠”

플래시가 터졌다⁠.

덕례 할머니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손가방을 의자 위에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가방이 떠 있지 않았다⁠. 의자에 그대로 놓였다⁠. 할머니는 애자를 한 번 보고⁠, 재훈을 한 번 보고⁠, 맨 뒷줄의 우찬을 보았다⁠.

“⁠총각⁠, 잘 졌어⁠.⁠”

우찬은 대답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손을 흔들었다⁠. 장롱 위에서 처음 흔들던 손이었다⁠.

하객들이 흩어지는 동안 우찬은 앞쪽 기둥 옆으로 가서 장롱에 등짐 끈을 걸었다⁠. 오른쪽부터 맸다⁠.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폈다⁠.

장롱이 가벼웠다⁠.

머리 위가 조용했다⁠. 우찬은 장롱을 진 채 한참 서 있었다⁠. 앞줄에서 애자가 빈 의자에 놓인 자주색 모란 손가방을 두 손으로 들어 무릎에 올렸다⁠. 하얗게 닳은 손잡이에 애자의 엄지가 닿았다⁠. 재훈이 신랑 꽃을 단 채 엄마 옆 빈 의자에 앉았다⁠. 윤슬이 드레스 자락을 모아 재훈 옆에 앉았다⁠. 맨 앞줄 의자 셋에 세 사람이 손가방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았고⁠, 홀 창으로 들어온 한낮 햇빛이 아무도 앉지 않은 장롱 꼭대기를 지나 자개 학의 날개에 내려앉았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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