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416자)

며느리가 장롱을 들었다

귀신도 옮기는 이삿짐센터 · 윤바로

9월 25일 토요일 아침 여섯 시⁠, 차고 마당에 안개가 낮게 깔렸다⁠. 우찬은 장롱 앞에 서서 목장갑을 꼈다⁠. 예빈은 컨테이너 문턱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있었다⁠. 사흘 동안 할머니 손가방 속에 들어 있던 트럭 열쇠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 다시 여쭤볼게요⁠.⁠”

덕례 할머니가 손가방을 무릎에 올려놓고 우찬을 내려다보았다⁠. 아침 햇빛이 하늘빛 몸을 지나 장롱 자개에 닿았다⁠. 학 날개가 반짝였다⁠.

“⁠가자⁠.⁠”

예빈이 고개를 들었다⁠. “⁠할머니⁠!⁠”

“⁠처자⁠, 내 말 들어 봐⁠.⁠” 할머니가 가방 잠금쇠를 열었다⁠. “⁠총각 트럭 뺏기면 시월 이튿날 나 탈 차가 없어⁠. 결혼식 가려도 차가 있어야 갈 거 아녀⁠. 절 구경이나 허자⁠. 싫으면 돌아오면 되지⁠.⁠”

“⁠절에 들어가면 못 나와요⁠.⁠”

“⁠나는 장롱에서도 나왔어⁠.⁠”

열쇠가 손가방에서 떠올라 우찬의 손바닥에 내려앉았다⁠. 쇠가 차가웠다⁠. 예빈은 아무 말 없이 일어나 카메라 가방을 메고 조수석에 올랐다⁠. 우찬은 그게 예빈의 대답이라는 것을 알았다⁠. 따라간다는 대답이었다⁠.

종태와 바트가 장롱을 짐칸에 묶었다⁠. 바트가 결박끈을 당기며 말했다⁠.

“⁠사장님⁠, 몽골에서는 절에 갈 때 우유를 뿌려요⁠.⁠”

“⁠여긴 우유 없어⁠.⁠”

“⁠바나나 우유 있어요⁠.⁠”

*

강화대교를 건너는 동안 다리 아래 갯벌이 은빛으로 번들거렸다⁠. 트럭 뒤로 상현의 검은 승용차가 따라왔고⁠, 승용차 뒤로 명구의 차가 따라왔다⁠. 명구의 조수석에는 애자가 앉아 있었다⁠. 사이드미러 속에서 애자는 앞만 보고 있었다⁠.

예빈이 휴대전화를 보다가 말했다⁠. “⁠아빠⁠, 상무가 단톡방에 글 올렸어⁠.⁠”

「⁠입주민 여러분⁠, 오늘 저희 아버지와 1702호 할머님의 물건을 강화의 절에 모십니다⁠. 단지 안에 귀신 붙은 물건은 이제 없습니다⁠. 그동안 불안하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계상현⁠」

글 밑에 하루맘이 한 줄을 달았다⁠. 「⁠상무님⁠, 아버님께 인사 전해 주세요⁠」⁠. 다른 입주민 몇이 따라서 같은 말을 달았다⁠.

“⁠아빠⁠, 이거 다 끝나는 거야⁠?⁠”

“⁠그래⁠.⁠”

“⁠아빠 얼굴은 안 끝났다는데⁠.⁠”

우찬은 핸들을 꽉 쥐었다⁠. 짐칸 쪽 작은 창 너머로 덕례 할머니가 갯벌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바다가 다 빠졌네⁠. 우리 영감 고향이 여기 근처여⁠. 교동⁠. 다리 없을 때는 배 타고 건넜어⁠.⁠”

*

갯솔암은 마니산 기슭 소나무 숲 속에 있었다⁠. 트럭은 산문 아래 공터에서 멈췄다⁠. 절까지는 돌계단이었다⁠. 우찬이 올려다보니 계단이 소나무 사이로 구불구불 끝도 없이 올라갔다⁠.

“⁠스님⁠, 몇 칸이에요⁠?⁠”

마중 나온 주지 스님이 합장했다⁠. 일흔쯤 된 작은 스님이었다⁠. “⁠백여덟 칸입니다⁠.⁠”

종태가 계단을 보고 허리를 짚었다⁠. “⁠사장님⁠, 나 백여덟 번뇌가 허리에 다 왔어⁠.⁠”

우찬이 장롱에 등짐 끈을 걸었다⁠. 오른쪽부터 맸다⁠. 상현의 승용차 옆에 서 있던 봉술이 그걸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상현은 왼손에 줄자를 쥐고 서 있었다⁠. 오늘도 재킷이 없었다⁠.

우찬이 지고⁠, 바트가 아래를 받치고⁠, 종태가 옆을 잡았다⁠. 장롱이 땅에서 뜨자 바트가 장롱 위를 올려다보고 입을 벌렸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한복 예뻐요⁠.⁠” 덕례 할머니가 “⁠몽골 총각이 인사성이 밝네⁠” 했다⁠. 종태는 옆에서 장롱 위를 보고 “⁠형님⁠, 진짜 계셨네⁠” 하더니 허리 아픈 것도 잊고 고개를 숙였다⁠. 계단 스무 칸까지는 괜찮았다⁠. 마흔 칸에서 종태가 “⁠아이고⁠” 하고 주저앉았다⁠. 명구가 얼른 종태 자리를 대신 잡았다⁠. 예순한 살 무릎이 계단마다 소리를 냈다⁠. 예순 칸⁠, 일흔 칸⁠. 바트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장롱 위에서 덕례 할머니가 “⁠아이고⁠, 살살 혀⁠” 하다가 아들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명구는 땀범벅이 된 채 장롱을 들고 있었지만⁠, 장롱을 처음 들어 보는 손이었다⁠. 할머니를 보았는지 명구는 말하지 않았다⁠. 명구는 고개를 숙이고 계단만 보며 울고 있었다⁠.

여든 칸째에서 명구의 무릎이 꺾였다⁠. 명구가 장롱 귀퉁이를 놓쳤다⁠. 장롱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우찬의 등에 무게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우찬은 이를 악물었다⁠. 바트가 아래에서 “⁠사장님⁠!⁠” 하고 소리쳤다⁠. 귀퉁이 하나가 비어 있었다⁠.

누군가 빈 귀퉁이를 잡았다⁠.

애자였다⁠. 계단 아래에서 맨 뒤로 따라오던 애자가 두 손으로 장롱 모서리를 받쳐 들고 있었다⁠. 단정하게 묶은 머리가 흘러내렸고⁠, 팔뚝이 떨렸다⁠. 장롱이 다시 반듯해졌다⁠.

애자가 고개를 들었다⁠. 숨이 멎었다⁠.

장롱 위에 연분홍 한복을 입은 시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쪽진 흰머리⁠, 비녀⁠, 하늘빛으로 비치는 얼굴⁠. 무릎 위에 자주색 모란 손가방⁠.

“⁠애미야⁠.⁠”

애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장롱을 놓지도 않았다⁠.

“⁠밤에 두 번 일어났다며⁠. 나는 한 번인 줄 알았어⁠.⁠”

“⁠세 번일 때도 있었어요⁠.⁠”

할머니가 손가방 손잡이를 엄지로 문질렀다⁠. 하얗게 닳은 자리였다⁠.

“⁠미안혀⁠.⁠”

애자의 입술이 떨렸다⁠. 우찬은 등에 장롱을 진 채 꼼짝하지 않았다⁠. 바트도⁠, 명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소나무 사이로 바람이 지나갔다⁠.

“⁠어머님⁠, 그거 말고요⁠.⁠” 애자가 말했다⁠. “⁠열다섯 해 동안 그거 말고 다른 말 하나만 듣고 싶었어요⁠.⁠”

할머니가 한참 애자를 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였다⁠. 장롱 위에서⁠, 며느리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

“⁠고맙다⁠. 애미야⁠. 고맙다⁠.⁠”

애자가 웃었다⁠. 우는 얼굴로 웃었다⁠. 장롱 모서리를 받친 손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송편 보셨어요⁠? 반달 반듯하게 빚은 거요⁠.⁠”

“⁠봤어⁠. 니가 이겼어⁠. 서른 몇 해 전에 벌써 이겼어⁠.⁠”

“⁠결혼식에 오세요⁠, 어머님⁠. 맨 앞줄⁠, 제 옆자리요⁠.⁠” 애자는 장롱을 놓지 않고 말했다⁠. “⁠집은요⁠, 아직 모르겠어요⁠. 그건 거짓말 못 하겠어요⁠.⁠”

“⁠알어⁠. 니는 거짓말을 못 혀⁠. 그래서 내가 너를 들인 겨⁠.⁠”

우찬은 등에 진 장롱을 고쳐 메었다⁠. 무게는 그대로였는데 가벼웠다⁠.

“⁠사모님⁠, 이제 놓으셔도 돼요⁠.⁠”

“⁠아뇨⁠.⁠” 애자가 말했다⁠. “⁠끝까지 들게요⁠.⁠”

*

백여덟 칸 위 절 마당은 좁았다⁠. 법당 옆 별채 앞에 상이 차려져 있었고⁠, 주지 스님이 목탁을 들고 기다렸다⁠. 우찬은 장롱을 내려놓지 않았다⁠. 등에 진 채로 마당 한가운데 서 있었다⁠.

상현이 마당으로 올라왔다⁠. 줄자를 쥔 손을 별채 쪽으로 내밀었다가 우찬을 보고 멈췄다⁠.

“⁠내려놓으시죠⁠, 길 사장님⁠.⁠”

“⁠못 내려요⁠.⁠”

“⁠약정서에 서명하셨습니다⁠.⁠”

“⁠압니다⁠.⁠” 우찬은 등짐 끈을 다시 조였다⁠. “⁠상무님⁠, 저 이 장롱 다시 지고 내려갑니다⁠. 약정은 깨요⁠. 이백십 가구도 안 받을게요⁠.⁠”

“⁠트럭은요⁠.⁠”

“⁠제가 알아서요⁠.⁠”

“⁠알아서 못 하시니까 이 자리에 오신 겁니다⁠.⁠” 상현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다음 주 금요일이면 트럭은 캐피탈로 갑니다⁠. 그다음 금요일이 결혼식입니다⁠. 트럭 없이 장롱을 어떻게 예식장에 옮깁니까⁠? 길 사장님 등으로요⁠?⁠”

“⁠네⁠. 등으로요⁠.⁠”

상현이 입을 다물었다⁠. 우찬은 상현의 손을 보았다⁠. 줄자를 쥔 손이었다⁠.

“⁠상무님은요⁠. 반장님 내려놓으실 수 있어요⁠?⁠”

상현이 손을 들었다⁠. 줄자를 주지 스님에게 건네려고 팔을 뻗었다⁠. 팔이 반쯤 가다가 멈췄다⁠. 상현 옆에서 봉술이 별채 문틀을 손뼘으로 재다가 말했다⁠.

“⁠상현아⁠, 여기 문틀은 낮다⁠. 나는 니 집이 좋더라⁠. 거실 문이 반듯해⁠.⁠”

상현의 팔이 내려왔다⁠. 줄자가 셔츠 주머니로 들어갔다⁠. 상현은 한동안 땅만 보았다⁠.

주지 스님이 목탁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두 분 다 안 맡기시면 저는 목탁을 두 번 친 걸로 하겠습니다⁠.⁠”

바트가 우찬 뒤에서 작게 박수를 쳤다⁠. 종태는 계단 맨 위 칸에 드러누워 “⁠나 여기 두고 가⁠” 하고 신음했다⁠.

상현이 고개를 들었다⁠. 눈가는 붉었지만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그럼 조례로 가겠습니다⁠. 다음 주 금요일 상임위에서 찬성 발언 하겠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단지에 계신 건 이제 다 압니다⁠. 귀신 붙은 물건이 둘이나 들어온 단지가 되는 겁니다⁠. 980세대가 그 대가를 냅니다⁠. 길 사장님이 아니라요⁠.⁠”

“⁠압니다⁠.⁠”

“⁠아시면서 지고 내려가십니까⁠?⁠”

“⁠견적서에 결혼식장이라고 쓰여 있어서요⁠.⁠”

애자가 장롱 옆에서 상현에게 고개를 숙였다⁠. “⁠상무님⁠, 동의서는 제가 거둘게요⁠. 죄송해요⁠.⁠”

상현은 애자에게 마주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먼저 계단을 내려갔다⁠. 봉술이 셔츠 주머니의 줄자를 따라가다 돌아보고 우찬에게 손을 들었다⁠. 오른쪽부터⁠, 하는 손짓이었다⁠.

내려가는 계단은 올라올 때보다 무서웠다⁠. 장롱 무게가 앞으로 쏠려 우찬의 무릎을 밀었다⁠. 우찬이 지고⁠, 바트가 뒤에서 당기고⁠, 애자와 명구가 양옆 귀퉁이를 잡았다⁠. 종태는 맨 앞에서 뒷걸음질로 내려가며 칸 수를 셌다⁠. 쉰 칸쯤에서 명구가 장롱 위를 힐끔 보더니 목소리를 냈다⁠.

“⁠어머니⁠.⁠”

“⁠왜⁠?⁠”

“⁠저 배 나왔죠⁠.⁠”

“⁠니 애비보다 더 나왔어⁠. 니 애비는 막걸리 배고 너는 뭔 배여⁠?⁠”

“⁠치킨 배요⁠.⁠”

명구가 웃었다⁠. 계단을 오를 때 울던 사람이 내려갈 때는 웃었다⁠. 애자가 명구를 보고 고개를 저었지만 입가가 따라 올라갔다⁠. 덕례 할머니는 아들과 며느리 사이에서 손가방을 무릎에 얹은 채 소나무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애미야⁠, 명구 치킨 끊겨⁠.⁠”

“⁠어머님이 말씀하세요⁠. 제 말은 안 들어요⁠.⁠”

“⁠내 말은 들어⁠?⁠”

“⁠어머님 말은 반만 들어요⁠.⁠”

할머니가 깔깔 웃었다⁠. 우찬 등에 장롱이 흔들렸다⁠. 바트가 뒤에서 “⁠할머니 웃으시면 무거워요⁠!⁠” 하고 소리쳤다⁠. 바트도 종태도 이제 할머니를 보았다⁠.

*

토요일 밤 열 시⁠, 차고 마당에 노란 반팔 티셔츠의 반길수가 왔다⁠. 우찬이 전화를 걸었고⁠, 길수는 이유도 묻지 않고 왔다⁠.

“⁠할부 몇 번 남았어⁠?⁠”

“⁠열일곱 번⁠. 두 번 밀렸고⁠.⁠”

길수가 트럭 둘레를 한 바퀴 돌았다⁠. 타이어를 발로 차 보고⁠, 짐칸 문을 열어 보고⁠,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어 보았다⁠. 엔진 소리가 마당을 채웠다⁠.

“⁠캐피탈 승계로 내가 받고⁠, 밀린 거 내가 넣고⁠, 위로 사백 얹어 줄게⁠. 월요일에 캐피탈 가서 명의 바꾸자⁠. 이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대야⁠.⁠”

“⁠그래⁠.⁠”

“⁠너 이거 팔면 우찬익스프레스는 뭐 타고 다녀⁠?⁠”

“⁠등⁠.⁠”

길수가 웃지 않았다⁠. 서류에 서명하는 동안 길수는 트럭 옆면을 보았다⁠. 파란 글씨로 「⁠우찬익스프레스⁠」⁠.

“⁠글씨는 내가 지운다⁠.⁠”

“⁠지우지 마⁠. 결혼식까진 내 이름이야⁠.⁠”

“⁠내 트럭에 니 이름 달고 다니라고⁠?⁠”

“⁠일주일만⁠.⁠”

길수는 대답 대신 열쇠를 받아 갔다⁠. 트럭이 차고 마당을 빠져나갔다⁠. 미등 두 개가 공업사 골목 끝에서 꺾여 사라졌다⁠. 마당에는 장롱 하나와 컨테이너 하나가 남았다⁠. 비 가림 지붕 아래 트럭을 대 두던 자리만 기름 자국으로 검었다⁠.

장롱 위에서 덕례 할머니가 물었다⁠.

“⁠총각⁠, 트럭 팔았어⁠?⁠”

“⁠네⁠.⁠”

“⁠나 때문에⁠?⁠”

“⁠견적서 때문에요⁠.⁠”

예빈이 컨테이너에서 나와 아빠 옆에 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빠 목장갑 한 짝을 빼서 자기 손에 꼈다⁠. 우찬은 장롱에 등짐 끈을 걸었다⁠. 오른쪽부터 맸다⁠. 무릎을 굽혔다가⁠, 장롱을 한 뼘 들어 올렸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다음 주 금요일엔 시의회까지 이걸로 가요⁠.⁠”

“⁠시의회가 몇 층이여⁠?⁠”

“⁠삼 층이요⁠.⁠”

할머니가 손가방을 무릎에 올려놓았다⁠. “⁠우리 영감은 이층 계단도 숨차 했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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