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84자)

강화도 절에 맡기면 다 끝납니다

귀신도 옮기는 이삿짐센터 · 윤바로

9월 20일 월요일 아침⁠, 입주민 소통방은 밤새 꺼지지 않았다⁠. 우찬은 예빈의 휴대전화로 화면을 넘겼다⁠. 「⁠상무 본인이 귀신 들인 거 실화냐⁠」 「⁠남의 장롱은 막고 자기 줄자는 들이고⁠」 「⁠분양 사기로 신고 가능한가요⁠」 「⁠301호 앞 엘베 타기 싫어요⁠」⁠. 욕설 사이사이 다른 말도 있었다⁠. 「⁠근데 아버님이시잖아요⁠」 「⁠나도 우리 아빠 라디오 못 버렸는데⁠」⁠. 하루맘은 공지를 하나 올려 두었다⁠. 「⁠개인 호수 공격은 강퇴합니다⁠. 방장⁠」⁠. 공지 밑에 「⁠1702호는 되고 301호는 안 되나요⁠?⁠」라는 물음이 달렸고⁠, 하루맘은 「⁠둘 다 안 됩니다⁠」라고만 답했다⁠.

아침 뉴스에서는 국토교통부 대변인이 짧게 말했다⁠. 「⁠귀신 고지는 법으로 정할 일이 아니며⁠, 지자체 조례 논의를 지켜보겠다⁠」⁠. 종태가 라디오를 끄며 “⁠나라도 모르는 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 했다⁠.

일본 방송은 일요일 밤에 나갔다⁠. 예빈이 찾아 준 화면에서 시의회 회의실의 줄자 장면이 느리게 돌았고⁠, 일본어 자막 아래 우찬의 얼굴이 크게 잡혔다⁠. 바트가 화면을 보고 말했다⁠. “⁠사장님⁠, 일본에서도 유명해요⁠. 몽골은 다음 주예요⁠.⁠”

“⁠몽골은 왜⁠.⁠”

“⁠제가 사촌한테 보냈어요⁠.⁠”

오후에 반길수가 전화를 했다⁠. 단지에서 들은 소문이라며 목소리를 낮췄다⁠. 더채움개발 본사가 계 상무에게 이달 말까지 입주민 불안을 끝낼 방안을 내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못 내면 2단지 담당에서 빠진다고 했다⁠.

“⁠우찬아⁠, 그 양반 이제 끝이야⁠.⁠”

“⁠너는 왜 그걸 나한테 말해⁠?⁠”

“⁠모르지⁠. 그 양반이 우리 업계 사람 아들이라며⁠. 반장님 아들이면 우리 집안이지⁠.⁠”

“⁠너는 반장님 밑에서 일 안 했잖아⁠.⁠”

“⁠한 달 했어⁠. 줄자 밟아서 잘렸어⁠.⁠”

*

월요일 밤 아홉 시⁠, 계상현이 차고 마당으로 걸어 들어왔다⁠. 처음으로 재킷을 벗고 있었다⁠. 하얀 셔츠 소매를 접어 올렸고⁠, 왼손에 노란 줄자를 쥐고 있었다⁠.

상현 뒤에 노인 하나가 따라 들어왔다⁠. 러닝셔츠 차림에 반백 머리를 짧게 깎았고⁠, 허리가 조금 굽었다⁠. 몸이 덕례 할머니처럼 하늘빛으로 비쳤다⁠. 장롱을 진 뒤로 우찬은 귀신을 보았다⁠. 노인은 마당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곧장 컨테이너 문틀 앞으로 갔다⁠. 상현이 쥔 줄자가 손에서 빠져나가 노인 손으로 넘어갔다⁠. 우찬 눈에는 노인이 줄자를 받는 것이었고⁠, 종태 눈에는 줄자가 혼자 날아가 문틀 앞에서 펴지는 것이었다⁠.

줄자 날이 문틀 꼭대기에 닿았다⁠. 탁⁠, 감겼다⁠.

“⁠이건 들어간다⁠.⁠”

우찬은 목장갑을 낀 손을 늘어뜨린 채 굳었다⁠. 스무 살 여름 이사 현장에서 수백 번 들은 말이었다⁠.

노인이 돌아보았다⁠. 우찬을 위아래로 훑고 입꼬리를 올렸다⁠.

“⁠우찬이 많이 늙었다⁠. 배도 나왔네⁠.⁠”

“⁠반장님⁠.⁠”

“⁠등짐 끈은 아직 왼쪽부터 매냐⁠? 내가 오른쪽부터 매라고 몇 번을 말했어⁠.⁠”

우찬이 웃다가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들지 못했다⁠. 종태가 뒤에서 “⁠사장님 왜 울어요⁠?⁠” 하고 물었고⁠, 바트가 “⁠몽골에서는 저럴 때 안 물어봐요⁠” 하고 종태 팔을 끌었다⁠.

장롱 위에서 덕례 할머니가 몸을 일으켰다⁠.

“⁠영감은 누구여⁠?⁠”

“⁠계봉술이오⁠. 이삿짐 했소⁠.⁠”

“⁠나는 하덕례여⁠. 장롱에 일 년 반 있었어⁠.⁠”

“⁠나는 줄자에 두 해요⁠. 내 거라 들고는 다니는디⁠, 들고 서른 걸음 넘어가면 손에서 툭 빠져⁠. 산 사람이 들어 줘야 멀리 가⁠.⁠” 봉술이 장롱을 올려다보았다⁠. “⁠자개가 좋네⁠. 육십 년대 거구먼⁠. 이건 계단 등짐으로 내렸겠다⁠. 누가 졌소⁠?⁠”

할머니가 우찬을 가리켰다⁠. 봉술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졌네⁠.⁠”

상현은 두 귀신이 말을 주고받는 동안 마당 한가운데 서 있었다⁠. 아버지를 보는 눈이 우찬이 이제껏 본 적 없는 눈이었다⁠.

*

컨테이너 안에서 상현은 서류 한 장을 우찬 앞에 놓았다⁠. 종태가 내 온 믹스커피가 종이컵에서 식고 있었다⁠.

“⁠강화도에 갯솔암이라는 작은 절이 있습니다⁠. 귀신 붙은 물건을 맡아 주는 곳입니다⁠. 태우지 않습니다⁠. 법당 옆 별채에 두고 아침저녁으로 목탁을 칩니다⁠. 주지 스님이 아버지 옛 손님이었습니다⁠. 1998년에 법당 불상을 아버지가 옮겼습니다⁠.⁠”

“⁠등으로 모셨지⁠.⁠” 봉술이 문틀에 기대 말했다⁠.

“⁠장롱과 줄자를 같이 맡기겠습니다⁠. 저도 아버지를 맡깁니다⁠.⁠” 상현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갈라졌다⁠. 상현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말했다⁠. “⁠그래야 단지가 끝납니다⁠. 귀신 붙은 물건이 단지에 하나도 없다고 입주민들 앞에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조례 표결이 10월 1일입니다⁠. 그 전에 끝나야 의원들이 조례를 거둡니다⁠.⁠”

“⁠결혼식은요⁠? 10월 2일이에요⁠.⁠”

“⁠결혼식 영상은 제가 갯솔암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큰 화면으로요⁠.⁠”

덕례 할머니가 문 밖에서 소리쳤다⁠. “⁠맨 앞줄이 아니잖여⁠!⁠”

상현은 할머니를 보았다⁠. “⁠압니다⁠, 할머님⁠.⁠”

상현이 서류를 우찬 쪽으로 밀었다⁠. 「⁠2단지 부지 주민 이주 이사 협력업체 약정서⁠」⁠. 2단지 부지 옛 주택가 이백십 가구의 이주 이사를 우찬익스프레스에 맡긴다는 내용이었다⁠. 맨 아래에 한 줄이 더 있었다⁠. 「⁠퇴마 출장비 청구는 철회한다⁠」⁠.

“⁠이백십 가구면 할부 남은 거 다 갚고도 남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 9월 25일에 강화로 가시면 월요일에 회사 도장을 받아 오겠습니다⁠.⁠”

9월 25일은 할부금이 두 번째로 밀리는 날이었다⁠. 캐피탈 문자에는 회수 절차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트럭이 없으면 종태 월급도 없고⁠, 바트의 고용도 없었다⁠. 바트는 우찬익스프레스에서 일한다는 조건으로 한국에 있었다⁠.

우찬은 문 밖을 보았다⁠. 덕례 할머니는 장롱 위에서 손가방을 끌어안고 있었다⁠. 봉술은 장롱 옆에서 줄자로 장롱 높이를 재고 있었다⁠.

“⁠반장님은 어떠세요⁠. 절에 가시는 거⁠.⁠”

봉술이 줄자를 감았다⁠. “⁠나는 내 새끼가 가자면 가⁠.⁠”

우찬은 서류를 오래 보았다⁠. 목장갑을 벗었다⁠. 볼펜을 집었다⁠.

“⁠결혼식 영상⁠, 큰 화면으로요⁠.⁠”

“⁠약속드립니다⁠.⁠”

우찬이 이름을 썼다⁠. 「⁠길우찬⁠」⁠. 마당에서 덕례 할머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열 시가 넘어 상현이 차로 가는 길에 우찬이 따라 나왔다⁠. 공업사 골목 가로등 아래서 상현이 담배를 꺼냈다가 불을 붙이지 않고 도로 넣었다⁠. 줄자는 상현의 손에 있었고⁠, 봉술은 줄자에서 스무 걸음쯤 떨어진 공업사 철문 앞에서 손뼘으로 철문 높이를 재고 있었다⁠.

“⁠열일곱 살 여름이었습니다⁠.⁠” 상현이 먼저 말했다⁠. “⁠방학이라 아버지 따라 이사를 나갔습니다⁠. 신당동 다세대 4층에서 재봉틀을 졌습니다⁠. 계단 중간에서 재봉틀 위에 앉은 아주머니가 실이 엉켰다고 하더군요⁠. 그날부터 봅니다⁠.⁠”

“⁠무서우셨겠네요⁠.⁠”

“⁠무서운 건 금방 끝났습니다⁠. 그다음이 길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지하철에서⁠, 수학여행 숙소에서 보였으니까요⁠. 아무한테도 말을 못 했습니다⁠. 말하면 이상한 애가 되니까요⁠.⁠” 상현이 공업사 철문 앞의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는 웃으시더군요⁠. 짐 무게를 아는 놈이 됐다고요⁠. 저는 짐을 안 지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집을 팔았습니다⁠.⁠”

“⁠반장님은 왜 줄자에 남으셨어요⁠?⁠”

“⁠제 집에 오래 살고 싶으시답니다⁠. 아들이 지은 집에요⁠. 그게 남은 일이라고요⁠.⁠” 상현이 차 문을 열었다⁠. “⁠오래가 언제까지인지는 말씀을 안 하십니다⁠.⁠”

봉술이 줄자를 감으며 걸어왔다⁠. 상현이 차에 오르자 봉술은 조수석 문을 열지 않고 문짝을 그대로 지나 앉았다⁠. 우찬을 향해 창 너머로 손을 들었다⁠.

“⁠우찬아⁠, 오른쪽부터 매⁠.⁠”

차가 골목을 빠져나갔다⁠. 우찬은 가로등 아래서 오른쪽 어깨를 한 번 돌려 보았다⁠.

*

9월 22일 수요일 아침⁠, 명구가 차고에 왔다⁠. 우찬이 전화로 강화 이야기를 한 뒤였다⁠. 명구는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보관이사 신청서를 꺼내 들었다⁠.

“⁠결혼식장까지 모셔다 주신다고 하셨잖습니까⁠?⁠”

“⁠죄송합니다⁠.⁠”

“⁠사장님⁠, 저는 서른 해를 미뤘어요⁠. 어머니한테도⁠, 집사람한테도⁠. 이번엔 안 미루려고 했습니다⁠.⁠” 명구는 신청서를 구기지 않았다⁠. 접어서 다시 봉투에 넣었다⁠. “⁠집사람이 계 상무한테 동의서를 써 줬으니 저는 막을 수가 없네요⁠. 토요일에 저도 가겠습니다⁠. 집사람도 간답니다⁠. 끝나는 거 보러요⁠.⁠”

명구가 나간 뒤 예빈이 컨테이너에서 나왔다⁠. 사흘 동안 아빠와 말을 하지 않았다⁠. 손에 트럭 열쇠를 들고 있었다⁠. 우찬이 아침마다 걸어 두는 컨테이너 못에서 빼 온 것이었다⁠.

“⁠아빠가 할머니 결혼식 보게 해 준다고 했잖아⁠.⁠”

“⁠빈아⁠.⁠”

“⁠아빠가 그랬잖아⁠. 견적서에 장롱 있으면 장롱 옮긴다며⁠. 견적서에 결혼식장이라고 쓰여 있잖아⁠.⁠”

“⁠트럭 없으면 아무도 못 옮겨⁠. 할머니도⁠, 다른 사람 짐도⁠.⁠”

“⁠그럼 내 광고 받으면 되잖아⁠. 삼십만이야⁠. 이불 회사에서 연락 왔어⁠. 「⁠귀신도 푹 자는 차렵이불⁠」⁠. 한 편에 이천이래⁠.⁠”

“⁠할머니가 이불 덮고 주무시는 거 봤어⁠?⁠”

“⁠안 덮어도 돼⁠. 가방이 이불 위에 얌전히 앉아 있으면 돼⁠. 그거면 이천이야⁠.⁠”

장롱 위에서 덕례 할머니가 물었다⁠. “⁠차렵이 뭐여⁠? 솜 빼고 누빈 거⁠?⁠”

“⁠네⁠, 할머니⁠.⁠”

“⁠그건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워⁠. 광고하지 마⁠.⁠”

예빈이 입을 다물었다⁠. 이불 광고는 할머니 말 한마디에 끝났다⁠. 우찬이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할머니 팔아서 트럭 사⁠?⁠”

“⁠아빠는 할머니 절에 맡기고 트럭 지키잖아⁠. 그게 더 팔아먹는 거야⁠.⁠”

우찬은 말이 막혔다⁠. 예빈의 목소리가 떨리지 않아서 더 막혔다⁠. 예빈은 장롱 앞으로 갔다⁠. 덕례 할머니를 올려다보았다⁠. 예빈은 장롱을 한 번 들어 본 사람이었다⁠.

“⁠할머니⁠, 이거 맡아 주세요⁠.⁠”

예빈이 트럭 열쇠를 위로 내밀었다⁠. 할머니가 손가방을 열었다⁠. 열쇠가 예빈의 손에서 허공으로 떠올라 자주색 손가방 속으로 들어갔다⁠. 딸깍⁠, 가방 잠금쇠가 닫혔다⁠.

“⁠빈아⁠!⁠”

우찬이 장롱 위로 손을 뻗었다⁠. 할머니가 손가방을 머리 위로 높이 들었다⁠. 우찬은 키가 컸지만 장롱 위에 앉은 할머니의 머리 위까지는 닿지 않았다⁠. 우찬이 발돋움을 하자 할머니가 가방을 반대편으로 옮겼다⁠. 우찬이 반대편으로 돌자 가방이 또 옮겨 갔다⁠. 종태 눈에는 마흔일곱 살 사장이 장롱 둘레를 돌며 허공의 가방을 쫓아 펄쩍펄쩍 뛰는 것으로 보였다⁠.

“⁠사장님⁠, 그만해요⁠. 동네 사람들 봐요⁠.⁠”

“⁠할머니⁠, 그거 주세요⁠. 할부 회수 들어와요⁠.⁠”

“⁠싫어⁠. 나 맨 앞줄 앉을 겨⁠.⁠”

“⁠장롱 위에서 사다리 놓고 올라갈 거예요⁠.⁠”

“⁠사다리 놓으면 나 서른 걸음 끝으로 날아갈 겨⁠. 그럼 총각 서른 걸음 쫓아와야 혀⁠.⁠”

바트가 조용히 말했다⁠. “⁠사장님⁠, 몽골에서는 할머니가 가방에 넣은 건 못 꺼내요⁠.⁠”

“⁠여기 몽골 아니야⁠.⁠”

“⁠할머니는 다 몽골이에요⁠.⁠”

우찬은 숨을 몰아쉬며 장롱에 손을 짚었다⁠. 예빈이 장롱 옆에 섰다⁠. 아빠와 장롱 사이였다⁠.

“⁠아빠⁠, 토요일에 강화 가도 돼⁠. 나도 실어⁠. 할머니가 열쇠 주면 가는 거고⁠, 안 주면 못 가는 거야⁠. 할머니 일이니까 할머니가 정해⁠.⁠”

장롱 위에서 덕례 할머니가 손가방을 무릎에 내려놓았다⁠. 잠금쇠 위로 손을 포갰다⁠. 마당에는 트럭과 장롱과⁠, 열쇠 없는 사장 하나가 남았다⁠.

할머니가 우찬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총각⁠, 토요일 아침에 나한테 다시 물어봐⁠.⁠”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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