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558자)

상무님 거실의 줄자

귀신도 옮기는 이삿짐센터 · 윤바로

9월 6일 월요일 아침⁠, 우찬은 차고 마당에서 트럭 타이어 공기압을 재며 103동 3층 베란다를 떠올렸다⁠. 은빛으로 반짝이던 것⁠. 덕례 할머니는 영감 하나가 줄자를 들고 있었다고 했다⁠. 상현은 103동 301호에 산다고 했다⁠. 높은 데를 싫어하는 식구가 있어서 3층이라고 했다⁠.

“⁠아빠⁠, 이거 끝난 거야⁠.⁠” 예빈이 컨테이너 문턱에 앉아 노트북을 무릎에 올려놓고 말했다⁠. “⁠상무 집에도 귀신 있다고 하면 끝나⁠. 남의 집 귀신은 막으면서 자기 집엔 들였잖아⁠.⁠”

“⁠하지 마⁠.⁠”

“⁠왜⁠? 저 사람이 할머니 태우자고 했어⁠.⁠”

“⁠빈아⁠, 그건 남의 집 짐이야⁠.⁠”

“⁠할머니도 남의 집 짐이잖아⁠. 아빠는 그거 지고 단지까지 갔잖아⁠.⁠”

우찬은 공기압 게이지를 타이어에서 뗐다⁠. 쉬익 소리가 났다⁠.

“⁠나는 할머니를 옮겼지⁠, 남의 집 문을 연 게 아니야⁠.⁠”

예빈은 대답 대신 노트북 화면을 아빠 쪽으로 돌렸다⁠. 하루맘에게서 온 메시지가 떠 있었다⁠. 「⁠빈이님⁠, 간담회 날 3층에서 본 거 말씀드릴게요⁠. 러닝셔츠 입은 할아버지가 줄자로 베란다 난간 재고 계셨어요⁠. 상무님 집이에요⁠. 저는 이 얘기 단톡방에 안 올릴 거예요⁠. 근데 누군가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하루맘도 안 올린대잖아⁠.⁠” 우찬이 말했다⁠.

“⁠그러니까 나한테 보낸 거지⁠.⁠”

장롱 위에서 덕례 할머니가 끼어들었다⁠.

“⁠그 영감 줄자 펴는 손이 이삿짐 하던 손이여⁠. 문틀 재는 품이 딱 그려⁠.⁠”

우찬은 게이지를 공구함에 넣었다⁠. 휴대전화에 문자가 와 있었다⁠. 「⁠[단비캐피탈] 할부금 2회 연체 예정 안내⁠. 9월 25일까지 미납 시 차량 회수 절차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예빈이 아빠 어깨 너머로 문자를 읽었다⁠.

“⁠아빠⁠, 우리 구독자 삼십만이야⁠. 광고 하나만 받으면 할부 막아⁠.⁠”

“⁠광고 받으면 할머니가 광고에 나와⁠.⁠”

“⁠가방이 나오지⁠.⁠”

우찬은 대답하지 않고 트럭에 올랐다⁠. 오후에 반짝이사가 떠넘긴 원룸 이사 한 건이 있었다⁠. 반길수가 단지 마흔 집에 사람을 다 돌리느라 자잘한 일을 우찬에게 넘긴 것이었다⁠.

*

9월 15일 수요일 추석 아침⁠, 차고 마당에 돗자리가 깔렸다⁠. 도명구가 재훈과 윤슬을 데리고 왔다⁠. 명구는 장롱 앞에 작은 상을 펴고 밤과 대추와 송편 한 접시를 올렸다⁠. 향을 피울 데가 마땅찮아 종이컵에 모래를 담아 꽂았다⁠.

“⁠어머니 첫 추석인데 집에서 못 모셔서요⁠.⁠” 명구가 우찬에게 말했다⁠. “⁠장롱 앞이면 어머니 앞이니까요⁠.⁠”

종태와 바트도 작업복 차림으로 뒤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명구와 재훈이 절을 두 번 했다⁠. 윤슬이 따라 하다가 한 번 더 해서 재훈이 옆구리를 찔렀다⁠. 덕례 할머니는 장롱 위에서 송편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애미가 빚었구먼⁠.⁠”

우찬이 명구를 보았다⁠. “⁠사모님이 빚으셨어요⁠?⁠”

“⁠네⁠, 어젯밤에요⁠. 저는 안 간다길래 이거라도 들려 보냈습니다⁠.⁠” 명구가 송편 하나를 집어 들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할머니가 그러세요⁠. 반달이 반듯하다고요⁠.⁠”

할머니가 손가방을 무릎에 놓고 송편을 오래 보았다⁠.

“⁠나는 반달을 삐뚤게 빚었어⁠. 애미가 시집와서 내 송편을 보고 웃더라고⁠. 그래서 내가 너는 얼마나 잘하나 보자 했지⁠. 그 뒤로 서른 몇 해를 애미가 빚었어⁠.⁠”

우찬은 할머니 말을 명구에게 옮겼다⁠. 명구는 송편을 손에 든 채 한참 말이 없었다⁠. 재훈이 아버지 등을 쓸었다⁠. 윤슬이 휴대전화로 상차림 사진을 찍다가 화면을 우찬에게 보여 주었다⁠. 송편 접시 옆⁠, 자주색 손가방 하나가 상 귀퉁이에 얌전히 내려앉아 있었다⁠. 할머니가 송편 가까이 가려고 가방을 내려놓은 것이었다⁠.

“⁠이 사진 엄마한테 보낼래요⁠.⁠” 윤슬이 말했다⁠. 재훈의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는 것이 아직 어색한 목소리였다⁠.

*

9월 17일 금요일 오후 두 시⁠, 부천시청 앞 주차장⁠. 우찬은 트럭을 시의회 건물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세웠다⁠. 그래도 회의실까지는 마흔 걸음이 넘었다⁠. 덕례 할머니는 장롱 위에서 시의회 건물을 노려보았다⁠.

“⁠나는 못 들어가⁠?⁠”

“⁠서른 걸음이 넘어요⁠.⁠”

“⁠내 얘기를 하는디 나를 안 들여보내⁠?⁠”

“⁠장롱 지고 들어가면 청원경찰이 막아요⁠.⁠”

바트가 짐칸 문턱에 걸터앉았다⁠. “⁠사장님⁠, 제가 할머니랑 있을게요⁠. 몽골에서는 손님 혼자 두면 늑대가 와요⁠.⁠”

“⁠여기 늑대 없어⁠.⁠”

“⁠시청엔 있을 수도 있어요⁠.⁠”

시의회 소회의실은 생각보다 작았다⁠. 긴 탁자 하나를 두고 의원 넷과 참고인 넷이 마주 앉았고⁠, 뒤쪽 방청석 의자 서른 개가 다 찼다⁠. 맨 뒷줄에 커다란 카메라를 멘 사람 둘이 있었다⁠. 예빈이 우찬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일본 방송국이야⁠. 내가 안 한다고 했는데 그냥 왔대⁠.⁠”

탁자 이름표에 참고인 넷이 적혀 있었다⁠. 「⁠더채움개발 상무 계상현⁠」 「⁠우찬익스프레스 대표 길우찬⁠」 「⁠더채움 센트럴 입주민 대표⁠」 그리고 「⁠한국전통퇴마협회 청명⁠」⁠. 청명 법사는 오늘도 흰 두루마기에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이마에 부적 자국은 없었다⁠.

위원장이 의사봉을 한 번 두드렸다⁠. 윤정택 의원이 조례안을 읽었다⁠.

“⁠귀신 붙은 물품은 퇴마 확인서 없이 동 경계를 넘어 옮길 수 없다⁠. 이송을 맡은 업체는 확인서를 받아야 하고⁠, 어기면 과태료를 문다⁠.⁠”

“⁠과태료가 얼마예요⁠?⁠” 우찬이 물었다⁠.

“⁠백만 원입니다⁠.⁠”

종태가 방청석에서 “⁠허리 값보다 비싸네⁠” 하고 중얼거렸다가 예빈에게 옆구리를 찔렸다⁠.

*

상현이 먼저 말했다⁠. 오늘도 재킷을 벗지 않았다⁠.

“⁠더채움 센트럴 매물은 오늘 기준 스물여섯 건입니다⁠. 84제곱미터 호가는 평균 이천삼백만 원 내려갔습니다⁠. 다른 단지에서도 비슷한 민원이 들어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귀신을 막자는 조례가 아닙니다⁠. 귀신이 들어왔는지 모르는 불안을 막자는 조례입니다⁠. 확인서 한 장이면 입주민은 안심합니다⁠.⁠”

위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현이 이어 말했다⁠.

“⁠길 사장님 사정도 압니다⁠. 할머님 사정도 압니다⁠. 하지만 980세대에는 980개의 사정이 있습니다⁠. 한 분의 사정을 위해 980개의 사정을 걸 수는 없습니다⁠.⁠”

윤정택 의원이 “⁠좋은 말씀입니다⁠” 했다⁠. 위원장이 우찬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우찬은 이번엔 마이크를 바로 잡았다⁠.

“⁠확인서는 누가 써요⁠?⁠”

윤정택 의원이 청명 법사를 가리켰다⁠. “⁠전문가 단체가 쓰지요⁠.⁠”

“⁠법사님요⁠?⁠” 우찬이 청명 법사를 보았다⁠. “⁠법사님⁠, 저희 차고에서 부적 붙이셨잖아요⁠. 그 부적 어디 붙었어요⁠?⁠”

청명 법사가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장소가 좀⁠…⁠… 기운이 셌습니다⁠.⁠”

“⁠법사님 이마에 붙었어요⁠.⁠”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일본 방송국 카메라가 청명 법사에게 돌아갔다⁠.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 번 두드렸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요⁠.⁠” 우찬은 웃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이삿짐 일 하는 사람은 다 알아요⁠. 짐에 붙은 분이 있는 집은 어디에나 있어요⁠. 지금까지는 아무도 몰라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이 조례가 생기면 사람들이 그런 짐을 버리거나 태워요⁠. 확인서 받기 싫어서요⁠. 할머니 한 분 사정이 아니에요⁠. 아버님 시계⁠, 어머님 재봉틀⁠, 그런 짐 다요⁠.⁠”

상현이 우찬을 보았다⁠. “⁠그럼 길 사장님은 그 짐들을 숨기자는 겁니까⁠?⁠”

“⁠옮기자는 거예요⁠.⁠”

“⁠숨기고 옮기면 숨긴 겁니다⁠.⁠” 상현의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사장님은 등으로 모신다고 하셨죠⁠. 입주민들은 등이 없습니다⁠. 통장이 있습니다⁠. 통장은 귀신을 못 지고요⁠.⁠”

이번에는 방청석이 조용했다⁠. 우찬은 반박할 말을 찾았다⁠. 상현의 말은 틀린 데가 없었다⁠. 하루맘이 입주민 대표 자리에서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상무님 말씀도 맞아요⁠.⁠” 우찬이 말했다⁠. “⁠근데 상무님은 아시잖아요⁠. 보이시잖아요⁠. 보이는 분이 왜 확인서를 믿으세요⁠?⁠”

상현의 손가락이 탁자 위에서 멈췄다⁠. 위원장이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상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방청석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났다⁠.

*

예빈이 일어나 있었다⁠. 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방청객 길예빈입니다⁠. 일 분만 영상을 보여 드려도 될까요⁠? 이 조례랑 관계있는 영상이에요⁠.⁠”

우찬이 고개를 저었다⁠. 예빈은 아빠를 보지 않았다⁠. 위원장이 윤정택 의원을 보았고⁠, 의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위원장이 말했다⁠.

“⁠일 분입니다⁠.⁠”

예빈이 휴대전화를 회의실 화면에 연결했다⁠. 더채움개발 공식 채널의 영상이 떴다⁠. 제목은 「⁠상무가 직접 사는 단지 — 103동 301호 입주 첫날⁠」⁠. 8월 초에 올라온 홍보 영상이었다⁠. 화면 속 상현이 새 거실 소파에 앉아 웃고 있었다⁠. 지금보다 덜 지친 얼굴이었다⁠.

「⁠저도 여기 삽니다⁠. 제가 분양한 집에 제가 사는 게⁠, 제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말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빈이 영상을 멈췄다⁠. 이 분 십사 초⁠. 상현의 어깨 너머⁠, 안방 문틀 앞이었다⁠. 예빈이 화면을 키웠다⁠. 영상을 다시 재생했다⁠.

문틀 앞 허공에서 노란 줄자 하나가 혼자 떠올랐다⁠. 줄자 날이 위로 쭉 펴져 문틀 꼭대기에 닿았다⁠. 잠깐 멈췄다⁠. 줄자 날이 탁 소리를 내며 감겨 들어갔다⁠. 줄자는 허공에서 한 번 흔들리고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소파의 상현은 웃는 얼굴 그대로였다⁠.

회의실에 숨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일본 방송국 카메라맨이 렌즈를 화면 쪽으로 천천히 돌렸다⁠.

하루맘이 입주민 대표 자리에서 손을 들었다⁠.

“⁠저 간담회 날 봤어요⁠. 커뮤니티센터 창문으로요⁠. 103동 3층 베란다에 러닝셔츠 입은 할아버지가 줄자로 난간을 재고 계셨어요⁠. 장롱을 들고 나서 처음 본 귀신이 그분이에요⁠.⁠”

방청석이 웅성거렸다⁠. 윤정택 의원이 상현을 보았다⁠. 상현은 아무도 보지 않았다⁠.

우찬은 화면을 보고 있었다⁠. 예빈이 멈춰 둔 장면에서⁠, 문틀 앞 허공의 줄자가 가장 크게 잡혀 있었다⁠. 노란 몸통에 손때가 까맣게 앉았고⁠, 줄자 날 끝 고리에 빨간 절연테이프가 두 겹 감겨 있었다⁠. 몸통 옆에 송곳으로 새긴 글자 하나가 보였다⁠. 「⁠계⁠」⁠.

스무 살 여름⁠, 우찬은 이 줄자를 처음 보았다⁠. 반장님은 문틀만 보면 줄자를 폈다⁠. 재고 나면 웃었다⁠. “⁠이건 들어간다⁠.⁠” 줄자 날 끝이 자꾸 손을 베어서 반장님이 빨간 테이프를 감았다⁠. 우찬이 반장님 밑에서 여섯 해를 일하는 동안 테이프는 세 번 바뀌었고⁠, 색은 늘 빨강이었다⁠. 반장님 성은 계였다⁠. 우찬은 반장님 이름을 부른 적이 없었다⁠. 반장님이라고만 불렀다⁠.

“⁠계봉술 반장님⁠.⁠”

우찬의 입에서 이름이 먼저 나왔다⁠. 상현이 고개를 들었다⁠. 처음으로 우찬을 정면으로 보았다⁠. 안경 너머 눈이 붉었다⁠.

상현이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밀리는 소리가 회의실을 채웠다⁠. 상현은 넥타이 매듭을 한 번 눌렀다⁠. 덕례 할머니에게 인사하던 날과 같은 손짓이었다⁠.

“⁠제 아버지입니다⁠.⁠”

윤정택 의원이 입을 벌렸다⁠. 청명 법사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하루맘은 손으로 입을 막았다⁠.

“⁠계봉술⁠. 서른다섯 해 이삿짐 반장이었습니다⁠. 2025년 겨울에 돌아가셨고⁠, 줄자에 붙어 계십니다⁠. 제가 7월 30일 입주 첫날 그 줄자를 품에 안고 301호에 들어갔습니다⁠. 아무한테도 맡기지 않았습니다⁠. 이삿짐센터에도요⁠.⁠”

상현은 우찬을 보았다⁠.

“⁠아버지가 그러셨습니다⁠. 부천에서 등짐 제일 잘 지는 놈이 길우찬이라고⁠. 그래서 협력업체 명단에 사장님 회사를 넣었습니다⁠.⁠”

우찬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목장갑을 낀 손이 탁자 아래에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창밖 주차장에서 트럭 짐칸 위로 자주색 손가방이 높이 떠올랐다가 내려앉는 것이 회의실 창문으로 보였다⁠. 서른 걸음 밖에서 덕례 할머니가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우찬을 부르고 있었다⁠.

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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