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516자)

의심 가는 분은 한 번 져 보세요

귀신도 옮기는 이삿짐센터 · 윤바로

9월 4일 토요일 오후 두 시 반⁠, 더채움 센트럴 정문 경비실 유리창에서 「⁠반입 보류⁠」 종이가 잠깐 떼어졌다⁠. 경비원이 종이를 반으로 접어 서랍에 넣으며 우찬에게 말했다⁠.

“⁠네 시에 다시 붙여요⁠. 상무님이 그러셨어요⁠.⁠”

“⁠금괴 들어갑니다⁠.⁠”

“⁠알아요⁠. 할머니 금괴⁠.⁠”

트럭은 커뮤니티센터 앞 하역 자리에 멈췄다⁠. 우찬은 짐칸에 올라 결박끈을 풀고 장롱에 등짐 끈을 걸었다⁠. 덕례 할머니는 아침부터 비녀를 세 번 고쳐 꽂았다⁠. 쪽진 머리가 반듯했고 연분홍 저고리 고름도 다시 맸다⁠. 우찬이 등짐을 지고 일어서자 할머니가 장롱 위에서 허리를 꼿꼿이 폈다⁠.

“⁠총각⁠, 나 괜찮어⁠?⁠”

“⁠예쁘세요⁠.⁠”

“⁠거짓말허지 마⁠. 귀신이 예쁘긴⁠.⁠”

“⁠그럼 왜 물어보세요⁠?⁠”

“⁠예쁘다는 소리 들으려고 물었지⁠.⁠”

바트가 유리문을 잡아 주며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떨었다⁠. 우찬은 커뮤니티센터 유리문 문턱을 넘었다⁠. 할머니는 장롱과 함께 문지방을 넘으며 “⁠아이고⁠, 들어왔다⁠” 하고 손뼉을 쳤다⁠.

다목적실에 의자가 백 개쯤 놓여 있었고⁠, 빈 의자가 거의 없었다⁠. 앞 탁자에 계상현이 앉아 있었고⁠, 옆에 방장 하루맘이 마이크를 쥐고 서 있었다⁠. 맨 끝자리에는 쉰 중반쯤 되는 남자가 양복 깃에 금빛 배지를 달고 앉아 있었다⁠. 부천시의원 윤정택이었다⁠. 사람들이 우찬의 등을 보았다⁠. 정확히는 장롱 위에 떠 있는 자주색 손가방을 보았다⁠. 몇이 의자를 뒤로 끌었다⁠.

우찬은 장롱을 탁자 옆에 내려놓았다⁠. 맨 뒷줄 구석에 애자가 앉아 있었다⁠. 애자는 장롱을 보지 않고 앞사람 뒤통수만 보았다⁠. 맞은편 창가 자리에는 재훈과 윤슬이 앉아 있었고⁠, 윤슬 옆에 머리가 하얗게 센 남자가 팔짱을 끼고 있었다⁠.

*

하루맘이 마이크를 두드렸다⁠.

“⁠시작할게요⁠. 단톡방 투표 결과부터요⁠. 반입 금지 찬성 618⁠, 반대 71입니다⁠.⁠”

박수가 조금 나왔다⁠. 상현이 일어났다⁠. 화면에 표 하나가 떴다⁠.

“⁠분양사 계상현입니다⁠. 저도 103동에 사는 입주민입니다⁠.⁠” 상현은 표를 손으로 가리키지 않고 숫자만 읽었다⁠. “⁠8월 23일 이 단지 매물은 두 건이었습니다⁠. 어제 기준 열아홉 건입니다⁠. 84제곱미터 호가는 평균 이천만 원 내려갔습니다⁠. 대출 비율이 높은 세대일수록 먼저 내놓았습니다⁠.⁠”

“⁠이천만 원이요⁠?⁠” 앞줄에서 누가 말했다⁠.

“⁠평균입니다⁠. 더 내린 집도 있습니다⁠.⁠” 상현이 우찬을 보았다⁠. “⁠저는 길 사장님 사정도 압니다⁠. 할머님 사정도 압니다⁠. 그래도 반입 금지에 찬성합니다⁠. 소문이 붙은 단지는 소문이 떨어질 때까지 오래 걸립니다⁠. 저는 그걸 한 번 봤습니다⁠.⁠”

상현이 앉았다⁠. 하루맘이 마이크를 우찬에게 넘겼다⁠. 우찬은 마이크를 받아 들고 한참 들고만 있었다⁠. 이런 데서 말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이사 현장에서는 소리를 지르면 됐다⁠.

“⁠우찬익스프레스 길우찬입니다⁠. 이사 일 스물일곱 해 했습니다⁠.⁠”

“⁠영상 봤어요⁠!⁠” 뒤에서 누가 외쳤다⁠. 웃음이 터졌다⁠.

“⁠감사합니다⁠. 근데 영상엔 가방만 나와요⁠.⁠” 우찬은 장롱을 돌아보았다⁠. “⁠여기 980세대가 이사 오셨잖아요⁠. 그 짐 가운데 사연 없는 짐이 몇이나 될 것 같으세요⁠? 돌아가신 아버님 시계⁠, 어머님 재봉틀⁠, 할머님 장롱⁠. 저희는 그런 짐을 하루에도 몇 개씩 옮겨요⁠. 저희 업계엔 오래된 말이 있어요⁠. 짐에 붙은 분은 등으로 모신다⁠.⁠”

상현이 탁자 위에서 볼펜을 내려놓았다⁠. 소리가 작게 났다⁠.

“⁠귀신이 무서우시면⁠, 반대하실 분은 먼저 한 번 져 보세요⁠. 들어 보시면 보여요⁠. 보시고 나서도 싫으시면⁠, 저는 이 단지에 다시 안 와요⁠.⁠”

다목적실이 조용해졌다⁠. 상현이 마이크 없이 말했다⁠.

“⁠드시는 분은 오늘부터 귀신을 봅니다⁠. 이 장롱만이 아닙니다⁠. 평생입니다⁠. 그것까지 말씀드려야 공평합니다⁠.⁠”

웅성거림이 일었다⁠. 앞줄 여자 둘이 서로 손을 잡았다⁠. 우찬은 반박하지 않았다⁠. 상현의 말이 맞았다⁠. 우찬도 그날부터 보았다⁠.

“⁠그것도 맞아요⁠.⁠” 우찬이 말했다⁠. “⁠저는 보고 나서 이 단지 사람들이 다 무서워졌어요⁠. 귀신은 할머니 한 분인데요⁠.⁠”

웃음 몇 개가 터졌다가 금방 꺼졌다⁠.

*

맨 처음 손을 든 사람은 1105동에 사는 은퇴 교사였다⁠. 일흔 남짓⁠, 조끼 주머니에 볼펜 세 자루를 꽂은 할아버지였다⁠.

“⁠내가 들어 보지⁠. 나는 평생 애들 앞에서 무서운 척을 못 했어⁠.⁠”

은퇴 교사가 장롱 모서리를 잡았다⁠. 우찬이 반대편을 들었다⁠. 장롱이 한 뼘 떴다⁠. 교사의 눈이 커졌다⁠.

“⁠어이구⁠, 안녕하십니까⁠?⁠”

“⁠아이고⁠, 선생님이여⁠? 우리 재훈이 3학년 담임 선생님 닮았네⁠. 그 양반은 대머리였는디⁠.⁠”

“⁠저도 대머리입니다⁠.⁠”

“⁠그러니께 닮았지⁠.⁠”

교사가 장롱을 내려놓고 허허 웃었다⁠. 다목적실 사람들은 교사가 혼자 웃는 것만 보았다⁠. 교사가 마이크를 달라더니 말했다⁠.

“⁠분홍 한복 입으신 할머님이 계십니다⁠. 나를 대머리라 하셨는데⁠, 틀린 말이 아니에요⁠.⁠”

이번에는 웃음이 크게 터졌다⁠. 하루맘이 웃지 않고 장롱 앞으로 걸어 나왔다⁠. 유모차는 남편에게 맡겨 두고 왔다⁠. 하루맘이 장롱 모서리를 잡았다⁠.

“⁠들어 볼게요⁠. 방장이 안 들면 말이 안 되잖아요⁠.⁠”

장롱이 떴다⁠. 하루맘은 할머니를 오래 보았다⁠. 덕례 할머니도 하루맘을 보았다⁠.

“⁠애기 엄마구먼⁠. 그날 유모차⁠.⁠”

“⁠네⁠.⁠”

“⁠애기 이름이 뭐여⁠?⁠”

“⁠하루요⁠. 하루 종일 울어서 하루예요⁠. 진짜 이름은 아직 입에 안 붙었어요⁠.⁠”

“⁠우리 명구도 그랬어⁠. 밤새 울어서 내가 업고 동네를 열 바퀴 돌았지⁠. 근데 그놈이 지금 예순하나여⁠. 하루도 금방이여⁠.⁠”

하루맘이 장롱을 내려놓았다⁠. 손이 조금 떨렸다⁠. 하루맘은 숨을 고르며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커뮤니티센터 창으로 103동 낮은 층 베란다들이 보였다⁠. 하루맘의 눈이 한곳에서 멈췄다⁠.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하루맘은 상현을 한 번 보고⁠, 아무 말 없이 자리로 돌아갔다⁠.

우찬은 하루맘이 본 곳을 보았다⁠. 3층 베란다 하나에 빨래 건조대가 있었고⁠, 난간 앞에 무언가 은빛으로 반짝였다⁠. 햇빛이 비쳐서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상현은 탁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볼펜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얬다⁠.

*

“⁠한마디만 합시다⁠.⁠”

윤슬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남자가 일어났다⁠. 윤슬이 아빠 소매를 잡았다⁠. 남자는 소매를 빼냈다⁠.

“⁠남성목이오⁠. 신부 아비요⁠. 나는 이 단지에 안 살지만 오늘은 와야겠어서 왔소⁠.⁠”

재훈이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다⁠. “⁠아버님⁠.⁠”

“⁠자네는 앉게⁠.⁠” 남성목이 우찬을 똑바로 보았다⁠. “⁠시월 이튿날 예식장에 저 장롱이 온다고 들었소⁠. 하객이 이백오십이오⁠. 우리 집안 어른들이 다 와요⁠. 귀신 오는 결혼식이라고 영상이 또 돌면 내 딸은 평생 그 소리를 듣소⁠. 나는 그거 못 하오⁠.⁠”

“⁠아버님⁠, 할머니는 앞줄에 앉으시기만⁠…⁠…⁠.⁠”

“⁠앞줄은 혼주 자리요⁠. 혼주 자리에 귀신이 앉으면 나는 어디 앉소⁠.⁠”

다목적실에서 누군가 웃었다가 얼른 입을 막았다⁠. 남성목은 웃지 않았다⁠. 재훈이 우찬을 보았다⁠. 우찬은 재훈을 대신해 말할 수 없었다⁠. 남의 집 결혼식이었다⁠.

“⁠사장님 말씀대로 들어 보시면⁠…⁠…⁠.⁠” 윤슬이 말했다⁠.

“⁠안 드오⁠. 평생 귀신을 본다잖아⁠.⁠” 남성목이 상현을 가리켰다⁠. “⁠저분이 그랬소⁠.⁠”

상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덕례 할머니가 장롱 위에서 일어나 남성목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남성목 눈에는 자주색 손가방 하나가 허공에서 천천히 고개를 숙이듯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것만 보였다⁠. 남성목이 팔짱을 풀었다가 다시 꼈다⁠.

“⁠인사는 됐소⁠.⁠”

뒷줄 구석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났다⁠. 애자가 일어나 다목적실 문을 나가고 있었다⁠. 아무도 붙잡지 않았다⁠. 덕례 할머니가 장롱 위에서 문을 보았다⁠. 서른 걸음 밖이었다⁠.

*

하루맘이 현장 투표를 다시 했다⁠. 손을 드는 방식이었다⁠. 찬성이 예순하나⁠, 반대가 서른여덟⁠. 단톡방보다 반대가 많았지만 찬성이 이겼다⁠. 하루맘은 숫자를 읽고 나서 덧붙였다⁠.

“⁠저는 이번엔 기권할게요⁠. 들어 봤으니까요⁠.⁠”

상현이 일어섰다⁠. “⁠결과대로 입주지원센터는 반입 보류를 유지하겠습니다⁠. 길 사장님⁠, 네 시까지 나가 주십시오⁠.⁠”

우찬은 장롱에 다시 등짐 끈을 걸었다⁠. 윤정택 의원이 다가와 명함을 내밀었다⁠. 금빛 배지가 형광등에 반짝였다⁠.

“⁠사장님⁠, 수고 많으셨어요⁠. 저는 이 동네가 지역구라서요⁠. 오늘 얘기 잘 들었습니다⁠.⁠”

“⁠들으셨으면 한 번 들어 보세요⁠. 장롱요⁠.⁠”

“⁠아이고⁠, 저는 허리가⁠.⁠” 의원이 웃었다⁠. “⁠요새 시청에도 이 민원이 하루 스무 건씩 들어와요⁠. 귀신 붙은 짐을 단지에 들이지 말게 해 달라⁠, 반대로 내 어머니 물건 못 들이게 하면 소송 걸겠다⁠. 의회가 뭐라도 정해야 할 때가 왔어요⁠.⁠”

“⁠뭘 정하시는데요⁠?⁠”

의원은 대답 대신 우찬의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

세 시 오십 분⁠, 우찬이 장롱을 짐칸에 다시 묶는데 재훈이 하역 자리로 뛰어왔다⁠. 셔츠 등판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윤슬은 아버지를 주차장으로 모시고 갔다고 했다⁠.

“⁠사장님⁠, 장인어른이 저렇게 화내시는 거 처음 봤어요⁠.⁠”

“⁠딸 가진 아버지는 다 그래요⁠. 저도 그래요⁠.⁠”

재훈이 짐칸을 올려다보았다⁠. 손가방이 장롱 위에서 얌전히 놓여 있었다⁠. 재훈은 목소리를 낮췄다⁠.

“⁠사장님⁠, 할머니한테 좀 여쭤봐 주세요⁠. 결혼식을 봄으로 미루면 어떠시냐고요⁠. 그때까지 장인어른 마음 돌려 보게요⁠.⁠”

우찬이 장롱 위를 보았다⁠. 덕례 할머니가 손가방을 끌어안고 고개를 저었다⁠.

“⁠미루면 나 이 장롱에서 한 해를 더 살어⁠? 안 혀⁠. 엉덩이 다 배겼어⁠.⁠”

우찬은 말을 고르다가 그대로 옮겼다⁠. “⁠엉덩이 배기셔서 안 된대요⁠.⁠”

재훈이 짐칸 문에 이마를 대고 웃었다⁠. 웃다가 한숨을 쉬었다⁠. “⁠우리 할머니 맞네⁠.⁠”

“⁠재훈 씨⁠.⁠” 우찬이 결박끈을 당기며 말했다⁠. “⁠장롱은 제가 어떻게든 예식장 문 앞까지 옮겨요⁠. 문 안은 재훈 씨가 열어야 돼요⁠. 그건 제가 못 해요⁠.⁠”

재훈은 대답하지 못했다⁠. 주차장 저편에서 남성목이 차 문을 쾅 닫는 소리가 났다⁠.

*

토요일 밤 열한 시⁠, 우찬은 차고 마당에서 트럭 짐칸 문을 열어 둔 채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예빈이 조수석에서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입주민 소통방이었다⁠. 윤정택 의원이 글을 올려 두었다⁠.

「⁠입주민 여러분⁠, 오늘 간담회 감사했습니다⁠. 시민 불안을 덜기 위해 「⁠부천시 귀신 붙은 물품 이송 제한 조례안⁠」을 대표 발의합니다⁠. 귀신 붙은 물품은 퇴마 확인서 없이 동 경계를 넘어 옮길 수 없습니다⁠. 9월 10일 입법예고⁠, 9월 17일 의견 청취 간담회 예정⁠」

글 밑으로 엄지 이모티콘이 수십 개 달렸다⁠. 하루맘은 아무것도 달지 않았다⁠.

“⁠동 경계⁠?⁠” 우찬이 말했다⁠. “⁠여기 오정동이야⁠. 예식장은 소사구고⁠.⁠”

“⁠그럼 할머니 결혼식 못 가⁠.⁠” 예빈이 말했다⁠. “⁠장롱이 동을 못 넘으면⁠.⁠”

짐칸 안에서 덕례 할머니가 물었다⁠.

“⁠조례가 뭐여⁠?⁠”

“⁠법이요⁠. 동네 법⁠.⁠”

“⁠동네가 법을 만들어⁠? 우리 동네는 반장이 다 했는디⁠.⁠”

“⁠요즘은 의원이 해요⁠.⁠”

“⁠의원은 장롱 들어 봤댜⁠?⁠”

“⁠허리가 아프시대요⁠.⁠”

할머니가 손가방을 무릎에서 내려 장롱 위에 놓았다⁠. 짐칸 전등 아래 가방 손잡이의 하얗게 닳은 자리가 반짝였다⁠.

“⁠총각⁠, 아까 그 애기 엄마가 창밖에서 뭘 봤어⁠. 나도 봤어⁠. 저 단지 3층에 영감 하나가 있더라⁠. 줄자 들고⁠.⁠”

우찬이 운전석에서 몸을 돌렸다⁠. 할머니는 장롱 위에서 손가방을 다시 무릎에 올려놓으며 덧붙였다⁠.

“⁠귀신이여⁠. 나 같은⁠.⁠”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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