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61자)

정문 앞 오 톤 트럭 농성

귀신도 옮기는 이삿짐센터 · 윤바로

8월 30일 월요일 아침 여덟 시 반⁠, 우찬의 5톤 탑차가 더채움 센트럴 정문 앞에서 멈췄다⁠. 짐칸에는 108동 1504호 신혼부부의 살림이 가득했고⁠, 맨 안쪽 벽에 붙여 결박끈으로 묶은 자개장롱 위에는 덕례 할머니가 손가방을 끌어안고 앉아 있었다⁠.

장롱을 차고에 두고 나올 수는 없었다⁠. 명구가 맡긴 보관이사 신청서에는 「⁠그날까지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라는 말이 손글씨로 덧붙어 있었고⁠, 처분 동의서를 든 사람이 언제 차고에 들이닥칠지 몰랐다⁠. 바트와 종태와 우찬이 다 일을 나가면 차고는 빈집이 되었다⁠. 그래서 장롱도 출근했다⁠.

경비실 유리창에 종이가 한 장 늘어 있었다⁠.

「⁠자개장롱 적재 차량 출입 제한 — 입주지원센터⁠」

“⁠사장님⁠, 장롱 내리고 들어가셔야 돼요⁠.⁠” 경비원이 창문을 열고 말했다⁠. 지난번 금괴를 물었던 사람이었다⁠.

“⁠장롱을 길에 내려요⁠? 보관 짐인데요⁠.⁠”

“⁠저는 종이에 쓰인 대로만 해요⁠.⁠”

1504호 이사는 지난주까지 반짝이사로 넘어갔던 예약이었다⁠. 신부가 영상을 보고 반짝이사에 계약금을 포기하겠다고 전화했고⁠, 다음 날 우찬에게 연락했다⁠. 「⁠귀신 이삿짐센터로 해 주세요⁠. 할머니 보고 울었어요⁠」⁠. 엘리베이터 예약은 아홉 시부터 열두 시까지⁠, 세 시간이었다⁠.

“⁠사장님⁠, 시계 봐요⁠.⁠” 종태가 운전석 옆에서 손목을 두드렸다⁠. “⁠삼십 분 남았어⁠.⁠”

우찬은 트럭 시동을 껐다⁠. 비상등을 켰다⁠. 정문 진입로 바로 옆⁠, 차가 드나드는 데 방해되지 않는 자리였다⁠.

“⁠짐 내려⁠. 대차 셋 다 꺼내⁠.⁠”

“⁠여기서 1504호까지 얼마예요⁠?⁠”

“⁠사백 미터⁠.⁠”

“⁠사백 미터를 대차로⁠?⁠” 종태가 허리를 짚었다⁠. “⁠사장님⁠, 내 허리는 사백 미터짜리가 아니야⁠.⁠”

“⁠형 허리는 사 미터짜리도 아니야⁠. 그래도 갔잖아⁠.⁠”

바트가 대차를 내리며 말했다⁠. “⁠몽골에서는 이런 걸 낙타 없이 이사한다고 해요⁠.⁠”

“⁠그건 몽골 속담이야⁠?⁠”

“⁠지금 만들었어요⁠.⁠”

*

아홉 시⁠, 첫 대차가 정문을 통과했다⁠. 상자 열두 개⁠, 담요로 싼 전자레인지⁠, 화분 둘⁠. 바트가 밀고 우찬이 앞에서 끌었다⁠. 새 보도블록 위로 대차 바퀴가 덜덜거렸다⁠. 단지 안은 이사 차로 가득했다⁠. 동마다 사다리차가 하늘로 팔을 뻗었고⁠, 엘리베이터 입구마다 회색 보양재와 「⁠이사 중⁠」 팻말이 붙어 있었다⁠.

트럭에 남은 장롱 위에서 덕례 할머니가 소리쳤다⁠.

“⁠총각⁠, 그 화분 거꾸로 실었어⁠! 흙 쏟아져⁠!⁠”

우찬이 화분을 바로 세웠다⁠. 서른 걸음 끝⁠, 정문 안쪽 화단에 다다르자 할머니 목소리가 작아졌다⁠. 우찬은 몸을 돌려 손을 흔들었다⁠. 할머니가 손가방을 흔들었다⁠. 정문을 지나던 입주민 하나가 짐칸 위에 뜬 자주색 손가방을 보고 휴대전화를 꺼냈다⁠.

열 시 반⁠, 냉장고가 올라갔다⁠. 사다리차를 부르자니 1504호 창문 아래 자리를 다른 집 사다리차가 먼저 차지하고 있었고⁠, 우찬과 종태가 등짐 끈으로 냉장고를 지고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안 보양재에 종태가 이마를 대고 숨을 골랐다⁠.

“⁠사장님⁠, 나 이거 끝나면 산재 신청할래⁠.⁠”

“⁠형은 사장님 친구라서 안 돼⁠.⁠”

“⁠친구 하지 말 걸⁠.⁠”

열한 시 십 분⁠, 마지막 대차에 대리석 식탁 상판이 실렸다⁠. 신혼부부가 혼수로 산 하얀 대리석이었다⁠. 우찬은 상판을 담요 두 겹과 모서리 보호대로 쌌다⁠. 정문을 지나 108동으로 꺾는 길에 새로 만든 과속방지턱이 있었다⁠. 바트가 바퀴를 들어 올리는 순간 대차 한쪽이 기울었고⁠, 상판 모서리가 대차 손잡이 쇠에 부딪혔다⁠. 둔한 소리가 났다⁠.

담요를 벗겼다⁠. 모서리가 손톱만큼 떨어져 나가 있었다⁠.

바트가 하얗게 질렸다⁠. “⁠사장님⁠, 제가⁠…⁠…⁠.⁠”

“⁠내가 앞에서 끌었어⁠.⁠” 우찬이 말했다⁠. “⁠내 잘못이야⁠.⁠”

1504호 신부가 현관에서 상판을 보자마자 입을 막았다⁠. 신랑이 신부 어깨를 감쌌다⁠. 우찬은 목장갑을 벗고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정문에서 대차로 옮기다가 깨졌습니다⁠. 사진 찍어 두시고요⁠, 제가 사고 확인서 써 드릴게요⁠.⁠”

우찬은 트럭에서 가져온 확인서 양식에 날짜와 시각⁠, 깨진 자리⁠, 경위를 적었다⁠. 「⁠2027⁠. 8⁠. 30⁠. 11⁠:10 정문 진입로 과속방지턱에서 대차가 기울어 상판 모서리 파손⁠. 운반 책임자 길우찬⁠」⁠. 신부가 사진을 찍는 동안 우찬이 설명했다⁠.

“⁠이삿짐 받으신 날부터 30일 안에만 알려 주시면 돼요⁠. 저희가 잘못 없다는 걸 증명 못 하면 물어 드리는 게 원칙이고요⁠. 이건 증명할 것도 없어요⁠. 제가 깼어요⁠. 보험으로 할지 제가 바로 드릴지 정하시면 그대로 할게요⁠.⁠”

신랑이 물었다⁠. “⁠사장님⁠, 장롱 때문에 정문에서 막힌 거죠⁠?⁠”

“⁠네⁠.⁠”

“⁠그럼 단지 잘못도 있는 거 아니에요⁠?⁠”

“⁠짐은 제가 옮겼어요⁠.⁠”

신부가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화면에 입주민 단톡방이 떠 있었다⁠. 「⁠더채움 센트럴 입주민 소통방⁠」⁠. 방장 「⁠1203동 하루맘⁠」이 아침에 올린 글이었다⁠.

「⁠📌 투표⁠: 귀신 붙은 짐 단지 반입 금지에 찬성하십니까⁠? 찬성 / 반대⁠」

찬성 412⁠. 반대 58⁠. 신부는 반대를 눌러 놓았다⁠. 투표 밑에 하루맘의 공지가 하나 더 있었다⁠. 「⁠토요일 오후 세 시 커뮤니티센터 입주민 간담회⁠. 분양사 상무님 참석 확정⁠. 시의원님도 오십니다⁠」⁠.

“⁠저희는 사장님 편이에요⁠.⁠” 신부가 말했다⁠. “⁠근데 저희가 58이에요⁠.⁠”

*

열한 시 사십 분⁠, 정문 앞 트럭 둘레에 사람이 모여 있었다⁠. 장 보러 나가던 입주민⁠, 이삿짐 차를 기다리던 기사⁠, 동네 아이 손을 잡은 할아버지⁠. 다들 짐칸 위에 뜬 자주색 손가방을 휴대전화로 찍고 있었다⁠. 덕례 할머니는 구경꾼이 반가워서 손가방을 흔들었고⁠, 가방이 흔들릴 때마다 사람들 사이에서 “⁠어머⁠” 소리가 터졌다⁠.

예빈이 사람들 틈을 비집고 트럭으로 왔다⁠.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었다⁠.

“⁠아빠⁠, 일본 방송국에서 메일 왔어⁠. 「⁠귀신을 옮기는 한국 이삿짐센터⁠」 찍고 싶대⁠. 통역도 붙여 준대⁠.⁠”

“⁠안 해⁠.⁠”

“⁠아직 답장 안 했어⁠. 아빠한테 먼저 물어본 거야⁠.⁠”

우찬이 대답하기 전에 유모차 하나가 트럭 앞에서 멈췄다⁠. 서른 후반쯤 되는 여자가 유모차 손잡이를 쥐고 있었다⁠. 햇빛 가리개 아래서 아기가 자고 있었다⁠. 여자의 휴대전화 화면에 단톡방 프로필이 떠 있었다⁠. 「⁠1203동 하루맘⁠」⁠.

“⁠사장님이시죠⁠. 우찬익스프레스⁠.⁠”

“⁠네⁠.⁠”

“⁠저 방장이에요⁠. 투표 올린 사람⁠.⁠” 하루맘이 손가방을 올려다보았다⁠. “⁠저거 진짜예요⁠?⁠”

“⁠진짜예요⁠.⁠”

“⁠그럼 더 싫어요⁠.⁠” 하루맘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우리 애 이제 백일이에요⁠. 이 집 대출이 이억 팔천이고요⁠. 저는 귀신이 무서운 게 아니라⁠, 애 돌 지나서 이 집 팔고 넓은 데 가려고 했는데 그게 안 될까 봐 무서워요⁠. 사장님은 할머니 한 분 사정이시잖아요⁠. 저는 우리 세 식구 사정이에요⁠.⁠”

예빈이 입을 열려는 것을 우찬이 손을 들어 막았다⁠.

“⁠토요일에 오세요⁠. 장롱 가지고 갈게요⁠. 보시고 정하세요⁠.⁠”

“⁠보면 달라져요⁠?⁠”

“⁠모르죠⁠. 안 보고 정하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하루맘이 유모차를 돌렸다⁠. 아기가 깨서 칭얼거렸다⁠. 장롱 위에서 덕례 할머니가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이고⁠, 애기 깼네⁠. 자장자장⁠.⁠”

하루맘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자주색 손가방이 유모차 쪽으로 천천히 좌우로 흔들렸다⁠. 하루맘이 걸음을 멈추고 손가방을 한참 보다가⁠, 아무 말 없이 단지 안으로 걸어갔다⁠. 아기는 다시 잠들어 있었다⁠.

*

열두 시 십 분⁠, 우찬이 빈 대차를 끌고 다시 정문으로 돌아오자 트럭 앞에 계상현이 서 있었다⁠. 회색 양복⁠, 팔짱⁠. 덕례 할머니가 장롱 위에서 상현에게 혀를 차고 있었는데⁠, 상현은 할머니를 보지 않으려고 트럭 번호판만 보고 있었다⁠.

“⁠정문 진입로에 차를 세우시면 안 됩니다⁠.⁠”

“⁠들어가지 말라셔서 안 들어갔어요⁠.⁠”

“⁠세우지도 말라는 겁니다⁠.⁠”

“⁠그럼 날아가요⁠?⁠”

상현이 팔짱을 풀었다⁠. 우찬의 손에 들린 사고 확인서 사본을 보았다⁠.

“⁠깨졌습니까⁠?⁠”

“⁠모서리요⁠. 제가 물어 줘요⁠.⁠”

“⁠얼마나요⁠?⁠”

“⁠팔십쯤요⁠.⁠”

상현은 잠깐 말이 없었다⁠. 정문 너머로 사다리차 한 대가 접히며 경고음을 냈다⁠. 상현이 안경을 벗어 손수건으로 닦았다⁠. 맨눈이 생각보다 지쳐 보였다⁠.

“⁠길 사장님⁠. 2019년에 인천에서 단지 하나를 분양했습니다⁠. 저는 분양팀장이었고요⁠.⁠”

우찬은 대꾸하지 않았다⁠. 상현은 안경을 다시 썼다⁠.

“⁠입주 석 달째에 한 집 베란다 장독에서 소리가 난다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진짜였는지는 모릅니다⁠. 저는 그 동에 가 보지 않았으니까요⁠. 글 하나가 단톡방에 퍼지고⁠, 맘카페에 퍼지고⁠, 뉴스에 한 줄 나갔습니다⁠. 호가가 삼 할 빠지는 데 두 달 걸렸습니다⁠.⁠”

“⁠장독 하나로요⁠?⁠”

“⁠장독 하나로요⁠. 그 동에 서른한 살 부부가 살았습니다⁠. 잔금 대출을 끝까지 받은 집이었고⁠, 집값이 빠지자 대출 만기 연장이 안 됐습니다⁠. 이듬해에 그 집이 경매로 나왔습니다⁠. 제가 경매 법정에 갔습니다⁠. 왜 갔는지는 지금도 모릅니다⁠.⁠”

덕례 할머니가 장롱 위에서 손가방을 무릎에 내려놓았다⁠. 우찬은 목장갑 낀 손을 바지에 문질렀다⁠.

“⁠그 장독엔 정말 뭐가 있었어요⁠?⁠”

“⁠모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상현의 목소리는 끝까지 같았다⁠. “⁠제가 아는 건 이겁니다⁠. 사람은 귀신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귀신 때문에 떨어지는 집값을 무서워합니다⁠. 그리고 저도 여기 삽니다⁠. 103동 301호⁠, 대출 삼억 이천입니다⁠.⁠”

우찬이 상현을 보았다⁠. 상무가 자기 단지에 대출을 끼고 산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3층이요⁠? 상무님이⁠?⁠”

“⁠높은 데를 싫어하는 식구가 있어서요⁠.⁠”

상현은 더 말하지 않았다⁠. 우찬은 휴대전화를 꺼내 단톡방 투표 화면을 상현에게 보였다⁠.

“⁠토요일 간담회⁠, 상무님 오신다면서요⁠.⁠”

“⁠갑니다⁠.⁠”

“⁠저도 갈게요⁠. 장롱 지고요⁠.⁠”

“⁠커뮤니티센터는 단지 안입니다⁠.⁠”

“⁠압니다⁠. 그래서 상무님께 여쭙는 거예요⁠. 입주민들이 장롱 반입 금지 투표를 하는데⁠, 장롱을 한 번도 안 봤잖아요⁠. 할머니도 한 번도 안 봤고요⁠. 보고 정하라고 하세요⁠. 보고도 싫다면 저는 그 단지 앞에 다시 안 와요⁠.⁠”

상현이 장롱 위를 올려다보았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덕례 할머니가 상현에게 손가방을 들어 보였다⁠.

“⁠안경 양반⁠, 나 토요일에 머리 감고 갈 겨⁠.⁠”

상현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상현은 경비실로 가서 유리창에 붙은 종이 두 장을 손으로 눌러 고정했다⁠.

“⁠토요일 두 시 반부터 네 시까지만 문 열어 드리겠습니다⁠. 입주민들 앞에서 정하시죠⁠. 저는 반입 금지에 찬성한다고 말할 겁니다⁠.⁠”

“⁠저는 반대한다고 할게요⁠.⁠”

상현이 정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우찬의 휴대전화가 떨었다⁠. 「⁠[단비캐피탈] 8월 25일 할부금 2⁠,300⁠,000원 잔액 부족으로 출금되지 않았습니다⁠. 연체 1회⁠」⁠. 우찬은 화면을 끄고 트럭 짐칸 문을 닫았다⁠. 문틈으로 덕례 할머니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총각⁠, 나 토요일에 뭐 입고 가⁠?⁠”

“⁠지금 입으신 거요⁠.⁠”

“⁠이거밖에 없어⁠.⁠”

“⁠그러니까요⁠.⁠”

종태가 운전석에 오르며 말했다⁠. “⁠사장님⁠, 할머니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여자는 이백만 명 앞에 나가면 옷을 고르는 거야⁠.⁠”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

“⁠나 장가 세 번 갔어⁠.⁠”

바트가 조수석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몽골에서는 장가를 세 번 가면 말을 세 번 잃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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