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396자)
손가방이 이백만 번 떴다
귀신도 옮기는 이삿짐센터 · 윤바로
8월 24일 화요일 아침 여섯 시, 우찬은 휴대전화가 베개 옆에서 떠는 소리에 눈을 떴다. 진동이 멈추지 않았다. 화면에는 종태의 메시지가 여섯 개 쌓여 있었다. 「사장님」 「사장님 이거」 「빈이 거 맞죠」 「조회수 봐요」 「나 허리 나을 것 같아」 「아니 안 나아」.
링크를 누르자 차고 마당이 나왔다. 제목은 「아빠 트럭에 할머니가 산다 (실제상황)」. 컨테이너 불빛 아래 자개장롱이 있었고, 장롱 위 한 뼘 높이에서 자주색 모란 손가방이 춤을 추었다. 예빈이 말한 대로 느리게 돌린 화면이었다. 손가방이 둥실 올라갔다가 좌우로 두 번 흔들리고, 다시 내려앉았다. 화면 아래 자막이 떴다. 「우리 아빠는 이삿짐센터 사장입니다. 금요일에 할머니 한 분을 같이 실어 왔습니다.」
조회수 십팔만. 올린 시각은 새벽 두 시였다.
우찬은 맨발로 컨테이너 문을 열었다. 예빈이 간이침대에 웅크려 자고 있었다. 노트북 화면이 아직 켜져 있었다.
“길예빈.”
예빈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아빠 얼굴을 보고, 휴대전화를 보고, 다시 아빠 얼굴을 보았다.
“목요일에 태운다잖아.”
“그래서 올렸어?”
“사람들이 보면 못 태워. 아빠, 이백만 명이 보는 장롱을 누가 태워.”
“아직 십팔만이야.”
“점심때 이백만 돼.”
점심때는 아니었다. 이튿날 아침에 이백만이 넘었다. 댓글이 만 개를 넘었고, 맨 위 댓글은 이랬다.
「이거 부천 더채움 센트럴 정문 맞아요. 금요일에 1702호 이삿날 저도 가방 떠다니는 거 봤어요. 경비실에 반입 보류 종이도 붙어 있었음」
댓글 밑으로 사진이 달렸다. 단지 정문, 트럭 옆면의 「우찬익스프레스」, 짐칸 위에 뜬 자주색 손가방. 입주민 누군가가 금요일에 찍어 둔 것이었다. 다른 댓글들이 따라붙었다. 「할머니 결혼식 꼭 가세요ㅠㅠ」 「사장님 트럭 할부 얼마 남았어요? 후원 계좌 주세요」 「저 단지 분양받았는데 어떡해요」. 영어 댓글도 있었다. 「Korean grandma ghost moving company. I‘m crying」. 바트가 영어 댓글 밑에 몽골 말로 무언가를 달았는데, 뜻을 물으니 “우리 사장님 착해요”라고 했다.
장롱 위에서 덕례 할머니가 예빈의 노트북을 들여다보았다.
“이백만이 뭐여? 사람이 이백만이여?”
“네, 할머니.”
“부천 사람보다 많네.”
*
8월 24일 저녁, 차고 마당에 낯선 승용차 한 대가 들어왔다. 서른쯤 돼 보이는 남자가 운전석에서 급히 내렸다. 키가 크고 마른 몸에 셔츠 소매를 걷었고, 손에 휴대전화를 쥐고 있었다. 조수석에서 단발머리 여자가 따라 내렸다.
“여기가 우찬익스프레스 맞죠? 저 도재훈이에요. 하덕례 할머니 손자요.”
장롱 위에서 덕례 할머니가 벌떡 일어났다. 우찬 눈에만 보이는 일이었다. 할머니는 손가방을 흔들며 마당 끝까지 달려 나갔다가 서른 걸음에서 홱 끌려 돌아왔다. 재훈 눈에는 손가방이 마당을 가로질러 날아왔다가 되돌아가는 것만 보였다. 재훈이 숨을 들이켰다.
“할머니예요?”
“네.” 우찬이 장롱 한 귀퉁이를 가리켰다. “들어 보세요. 그러면 보여요.”
재훈이 장롱 모서리를 잡았다. 우찬이 반대편을 들었다. 장롱이 한 뼘 떴다. 재훈의 얼굴이 하얘졌다가 금방 일그러졌다.
“할머니.”
“재훈아, 너 왜 이렇게 말랐어. 밥은 먹고 다녀?”
“먹어요.”
“거짓말허네. 볼이 쑥 들어갔어.” 할머니가 재훈의 볼을 쓰다듬으려다 손이 볼을 그대로 지나가자 혀를 찼다. “아이고, 만져지지도 않네.”
재훈이 장롱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울었다. 우찬은 팔이 떨렸지만 먼저 내려놓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단발머리 여자가 재훈 옆으로 와서 장롱 반대 귀퉁이를 우찬 손에서 넘겨받았다.
“남윤슬입니다. 재훈 씨랑 시월에 결혼해요.”
할머니가 윤슬을 위아래로 훑었다. “아이고, 손목이 가늘다. 장롱 드는데 손목이 이래서 쓰겄어?”
“할머니, 저 필라테스 해요.”
“필라가 뭐여?”
재훈이 울다가 웃었다. 우찬은 웃음이 터진 틈에 손목을 털었다. 재훈과 윤슬이 장롱을 내려놓았다. 할머니는 장롱 위로 돌아가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재훈아, 나 시월 이튿날 맨 앞줄이여. 다른 데는 안 앉어.”
재훈은 대답을 못 하고 우찬을 돌아보았다. 예식장 앞줄은 혼주 자리였다. 장롱은 예식장에 들어갈 수 있을까. 우찬도 답을 몰랐다.
*
8월 25일 수요일 아침 여덟 시, 도명구가 차고에 왔다. 예순하나, 반백 머리를 단정히 빗었고 손에 봉투 하나를 들고 있었다. 명구는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우찬에게 허리를 숙였다.
“집사람이 동의서를 쓴 건 어제 알았습니다. 영상 보고요.”
명구가 봉투를 열었다. 보관이사 신청서였다. 이삿짐을 컨테이너나 창고에 맡겨 두었다가 날을 정해 다시 옮겨 주는 일이었다. 「보관 품목: 자개장롱 1 · 보관 기간: 2027년 10월 2일까지 · 보관 후 배송지: 결혼식장」.
“보관료는 제가 내겠습니다. 결혼식 날 어머니를 예식장에 모셔다 주세요. 그날까지 아무도 장롱에 손 못 대게요.”
“사모님은요?”
명구는 볼펜을 쥔 채 잠깐 말이 없었다. “집사람한테는 제가 할 말이 많습니다. 서른 해를 미뤘으니까요.”
우찬은 신청서를 받았다. 장롱 위에서 덕례 할머니가 말했다.
“명구야, 니 애미한테 물어봤어? 새집은 그 집 식구가 들어오라 해야 자리를 잡는 겨. 안주인이 애미여.”
명구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우찬은 할머니 말을 옮길까 하다가 신청서를 접었다. 할머니가 새집에 들어가려면 문지방도 넘어야 하고, 애자도 넘어야 했다.
“보관료는 월 십오만 원이에요. 결혼식까지 두 달 치만 받을게요.”
“두 달이 안 되는데요.”
“한 달 반이면 업계에선 두 달이에요.”
명구가 처음으로 웃었다.
*
수요일 밤, 예빈은 컨테이너 책상에 노트북을 펴 놓고 댓글을 소리 내어 읽었다. 우찬은 문턱에 앉아 목장갑에 붙은 장롱 옻칠 가루를 털었다.
“「사장님 할부 얼마 남았어요?」 아빠, 이거 서른 명이 물어봤어.”
“답하지 마.”
“「후원 계좌 주세요」는 백 명.”
“그것도 하지 마.”
예빈이 노트북을 돌려 아빠 쪽으로 향하게 했다. 화면 오른쪽에 수익 창이 떠 있었다. 숫자는 아직 작았지만 하루 사이에 앞자리가 두 번 바뀌어 있었다.
“아빠, 트럭 할부 내가 갚을게. 이거면 갚아.”
“남의 집 할머니를 팔아서?”
“할머니가 허락했어.”
우찬이 장롱을 돌아보았다. 덕례 할머니가 손가방을 무릎에 올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봤어. 나 이쁘게 나왔어?”
“할머니는 안 나왔어요. 가방만 나왔어요.” 예빈이 말했다.
“그럼 됐어. 가방이 나보다 젊어.”
우찬은 웃지 않았다. 아침에 본 단톡방 사진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1702호는 이제 이백만 명이 아는 호수였고, 애자는 거기서 밥을 짓고 잠을 잤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누가 17층 단추를 누르는지 쳐다볼 터였다.
“빈아. 사람들이 보면 못 태운다는 거, 맞는 말이야. 그런데 사람들이 보면 그 집 사람이 못 살아.”
예빈이 노트북을 반쯤 닫았다. “그럼 어떡해. 내려? 내리면 목요일에 태워.”
“목요일까지는 둬.”
“그다음엔?”
우찬은 대답하지 못했다. 장롱 위에서 할머니가 말했다.
“총각, 저 사진기에 내 목소리는 안 들어가?”
“안 들어가요.”
“그럼 애미한테 할 말은 내가 언제 혀.”
예빈과 우찬이 동시에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말을 해 놓고 손가방 손잡이의 하얗게 닳은 자리를 엄지로 문질렀다. 우찬은 조끼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끊은 지 삼 년이었다.
*
8월 26일 목요일 오후 세 시, 더채움 센트럴 입주지원센터. 소각장 차는 오전에 오지 않았다. 대신 상현이 우찬을 불렀다. 회의실 유리벽 너머로 입주 서류를 든 입주민들이 줄을 서 있었다. 잔금 완납 확인서와 관리비 예치금 영수증을 내고 입주증과 열쇠를 받아 가는 줄이었다. 줄에 선 사람 몇이 회의실 안의 우찬을 알아보고 휴대전화를 들었다.
상현은 태블릿을 우찬 앞에 밀어 놓았다. 부동산 앱 화면이었다. 「더채움 센트럴 84㎡ 신규 매물 7건 · 호가 하향」.
“월요일까지 이 단지 매물은 두 건이었습니다.”
“영상 때문이에요?”
“영상 때문이 아니면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상현은 안경을 고쳐 썼다.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7건 가운데 넷이 신혼부부입니다. 잔금 대출 금리 보고 겨우 들어온 집들이고요. 지금 팔면 손해를 보고 팝니다. 안 팔면 귀신 단지에 삽니다.”
“할머니가 들어온 것도 아니잖아요. 장롱은 제 차고에 있어요.”
“사람들은 장롱이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1702호가 귀신 집이라는 것만 압니다.” 상현이 태블릿을 넘겼다. 입주민 단톡방 화면이었다. 「1702호 어디 동이에요?」 「귀신 집 옆집은 관리비 깎아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17층 엘베 같이 타기 싫어요」.
우찬은 입술을 깨물었다. 애자가 이 방에 있다는 것을, 상현도 우찬도 알았다.
“목요일 소각은 취소했습니다. 이백만 명이 보는 장롱을 태우면 단지는 귀신 단지가 아니라 귀신 태운 단지가 됩니다. 그건 더 나쁩니다.”
“그럼 됐네요.”
“안 됐습니다.” 상현이 서류 한 장을 꺼냈다. 「입주 협력 이사업체 약정 해지 통보」. “특약 3 위반입니다. 업체가 반입하려던 물품으로 단지에 피해가 생겼습니다. 퇴마 출장비 삼백만 원은 따로 청구하겠습니다. 남은 예약 마흔 집은 오늘부터 다른 업체가 맡습니다.”
“다른 업체 어디요?”
회의실 문이 열렸다. 노란 반팔 티셔츠에 배가 불룩한 남자가 커피 두 잔을 들고 들어왔다. 「반짝이사」 반길수였다. 부천에서 우찬과 이십 년째 손님을 다투는 사장이었다. 길수가 커피 한 잔을 우찬 앞에 놓았다.
“우찬아, 영상 잘 봤다. 할머니 귀엽더라.”
“너는 못 보잖아.”
“가방이 귀엽더라고.” 길수가 상현 옆에 앉았다. “니 마흔 집, 내가 잘 옮길게. 장롱 없는 집만.”
“장롱 없는 집이 어딨어.”
“요즘 새 아파트는 다 붙박이장이야. 장롱은 너나 지지.” 길수가 커피를 후루룩 마셨다. “나는 허리가 소중해서 붙박이장 집만 해.”
우찬은 커피를 밀어냈다. 상현을 보았다.
“상무님. 짐에 붙은 분은 등으로 모신다는 말, 아세요?”
상현의 손가락이 서류 모서리에서 멈췄다. 한 박자였다. 상현은 서류를 우찬 쪽으로 반듯하게 밀었다.
“모릅니다. 서명은 안 하셔도 해지는 됩니다.”
우찬은 서류를 접어 조끼 주머니에 넣고 일어섰다. 회의실 문을 열자 줄을 선 입주민들이 일제히 휴대전화를 들었다. 줄 맨 끝에 애자가 서 있었다. 관리비 영수증을 든 손이 우찬을 보고 아래로 내려갔다. 애자는 고개를 숙이지도 들지도 않았다.
“사모님.”
“영상, 내려 달라고 전해 주세요.” 애자가 말했다. “따님한테요.”
입주지원센터 유리문 밖으로 나오자 한낮 볕이 보도블록에서 튀어 올랐다. 휴대전화에 예빈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아빠 구독자 십만 넘었어!!! 광고 문의도 왔어」. 우찬은 답장을 쓰지 않고, 정문 경비실 유리창에 아직 붙어 있는 「반입 보류」 종이를 오래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