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394자)
서른 걸음 밖으로는 못 가유
귀신도 옮기는 이삿짐센터 · 윤바로
8월 20일 밤 아홉 시, 부천 오정동 공업사 골목 끝의 차고는 낮의 열기를 아직 바닥에 품고 있었다. 컨테이너 사무실 하나, 비 가림 지붕 하나, 5톤 탑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가는 마당. 우찬은 짐칸 문을 활짝 열고 장롱을 마당 한가운데 내려놓았다. 덕례 할머니가 장롱 위에서 기지개를 켰다.
“아이고, 트럭은 엉덩이가 아퍼.”
종태가 컨테이너 문턱에 앉아 파스를 붙이며 물었다. “사장님, 진짜 거기 누가 있어요?”
“있어.”
“몇 살?”
“여든여섯.”
“나보다 형님이네.” 종태가 장롱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덕례 할머니가 마주 숙였다. 종태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였지만, 우찬은 웃음을 참느라 볼 안쪽을 깨물었다.
덕례 할머니는 마당 구경을 하고 싶어 했다. 장롱에서 내려와 공업사 쪽으로 걷다가, 전봇대 앞에서 또 휙 끌려왔다. 할머니가 치맛자락을 털며 투덜댔다.
“아침에도 이랬어. 줄 매 놓은 강아지마냥.”
“얼마나 가시는데요?”
“몰러. 세 본 적이 없어.”
바트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제가 셀게요. 저 몽골에서 양 세는 거 잘해요.”
“양은 안 걸어 다니잖아.”
“엄청 걸어 다녀요.”
바트가 장롱 옆에 서서 걷기 시작했고, 덕례 할머니가 바트 뒤를 졸졸 따라갔다. 우찬은 할머니가 멈추는 자리를 보고 소리쳤다. 바트가 몽골 말로 세다가 열 넘어서부터 한국말로 바꿔 셌다. 스물여덟, 스물아홉, 서른. 서른한 걸음째에 할머니가 뒤로 당겨지듯 장롱 위로 돌아갔다.
“서른이야.”
“다시 해 봐요.” 바트가 말했다. “몽골에서는 세 번 세야 진짜예요.”
세 번 다 서른이었다. 종태가 트럭 공구함에서 줄자를 꺼내 바트의 걸음을 쟀다. 스물한 미터 남짓. 우찬은 줄자 끝에 감긴 빨간 절연테이프를 보다가 손을 멈췄다. 스무 살 때 반장님 줄자에도 똑같이 빨간 테이프가 감겨 있었다. 반장님은 문틀만 보면 줄자를 폈고, 재고 나면 “이건 들어간다” 하고 웃었다.
“사장님, 왜요?” 바트가 물었다.
“아니야. 할머니, 이제 사무실 들어가 쉬세요. 에어컨 있어요.”
덕례 할머니가 컨테이너 문 앞까지 가더니 멈췄다. 문은 열려 있었다. 할머니는 문턱에 발끝을 댔다가 거두고, 다시 댔다가 거두었다.
“안 들어가져.”
“문 열려 있잖아요.”
“문지방은 혼자 못 넘어. 누가 들어 줘야 혀. 그래서 이사가 무서운 겨. 짐 싣는 사람이 날 두고 가면 나는 빈집에 남는 거여.”
우찬은 장롱을 다시 지지 않았다. 대신 컨테이너 에어컨을 틀고 문을 열어 바람이 마당으로 나가게 했다. 할머니는 장롱 위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총각은 착혀” 했다.
*
열한 시가 다 되어 예빈이 돌아왔다. 스물넷, 카메라 가방 두 개와 삼각대를 메고, 군산 폐모텔 먼지를 운동화에 잔뜩 묻힌 채였다. 채널 「빈이의 퇴마로그」 구독자는 사천이백 명. 흉가를 백 곳 넘게 다녔지만 귀신을 한 번도 못 찍은 퇴마 유튜버였다.
“아빠, 왜 마당에 장롱이 있어?”
“손님 거야.”
“아빠 누구랑 얘기했어? 들어오는데 소리 들렸어.”
“장롱이랑.”
예빈은 아빠를 한참 보다가 카메라를 켰다. 습관이었다. 화면 속에 장롱이 들어왔고, 장롱 위 한 뼘 높이에 자주색 손가방이 떠 있었다. 덕례 할머니가 예빈을 보고 반가워서 가방을 흔들었고, 예빈의 화면 속에서 가방이 춤을 췄다.
예빈은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녹화 버튼부터 눌렀다.
“아빠, 이거 각이야.”
“끄라.”
“백 곳 다녀서 못 찍은 걸 우리 집 마당에서 찍었어. 이거 각이라고.”
“남의 집 할머니야.”
덕례 할머니가 우찬에게 물었다. “저 처자는 왜 날 못 봐? 가방만 보고.”
“모르죠, 저도.”
“총각은 날 지고 나서 봤지. 내가 일 년 넘게 장롱에 있었는디 아무도 못 봤어. 우리 동네 상여꾼 영감도 그랬댜. 상여 한 번 메고 나서부터 보이더래. 한 번 진 사람은 그날부터 보는 겨.”
우찬은 예빈에게 장롱 한 귀퉁이를 가리켰다.
“들어 봐. 같이.”
예빈이 카메라를 삼각대에 꽂고 장롱 아래 모서리를 잡았다. 우찬이 반대편을 들었다. 장롱이 바닥에서 한 뼘 떠오르는 순간, 예빈의 숨이 멎었다. 연분홍 한복, 쪽진 흰머리, 비녀, 하늘빛으로 비치는 손, 손에 쥔 모란 손가방.
“아이고, 이쁜 처자네. 우리 재훈이 색싯감만큼 이뻐.”
예빈이 장롱을 내려놓고 뒷걸음질 쳤다. 그러고는 다시 다가와 할머니 얼굴 앞에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빈이의 퇴마로그 길예빈이고요. 구독, 아니, 저기, 진짜세요?”
“가짜로 죽는 사람도 있어?”
예빈이 아빠를 돌아보았다. 눈이 반짝였다. “아빠, 나 퇴마 유튜버 그만두고 귀신 이사 유튜버 할래.”
“퇴마 유튜버가 퇴마를 그만두면 뭐가 남아.”
“이사가 남지.”
우찬은 녹화 중인 카메라를 꺼서 예빈 손에 쥐여 주었다. “올리지 마. 남의 집 일이야.”
예빈은 대답 대신 카메라 메모리 카드를 빼서 청바지 뒷주머니에 넣었다.
*
일요일 밤, 우찬은 컨테이너 문턱에 앉아 컵라면을 먹었다. 토요일 하루 원룸 이사 두 건을 하는 동안 장롱은 짐칸 맨 안쪽에 실려 다녔고, 덕례 할머니는 원룸 계단을 오르내리는 우찬에게 서른 걸음 끝에서 “거기 냉장고 문 테이프 안 붙였어” 하고 소리쳤다. 손님은 우찬이 혼잣말을 많이 하는 사장이라고 별점 리뷰에 적었다. 별은 다섯 개였다.
휴대전화가 떨었다. 「[단비캐피탈] 8월 25일 자동이체 예정 2,300,000원」. 우찬은 화면을 엎어 놓고 라면 국물을 마셨다.
“그거 무슨 편지여?” 할머니가 물었다.
“트럭 할부요. 다달이 나가요.”
“트럭을 외상으로 샀어?”
“요즘은 다 그래요.”
“우리 영감은 리어카도 현금으로 샀어.” 할머니가 손가방을 무릎에서 고쳐 놓았다. “그 국수는 왜 컵에다 먹어. 그릇 없어?”
“설거지가 없잖아요.”
“총각은 아내가 없구먼.”
“있었어요. 오 년 전에 갈라섰어요.”
할머니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손가방 손잡이를 들어 보였다. 손잡이 가죽 한 군데가 하얗게 닳아 있었다.
“재훈이 돌잔치 때 산 거여. 돌잡이 상에 연필이랑 실이랑 돈을 다 놔뒀는디, 이놈이 상은 안 보고 내 가방 손잡이를 잡더라고. 그날부터 집안 잔치마다 이걸 들고 갔어. 장가가는 날도 들고 가야 혀.”
컨테이너 안에서 예빈이 헤드폰을 끼고 노트북을 들여다보다 키득 웃었다. 우찬이 문 너머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올리지 마라.”
“안 올려. 편집만 해.” 예빈은 화면을 반쯤 덮었다. “아빠, 할머니 가방 춤추는 거 슬로로 돌리면 진짜 예술이야.”
*
8월 23일 월요일 오전 열 시, 계상현이 차고 마당으로 들어왔다. 회색 양복, 검은 테 안경, 이번에도 재킷을 입고 있었다. 뒤에 흰 두루마기에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방울과 소금 자루를 들고 따라왔다.
“청명 법사님입니다.”
“퇴마 경력 이십 년이오.” 법사가 선글라스를 벗지 않고 말했다. “이 정도 장롱은 반 시간이면 됩니다.”
“이 정도가 어느 정도인데요?” 우찬이 물었다.
“자개 정도.”
종태가 컨테이너 안에서 “자개는 비싼데” 하고 중얼거렸다.
법사는 장롱 둘레에 소금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방울을 흔들며 장롱 주위를 세 바퀴 돌았다. 덕례 할머니는 장롱 위에서 손가방을 끌어안고 법사를 구경했다. 법사가 소금을 한 줌 장롱에 뿌리자 할머니가 혀를 찼다.
“싱거워. 소금 더 쳐.”
우찬이 웃음을 삼키다 기침을 했다. 상현은 웃지 않았다. 다만 장롱 위를 똑바로 보지도 않았다.
법사가 붉은 부적을 꺼내 장롱 문에 붙였다. 「급급여율령」이라는 한자가 꿈틀대듯 그려진 종이였다. 할머니가 부적을 떼어 냈다. 우찬과 상현 눈에는 할머니가 떼는 것이었지만, 법사와 종태와 바트 눈에는 부적이 혼자 떨어져 공중을 날아가는 것이었다. 부적은 법사의 이마에 착 붙었다.
법사가 방울을 떨어뜨렸다.
“상무님, 이거, 이거는.”
“말씀하세요.”
“이건 반 시간짜리가 아닙니다.”
바트가 우찬에게 속삭였다. “몽골에서는 저런 걸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였다고 해요.”
“그건 한국 속담이야.”
“몽골에도 있어요. 혹 대신 낙타 혹.”
법사는 이마의 부적을 떼어 두루마기 품에 넣고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확실한 방법은 하나요. 물건을 태우면 넋이 흩어집니다. 붙을 데가 없으니까.”
마당이 조용해졌다. 덕례 할머니가 손가방을 무릎에 내려놓았다.
우찬은 법사 앞을 막아섰다. “장롱은 손님 짐이에요. 제가 맡은 짐을 왜 태워요.”
상현이 서류철을 열었다. “소유자가 동의하면 길 사장님 짐이 아닙니다.”
“소유자는 명구 씨예요. 명구 씨가 태우라고 했어요?”
“이사 계약서에 서명하신 분은 사모님입니다. 새집에 들일지 말지는 그 집 식구가 정하는 거고요.”
“상무님.” 우찬은 목장갑 낀 손으로 장롱 모서리를 짚었다. “보이시잖아요. 저 위에 앉아 계신 분이. 보이시는 분이 어떻게 태우라고 해요.”
상현이 처음으로 장롱 위를 정면으로 보았다. 덕례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상현의 목울대가 한 번 오르내렸다.
“보이니까 압니다. 길 사장님은 이제 나흘째시죠. 저는 서른세 해쨉니다.”
“그래서요?”
“그래서 압니다. 사람들은 귀신을 안 봅니다. 귀신 소문만 봅니다. 소문은 태워도 안 없어지고요.”
상현이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보여 주었다. 입주지원센터로 들어온 문의 목록이었다. 「1702호 이삿날 가방이 떠다녔다는데 사실인가요」 「귀신 들어온 동은 어디예요」. 금요일 오후, 이삿짐을 나르던 사이 누군가 본 모양이었다.
“사흘 만에 일곱 건입니다. 시청에도 같은 민원이 들어갔다고 들었습니다.”
*
열한 시, 송애자가 차고 마당에 들어섰다. 상현이 부른 것이었다. 애자는 소금 동그라미 바깥에서 멈췄다. 장롱을 오래 보다가 상현이 내민 종이를 받았다.
「장롱 처분 동의서 — 소유자는 아래 물품의 처분을 더채움개발에 맡기며, 처분 방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사모님.” 우찬이 말했다. “명구 씨는 아세요?”
“모르세요.”
“어머님이 저 위에 계세요. 결혼식만 보고 가신대요.”
애자는 볼펜 뚜껑을 열었다. 손이 흔들리지 않았다.
“사장님, 저는 어머님을 열다섯 해 모셨어요. 마지막 일곱 해는 밤에 두 번씩 일어났고요. 결혼식은 제가 사진 찍어서 보여 드릴게요.” 애자가 서명란에 이름을 썼다. 「송애자」. “어머님 계시면 그렇게 전해 주세요. 이제 좀 쉬시라고.”
덕례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가방 손잡이만 두 손으로 꼭 쥐었다.
애자가 마당을 나가자 법사가 수첩을 꺼냈다. “목요일 오전이 좋습니다. 날이 좋아요.”
상현은 동의서를 서류철에 끼우고 우찬을 보았다.
“목요일 아홉 시에 소각장 차가 옵니다. 길 사장님이 실어 주시면 약정은 그대로 갑니다.”
상현이 차를 타고 나간 뒤에도 우찬은 한참 장롱 앞에 서 있었다. 장롱 위에서 덕례 할머니가 작게 말했다.
“총각, 우리 며느리가 밤에 두 번 일어났댜. 나는 한 번인 줄 알았어.”
컨테이너 안에서 예빈이 노트북을 켜는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