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649자)

장롱 위에 할머니가 앉아 계십니다

귀신도 옮기는 이삿짐센터 · 윤바로

2027년 8월 20일 금요일 아침 여덟 시⁠, 부천 소사구 붉은 벽돌 이층집 안방에서 길우찬은 자개장롱 앞에 무릎을 꿇었다⁠. 다른 짐은 다 빠졌다⁠. 장판 위에 장롱 다리 자국 넷이 누렇게 남았고⁠, 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검은 옻칠 위 학 한 마리의 날개를 하얗게 띄웠다⁠. 손바닥을 대자 장롱이 안쪽에서 나프탈렌 냄새를 훅 내뱉었다⁠.

“⁠사장님⁠, 사다리차는 진짜 안 돼요⁠?⁠” 계단 아래에서 변종태가 소리쳤다⁠.

“⁠골목에 전깃줄이 세 겹이야⁠. 사다리 펴다가 전봇대 건드리면 동네 정전이야⁠.⁠”

“⁠내 허리 정전은 누가 책임져⁠.⁠”

“⁠형 허리는 일 년째 정전이잖아⁠.⁠”

안방 벽에 아직 떼지 않은 거울에 우찬이 비쳤다⁠.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 짧은 검은 머리에 두른 흰 수건 머리띠⁠, 짙은 눈썹⁠. 파란 작업복 위에 형광 노랑 조끼를 걸치고 목장갑을 낀 사내가 장롱 하나에 등짐 끈을 감고 있었다⁠. 일주일 전 방문견적 때 우찬은 이 장롱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견적서에는 「⁠5톤 탑차 1대 · 인부 4 · 자개장롱 1(⁠계단 등짐⁠)⁠」이라고 적었다⁠. 며느리 송애자가 마지막 줄에 볼펜으로 줄을 그었고⁠, 아들 도명구가 줄 그은 자리 위에 「⁠살림⁠」이라고 다시 써 넣었다⁠. 장롱 옆구리에는 지금도 노란 대형폐기물 배출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바트⁠, 계단 앞에서 봐 줘⁠. 모서리 문틀에 닿나⁠.⁠”

몽골에서 온 바트가 계단 첫 칸에 서서 두 손으로 문틀을 가리켰다⁠. 등짐은 혼자 지는 짐이었다⁠. 우찬은 끈을 어깨에 걸고 허리를 폈다⁠. 무게가 등뼈를 타고 내려와 무릎에서 멈췄다⁠. 예순 해 넘은 오동나무와 자개가 무거운 건 당연했다⁠. 이상한 건 머리 위였다⁠.

“⁠아이고⁠, 살살 좀 혀⁠. 엉덩이 깨지겄어⁠.⁠”

우찬은 그대로 굳었다⁠. “⁠형⁠, 방금 뭐라 했어⁠?⁠”

“⁠허리 아프다고⁠.⁠” 종태가 계단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엉덩이 얘기는⁠?⁠”

“⁠내 엉덩이는 멀쩡해⁠.⁠”

바트가 계단 첫 칸에서 우찬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사장님 얼굴 하얘요⁠. 몽골에서는 그런 얼굴을 귀신 본 얼굴이라고 해요⁠.⁠”

우찬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눈만 벽 거울로 옮겼다⁠. 장롱 꼭대기에 노인 하나가 앉아 있었다⁠. 몸이 반쯤 비쳐 하늘빛이었고⁠, 쪽진 흰머리에 비녀를 꽂았고⁠, 연분홍 한복 치마가 장롱 모서리로 흘러내렸다⁠. 무릎 위에는 모란을 수놓은 자주색 손가방이 얹혀 있었다⁠. 노인은 거울 속 우찬과 눈이 마주치자 손을 흔들었다⁠.

“⁠총각⁠, 나 좀 데려가⁠.⁠”

“⁠저 총각 아니에요⁠. 마흔일곱이에요⁠.⁠”

“⁠나는 여든여섯에 갔어⁠. 나한테는 다 총각이여⁠.⁠”

“⁠사장님 누구랑 얘기해요⁠?⁠” 바트가 물었다⁠.

“⁠더위 먹었네⁠.⁠” 종태가 말했다⁠. “⁠얼음물 갖다줘⁠.⁠”

노인은 이 집 주인 도명구의 어머니 하덕례라고 했다⁠. 작년 봄에 갔는데 가려다 말고 장롱에 눌러앉았다고 했다⁠. 손자 재훈이가 시월 이튿날 장가를 간다⁠. 덕례 할머니는 손가방을 두 손으로 쥐고 우찬을 내려다보았다⁠.

“⁠그거 보면 갈 겨⁠. 그때까지 이 장롱 따라가야 혀⁠. 여기 두고 가면 나는 포클레인한테 깔려⁠.⁠”

스무 살 때 우찬을 처음 데리고 다닌 이삿짐 반장이 막걸리를 따르며 하던 말이 있었다⁠. 짐에 붙은 분은 등으로 모신다⁠. 우찬은 이 말을 반장님 농담으로 알고 스물일곱 해를 살았다⁠.

“⁠할머니⁠, 계단 열네 칸이에요⁠. 꽉 잡으세요⁠.⁠”

“⁠누구한테 하는 말이에요⁠?⁠” 바트가 물었다⁠.

“⁠장롱한테⁠.⁠”

계단을 한 칸 내려설 때마다 머리 위에서 “⁠아이고⁠” 소리가 났다⁠. 일곱 번째 칸에서 덕례 할머니가 “⁠총각⁠, 등이 넓네⁠. 우리 영감보다 넓어⁠” 했고⁠, 우찬은 하마터면 발을 헛디딜 뻔했다⁠.

*

골목에 내려서자 햇빛이 쏟아졌다⁠. 트럭 옆면에 파란 글씨로 「⁠우찬익스프레스⁠」가 적혀 있었고⁠, 짐칸 문 앞에는 담요로 싼 냉장고와 상자 마흔두 개가 차곡차곡 올라가 있었다⁠. 골목 끝 큰길 건너에는 새 아파트가 하늘까지 올라가 있었다⁠. 980세대 「⁠더채움 센트럴⁠」⁠. 도씨 집안은 오늘 길 하나를 건넌다⁠. 5톤 트럭으로 사백 미터를 가는 이사였다⁠.

트럭 라디오에서 아나운서가 말했다⁠. 「⁠경기 서남부 신축 단지에 입주 물량이 몰리면서 호가가 내림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종태가 라디오를 껐다⁠. “⁠남의 집값 듣다가 내 할부 생각나⁠.⁠”

“⁠사장님⁠!⁠”

송애자가 대문에서 뛰어나왔다⁠. 쉰여덟⁠, 단정하게 묶은 머리에 앞치마를 두른 채였다⁠. 손에 구청 영수증을 쥐고 있었다⁠.

“⁠그건 싣지 마세요⁠. 스티커 붙였잖아요⁠. 구청에서 열 시에 가져가요⁠.⁠”

명구가 뒤따라 나왔다⁠. “⁠어머니 혼수를 왜 버려⁠?⁠”

“⁠새집엔 붙박이장이 있어요⁠. 거기 안 맞아요⁠.⁠”

장롱 위에서 덕례 할머니가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붙박이가 뭐여⁠? 벽에 장롱을 박아⁠? 그럼 이사를 어떻게 혀⁠?⁠”

“⁠이사 안 가려고 박는 거래요⁠.⁠” 우찬이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애자가 우찬을 보았다⁠. “⁠사장님 지금 저한테 하신 말씀이에요⁠?⁠”

“⁠아뇨⁠, 그냥⁠…⁠… 업계 얘기요⁠.⁠”

애자가 영수증을 접어 앞치마 주머니에 넣으려는데⁠, 장롱 위에서 자주색 손가방이 혼자 떠올랐다⁠. 덕례 할머니가 화가 나서 가방을 흔든 것이었다⁠. 우찬 눈에는 할머니 손에 들린 가방이었지만 애자 눈에는 허공에 뜬 가방이었다⁠. 가방은 두 번 흔들리고⁠, 할머니 무릎으로 툭 내려앉았다⁠.

애자가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숨을 한 번 들이쉬고 오래 내쉬었다⁠.

“⁠그 가방⁠, 장롱 둘째 서랍에 넣어 뒀는데⁠.⁠”

명구가 장롱 서랍을 열었다⁠. 서랍은 비어 있었다⁠.

“⁠어머니 가방이네⁠.⁠” 명구가 말했다⁠. 목소리가 아이 같았다⁠.

덕례 할머니가 애자를 내려다보며 서랍 쪽으로 턱을 들었다⁠. “⁠며느리 말은 반만 들어⁠. 반은 내가 들을 테니께⁠.⁠”

애자는 대문 기둥을 짚고 한참 있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우찬은 할머니에게 “⁠지금 그러시면 안 돼요⁠” 하고 작게 말했다⁠. 할머니는 들은 체도 안 하고 애자를 따라 대문 쪽으로 몸을 날렸다가⁠, 전봇대 앞에서 고무줄에 당긴 것처럼 장롱 위로 휙 되돌아왔다⁠. 할머니가 장롱 모서리를 붙잡고 투덜댔다⁠.

“⁠아이고⁠, 여기까지밖에 안 되네⁠.⁠”

*

아홉 시 반⁠, 큰길 건너에서 양복 입은 남자가 건너왔다⁠. 쉰쯤⁠, 검은 테 안경에 짙은 회색 양복⁠, 넥타이를 끝까지 조였다⁠. 한여름 아침에 재킷을 벗지 않은 사람이었다⁠. 남자는 트럭 옆에 멈춰 팔짱을 끼고 이층집을 올려다보다가⁠, 장롱 위에서 시선을 멈췄다⁠. 안경 너머 눈이 한 번 깜빡였다⁠.

“⁠더채움개발 계상현입니다⁠. 이 집 열쇠 받으러 왔습니다⁠.⁠”

이층집은 2단지 부지로 더채움개발에 팔린 집이었다⁠. 도씨 집안은 집을 넘기고 길 건너 1702호를 먼저 분양받았다⁠. 상현은 명함을 우찬에게 내밀었다⁠. 「⁠더채움개발 상무 · 입주관리 및 2단지 부지 담당⁠」⁠. 우찬은 같은 명함을 지난달에도 받았다⁠. 입주 협력 이사업체 약정을 맺던 날이었다⁠.

“⁠그 장롱⁠, 어디로 갑니까⁠?⁠”

“⁠1702호요⁠.⁠”

“⁠못 들어갑니다⁠.⁠”

상현이 서류철을 펴서 세 번째 장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특약 3⁠. 업체가 반입한 물품으로 단지에 생긴 피해와 그 처리 비용(⁠퇴마 포함⁠)은 업체가 부담한다⁠.⁠」

우찬은 이 줄을 기억했다⁠. 지난달 약정서에 도장을 찍을 때 ‘⁠퇴거⁠’를 잘못 친 오타인 줄 알았다⁠.

“⁠이거 오타 아니었어요⁠?⁠”

“⁠오타 아닙니다⁠.⁠”

“⁠퇴마를 이삿짐센터가 왜 해요⁠.⁠”

“⁠짐을 들인 사람이 이삿짐센터니까요⁠. 퇴마사는 제가 압니다⁠. 한 번에 삼백입니다⁠.⁠”

삼백만 원⁠. 우찬은 머릿속으로 트럭 할부를 꺼냈다⁠. 5톤 탑차⁠, 한 달에 이백삼십만 원씩 열아홉 번 남았고⁠, 납입일은 25일이었다⁠. 단지 약정으로 받아 둔 입주 이사 예약이 마흔 집⁠. 이 마흔 집이 열아홉 번을 막아 줄 돈이었다⁠.

“⁠짐은 짐이에요⁠.⁠” 우찬이 말했다⁠. “⁠견적서에 장롱 하나 있으면 장롱 하나 옮기는 거예요⁠.⁠”

“⁠여기 980세대 가운데 대출 없이 들어온 집이 몇 집인지 아십니까⁠?⁠”

“⁠모르죠⁠.⁠”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서른 집이 안 됩니다⁠.⁠” 상현은 서류철을 덮었다⁠. “⁠귀신 붙은 집이 있다는 소문 하나면 호가가 몇천씩 빠집니다⁠. 빠진 몇천은 신혼부부 대출에서 빠집니다⁠. 길 사장님 장롱 하나 때문에요⁠.⁠”

“⁠할머니 하나 때문이겠죠⁠.⁠”

“⁠그러니까 더 안 됩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롱 위에서 덕례 할머니가 상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까 우찬에게 흔든 것보다 크게⁠.

“⁠어이⁠, 안경 양반⁠. 나 보이지⁠?⁠”

상현은 대답 대신 넥타이 매듭을 손끝으로 한 번 눌렀다⁠. 그리고 할머니 쪽으로 고개를 아주 조금 숙였다⁠.

“⁠인사는 받겠습니다⁠, 할머님⁠.⁠”

우찬은 상현을 쳐다보았다⁠. 상현은 우찬을 보지 않고 명구에게서 열쇠를 받아 갔다⁠.

*

오후 한 시⁠, 더채움 센트럴 정문⁠. 입주지원센터는 도씨 집에 엘리베이터 이사 예약을 한 시부터 네 시까지 잡아 주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벌써 회색 보양재가 벽마다 붙어 있었고⁠, 17층 창문 밖으로는 사다리차 바구니가 윙윙 오르내렸다⁠. 정문 경비실 유리창에는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1702호 자개장롱 반입 보류 — 입주지원센터⁠」

경비원이 창문을 열고 우찬에게 물었다⁠. “⁠장롱에 뭐가 들었길래 상무님이 직접 종이를 붙이고 가요⁠? 금괴요⁠?⁠”

“⁠할머니요⁠.⁠”

“⁠할머니 금괴⁠?⁠”

“⁠네⁠, 비슷해요⁠.⁠”

경비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창문을 닫았다⁠. 우찬은 경비실 앞에서 목장갑을 고쳐 끼며⁠,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장롱이 가구였다는 것을 떠올렸다⁠.

냉장고가 올라가고⁠, 침대가 올라가고⁠, 상자 마흔두 개가 올라갔다⁠. 장롱만 트럭 짐칸에 남았다⁠. 덕례 할머니는 장롱 위에서 사다리차 바구니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고개를 젖히고 보았다⁠.

“⁠17층이 어디여⁠? 하늘이여⁠?⁠”

“⁠거의요⁠.⁠”

“⁠우리 영감은 이층 계단도 숨차 했는데⁠.⁠”

종태가 땀을 닦으며 짐칸으로 왔다⁠. “⁠사장님⁠, 장롱 언제 올려요⁠? 네 시 넘으면 엘리베이터 다음 집 거야⁠.⁠”

“⁠못 올려⁠.⁠”

“⁠왜⁠?⁠”

“⁠단지에서 막았어⁠.⁠”

“⁠장롱을⁠? 장롱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바트가 엘리베이터를 돌아보며 말했다⁠. “⁠사장님⁠, 몽골에서는 할머니 물건 버리면 겨울에 말이 안 돌아와요⁠.⁠”

“⁠여긴 말이 없잖아⁠.⁠”

“⁠그래서 트럭이 안 돌아올 수도 있어요⁠.⁠”

휴대전화가 울렸다⁠. 딸 예빈이었다⁠. 화면에 「⁠아빠 군산 흉가 꽝⁠. 오늘도 귀신 없음⁠. 기름값만 날림⁠」이 떴다⁠. 우찬은 장롱 위를 한 번 보고 답장을 쓰다가 지웠다⁠.

세 시 오십 분⁠, 1702호 이사가 끝났다⁠. 명구는 장롱 앞에서 한참 서 있다가 엘리베이터를 탔고⁠, 애자는 짐칸 쪽으로 오지 않았다⁠. 대신 상현이 정문에서 걸어왔다⁠. 손에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장롱 반입 포기 확인서 — 업체는 위 물품을 단지 안으로 들이지 않으며⁠, 처분은 소유자와 협의한다⁠」

“⁠서명하시면 약정 그대로 갑니다⁠. 마흔 집 예약도 그대로고요⁠.⁠”

우찬은 종이를 받지 않았다⁠. 목장갑을 벗어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상무님도 보이시죠⁠, 저 위에⁠.⁠”

“⁠제가 보이는 것과 단지는 상관없습니다⁠.⁠”

“⁠상관있죠⁠. 보이시는 분이 막으시니까⁠.⁠”

상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휴대전화를 꺼내 날짜를 확인했다⁠.

“⁠월요일 열 시에 퇴마사를 보내겠습니다⁠. 비용은 약정대로 청구하고요⁠. 그때까지 장롱이 단지 안에 있으면 약정은 끝입니다⁠.⁠”

“⁠단지 안에는 없을 거예요⁠.⁠”

우찬은 트럭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짐칸과 운전석 사이 작은 창으로 덕례 할머니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총각⁠, 우리 어디 가⁠?⁠”

“⁠제 차고요⁠.⁠”

“⁠차고는 몇 층이여⁠?⁠”

“⁠일 층이요⁠.⁠”

“⁠그럼 됐어⁠.⁠”

트럭이 정문을 빠져나가는 동안 사이드미러 속에서 상현은 팔짱을 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짐칸에서 모란 손가방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났다⁠. 우찬은 핸들을 꺾으며 처음으로 라디오를 다시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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