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070자) · 명희 · 10월 23일
삼백스물네 번째
손님이 남기고 간 것 · 한도윤
이 부장은 금요일 점심에 혼자 왔다. 된장찌개를 시켜서 다 먹고, 뚝배기 바닥을 숟가락으로 긁고, 물을 한 컵 마신 다음 명함을 한 장 더 꺼내 계산대 이쑤시개 통 옆에 세웠다. 팔월에 세워 둔 명함 옆이었다. 두 장이 나란히 섰다.
“어머님, 저 주유소 샀습니다.”
명희는 계산대 서랍을 닫다가 멈췄다.
“길 건너요. 서울 주인분이 십삼 년 동안 안 팔고 버티셨는데, 이번에 값을 좀 쳐 드렸더니 파셨습니다. 어제 잔금 치렀어요.” 이 부장이 웃었다. 웃는 얼굴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어머님 땅이 안 들어오니까 진입로를 저쪽으로 돌리기로 했습니다. 반만 나오긴 하는데 그래도 나옵니다. 창고 규모를 좀 줄이면 돼요.”
“잘됐네요.”
“잘됐지요. 근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어요.” 이 부장이 턱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저 뒤채에 사람이 살더라고요. 서울 주인분이 집 봐 달라고 그냥 살게 한 분인데, 계약서도 없고 월세도 없고. 오늘 아침에 제가 직접 가서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주 안에 나가 주셔야 한다고. 철거 들어가니까.”
명희의 손이 계산대 모서리를 잡았다. 나무 모서리가 삼십 년 동안 손에 닳아 둥글었다.
“그분이 뭐라셨어요.”
“아무 말도 안 하시던데요. 그냥 저를 한참 보시더니 문 닫고 들어가셨어요.” 이 부장이 가방을 챙겼다. “어머님, 저 이제 값 안 올립니다. 대신 내리지도 않을게요. 어머님이 마음 바뀌시면 그 값 그대로 드립니다. 제가 이 동네에서 제일 오래 기다린 땅이 여기니까요.”
종이 두 번 울렸다. 이 부장의 차가 국도로 나갔다.
명희는 창밖을 봤다. 국도 건너 폐주유소 캐노피 아래에 굴착기 한 대가 들어와 서 있었다. 노란 굴착기였고, 주유기 세 대를 감싼 비닐이 그 굴착기 바가지 옆에서 바람에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태오야.”
“네.”
“정 경사님 번호.”
태오가 휴대폰을 꺼내 들고 명희 옆에 섰다. 번호를 띄워 놓고 통화 버튼은 누르지 않았다. 둘은 그렇게 서 있었다. 주방에서 점심 장사 끝물의 뚝배기 두 개가 불 위에서 졸아들고 있었고, 된장이 바닥에 눌어붙는 탄내가 홀까지 번졌다. 명희는 그 냄새를 맡고도 가스 불을 끄러 가지 않았다. 태오가 먼저 알아채고 주방으로 뛰어가 불을 껐다. 뛰어가는 동안에도 휴대폰 화면은 번호를 띄운 채 명희 쪽을 향해 있었다. 돌아와서 태오가 말했다. “사장님, 뚝배기 하나 새까매졌어요. 저거 증거물 3 할까요?” 명희는 웃지 않았는데, 입꼬리 한쪽이 잠깐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
두 시 십 분이었다. 점심 손님이 빠지고 홀에는 기사 다섯이 남아 있었다. 그중 하나가 강 기사였다. 강 기사는 쉬는 날이라 낮에 왔다고 했지만, 쉬는 날마다 낮에 왔다. 창가 세 번째 상 햇볕 속에 먼지가 떠다녔다.
종이 울렸다.
문은 몸이 빠져나갈 만큼만 열렸다. 회색 코트가 들어왔다. 낮이었다. 햇빛이 코트의 닳은 소매와 어깨의 보풀과 앞섶의 단추 자리를 하나하나 비췄다. 단추가 네 개 달려 있었고, 위에서 세 번째 자리가 비어 실만 삐죽 나와 있었다. 명희는 밤의 형광등 아래에서 그 코트를 삼백 번 넘게 봤지만 그 빈자리를 본 적이 없었다.
그는 한 손에 종이 가방을 들고 있었다.
태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명희는 그 소리를 들었다. 강 기사가 의자를 뒤로 밀고 일어섰다. 나머지 기사 넷도 따라 일어섰다. 그는 그 다섯을 보지 않았다. 홀을 가로질러 창가 세 번째 상 앞까지 걸어가서 섰다. 앉지 않았다.
“된장찌개요.”
“안 팔아요.”
명희가 말했다. 주방 입구가 아니라 계산대 앞에서였다. 둘 사이에 상이 다섯 개 있었다.
“접근금지예요. 여기 오면 안 돼요. 경찰 불렀어요.”
“압니다.” 그가 말했다. “백 미터 밖에서 보름을 봤습니다. 오늘 아침에 그 백 미터가 없어졌습니다. 이번 주 안에 나가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여기로 왔어요?”
“갈 데가 없어서 여기로 왔습니다.”
강 기사가 한 걸음 나섰다. 명희가 손을 들어 막았다. 강 기사가 멈췄다. 그 손바닥이 떨리지 않는다는 것을 명희는 자기 손을 보고 알았다.
그가 종이 가방을 창가 세 번째 상 위에 내려놓았다.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개어 놓은 옷이었다. 밤색 털실 카디건이었다. 그가 그것을 상 위에 폈다. 단추가 네 개 달려 있었다. 자개 단추. 맨 아래 자리가 비어 있었고, 가위로 자른 실 끝이 삐죽 나와 있었다.
명희의 손이 앞치마 주머니로 갔다. 주머니 안에서 자개 단추를 쥐었다. 가장자리의 금이 손가락을 눌렀다.
그 카디건은 1997년 봄에 없어졌다. 빨랫줄에 널어 두었는데 저녁에 없었다. 바람에 날아갔다고 생각했다.
“이게 마지막입니다.” 그가 말했다. “삼백스물세 개 돌려드렸습니다. 이게 삼백스물네 번째입니다.”
“왜 이제 줘요.”
“나가라고 하니까요. 거기 두고 갈 수가 없어서요.”
명희는 계산대 앞에서 걸어 나왔다. 상 다섯 개 사이를 지났다. 창가 세 번째 상 앞에서, 그의 맞은편에 섰다. 둘 사이에 카디건이 펼쳐져 있었다. 창으로 들어온 햇볕이 털실 위에 떨어져 오래된 양털 냄새를 끌어올렸다. 나프탈렌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누군가 이 옷을 삼십 년 동안 옷장에 넣고 좀약을 갈아 줬다.
“이름이 뭐예요.”
그가 명희를 봤다. 처음으로 그 눈이 조금 흔들렸다.
“윤재호입니다.”
명희는 그 이름을 입 안에서 한 번 굴렸다. 소리를 내지 않았다. 혀끝에 아무 맛도 없었다.
“그 겨울에 안 물으셨지요.” 윤재호가 말했다. “물으셨으면 말씀드렸을 겁니다. 안 물으셔서 저는 그게 대답인 줄 알았습니다.”
“무슨 대답요.”
“사장님은 그 봄에 저를 기다리셨습니다.” 윤재호의 목소리는 평평했다. 날씨를 말하는 목소리였다. “제가 이사 간다고 하고 나서 몇 주 동안, 열두 시 반에 불 하나 켜 놓고 앉아 계셨습니다. 저는 길 건너에서 봤습니다. 주유소 일을 막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저는 그걸 봤고, 그 뒤로 삼십 년 동안 가지 않았습니다.”
“그 겨울에 저는 이천 공장에서 잘리고 화물차 조수석에서 자던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제 옷에 손을 댄 게 몇 년 만이었습니다. 사장님은 단추를 달고 실을 이로 끊으셨습니다. 저는 그 소리를 삼십 년 동안 들었습니다.” 윤재호가 코트 앞섶의 빈자리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실 끝이 손가락에 걸렸다. “그래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기사 다섯이 숨을 멈췄다. 태오의 휴대폰에서 정 경사의 목소리가 작게 새어 나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명희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주먹을 펴지 않았다.
“기다렸어요.”
강 기사가 명희를 봤다.
“몇 주 기다렸어요. 불 하나 켜 놓고. 남편 자는 거 보고 나와서. 누구한테도 말 안 했어요.” 명희의 목소리가 홀에 울렸다. 크지 않았는데 울렸다. “그리고 말았어요. 몇 주 하고 말았어요. 사람은 그래요. 잠깐 그러다가 말아요. 그다음엔 장사를 하고 애를 키우고 남편을 묻어요.”
명희는 주먹을 폈다. 자개 단추가 손바닥 위에 있었다.
“당신은 안 말았어요. 내가 만 걸 삼십 년 동안 안 말았어요. 내 서랍을 열고 내 반지를 가져가고 내 빨랫줄에서 이 옷을 걷어 가고. 그건 기다린 게 아니에요.” 명희가 단추를 카디건 위, 비어 있는 단춧구멍 옆에 내려놓았다. 딸깍, 자개가 상 위 유리에 닿는 소리가 났다. “훔친 거예요. 삼십 년을 훔친 거예요.”
윤재호는 단추를 봤다. 오래 봤다. 손을 뻗지 않았다.
종이 울렸다. 이번에는 문이 활짝 열렸다. 정 경사였다. 경찰차가 마당에 비스듬히 서 있었고, 순경 하나가 뒤따라 들어왔다. 정 경사는 홀을 한 번 훑고 곧장 창가로 걸어왔다.
“윤재호 씨. 잠정조치 위반으로 현행범 체포합니다.”
윤재호는 저항하지 않았다.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순경이 수갑을 채우는 동안 그는 카디건을 봤다. 명희는 그 카디건을 개지 않았다. 펼쳐진 채로 두었다.
정 경사가 그를 데리고 문으로 갔다. 문 앞에서 윤재호가 멈췄다. 돌아서지는 않았다.
“된장찌개, 그 겨울 맛 말고 지금 맛도 괜찮았습니다.”
“다시는 못 드세요.”
종이 두 번 울렸다.
경찰차가 마당을 빠져나간 뒤에도 기사 다섯은 한동안 앉지 않았다. 강 기사가 정수기에서 물을 한 컵 받아 와 명희 앞에 놓았다. 명희는 컵을 쥐었다. 찬물이 손바닥의 열을 빨아들였고, 컵 표면에 금세 물방울이 맺혀 손가락 사이로 흘렀다. 명희는 마시지 않고 쥐고만 있었다.
“사장님, 괜찮아요?”
“물이 차네.”
“정수기 냉수니까.” 강 기사가 말하고는 자기가 한 말이 이상했는지 목에 건 수건으로 얼굴을 한 번 문질렀다. “아니, 내가 뭔 소리를.”
태오는 카디건 앞에 서 있었다. 주머니에서 지퍼백을 꺼냈다가 카디건을 보고 도로 넣었다. 창고로 뛰어가서 김장용 비닐봉지를 들고 왔다. 김장 봉지는 커서 카디건이 그 안에서 헤엄쳤다. 태오는 카디건을 개지 않고 펼친 모양 그대로 봉지 안에 밀어 넣으려다가 소매 한쪽이 삐져나와서 세 번을 다시 했다. 자개 단추는 따로 작은 지퍼백에 넣었다. 매직을 꺼내 김장 봉지 위에 적으려다가 태오가 명희를 봤다.
“사장님, 이거 몇 번이에요?”
“마지막.”
태오가 적었다. 「증거물 마지막」.
*
저녁 여덟 시에 정 경사가 전화했다. 구속영장이 발부됐다고 했다. 잠정조치 위반, 스토킹 범죄의 반복, 주거침입은 공소시효가 지난 것과 안 지난 것을 가려 보겠다고 했다. 삼백스물네 개의 물건이 증거로 넘어간다고 했다. 카디건도.
명희는 전화를 끊고 창밖을 봤다. 국도 건너 담 틈이 어두웠다. 불이 켜지지 않았다. 굴착기의 노란 몸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희미하게 떠 있었다.
태오가 창가 세 번째 상을 닦고 있었다. 행주로 같은 자리를 여러 번 문질렀다. 카디건이 놓였던 자리였다.
“사장님, 이 자리 이제 어떡해요?”
명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상을 오래 봤다. 낮에 거기 떨어졌던 햇볕의 네모는 이제 없었다. 형광등 빛이 상 위를 고르게 비추고 있었다. 삼십 년 동안 이 자리에 누가 앉는지 명희는 신경 쓰지 않았고, 삼백 일 동안은 신경만 썼다. 명희는 그 자리의 의자를 빼서 앉아 봤다. 의자가 삐걱했다. 창밖으로 명희네 마당과 평상 두 개와 화물차 자리 여덟 칸과, 그 너머 국도와 불 꺼진 폐주유소가 한 폭에 들어왔다.
“여기서 보면 다 보이네.”
“뭐가요?”
“다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