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213자) · 명희 · 10월 30일
국도 건너
손님이 남기고 간 것 · 한도윤
시월 마지막 금요일, 폐주유소 뒤채는 없었다.
굴착기가 사흘 동안 벽돌을 부수고 날랐다. 신문지를 붙였던 창문, 플라스틱 의자가 놓였던 문 앞, 빨래 건조대가 서 있던 자리. 다 걷혀 나가고 남은 것은 콘크리트 바닥 위의 네모난 흙 자국이었다. 사무실 건물과 담 사이의 좁은 틈은 이제 틈이 아니었다. 담이 헐리고 나니 국도 건너에서 명희네 주방 창문이 그냥 훤히 보였다. 아무나 볼 수 있는 창문이 됐다.
캐노피는 남았다. 주유기 세 대도 비닐을 벗고 남았다. 녹슨 주유기 몸통에 「리터당 1,898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2013년의 가격이었다.
이 부장은 열두 시 십 분에 왔다. 자정 손님들 사이로 걸어 들어와서 창가 두 번째 상에 앉았다. 넥타이를 풀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얼굴이 지난주보다 홀쭉했다.
“어머님, 된장찌개 하나요. 짜게요.”
“왜 짜게요.”
“오늘 짜야 먹을 것 같아서요.”
명희는 소금을 한 꼬집 더 넣었다. 이 부장은 찌개를 절반쯤 먹다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홀을 둘러봤다. 서른 명이 조금 넘었다. 마당 평상 둘, 화물차 자리 여덟 칸, 배수로 옆 갓길까지 트럭이 늘어서 있었고, 몇 대는 국도 건너 폐주유소 캐노피 아래에 대 놓았다. 주인 없는 땅이라 다들 거기 댔다. 이 부장 땅이었다.
“본사가 창고 접었습니다.”
명희는 계산대 앞에 섰다.
“진입로 반으로는 인허가가 안 난답니다. 대형 차량 회전반경이 안 나온대요. 어머님 땅이 들어와야 나오는 거였습니다.” 이 부장이 뚝배기를 손가락으로 톡 쳤다. “그래서 저는 지금 주유소 하나를 떠안았습니다. 서울 주인분한테 값 쳐 드리고 산 거라 되팔면 손해고요. 창고 없는 국도변 주유소 자리를 누가 삽니까?”
“나한테 팔려고요?”
“네.”
“안 사요.”
이 부장이 웃었다. 이번에는 웃는 얼굴이 조금 흐트러졌다.
“어머님, 한 번만 들어 주세요. 저 이거 못 팔면 회사에서 제 자리가 없습니다. 어머님이 제 값을 안 받아 주셔서 이렇게 된 거니까, 어머님이 좀.”
“내가 안 팔아서 당신이 산 거지, 내가 사라고 한 거 아니잖아요.”
홀이 조용해졌다. 강 기사가 숟가락을 입에 문 채로 이 부장과 명희를 번갈아 봤다. 태오는 공깃밥을 들고 서 있었다.
이 부장이 한숨을 쉬었다. 넥타이를 주머니에서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제가 뭘 드리면 어머님이 저 땅을 가져가 주시겠습니까?”
명희는 창밖을 봤다. 캐노피 아래 트럭 세 대가 서 있었다. 운전석 불이 하나 켜져 있었고, 당번 기사가 거기서 자고 있을 터였다.
“안 사요. 빌려요.”
“네?”
“캐노피 밑이랑 그 앞. 뒤채 있던 데까지. 트럭 대고 평상 놓게. 월세로.”
이 부장이 명희를 한참 봤다. “얼마 생각하세요?”
“얼마 받고 싶은데요.”
“한 달에 이백은…….”
“삼십.”
“어머님, 저거 칠백 평입니다.”
“칠백 평이 비어 있으면 그냥 칠백 평이에요. 트럭 서면 이 부장님 땅에 불이 켜지는 거고.” 명희가 뚝배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부장 앞에 절반 남은 뚝배기였다. “그리고 부장님 밤에 오시면 밥은 공짜.”
“그건 원래 제 돈 내고 먹었잖아요.”
“이제 안 내도 된다고요.”
기사 하나가 푸하 웃었다. 강 기사가 그 기사의 뒤통수를 쳤는데, 강 기사도 웃고 있었다. 이 부장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한 번 쓸었다. 쓸고 나서 뚝배기를 끌어당겨 남은 절반을 다 먹었다. 바닥을 숟가락으로 긁었다. 그 소리가 사각사각 났다.
“오십.”
“사십.”
“사십에 평상은 제가 안 사 드립니다.”
“평상은 내가 사요.”
이 부장이 손을 내밀었다. 명희는 앞치마에 손을 닦고 그 손을 잡았다. 이 부장의 손바닥이 땀에 축축했고, 명희의 손바닥은 된장 냄새가 뱄다. 이 부장이 손을 놓고 냅킨으로 손을 닦다가 멈추고, 냅킨을 내려놓았다.
“어머님, 이 냄새 오래 가겠네요.”
“오래 가요. 삼십 년 가요.”
*
열두 시 이십 분에 정 경사에게서 문자가 왔다. 명희는 가스레인지 앞에서 휴대폰을 앞치마에 문질러 닦고 읽었다. 기소됐다고 했다. 첫 공판이 십이월이고, 증인으로 나와 주셔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마지막 줄은 이랬다. 「피고인이 반성문에 된장찌개 이야기를 썼습니다. 판사님은 그런 거 안 봅니다.」
명희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 휴대폰을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안에 이제 열쇠도 단추도 거울도 없었다. 다 증거물로 넘어갔다. 휴대폰 하나가 그 넓은 주머니 바닥에서 가볍게 흔들렸다. 명희는 걸을 때마다 허벅지를 찌르던 쇳덩이가 없다는 것을 그날 저녁에야 알았다. 앞치마가 한쪽으로 처지지 않고 반듯하게 내려와 있었다.
*
열두 시 반이었다. 종은 울리지 않았다.
명희는 국자를 쥔 채로 문 쪽을 한 번 봤다. 한 달 넘게 들인 버릇이었다. 문 위의 놋쇠 종은 가만히 매달려 있었다. 명희는 그 종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창가 세 번째 상을 봤다. 비어 있었다. 서른 명이 넘는 홀에서 그 상 하나만 섬처럼 비어 있었다.
“태오야.”
“네.”
“저기 앉아.”
태오가 공깃밥 쟁반을 든 채로 굳었다. “제가요?”
“그래.”
“저 일하는 중인데요.”
“밥 먹는 것도 일이야. 앉아.”
태오는 쟁반을 강 기사 상에 내려놓았다. 강 기사가 알아서 공깃밥을 돌렸다. 태오가 창가로 걸어갔다. 첫 번째 상을 지나고 두 번째 상의 이 부장을 지나 세 번째 상 앞에 섰다. 의자를 빼는 손이 조금 망설였다. 태오는 앉았다. 의자가 삐걱했다.
명희는 뚝배기를 불에 올렸다. 멸치를 넣고, 소금을 한 꼬집 덜고, 올해 된장과 창고 맨 안쪽 된장을 반씩. 태오가 여덟 달 동안 옆에서 본 찌개였다. 불은 중간으로 두었다. 뚝배기 가장자리에 기포가 올라오고 두부 모서리가 흔들렸다. 명희는 숟가락 끝으로 국물을 떠서 혀에 올렸다. 짠맛이 너무 늦지도 이르지도 않게 왔다. 그 뒤로 콩 냄새가 오래 남았고, 그 냄새 끝에 멸치의 비린 단맛이 얇게 깔렸다. 대식의 맛도 아니고 그 겨울의 맛도 아니었다. 혀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다.
명희는 뚝배기를 직접 들고 갔다. 태오 앞에 내려놓았다. 태오가 명희를 올려다봤다.
“사장님, 저 이 자리 무서워요.”
“알아.”
“근데 창밖이 되게 잘 보이네요.”
“그래서 앉으라고 했어.”
태오가 숟가락을 들었다. 한 입 먹었다. 뜨거워서 입을 벌리고 하아 하고 김을 뱉었다. 강 기사가 “천천히 먹어, 인마” 했다. 태오가 두 번째를 떴다. 세 번째. 밥을 말았다. 그때 태오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떨어졌다. 바닥 타일에 부딪혀 화면이 켜졌다. 메모장이 떠 있었다. 「사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명희가 주워서 태오에게 내밀었다. 화면을 보지 않은 척했다.
태오가 휴대폰을 받아 화면을 봤다. 한참 봤다. 그러고는 엄지로 길게 눌렀다. 「삭제하시겠습니까?」 태오가 눌렀다. 휴대폰을 상 위에 엎어 놓고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사장님, 저 이번 달까지만 하려고 했는데요.”
“알아.”
“다음 달까지만 할게요.”
“그것도 알아.”
태오가 웃었다. 입에 두부가 든 채로 웃어서 두부가 튀어나올 뻔했다. 태오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태오는 그 뚝배기를 다 먹었다. 숟가락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사각사각. 명희는 그 소리를 계산대 옆에서 들었다. 한 달 전 이 자리에서 같은 소리를 들었을 때는 다른 소리가 다 멀어졌다. 오늘은 멀어지지 않았다. 강 기사가 떠드는 소리, 이 부장이 기사들과 월세 얘기를 하는 소리, 평상 쪽에서 누가 크게 웃는 소리. 그 소리들 사이에 태오의 숟가락 소리가 섞여 있었다. 태오가 빈 뚝배기 바닥을 들여다봤다.
“사장님, 아무것도 없어요.”
“당연하지.”
“그래도 한번 봤어요.”
태오는 빈 뚝배기를 들고 일어서지 않았다. 창가 세 번째 의자에 앉은 채로 창밖을 봤다. 국도 건너 캐노피 아래에 트럭 세 대가 서 있었고, 담이 헐린 자리가 가로등 불빛에 하얗게 드러나 있었다. 거기 이제 아무도 없었다. 태오는 휴대폰을 다시 집어 들어 그 빈자리를 한 장 찍었다. 찍고 나서 사진을 보더니 “흐려요” 하고 웃었다. 명희는 이번에는 그래도 있잖아, 하고 말하지 않았다.
*
한 시 반에 성민이 흰 SUV에 평상 하나를 싣고 왔다. 뒷좌석을 다 접고 트렁크 문을 연 채로 끈에 묶어서 국도를 달려왔다. 이천 목재소에서 샀다고 했다. 소나무 평상이었고, 아직 기름칠을 안 해서 생나무 냄새가 났다.
“엄마가 사라며.”
“내가 산다고 했지 네가 사라고 안 했어.”
“엄마 카드로 샀어.”
기사들이 달려 나가 평상을 내렸다. 여섯 명이 한쪽씩 들었다. 강 기사가 앞에서 뒷걸음질하며 소리쳤다. “왼쪽! 아니 내 왼쪽! 아드님 왼쪽 말고!” 성민이 오른쪽으로 비틀거렸다. 태오가 휴대폰으로 그걸 찍었다. 이 부장도 따라 나와서 모서리 하나를 잡았다가 넥타이가 평상 틈에 끼어서 넥타이를 풀어 버렸다.
명희는 앞장서서 국도로 걸어 나갔다. 새벽 한 시 반의 국도는 비어 있었다. 가로등이 백 미터마다 서 있었다. 명희는 국도 한가운데 중앙선 위에서 한 번 좌우를 봤다. 화물차가 오지 않았다. 손을 들었다. 평상이 국도를 건넜다.
캐노피 아래로 들어서자 공기가 달라졌다. 콘크리트가 낮의 열을 다 뱉어 내서 발밑이 찼고, 오래된 휘발유 냄새가 희미하게 올라왔다. 거기에 생나무 냄새가 섞였다. 명희는 뒤채가 있던 자리, 콘크리트 위에 흙 자국만 네모나게 남은 자리 앞에서 멈췄다.
“여기.”
기사들이 평상을 내려놓았다. 네 다리가 콘크리트에 닿는 소리가 났다. 평상이 흙 자국 위에 정확히 앉았다.
명희는 평상 가장자리에 손을 짚었다. 생나무 표면이 거칠었다. 가시가 손바닥에 걸렸다. 명희는 그 위에 앉았다. 앉아서 국도 건너를 봤다.
거기 명희네 기사식당이 있었다. 간판은 꺼져 있었고 홀 형광등 열두 개가 다 켜져 있었다. 창가 세 번째 상에 빈 뚝배기가 하나 있었다. 마당 평상 두 개 위에 기사들이 앉아 있었고, 화물차 자리 여덟 칸이 다 찼다. 주방 창문 너머로 가스 불 하나가 파랗게 흔들렸다. 명희가 끄지 않고 나온 불이었다. 삼십 년 동안 명희는 저 가게를 이쪽에서 본 적이 없었다.
“엄마, 뭐 해?”
성민이 옆에 와서 섰다. 태오도 왔다. 강 기사도, 이 부장도.
“평상 하나 더 놔야겠다.”
“또?”
“여기 서른 명 앉으려면.”
이 부장이 한숨을 쉬었다. “어머님, 월세 사십에 평상 두 개는……”
“세 개.”
강 기사가 크게 웃었다. 캐노피 아래서 그 웃음이 울려서 두 배로 커졌다. 태오가 휴대폰을 들어 명희를 찍었다. 명희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국도 건너, 불 켜진 가게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