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085자) · 명희 · 10월 9일
명희네 자정조
손님이 남기고 간 것 · 한도윤
시월 구일 한글날 밤, 명희네 기사식당 마당에는 화물차가 열한 대 서 있었다.
화물차 자리 여덟 칸이 열한 시 반에 찼고, 나머지 세 대는 마당 가장자리 배수로 옆에 바퀴 반쯤을 걸치고 섰다. 오 톤 윙바디, 십일 톤 카고, 냉동 탑차. 시동을 끈 트럭들이 식어 가며 엔진에서 똑, 똑, 금속이 줄어드는 소리를 냈다. 경유 냄새와 된장 냄새가 마당 한가운데서 섞였다.
홀의 열두 상이 다 찼다. 마당 평상 두 개에도 기사들이 앉았다. 태오가 창고에서 접이식 밥상 세 개를 꺼내 평상 위에 폈고, 평상 하나에 여섯 명씩 앉았다. 창가 세 번째 상만 비어 있었다. 이제 그 자리에 대해 묻는 사람은 없었다. 새로 온 기사가 앉으려 하면 옆 사람이 턱으로 안 된다고 했고, 새로 온 기사는 이유를 묻지 않고 일어났다.
태오가 공깃밥 그릇 수로 세어 보니 서른 명이었다.
명희는 가스 불 네 개로 뚝배기 서른 개를 끓였다. 일곱 번에 나눠 끓였고, 열두 시에 시작해서 열두 시 사십 분에 마지막 뚝배기가 나갔다. 태오가 공깃밥 서른 개를 퍼서 날랐고, 깁스를 푼 기사와 슬리퍼였던 기사가 반찬을 날랐다. 강 기사는 아무것도 나르지 않고 홀 한가운데 서서 누가 뭘 먹었는지 소리쳐 불렀다. “평상 둘, 된장 여섯! 제육 둘! 공기 추가 셋!” 태오가 그걸 받아 적다가 포기하고 녹음을 켰다.
명희는 뚝배기 서른 개를 다 맛봤다. 불에서 내리기 전에 숟가락 끝으로 떠서 혀에 올렸다. 서른 번이었다. 서른 개의 맛이 조금씩 달랐다. 불 자리마다, 뚝배기마다, 끓인 시간마다. 명희는 그 차이를 혀로 하나하나 알았고, 알면서 고치지 않았다. 멸치를 넣었고 소금을 한 꼬집 덜었고 된장은 올해 담근 것과 창고 맨 안쪽 것을 반씩 섞었다. 대식의 맛도, 그 겨울의 맛도 아니었다. 명희는 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다. 기사들은 그걸 다 먹었다.
열두 시 반에 명희는 쟁반을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평상 쪽 뚝배기 여섯 개를 직접 가져다줄 생각이었다. 문을 열자 시월 밤의 찬 공기가 앞치마 속으로 스며들었다. 낮에는 반팔이던 날씨가 해가 지면 겨울 쪽으로 기울었다. 쟁반 위 뚝배기 여섯 개에서 김이 한꺼번에 올라 명희의 얼굴을 덮었다가 바람에 흩어졌다. 뚝배기 바닥의 열이 쟁반을 지나 손바닥으로 올라왔다.
평상 위 기사들이 명희를 보고 엉덩이를 들썩였다. 명희는 앉으라고 손짓하고 뚝배기를 하나씩 내려놓았다. 평상 끝에 앉은 젊은 기사가 국도 건너를 턱으로 가리켰다.
“사장님, 저 불은 뭐예요? 매일 켜져 있던데.”
“이웃이야.”
“이웃이 밤새 불을 켜 놔요?”
“잠이 없나 보지.”
옆자리 기사가 젊은 기사의 옆구리를 찔렀다. 젊은 기사는 영문을 모른 채 된장을 떠먹다가 “와, 이거 뭐예요” 하고 눈을 크게 떴다. 명희는 빈 쟁반을 옆구리에 끼고 섰다. 담 틈의 불빛에서 여기까지는 백십 미터였다. 그 불빛 앞 플라스틱 의자에서 보면 평상 위 기사 열두 명의 등과, 그 사이에 선 명희의 앞치마가 보일 터였다. 명희는 그 앞치마를 벗지 않고 한참 거기 서 있었다.
열두 시 반에 종이 울리지 않았다.
접근금지 결정이 나고 보름이 넘었다. 그 뒤로 종은 열두 시 반에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대신 국도 건너 담 틈에는 매일 밤 불이 켜졌다. 명희는 가스레인지 앞에서 고개를 들면 그 불빛을 봤다. 백십 미터 밖이었다. 종이 안 우는 열두 시 반이 되면 명희는 국자를 쥔 채 문 쪽으로 한 번 고개를 돌렸고, 문 위의 놋쇠 종이 가만히 매달려 있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다시 뚝배기로 눈을 내렸다. 보름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
한 시 오 분에 흰 SUV가 마당에 들어왔다.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SUV는 마당 입구에서 멈췄다가 국도 갓길에 섰다. 성민이 내려서 걸어왔다. 화물차 열한 대 사이를 지나왔다. 평상 위의 기사 열두 명이 고개를 들어 성민을 봤다. 성민이 그 눈들 사이를 지나 식당 문을 열었다.
종이 울렸다. 홀의 기사 열여덟 명이 문을 봤다. 강 기사가 반쯤 일어났다가 성민의 얼굴을 보고 도로 앉았다.
“엄마.”
명희는 주방 입구에 서 있었다. 앞치마에 된장 국물이 튀어 있었다.
“박순임 아줌마가 전화했어. 경찰이 대신리에 와서 주유소 아저씨 얘기를 물어보고 다닌다고. 엄마네 일이라고.” 성민의 목소리가 떨렸다. 떨리는 걸 감추려고 목소리를 눌렀는데 눌러서 더 떨렸다. “엄마, 삼십 년이라며. 그 사람이 엄마 집에 들어왔었다며. 그걸 나한테 안 말했어?”
홀이 조용해졌다. 서른 명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평상 쪽에서도 소리가 멎었다. 열린 문으로 마당 기사들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말하면 네가 팔자고 할 거니까.”
“당연히 팔자고 하지! 엄마 미쳤어? 그 사람이 저기 산다며. 길 건너. 백 미터 밖이라 잡을 수도 없다며.” 성민이 창밖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담 틈의 불빛이 거기 있었다. “저기서 지금도 보고 있잖아. 지금도.”
“알아.”
“아는데 여기 있어?”
“아니까 여기 있어.”
성민이 홀 한가운데로 걸어왔다. 기사들 상 사이였다. 명희도 주방 입구에서 걸어 나왔다. 둘은 홀 한가운데, 지난 팔월 이 부장이 서류를 놓았던 그 상 앞에서 마주 섰다. 그 상에는 지금 기사 둘이 앉아 있었고, 둘은 숟가락을 든 채로 고개를 번갈아 돌렸다.
“엄마, 수원 가면 그 사람 못 와. 아파트 경비 있고 번호키 두 개고. 그 사람 차도 없잖아. 여기서 수원까지 못 와.”
“올 거야.”
“어떻게 와.”
“삼십 년을 왔어. 백십 미터를 삼십 년 동안 왔어. 수원이 뭐가 멀어.” 명희는 앞치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열쇠와 단추와 손거울이 손에 닿았다. “여기서는 저 불빛이 보여. 저 불이 켜져 있으면 저 사람이 저기 있는 거야. 수원 가면 뭐가 보여? 엘리베이터 문? 거기서 나는 또 삼십 년 동안 저 사람이 어디 있는지 몰라.”
“그러니까 경찰이.”
“경찰은 백 미터까지야.”
성민이 입을 다물었다. 이마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대식과 똑같은 손짓이었다.
“그럼 엄마 혼자 여기서 뭘 해. 밤마다 저 불빛 보면서 뭘 해.”
“혼자 아니야.”
강 기사가 일어났다. 의자 다리가 타일을 긁었다. 서른 명이 강 기사를 봤다.
“아드님, 내가 한마디만 해도 돼요?”
성민이 강 기사를 봤다. 목에 수건을 건, 쉰다섯의 화물 기사.
“이거 봐요.” 강 기사가 휴대폰을 꺼내 성민 앞에 내밀었다. 단톡방이었다. 방 이름이 「명희네 자정조」였고, 인원이 마흔일곱 명이었다. 맨 위에 공지가 고정되어 있었다. 강 기사가 손가락으로 공지를 눌렀다. 표였다. 날짜가 세로로, 이름이 가로로 적힌 당번표였다.
“우리가 매일 밤 한 시까지 여기 있어요. 한 시 넘으면 한 명은 마당에 차 대고 차에서 자요. 운전석에서 저 집 현관이 보이게. 새벽 여섯 시에 사장님 된장 푸러 나오시는 거 보고 출발해요. 날마다 사람 바뀌어요. 이번 달 표 다 찼어요. 다음 달 것도 반 찼어요.” 강 기사가 휴대폰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사장님은 이거 모르셨어요. 우리끼리 한 거라.”
명희가 강 기사를 봤다. 강 기사는 명희를 보지 않았다. 성민을 보고 있었다.
“아드님 말 다 맞아요. 수원이 안전하지. 근데 수원 아파트에는 새벽 한 시에 서른 명이 없어요. 여긴 있어요. 그리고 여기 없어지면 우리는 새벽에 밥 먹을 데가 없어요. 이천 가는 길에 이 시간에 불 켜진 데가 여기 하나예요.” 강 기사가 수건으로 목을 닦았다. “우리도 이 집 필요해서 그래요. 공짜로 지켜 주는 거 아니에요. 밥 먹으려고 지키는 거예요.”
성민은 한참 서 있었다. 홀을 둘러봤다. 열두 상, 서른 개의 빈 뚝배기와 반쯤 빈 뚝배기, 평상 위에 편 접이식 밥상, 창가 세 번째의 빈 자리. 태오가 계산대 뒤에서 녹음 중인 휴대폰을 쥐고 있었다. 성민은 마지막으로 명희를 봤다. 명희의 앞치마, 국물 튄 자국, 주머니 안에서 뭔가를 쥐고 있는 손.
성민이 휴대폰을 꺼냈다. 새벽 한 시 이십 분이었다. 성민은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여섯 번 가고 나서 상대가 받았다. 잠에서 깬 목소리가 홀까지 새어 나왔다.
“부장님, 최성민입니다. 늦게 죄송합니다.”
상대가 뭐라고 했다. 성민은 명희를 보면서 말했다.
“연말은 없습니다. 어머니 땅 안 팝니다. 올해도, 내년도요. 네. 네, 압니다. 그 값 다시 안 나오는 거 압니다.”
성민이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지 않고 손에 든 채로 서 있었다.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한 번 미끄러졌다.
홀에서 누군가 박수를 쳤다. 슬리퍼였던 기사였다. 강 기사가 그 기사의 뒤통수를 쳤다. 박수가 멈췄다.
명희는 주방으로 돌아갔다. 가스 불 하나를 켰다. 뚝배기 하나에 물을 붓고, 된장을 풀었다. 성민이 된장을 안 먹는다는 걸 명희는 알았다. 명희는 소금을 한 꼬집 더 넣었다. 성민이 어릴 때, 대식이 끓여 주면 그건 먹었다. 짜야 먹었다.
뚝배기를 쟁반에 올려 들고 나왔다. 홀 한가운데 상에 앉은 기사 둘이 일어나 자리를 비켰다. 명희가 뚝배기를 내려놓았다. 성민이 앉았다.
“나 된장 안 먹는 거 알잖아.”
“먹어 봐.”
성민이 숟가락을 들었다. 한 입 떠서 먹었다. 멈췄다. 숟가락을 입에 문 채로 한동안 있었다. 국물 김이 성민의 안경을 하얗게 흐렸다. 성민은 안경을 벗지 않았다. 흐린 안경 너머로 무엇을 보는지 명희는 몰랐다. 성민이 두 번째 숟가락을 떴다. 세 번째를 떴다.
“짜.”
“네 아빠 맛이야.”
성민이 숟가락을 멈췄다. 흐린 안경 너머로 뚝배기를 내려다봤다. 뭐라고 하려다가 말았고, 대신 공깃밥을 국물에 말았다. 대식이 그렇게 먹었다. 밥을 국에 말아 숟가락을 세워 두고 한꺼번에 떠먹는 식이었다. 대식이 쓰러진 뒤로 성민은 그 상에 같이 앉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손이 그렇게 했다.
강 기사가 기사들에게 손짓했다. 서른 명이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숟가락이 뚝배기에 부딪치는 소리가 홀을 다시 채웠고, 마당 평상에서도 소리가 돌아왔다. 트럭 엔진이 식는 소리, 밥상 다리가 평상 나무를 긁는 소리, 누가 크게 웃는 소리. 명희는 그 소리들 한가운데서 성민의 등을 보고 서 있었다.
국도 건너 담 틈의 불빛이 한 번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명희는 그쪽을 봤다. 오늘은 오래 보지 않았다. 대신 성민의 뚝배기에 국물이 얼마나 남았는지 봤다. 가운데 줄보다 한참 아래였다. 명희는 그것을 숟가락으로 떠서 맛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