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03자) · 명희 · 9월 22일
백십 미터
손님이 남기고 간 것 · 한도윤
정 경사는 자정에 된장찌개를 시켰다.
여주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경사, 마흔셋. 청바지에 바람막이를 입고 운동화를 신었고, 머리를 뒤로 묶었다. 강 기사가 처음 보는 얼굴이라 “어디 물류요?” 하고 물었고, 정 경사는 “여주요” 하고 대답했다. 강 기사는 그 대답에 만족했다. 정 경사는 창가 두 번째 상에 앉았다. 세 번째 상 바로 옆이었다.
전날 오후에 명희는 고추장 통을 안고 여주경찰서에 갔다. 태오가 오토바이로 통을 실어 날랐는데, 통을 뒷자리에 묶느라 삼십 분이 걸렸고, 가는 동안 통 안에서 삼백 개 넘는 물건이 짤그락거려서 신호 대기 때마다 옆 차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고 쳐다봤다. 민원실에서 명희는 한참 말을 고르다가 「삼십 년 동안 누가 내 물건을 가져갔어요」라고 했다. 민원실 직원이 「도난 신고요?」 했고, 태오가 뒤에서 「스토킹이요」라고 했다. 그 말이 떨어지자 직원이 전화기를 들었고 십 분 뒤 정 경사가 내려왔다.
정 경사는 조사실 탁자 위에 통을 열었다. 물건을 다 꺼내지 않았다. 위에서부터 열 개를 꺼내 하나씩 명희에게 물었다. 이건 언제 잃어버렸어요? 어디서요? 명희는 열 개 전부 대답했다. 정 경사는 열한 번째를 꺼내지 않았다.
“됐습니다. 전부 기억하시네요.”
“전부 내 거니까요.”
“그게 중요합니다.” 정 경사가 통 뚜껑을 닫았다. 뚜껑 위에 적힌 「증거물 1」을 보고 태오를 봤다. 태오가 눈을 피했다. “근데 이것만으로는 그 사람이 가져갔다는 게 안 됩니다. 사장님이 떨어뜨린 걸 그 사람이 주웠다고 하면요.”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어요.”
“그럼 제가 봐야겠네요. 그 사람이 물건을 두고 가는 걸.”
*
열두 시 반에 종이 울렸다.
정 경사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숟가락으로 두부를 반으로 가르고 있었다. 손님은 문 안쪽에 서서 홀을 봤다. 기사 열둘, 태오, 주방 입구의 명희. 그리고 창가 두 번째 상의 처음 보는 여자. 그는 여자를 오래 봤다. 여자가 입은 바람막이, 운동화, 묶은 머리. 명희는 그 눈이 여자를 재는 것을 봤다. 삼십 년 동안 사람을 재어 온 눈이었다.
그는 창가 세 번째 상에 앉았다.
“된장찌개요.”
명희는 뚝배기를 불에 올렸다. 지난 금요일 이후로 명희는 찌개를 원래대로 돌리지도 옛날 쪽으로 가지도 않았다. 그 둘 사이 어딘가에서 매일 조금씩 흔들렸다. 오늘은 멸치를 넣고 소금을 덜었다. 혀가 아니라고 해도 명희는 그대로 뒀다.
뚝배기를 쟁반에 올려 명희가 직접 들고 갔다. 손님 앞에 내려놓았다. 손님은 숟가락을 들고 한 입을 먹었다. 멈췄다. 명희를 봤다. 명희는 돌아서지 않았다.
그가 절반을 먹었다. 숟가락을 뚝배기 옆에 놓고,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명희는 그 손을 봤다. 정 경사도 봤다. 정 경사는 여전히 두부를 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숟가락이 멈춰 있었다.
손님이 뚝배기 안에 그것을 넣었다. 국물이 절반 남은 뚝배기 안으로 손가락이 들어갔다가 나왔다. 손가락에 된장 국물이 묻었다. 그는 그 손가락을 냅킨에 닦았다.
정 경사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선생님.”
손님이 고개를 돌렸다. 정 경사가 바람막이 안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 상 위에 놓았다. 경찰 공무원증이었다. 강 기사가 숟가락을 입에 넣은 채 굳었다. 홀이 조용해졌다. 냉장고 모터가 멈췄다.
“여주경찰서 정입니다. 방금 뚝배기에 넣으신 거, 뭡니까?”
손님은 공무원증을 봤다. 정 경사를 봤다. 그리고 명희를 봤다. 명희는 주방 입구에 서 있었다. 앞치마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
“돌려드린 겁니다.”
“누구한테요?”
“사장님한테요.”
“사장님이 달라고 하셨습니까?”
손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 경사는 일어나서 창가 세 번째 상 앞에 섰다. 손님 맞은편 의자를 빼서 앉았다. 둘 사이에 절반 남은 뚝배기가 있었다. 정 경사가 뚝배기를 손님 쪽에서 자기 쪽으로 끌어왔다. 숟가락으로 국물 속을 휘저었다. 두부 사이에서 은색이 반짝였다. 정 경사가 숟가락으로 그것을 떠 올렸다.
작은 옷핀이었다. 끝에 파란 플라스틱 구슬이 달린 옷핀. 명희가 앞치마 끈이 끊어졌을 때 임시로 꽂아 두던 옷핀이었다. 지난주 화요일에 없어졌다.
“이 가게에 매일 오셨죠. 작년 십일월부터.”
“네.”
“매일 이런 걸 두고 가셨고요.”
“돌려드렸습니다.”
“어디서 나셨습니까?”
“떨어진 걸 주웠습니다.”
“어디에 떨어진 걸요?”
손님은 창밖을 봤다. 국도, 그 건너 폐주유소. “여러 데서요.”
“설거지대, 빨랫줄, 사장님 집 안.”
손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 경사가 옷핀을 냅킨에 올려놓았다. 목소리가 커지지 않았다. 밥값을 묻는 목소리였다.
“선생님, 스토킹처벌법이라는 게 있습니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데 따라다니거나 지켜보거나, 사는 데나 일하는 데 근처에서 기다리거나, 물건을 두고 가는 것도 들어갑니다. 반복되면 범죄입니다. 사장님이 원하셨습니까, 이 물건들?”
“돌려드리는 겁니다.” 손님이 말했다. 처음으로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제가 가져간 게 아니라 제가 갖고 있던 겁니다. 버리면 안 되니까요. 사장님 거니까요. 이 가게가 없어진다고 해서, 가져가시라고, 하루에 하나씩.”
“가게가 없어진다고 누가 그래요.”
명희가 말했다. 모두가 명희를 봤다. 명희는 주방 입구에서 한 걸음 나왔다.
“아드님이 오셨지요. 명함 든 사람이랑.” 손님이 명희를 봤다. “작년 가을부터 오셨습니다.”
작년 가을. 성민이 처음 이 부장 얘기를 꺼낸 것이 작년 시월이었다. 이 부장이 처음 식당을 둘러보고 간 것은 십일월 초였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밤부터 창가 세 번째 상에 코트가 앉았다. 명희는 그걸 셈하면서 자기 손가락이 앞치마 주머니 안에서 자개 단추를 쥐고 있는 것을 알았다. 단추 가장자리의 금이 손가락을 눌렀다.
정 경사가 일어났다. “선생님, 같이 서로 가 주셔야겠습니다. 임의동행입니다. 거부하실 수 있는데, 거부하시면 제가 다른 방법을 씁니다.”
손님은 일어났다. 저항하지 않았다. 계산대로 가서 천 원짜리 아홉 장을 놓았다. 한 방향으로 접혀 있었다. 정 경사가 그 아홉 장을 지퍼백에 넣었다. 태오의 지퍼백이었다. 태오가 말없이 내밀었다.
종이 두 번 울렸다. 정 경사의 차가 마당을 빠져나갈 때 강 기사가 창가로 가서 섰다. 기사 열둘이 다 일어서서 창밖을 봤다.
국도 건너 담 틈의 불빛은 꺼져 있었다. 명희는 그 어둠을 처음으로 편하게 봤다. 편하게 보다가, 그 편함이 하룻밤짜리라는 것을 알았다. 경찰차 미등이 국도 모퉁이에서 사라지자 강 기사가 창유리에 이마를 댄 채 말했다.
“사장님, 저 여자분 찌개값 안 내고 가셨어요.”
“경찰이 밥값 떼먹는 거 처음 봐.” 깁스를 푼 기사가 말했다.
“떼먹은 게 아니지. 일하다 간 거지.” 강 기사가 창에서 이마를 뗐다. 유리에 이마 자국이 동그랗게 남았다가 천천히 지워졌다. “내가 낼게요. 아니다, 다음에 오면 두 그릇 드시라고 해요. 오늘 두부도 반밖에 못 드셨어.”
태오가 창가 두 번째 상으로 가서 정 경사의 뚝배기를 들었다. 반으로 갈린 두부가 국물 위에 떠 있었다. 태오는 그걸 보고 한참 서 있다가, 아무 말 없이 개수대로 가져갔다.
*
다음 날 오후 두 시, 명희는 여주경찰서 조사실에 앉아 있었다.
정 경사가 서류를 한 장 내밀었다. 법원이 새벽에 내린 결정이었다. 잠정조치. 피해자와 그 주거, 직장으로부터 백 미터 이내 접근금지. 휴대전화나 우편 같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두 달.
“구속은 안 돼요?”
“아직은요. 물건 두고 간 것만으로는 법원이 구속까지는 안 봅니다. 도망갈 사람도 아니고요. 삼십 년을 한자리에 있었으니까.” 정 경사가 서류를 넘겼다. “대신 이제부터는 가게에 오면 그 자체로 위반입니다. 위반하면 그땐 잡아 둘 수 있어요.”
“그 사람 사는 데는요?”
정 경사가 잠깐 말을 멈췄다. 그러고는 서류 한 장을 더 내밀었다. 지도였다. 국도 37호선, 명희네 식당, 길 건너 폐주유소. 식당 문에서 뒤채 문까지 빨간 선이 그어져 있었고, 선 옆에 볼펜으로 눌러 쓴 숫자가 있었다. 백십 미터였다.
“오늘 아침에 가서 쟀습니다. 식당 문에서 백십 미터입니다. 집 현관에서는 백이십이 미터고요.” 정 경사가 펜 끝으로 숫자를 톡톡 쳤다. “기준 밖입니다. 그 사람은 거기 살아도 됩니다. 거기 앉아 있어도 됩니다.”
명희는 지도를 봤다. 빨간 선은 곧았다. 국도를 가로질러 폐주유소 캐노피 아래를 지나 담 틈으로 들어갔다. 그 선을 따라가면 끝에 플라스틱 의자가 있을 터였다.
“그러니까 그 의자에서는.”
“보셔도 됩니다. 보는 건 막을 수가 없어요. 백 미터 밖에서는.”
명희 옆에 앉아 있던 태오가 손을 들었다. 학교에서처럼 손을 들었다.
“저, 진술 추가해도 돼요?”
정 경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오가 휴대폰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엑셀 표, 「손님」 폴더의 사진 삼백 몇 장, 흐린 얼굴 영상, 주방 창문과 담 틈을 나란히 찍은 두 장. 태오는 그것들을 하나씩 넘기면서 설명했다. 날짜, 시간, 물건, 국물 높이. 말하는 동안 태오의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여러 번 미끄러졌다. 태오는 그때마다 바지에 손을 닦고 다시 넘겼다.
정 경사가 다 듣고 나서 말했다. “이거 누가 시켰어요?”
“아무도요.”
“왜 했어요?”
태오가 명희를 봤다. 그러고는 정 경사를 봤다. 입을 몇 번 달싹였다.
“저 여덟 달 동안 사장님한테 그만두겠다는 말을 못 했거든요. 메모장에 써 놓고. 매일 오늘은 말해야지 하고 출근했는데, 열두 시 반까지 있다가 못 하고 퇴근하고.” 태오가 휴대폰 화면을 껐다. 까만 화면에 형광등이 비쳤다. “이거 하려고 못 했나 봐요.”
명희는 태오를 보지 않았다. 조사실 창밖을 봤다. 창밖에 은행나무가 있었고, 잎이 아직 파랬다. 명희는 그 파란 잎을 오래 봤다. 목 안쪽이 된장을 너무 많이 떠먹었을 때처럼 뻐근했다. 탁자 밑에서 명희의 손이 태오의 무릎 위에 한 번 얹혔다가 떨어졌다. 태오의 바지가 땀에 축축했다.
정 경사가 서류를 챙겨 일어섰다. 문 앞에서 돌아섰다.
“이름 아세요? 그 사람.”
명희는 고개를 저었다.
“알려 드릴까요?”
“아니요.”
“왜요?”
명희는 서류의 피의자 칸을 봤다. 성 뒤에 이름이 적혀 있었다. 명희는 그 칸 위에 손바닥을 덮었다. 종이가 서늘했다.
“삼십 년 동안 안 물어봤어요. 그 사람 입으로 들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