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278자) · 명희 · 9월 9일
걸쇠
손님이 남기고 간 것 · 한도윤
열두 시 이십구 분에 명희는 문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계산대 의자를 끌어다 문에서 두 걸음 떨어진 자리에 놓았다. 걸쇠는 걸려 있었다. 태오는 퇴근하지 않았다. 계산대 뒤에 쪼그려 앉아 휴대폰으로 시계를 보고 있었고, 화면 불빛이 태오의 턱 밑을 파랗게 비췄다.
“삼십 분 됐어요.”
“말하지 마.”
“삼십일 분.”
명희는 문을 봤다. 유리가 끼워진 알루미늄 문이었고, 유리 너머로 마당의 가로등 불빛과 평상 두 개의 윤곽과 그 너머 국도의 어둠이 보였다. 문고리는 은색 막대 손잡이였다. 명희는 그 손잡이가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을 기다렸다. 걸쇠가 걸린 문을 누가 밀면 쇠가 덜컥 소리를 낼 것이고, 문이 일 센티쯤 벌어졌다가 멈출 터였다.
손잡이는 내려가지 않았다.
발소리도 없었다. 마당 자갈을 밟는 소리, 문 앞 시멘트 턱을 딛는 소리, 유리에 비치는 그림자. 아무것도 없었다. 국도에서 화물차 한 대가 지나가며 창을 흔들었다가 멀어졌고, 그다음은 냉장고 모터 소리뿐이었다. 모터가 돌다가 멈추면 홀이 더 조용해졌다. 그 조용함이 귀 안쪽을 눌렀다.
“안 오네요.” 태오가 속삭였다. “잘된 거죠? 이거 잘된 거죠?”
명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종이 울리지 않는 열두 시 반을 명희는 삼백 일 넘게 겪어 보지 않았다. 종이 울리면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알았다. 창가 세 번째. 지금 그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마당 어둠 속인가, 주방 뒷문 밖인가, 식당 뒤 집 현관 앞인가, 아니면 국도 건너 담 틈의 플라스틱 의자인가. 명희는 그 질문의 답을 몰랐고, 모르는 것이 목덜미 뒤 솜털을 하나하나 세웠다.
“태오야, 뒷문.”
“네?”
“뒷문 잠겼어?”
태오가 주방으로 뛰어갔다가 돌아왔다. “뒷문은 원래 자물쇠가 없어요.”
둘은 새벽 두 시까지 그렇게 앉아 있었다. 태오는 중간에 계산대 뒤에서 한 번 졸았고, 머리가 계산대 모서리에 부딪혀 쿵 소리가 나자 명희가 의자에서 반쯤 일어섰다. 태오가 이마를 문지르며 “저예요, 저예요” 했다.
*
아침 여섯 시에 명희는 걸쇠를 풀고 마당으로 나갔다. 된장 항아리를 열러 가는 길이었다.
평상 위에 무언가가 있었다.
새벽이슬이 평상 나무를 적셔 검게 만들어 놓았고, 그 한가운데에 둥근 손거울 하나가 놓여 있었다. 뒷면에 분홍 장미가 그려진 플라스틱 손거울이었다. 명희는 가까이 가지 않고 서서 그것을 봤다. 알았다. 2008년 여름에 잃어버린 거울이었다. 성민의 고등학교 졸업 사진을 찍으러 가던 날 아침에 앞치마 주머니에 있었는데 저녁에 없었다.
거울 밑에 종이가 깔려 있었다. 천 원짜리 아홉 장이었다. 한 방향으로 접혀 있었고, 이슬에 젖어 가장자리가 부풀어 있었다.
명희는 한참 서 있었다. 새벽 공기가 차서 앞치마 안으로 팔을 넣었다. 국도는 아직 푸른 어둠이었고, 길 건너 폐주유소 캐노피 위로 해가 뜨기 전의 빛이 희미하게 번져 있었다. 담 틈의 불빛은 꺼져 있었다.
명희는 손거울을 집어 들었다. 이슬이 손가락 사이로 흘렀다. 거울을 뒤집었다. 거울 면에 명희의 얼굴이 비쳤다. 쉰아홉 살의 얼굴이었다. 눈 밑이 거뭇했다. 2008년의 거울이 2026년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밥을 먹지 않은 밥값이었다. 명희는 그 아홉 장을 집어서 계산대 서랍에 넣지 않았다. 식당 쓰레기통에도 넣지 않았다.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가 무거워졌다. 열쇠, 단추, 거울, 젖은 지폐.
*
성민은 오후 세 시에 혼자 왔다. 흰 SUV에서 내리면서 이미 전화를 하고 있었고,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전화를 끊었다.
“엄마, 이 부장님이 또 올렸어. 평당 오. 연락 왔어.”
“안 판다니까.”
“일단 들어는 봐.” 성민이 문을 닫다가 멈췄다. 문틀을 봤다. 못 자국 여섯 개와 새 걸쇠가 있었다. 성민이 걸쇠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쇳소리가 났다. “이거 뭐야?”
“걸쇠.”
“걸쇠인 건 알아. 왜 달았냐고.”
주방에서 태오가 냄비 뚜껑을 떨어뜨렸다. 냄비 뚜껑이 바닥을 두 바퀴 돌고 멈췄다. 명희는 태오를 보지 않았다.
“밤에 잠그려고.”
“엄마가? 삼십 년 동안 안 잠근 엄마가?” 성민이 한 발 다가왔다. “무슨 일 있었어?”
“없어.”
“없는데 걸쇠를 달아?”
“달고 싶어서 달았어.”
“엄마.”
성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명희는 그 목소리를 알았다. 대식이 화를 참을 때 내던 목소리였다. 성민은 대식을 닮았다. 목소리도, 이마도, 걱정하면 먼저 화를 내는 것도.
“엄마, 누가 뭐 했어? 누가 밤에 와?”
명희는 앞치마 주머니를 손으로 눌렀다. 젖은 지폐가 허벅지에 차갑게 붙었다. 성민에게 말하면 성민은 오늘 밤 여기서 잘 것이다. 내일 경찰에 갈 것이다. 그리고 이 부장에게 전화할 것이다. 도장 찍을 칸이 비어 있는 서류가 모레 이 상 위에 올라올 것이다. 그리고 명희는 12월이 되기 전에 수원의 엘리베이터 있는 아파트에 있을 것이다. 문에 번호키가 두 개 달린 집에서,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채로.
“밤에 기사들 온대.”
“뭐?”
“화물 기사들. 자정에 밥 먹으러 온대서. 자정에 문 열 거야. 사람 오니까 걸쇠 달았어. 기사들 가면 잠그려고.”
성민이 명희를 봤다. 믿지 않는 얼굴이었다. 한참 보다가 코웃음을 쳤다.
“자정에 장사를 한다고? 엄마 쉰아홉이야. 낮 장사도 힘들어서 알바 쓰면서.”
“밤에도 장사가 되면 안 팔아도 되잖아.”
성민이 말을 잃었다. 그러다가 손바닥으로 이마를 쓸었다.
“엄마, 내가 돈 때문에 이러는 거 같아? 아빠 가고 엄마 혼자 이 국도변에서 밤마다 문 열어 놓고 있는 게 싫어서 그래. 아빠 쓰러졌을 때도 새벽이었어. 엄마 혼자 있었으면 어쩔 뻔했어.” 성민이 걸쇠를 다시 튕겼다. “이런 걸로 안 돼.”
“그럼 뭘로 돼.”
“사람 많은 데로 가면 돼.”
“여기 사람 많아지면 돼.”
둘은 걸쇠를 사이에 두고 서 있었다. 태오가 주방 입구에서 반쯤 몸을 내밀었다가 명희와 눈이 마주치자 도로 들어갔다.
성민이 먼저 돌아섰다. “자정 장사 해 봐. 한 달. 몇 명 오는지 봐. 이 부장님 값은 올라간 거 그대로 받아 둘게. 연말까지야.”
“알아.”
“모르니까 하는 말이야.”
종이 두 번 울렸다.
*
그날 밤 열두 시 오 분에 누군가 식당 문을 두드렸다. 걸쇠가 걸린 문이 쾅쾅 흔들렸고 걸쇠 고리가 덜컥덜컥 튀었다. 태오가 계산대 뒤로 숨었다. 명희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사장님! 나요! 강한수! 문 잠겼어!”
명희는 걸쇠를 풀었다. 문이 활짝 열렸고 종이 요란하게 울었다. 강 기사가 목에 수건을 두르고 서 있었고, 그 뒤로 세 사람이 더 있었다. 모두 쉰 안팎의 남자들이었다. 하나는 모자에 「대한통운」이 박혀 있었고, 하나는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고, 하나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단톡방에 올렸더니 셋이 붙었어요. 이천 상차 가는 애들. 사장님, 오늘 된장 네 개. 아니 제육도. 아니, 뭐 되는 대로.”
“간판 꺼졌는데.” 슬리퍼가 말했다.
“원래 꺼진 데야. 불 꺼진 게 여기 간판이야.” 강 기사가 셋을 밀어 넣었다. “들어가, 들어가. 창가는 앉지 마. 세 번째는 절대.”
“왜요, 형님?”
“귀신 나와.”
“진짜요?”
“더 무서운 거.”
명희는 가스 불 네 개를 켰다. 뚝배기 네 개에 물을 붓고 된장을 풀었다. 이번 주 내내 바꿔 온 대로, 소금을 덜고 불을 약하게. 불꽃 네 개가 뚝배기 밑에서 파랗게 흔들렸고, 네 개의 된장 냄새가 한꺼번에 피어올라 주방 환풍기가 따라가지 못했다. 명희는 그 냄새 속에서 숟가락으로 하나씩 맛을 봤다. 네 개가 조금씩 달랐다. 불 세기가 다른 탓이었다. 명희는 가장 약한 불 위의 것이 제일 나았다고 혀로 알았다.
기사들은 먹으면서 떠들었다. 강 기사 목소리가 제일 컸고, 깁스한 사람이 두 번째였다. 슬리퍼는 조용히 두 공기를 먹었다. 태오가 공기밥을 나르며 “밥 더 드릴까요?”를 여섯 번 했다. 홀의 형광등이 오늘 처음으로 열두 개 다 켜졌다.
열두 시 이십오 분에 명희는 시계를 봤다. 문을 봤다. 걸쇠를 봤다.
기사들이 가고 나서 걸쇠를 걸면 된다. 그러면 열두 시 반에는 문이 잠겨 있을 것이다. 종이 울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명희는 다시 어젯밤처럼 새벽 두 시까지 앉아서, 그 사람이 마당 어디쯤, 뒷문 어디쯤, 현관 어디쯤에 있는지 모르는 채로 귀를 세우고 있을 것이다. 내일 아침 평상 위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보러 나갈 것이다.
명희는 걸쇠 앞으로 갔다.
“사장님, 잠그시게요?” 태오가 물었다.
명희는 걸쇠 고리를 손가락으로 들어 올렸다. 쇠 고리는 차가웠다. 그리고 고리를 문틀 쪽으로 젖혀, 걸리지 않게 벽에 붙여 두었다.
“잠그면 어디서 오는지 몰라.”
강 기사가 숟가락을 든 채로 명희를 봤다. 강 기사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대신 의자를 돌려 앉았다. 문이 보이는 쪽으로. 깁스한 사람도 따라서 돌려 앉았다. 슬리퍼는 영문을 모르고 밥을 먹었다.
열두 시 반에 종이 울렸다.
문은 몸이 빠져나갈 만큼만 열렸다. 회색 코트가 문 안쪽에 섰다. 네 사람의 눈이 그 코트에 가 있었다. 강 기사는 숟가락을 쥐고 있었고, 깁스한 사람은 깁스 팔을 상 위에 올려놓고 있었고, 슬리퍼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손님은 그 네 쌍의 눈을 하나씩 봤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창가 세 번째 상으로 걸어가 앉았다.
“된장찌개요.”
명희는 가스 불 하나를 다시 켰다. 뚝배기에 된장을 풀면서 등 뒤의 소리를 들었다. 오늘 밤은 등 뒤에 소리가 있었다. 강 기사가 쩝쩝거리며 먹는 소리, 깁스한 사람이 물을 들이켜는 소리, 슬리퍼가 “형님, 저분이에요?” 하고 속삭였다가 강 기사에게 뒤통수를 맞는 소리. 명희는 그 소리들이 등에 담요처럼 덮이는 것을 느꼈다. 그 사람의 눈이 여전히 뒤통수에 와 있었지만, 그 눈과 명희 사이에 네 사람의 숟가락 소리가 끼어 있었다.
손님은 절반을 먹었다. 구천 원을 계산대에 놓았다. 오늘은 네 번째 장의 모서리가 반대로 접혀 있었다. 명희는 그걸 봤다. 삼백 일 넘게 처음이었다.
“잘 먹었습니다.”
종이 두 번 울렸다. 기사 넷이 동시에 숨을 내쉬었다.
태오가 뚝배기를 들고 바닥을 들여다봤다. 국물을 숟가락으로 휘저었다. 두부 아래, 호박 아래까지 휘저었다.
“사장님, 없어요.”
“뭐가?”
“오늘은 아무것도 없어요.”
명희는 앞치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젖었다 마른 지폐 아홉 장이 손끝에 버석거렸다. 오늘 몫은 새벽에 이미 평상 위에 놓여 있었다.
강 기사가 수건으로 입을 닦고 일어났다. “사장님, 내일 여섯 명 와요. 내가 여섯 명 데려올게. 열두 시 반까지 있다 갈게.”
“상차 늦어요.”
“늦으면 뭐, 욕 한 번 먹지.” 강 기사가 문을 활짝 열었다. 종이 요란하게 울었다. “욕 먹는 건 우리가 전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