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083자) · 명희 · 9월 8일
안 갔어
손님이 남기고 간 것 · 한도윤
대신리는 식당에서 국도를 등지고 안쪽으로 1.5킬로미터 들어간 마을이었다. 논 사이로 난 시멘트 길이 한 줄 있었고, 길 양쪽 논에서 벼가 고개를 숙이기 시작해 바람이 불 때마다 누런 물결이 한쪽으로 쏠렸다가 돌아왔다. 화요일 오후 두 시, 점심 장사가 끝나고 저녁 장사 전까지 명희에게 주어진 세 시간이었다.
태오가 오토바이를 몰았고 명희는 뒤에 탔다. 명희가 오토바이 뒤에 탄 것은 처음이었다. 태오는 시속 삼십 킬로미터로 갔다. 경운기가 둘을 추월했다.
“더 밟아.”
“사장님 태우고는 못 밟아요. 떨어지시면 저 평생 된장 못 먹어요.”
“왜?”
“죄책감 때문에요.”
박순임의 집은 마을 회관 옆, 파란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기와집이었다. 마당에 고추가 멍석 세 장 가득 널려 있었고, 매운 냄새가 햇볕에 달궈져 코를 찔렀다. 태오가 재채기를 네 번 했고, 네 번째에는 헬멧을 쓴 채라 헬멧 안에서 재채기 소리가 울렸다. 박순임은 마루에 앉아 고추 꼭지를 따고 있다가 명희를 보고 가위를 내려놓았다.
“아이고, 명희가 웬일이야. 대식이 가고 한 번도 안 오더니.”
“바빴어요, 형님.”
“바쁘긴. 손님 예순이라며.”
박순임은 일흔둘이었고, 1996년 겨울 식당 문을 연 첫해에 배추를 대 주던 사람이었다. 그 뒤로 삼십 년 동안 김장 배추는 늘 박순임네 밭에서 왔다. 박순임은 명희와 태오를 마루에 앉히고 부엌에서 찐 옥수수를 한 소쿠리 내왔다. 태오가 옥수수를 두 손으로 받아 들고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박순임이 태오를 위아래로 훑었다.
“얘가 그 알바야? 된장 얼굴에 묻히고 다닌다는?”
“한 번이에요. 한 번 묻혔어요.”
“한 번이면 됐지.”
명희는 옥수수를 손에 쥔 채 먹지 않았다. 태오에게 눈짓을 했다. 태오가 옥수수를 입에 문 채로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띄웠다. 금요일 밤의 영상에서 잘라 낸 한 장이었다. 형광등에 하얗게 번진 얼굴, 회색 코트 어깨, 뭉개진 눈코입.
“형님, 이 사람 알아요?”
박순임은 휴대폰을 받아서 팔을 쭉 뻗어 멀리 들었다. 눈을 가늘게 떴다. 휴대폰을 가까이 가져왔다가 다시 멀리 들었다. 태오가 옆에서 두 손가락으로 화면을 키워 주려 하자 박순임이 손등을 찰싹 쳤다.
“만지지 마. 흐려지잖아.”
“원래 흐려요.”
박순임은 한참을 들여다봤다. 박순임의 손가락 끝은 고추를 만져 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그 손끝이 화면 가장자리를 눌러서 액정에 매운 기름이 번졌다. 마당에서 고추 냄새가 바람을 타고 왔다. 멀리 논두렁에서 누가 예초기를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가 끊겼다.
“코트네.”
“네.”
“이 코트를 아직도 입어?”
명희의 손에서 옥수수가 조금 기울었다. 박순임은 휴대폰을 마루에 내려놓고 명희를 봤다.
“주유소 총각이잖아. 아니, 이제 총각은 아니지. 주유소 아저씨. 저 건너 주유소에서 밤에 기름 넣던 사람.” 박순임이 옥수수 한 알을 떼어 입에 넣었다. “그 사람 안 갔어.”
“어디를요?”
“어디를 안 가. 아무 데도 안 갔다고. 너네 가게 문 연 그 겨울에 너네 집에 밥 먹으러 다니던 사람 아니야? 내가 배추 대러 새벽에 가면 그 시간에 나오던 사람. 그 사람이 봄부터 저 주유소에서 일했어. 밤 당번. 주유소 닫힐 때까지 한 십오 년 했나? 닫히고 나서는 그 뒤채에 그냥 살아. 주인이 서울 사람인데 집 봐 준다고.” 박순임이 고개를 갸웃했다. “명희 너 몰랐어?”
명희는 대답하지 못했다.
“우리는 대식이 친군 줄 알았지. 맨날 주유기 옆에 서서 너네 가게 쪽을 보고 있길래. 대식이 장례 때도 왔잖아. 길 건너에서. 안 들어오고 주유소 앞에 서 있다가 갔어. 나는 저 사람 참 의리 있다 그랬지.”
태오가 옥수수를 내려놓았다. 옥수수 알이 마루 틈으로 굴러 떨어졌다.
“형님, 그 사람 이름 알아요?”
“이름? 몰라. 주유소 아저씨지. 말을 안 해. 마을에도 잘 안 들어와. 구멍가게에서 라면 사 가는 거 한 번씩 봤어. 그게 다야.” 박순임이 휴대폰을 도로 태오에게 밀었다. “근데 왜? 그 사람이 뭐 했어?”
명희는 옥수수를 소쿠리에 도로 내려놓고 일어났다. 무릎이 한 번 휘청했다. 태오가 팔을 잡았다.
“형님, 김장 배추 올해도 부탁해요.”
“그건 당연하고. 명희야, 왜 그래? 얼굴이 하얘.”
“고추 냄새 때문에요.”
*
국도로 나오는 동안 명희는 오토바이 뒤에서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태오도 말하지 않았다. 식당 마당에 오토바이를 세우자 명희는 내려서 식당으로 가지 않고 국도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사장님, 어디 가세요?”
명희는 대답 없이 국도를 건넜다. 이차선 국도였고 화물차가 오지 않는 틈이었다. 아스팔트가 늦여름 햇볕에 달궈져 운동화 밑창으로 열이 올라왔다. 태오가 오토바이 키를 뽑다가 떨어뜨리고, 줍고, 뛰어왔다.
폐주유소 캐노피 아래는 그늘이었다. 주유기 세 대에 덮인 비닐이 바람에 부풀었다가 가라앉으며 부스럭거렸다. 콘크리트 바닥 틈으로 강아지풀이 무릎 높이까지 자라 있었고, 오래된 휘발유 냄새가 콘크리트에 배어 여름 열기에 다시 올라왔다. 명희는 사무실 건물 옆을 돌아 뒤로 갔다.
뒤채는 벽돌로 지은 단층 건물이었다. 창문 하나에 커튼 대신 신문지가 붙어 있었다. 문 앞에 플라스틱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고, 의자 옆에 빨래 건조대가 있었다. 건조대에는 러닝셔츠 두 장이 걸려 말라 가고 있었다.
플라스틱 의자에 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코트를 입고 있지 않았다. 흰 러닝셔츠에 회색 작업 바지였고, 코트는 문 옆 못에 걸려 있었다. 그는 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의자가 향한 쪽은 뒤채 옆, 사무실 건물과 담 사이의 좁은 틈이었다. 명희는 그 틈으로 무엇이 보이는지 돌아보지 않아도 알았다. 국도 건너, 명희네 기사식당의 주방 창문이었다. 명희가 하루에 열두 시간 서 있는 가스레인지 앞이었다.
그가 일어났다. 천천히.
태오가 명희 뒤에서 멈췄다. 숨소리가 거칠었다. 명희는 태오의 숨소리를 들으며 자기 숨이 안 쉬어지는 것을 알았다.
“왜 여기 있어요.”
그가 명희를 봤다. 금요일 밤과 같은 눈이었다. 놀라지 않는 눈.
“멀리 안 갔습니다.”
“이사 간다면서요.”
“여기로 왔습니다.”
국도에서 화물차 한 대가 지나갔다. 바람이 담 틈으로 들이쳐 건조대의 러닝셔츠가 펄럭였다.
“내 물건 왜 가져갔어요.”
“떨어진 걸 주웠습니다.”
“반지는 설거지대에 있었어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열쇠는요. 우리 집 열쇠는요.”
그가 명희의 앞치마 주머니를 봤다. 명희는 앞치마를 벗지 않고 나왔다. 주머니 안에 열쇠와 자개 단추가 있었다.
“문을 바꾸셨지요. 이천십일 년 봄에.”
명희의 등이 차가워졌다. 땀이 식는 속도가 아니었다. 태오가 명희 팔꿈치 뒤를 붙잡았다. 그 손이 떨고 있었고, 떨림이 명희의 팔을 타고 올라왔다.
“그 뒤로는 안 들어갔습니다.”
“그 전에는요.”
그는 또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답하지 않음이 대답이었다. 부엌 서랍 속 가위의 방향, 대식이 서랍 앞에 한참 서 있던 저녁. 명희는 그 저녁이 몇 번이었는지 세어 보려다 그만두었다.
“다시는 오지 마세요.”
“열두 시 반에 가겠습니다.”
“오지 말라고요.”
“문이 열려 있으면 가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고 평평했다. 협박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날씨를 말하는 목소리였다. “삼십 년 동안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명희는 돌아섰다. 태오의 손목을 잡고 끌었다. 캐노피 그늘을 지나 햇볕 속으로 나왔을 때 명희는 자기 손이 태오의 손목을 너무 세게 쥐고 있다는 걸 알았다. 놓지 않았다. 국도를 건넜다. 뒤를 보지 않았다. 식당 마당에 들어서서야 명희는 태오의 손목을 놓았다. 태오의 손목에 명희 손가락 자국이 네 줄 빨갛게 남아 있었다. 태오는 그 자국을 내려다보다가 평상에 털썩 앉았다. 평상 나무가 햇볕에 데워져 있었고, 태오는 앉자마자 엉덩이를 들었다가 다시 앉았다.
“사장님, 저 방금 진짜 쌀 뻔했어요.”
“뭘.”
“말 안 할게요. 사장님 식당이라서.”
명희는 평상 옆에 서서 앞치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열쇠와 단추가 손끝에 닿았다. 둘 다 뜨뜻했다. 국도를 건너는 동안 명희의 허벅지 열이 옮아 있었다. 명희는 그 두 개를 꺼내서 평상 위에 놓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놓으면 저 틈에서 보일 것 같았다.
“경찰에 가요, 사장님. 이제 가요. 얼굴 봤잖아요. 어디 사는지도 알잖아요.”
“가서 뭐라고 해. 삼십 년 전에 내가 단추를 달아 줬다고?”
“그게 왜요?”
“그게 제일 먼저 나올 거야.” 명희는 주방 창문을 봤다. 안쪽에서 보면 가스레인지 앞이었고, 바깥쪽에서 보면 저 담 틈과 정확히 마주 보는 유리였다. “내가 먼저 문을 열어 줬다고. 삼십 년 동안.”
태오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못 하고 휴대폰을 꺼냈다. 주방 창문을 찍었다. 그다음 몸을 돌려 국도 건너 담 틈을 찍었다. 두 장을 나란히 띄워 명희에게 보여 주지는 않았다. 혼자 보고 주머니에 넣었다.
*
그날 밤 열한 시에 태오가 대신리 철물점에서 사 온 걸쇠를 식당 문에 달았다. 드릴이 없어서 망치와 못으로 박았다. 첫 번째 걸쇠는 거꾸로 달았다. 걸쇠 고리가 아래를 향해 있어서 문을 잠그면 저절로 풀렸다.
“이게 왜 이래요?”
“거꾸로 달았잖아.”
“아.”
태오가 못을 뽑고 다시 박았다. 문틀에 못 자국이 여섯 개 생겼다. 두 번째는 제대로 걸렸다. 태오가 걸쇠를 걸었다 풀었다 세 번 해 봤다. 쇠가 쇠에 걸리는 소리가 딸깍, 딸깍, 딸깍 났다. 식당에서 한 번도 난 적이 없는 소리였다.
열한 시 오십팔 분에 명희는 간판을 껐다. 그리고 문 앞에 섰다. 삼십 년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은 일이었다. 대식이 정한 일이었고, 대식이 없는 칠 년 동안에도 명희가 지킨 일이었다. 새벽에 배를 곯는 사람이 문고리를 돌려 보고 열리면 들어오라고.
명희는 걸쇠를 걸었다.
딸깍 소리가 홀에 울렸다. 형광등 여섯 개가 지잉 소리를 냈다. 가스 불은 다 꺼져 있었다. 태오가 계산대 뒤에서 명희를 보고 있었다.
“사장님, 강 기사님은요? 다음 주에 오신다고.”
“다음 주 얘기지.”
명희는 걸쇠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쇠가 손바닥 안에서 천천히 명희의 체온으로 데워졌다. 창밖 국도 건너, 폐주유소 뒤편 담 틈으로 작은 불빛 하나가 켜져 있었다. 명희는 그 불빛을 처음 봤다. 삼십 년 동안 거기 있었을 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