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120자) · 명희 · 9월 4일
국자
손님이 남기고 간 것 · 한도윤
화요일에 명희는 소금을 반 꼬집 뺐다.
수요일에는 한 꼬집을 뺐고, 목요일에는 불을 줄였다. 센 불에 확 끓여 된장 향을 날리지 않고, 약한 불에 뚝배기가 천천히 데워지게 두었다. 된장이 풀리는 속도가 달라지면 국물 빛이 달라졌다. 센 불에서는 흙탕물 같던 국물이 약한 불에서는 맑은 갈색으로 가라앉았고, 두부 모서리가 부서지지 않았다. 명희는 그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서 혀 가운데에 올리고 입천장으로 눌렀다. 짠맛이 늦게 왔다. 늦게 온 짠맛 뒤에 콩 냄새가 오래 남았다.
손님은 화요일에도 절반, 수요일에도 절반, 목요일에도 절반을 먹었다. 국물 높이가 뚝배기 가운데 줄에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사장님, 이거 무슨 실험이에요?”
“실험 아니야.”
“그럼 뭐예요?”
“왜 반만 먹는지 알고 싶어서.”
태오는 그 말을 듣고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맛없어서 아닐까요?”
명희는 국자로 태오의 정수리를 톡 쳤다. 세게 치지는 않았다. 태오가 머리를 감싸 쥐며 “아, 뜨거워요” 했지만 국자는 식어 있었다.
금요일 밤, 열한 시 오십팔 분에 명희는 간판을 껐다. 그리고 문 쪽을 보다가 가스 불을 두 개 남겼다.
“왜 두 개예요?”
“그냥.”
태오는 휴대폰을 계산대 위 이쑤시개 통에 기대 세워 두고 있었다. 화면이 창가 쪽을 향했다. 지난 닷새 동안 태오는 사진을 스무 장 넘게 찍었는데 한 장도 쓸 만하지 않았다. 첫날은 손이 떨려서 흔들렸고, 둘째 날은 너무 멀었고, 셋째 날은 손님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넷째 날 태오는 동영상을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화면 가득 자기 엄지손가락이 있었다. 삼 분짜리 엄지손가락 영상이었다. 다섯째 날에는 휴대폰을 거꾸로 들어서 천장 형광등만 이십 초 찍혔다.
“오늘은 세워 놨어요. 손 안 대고.”
“잘했네.”
“근데 제가 손을 안 대니까 뭘 찍는지 저도 몰라요.”
*
열두 시 칠 분에 문이 열렸다.
종이 울렸는데 명희는 한 번에 알았다. 그 사람이 아니었다. 문이 끝까지, 벽에 부딪칠 만큼 활짝 열렸다.
“여기 밥 돼요?”
쉰 중반쯤 된 남자였다. 목에 수건을 걸고 있었고 반팔 티셔츠 가슴에 「한국물류 협력업체」라고 찍혀 있었다. 목소리가 홀 끝까지 울렸다. 창문 유리가 떨리는 것 같았다.
“간판 꺼졌는데요.”
“불 켜져 있잖아요. 문도 열렸고.” 남자가 이미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아이고, 사장님, 나 광주에서 여섯 시간 달려왔어요. 이천 물류센터 새벽 네 시 상차인데 휴게소 밥은 못 먹겠고, 이 동네엔 밤에 여는 데가 한 군데도 없어. 우회도로 나고 나서 다 닫았어. 아무거나 줘요. 아무거나.”
명희는 남자를 봤다. 남자의 손등에 시커먼 기름때가 선처럼 박혀 있었다. 운전대를 오래 쥔 손이었다. 대식의 손도 그랬다.
“된장찌개 돼요.”
“된장 좋지. 제육도 돼요? 둘 다 줘요. 둘 다.”
남자는 두리번거리다가 홀을 가로질러 창가로 갔다. 첫 번째 상을 지나쳤다. 두 번째 상도 지나쳤다. 그리고 세 번째 상에 털썩 앉았다.
태오가 이쑤시개 통 옆에서 몸을 굳혔다. 명희는 가스 불을 켰다.
“거기 말고 다른 데 앉으시면 안 돼요?”
“왜요? 예약석이에요?”
“……아니요.”
“그럼 여기 앉을게. 창밖에 내 차 보이잖아. 내가 차 안 보이면 밥이 안 넘어가요.”
화물차 자리 여덟 칸 중 맨 끝 칸에 오 톤 윙바디 트럭 한 대가 서 있었다. 강한수, 라고 태오가 나중에 알게 된 이름이 운전석 문에 흰 글씨로 박혀 있었다. 강 기사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가 명희를 보고 도로 넣었다.
명희는 두 개의 뚝배기에 된장을 풀었다. 한쪽은 이번 주 내내 바꿔 온 대로, 소금을 한 꼬집 빼고 약한 불. 다른 한쪽은 원래대로 하다가, 손이 소금 통 위에서 멈췄다. 명희는 둘 다 약한 불로 했다. 기다리는 동안 강 기사는 쉬지 않고 말했다. 광주에서 이천까지의 도로 사정, 휴게소 우동값, 딸이 올해 간호대에 붙었다는 것, 등록금이 얼마라는 것. 태오가 물을 가져다주자 태오에게도 말했다. 태오는 다 들었다. 듣다가 가끔 “아 진짜요?”를 했고, 그러면 강 기사의 목소리가 한 칸 더 커졌다.
열두 시 이십구 분에 찌개가 올라갔다. 강 기사는 뚝배기에 숟가락을 넣자마자 “오” 소리를 냈다.
그리고 열두 시 반에 종이 울렸다.
문은 몸이 빠져나갈 만큼만 열렸다. 회색 코트가 들어왔다. 손님은 문 안쪽에 서서 홀을 봤다. 명희는 그가 무엇을 보는지 알았다. 창가 세 번째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손님은 움직이지 않았다. 문이 등 뒤에서 천천히 닫혔고 종이 두 번째로 울렸다. 그는 그 자리에 선 채로 창가를 보고 있었다. 강 기사가 숟가락을 입에 문 채 고개를 들었다.
“어, 형님도 기사세요?”
손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 시간에 밥 먹는 사람은 다 기사지. 이리 와요, 합석해요. 나 혼자 먹기 뭐했는데.”
손님이 한 걸음 걸었다. 창가 쪽으로. 강 기사의 상 앞에 섰다. 강 기사를 내려다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 기사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홀의 형광등이 지잉 소리를 냈다. 태오의 휴대폰은 이쑤시개 통 옆에서 그 장면을 향해 있었다.
“뭐요?”
손님은 계속 서 있었다. 명희는 가스 불을 껐다. 그리고 국자를 든 채로 주방에서 나왔다. 홀을 가로질렀다. 발이 타일을 밟는 소리가 자기 귀에도 들렸다. 창가 세 번째 상 앞에서 명희는 손님과 강 기사 사이에 섰다.
“오늘은 거기 자리 없어요.”
손님의 얼굴이 명희 쪽으로 돌아갔다.
명희는 그 얼굴을 봤다. 처음이었다. 삼백칠 일 동안, 그리고 삼십 년 전 석 달 동안, 명희는 한 번도 이 얼굴을 정면으로 본 적이 없었다. 이마에 주름이 세 줄 깊게 파여 있었고, 눈두덩이 부어 있었고, 수염을 오늘 아침에 민 듯 턱이 파랬다. 예순 넘은 남자였다. 삼십 년 전 코트에 단추를 달 때 명희가 내려다본 것은 코트 앞섶이었지만, 이 사람은 그때 명희의 정수리를 내려다봤을 것이다. 지금 그 눈이 명희의 눈을 보고 있었다. 그 눈은 놀라지 않았다. 오래 기다린 걸 받는 사람처럼 가만히 있었다.
국자를 쥔 명희의 손가락 마디가 하얘졌다.
“다른 데 앉으세요. 아무 데나.”
손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명희의 앞치마를 봤다. 주머니 쪽이었다. 열쇠와 자개 단추가 든 주머니였다. 명희는 그 시선이 거기 머무는 걸 봤다. 주머니 안의 쇳덩이가 갑자기 무거웠다.
강 기사가 의자를 뒤로 밀었다. “아, 내가 비킬게요. 뭐 단골 자리면 말을 하지.”
“앉아 계세요.”
명희가 말했다. 강 기사가 엉덩이를 반쯤 든 채로 멈췄다. 명희는 손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분이 먼저 오셨어요.”
손님이 명희를 보고 있었다. 오 초쯤. 강 기사가 반쯤 든 엉덩이를 어떻게 할지 몰라 그대로 있는 오 초였다. 그 뒤에 손님이 창가 네 번째 상으로 걸어가 앉았다. 세 번째 상 바로 옆이었다. 강 기사와 등을 맞댄 자리였다.
“된장찌개요.”
명희는 주방으로 돌아갔다. 다리가 이상하게 가벼웠다. 아까 끓여 둔 두 번째 뚝배기를 다시 불에 올렸다. 손이 소금 통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강 기사가 반쯤 든 엉덩이를 내리고 앉는 소리가 들렸다. 의자가 삐걱했다.
강 기사는 그 뒤로 조용히 먹었다. 목소리를 낮춘 게 아니라 아예 말을 안 했다. 등 뒤의 사람 때문이었다. 태오는 계산대 뒤에서 물통을 닦았다. 이미 깨끗한 물통이었다.
손님은 찌개를 절반 먹었다. 오늘은 네 번째 상에서, 창밖이 아니라 주방 쪽을 향해 앉아서. 명희는 등을 돌리고 있었지만 그 눈이 어디 있는지 알았다. 지난 삼백 일과 달랐다. 전에는 등이 느끼는 것이었고, 오늘은 뒤통수에 손가락을 댄 것 같았다.
구천 원. 천 원짜리 아홉 장. 한 방향으로 접혔다.
“잘 먹었습니다.”
종이 두 번 울렸다.
태오가 네 번째 상으로 가서 뚝배기를 들었다. 바닥에서 머리끈이 나왔다. 밤색 고무줄에 작은 나무 구슬이 하나 꿰여 있었다. 명희는 그것을 올해 봄에 잃어버렸다. 올해 봄이었다.
*
강 기사는 한 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계산을 하면서 지갑에서 만 원짜리 두 장을 꺼냈다.
“잔돈 됐어요. 늦게 문 열어 줘서.”
“문 연 거 아니에요. 안 잠근 거예요.”
“그게 그거지.” 강 기사가 수건으로 목을 닦았다. “사장님, 내 궁금해서 그런데 아까 그 형님은 뭐요? 사장님 아는 사람?”
“손님이에요.”
“손님이 사람을 그렇게 봐요? 나 등짝이 아직도 싸해.” 강 기사가 어깨를 한 번 털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목소리를 원래대로 키웠다. “아무튼 사장님, 찌개 맛있어. 이상하게 안 짜. 기사식당 된장은 다 짠데 이건 안 짠데 맛있어. 이런 거 이 시간에 먹을 데가 없어요. 이천 새벽 상차 가는 애들이 이 국도로 한 삼십 명은 지나가요. 다 굶어.”
명희는 계산대 서랍을 닫았다.
“열두 시에 문 열면 와요?”
“오지. 내가 데려오지. 단톡방에 올리면 돼.” 강 기사가 휴대폰을 흔들었다. “근데 아까 그 형님도 매일 와요?”
“열두 시 반에요.”
강 기사가 잠깐 명희를 봤다. 그러고는 명희의 앞치마 주머니를 봤다가, 창가 네 번째 상을 봤다가, 다시 명희를 봤다.
“그럼 열두 시에 오면 되겠네. 형님 오기 전에.” 강 기사가 문을 활짝 열었다. 종이 요란하게 울었다. “다음 주에 올게요. 둘이 올지 셋이 올지 몰라.”
트럭 시동 소리가 마당을 흔들고 국도 쪽으로 멀어졌다.
태오가 이쑤시개 통 옆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녹화가 한 시간 넘게 돌아가 있었다. 배터리가 칠 퍼센트였다. 태오가 영상을 앞으로 돌렸다. 강 기사가 앉는 장면, 문이 열리는 장면, 손님이 강 기사 앞에 서는 장면. 명희가 그 사이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
태오가 화면을 멈췄다. 손님의 얼굴이 명희 쪽으로 돌아간 순간이었다. 화면 속 얼굴은 형광등 빛에 하얗게 번져 있었다. 눈과 코와 입의 자리가 흐리게 뭉개져 있었다. 태오가 두 손가락으로 화면을 벌려 키웠다. 더 뭉개졌다.
“사장님, 이거 흐려요.”
“그래도 있잖아.”
태오는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명희를 봤다.
“사장님 아까 진짜 멋있었어요. 국자 들고.”
“국자는 왜 들고 갔는지 모르겠어.”
“저는 알 것 같아요.” 태오가 휴대폰을 충전기에 꽂았다. “그거 뜨거운 줄 알았을 거예요, 그 사람.”
명희는 웃지 않았다. 대신 국자를 들어 손바닥을 대 봤다. 식어 있었다. 스테인리스 손잡이에 명희의 손바닥 모양대로 땀이 뿌옇게 앉아 있었다가, 천천히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