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130자) · 태오 · 8월 29일
증거물 1
손님이 남기고 간 것 · 한도윤
토요일 밤 손님이 남긴 것은 골무였다.
태오는 그것을 뚝배기 바닥에서 건져 올리자마자 명희를 보지 않고 창고로 갔다. 창고는 주방 뒷문 밖,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두 평짜리 칸이었고, 거기에는 쌀 포대와 식용유 말통과 겨울에 쓰는 석유난로가 쌓여 있었다. 태오는 쌀 포대 뒤에서 빨간 플라스틱 통 하나를 안고 나왔다. 뚜껑에 「태양초 고추장 6.5kg」이라고 인쇄된 통이었다. 고추장은 없고 뭔가가 안에서 짤그락거렸다.
“사장님, 이거 한번 보세요.”
“뭔데.”
“삼백한 개요. 오늘 거 넣으면.”
명희는 가스 불을 끄고 손을 앞치마에 닦았다. 홀 형광등 열두 개 중 여섯 개만 켜져 있었다. 태오는 통을 식탁에 올리지 않고 홀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뚜껑을 열었다.
“원래 이번 달까지만 하려고 했거든요, 저.”
“뭘.”
“일이요.” 태오가 통 안에 손을 넣었다. “근데 이거 보고 나니까 그만두면 안 될 것 같아서요. 그래서 좀 화가 나요. 사장님한테 말고 이 통한테요.”
태오는 물건을 하나씩 꺼내 바닥 타일 위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타일은 가로세로 삼십 센티 정사각형이었고, 태오는 한 칸에 하나씩 놓았다. 가로로 서른 칸을 채우고 다음 줄로 내려갔다. 손이 빨랐다. 순서가 있었다.
“제가 날짜별로 사진 찍어 놨어요. 여기 휴대폰에 폴더도 있어요. 「손님」 폴더. 엑셀도 있어요.”
“엑셀을 왜 해.”
“할 게 없어서요. 사장님이 열두 시 반까지 저 못 가게 하시잖아요.”
“내가 언제.”
“눈으로요.”
명희는 대꾸하지 않았다. 태오는 계속 늘어놓았다. 단추가 제일 많았다. 검정 단추, 흰 단추, 자개 단추, 가운데 구멍이 네 개인 것과 두 개인 것. 그다음은 실이었다. 실패에 감긴 실이 아니라 손가락 길이로 끊긴 실 토막들이 비닐봉지에 하나씩 담겨 있었다. 태오가 봉지에 담았다. 그다음이 머리핀이었다. 까만 실핀, 금색 똑딱핀, 나비 모양 플라스틱 집게. 고무줄, 앞치마 끈 한 토막, 볼펜 뚜껑, 립스틱 뚜껑, 귀걸이 한 짝, 손톱깎이, 은색 반지 하나.
열 줄이 찼다. 홀 바닥의 절반이 물건으로 덮였다.
명희는 서 있다가 앉았다. 무릎이 바닥에 닿을 때 타일의 찬 기운이 바지를 뚫고 올라왔다. 여름이 끝나 가는 밤이었고 홀 바닥은 낮의 열기를 다 뱉어 내서 서늘했다. 명희는 첫 줄 가운데 있는 나비 모양 집게를 집었다. 보라색 플라스틱이었고, 나비 날개 한쪽 끝이 이빨로 문 것처럼 파여 있었다.
성민이 세 살 때 이 집게를 입에 물고 놓지 않았다. 명희는 그걸 빼앗아 머리에 꽂았다가 어느 날 잃어버렸다.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몰랐다. 잃어버린 줄도 한참 뒤에 알았다.
명희는 집게를 내려놓고 은색 반지를 집었다. 안쪽에 아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 명희는 반지를 약지에 끼워 봤다. 두 번째 마디에서 걸렸다. 서른다섯 살 무렵까지는 들어가던 반지였다. 설거지할 때 빼서 수도꼭지 옆에 두곤 했는데, 어느 날 저녁 거기 없었다. 대식이 하수구 트랩을 뜯어 봤지만 나오지 않았다.
“사장님?”
명희는 반지를 내려놓고 귀걸이 한 짝을 집었다. 진주 알이 누렇게 바랬다. 이건 대식이 오일장에서 사 온 것이었고 한 짝을 잃어버린 날 명희는 남은 한 짝을 서랍에 넣었다. 서랍에 지금도 있었다.
명희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볼펜 뚜껑, 이건 가계부 쓰던 모나미. 고무줄, 이건 머리 묶던 밤색. 앞치마 끈, 이건 개업 때 맞춘 앞치마, 빨래 줄에서 끊어져 날아간 것. 실 토막, 이건 무슨 색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명희가 바느질하다 이로 끊어 뱉은 길이였다. 끝이 이빨 모양으로 뭉개져 있었다.
태오가 말했다. “이거 다 여자 거죠.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어요. 할머니가 쓰시는 거 같은 거.”
“할머니 아니야.”
“아, 죄송해요.”
“이거 다 내 거야.”
태오의 손이 통 안에서 멈췄다.
명희는 한 줄을 다 만졌다. 서른 개였다. 서른 개 중에 모르는 것이 없었다. 다음 줄로 갔다. 역시 없었다. 명희는 손가락으로 물건을 건드릴 때마다 그것을 잃어버린 해를 알았다. 1998년, 2003년, 2007년, 2002년 월드컵 하던 여름, 성민이 중학교 들어가던 봄. 해마다 잃어버린 것들이 있었고, 잃어버렸다고 생각할 때마다 명희는 칠칠치 못한 자기를 탓했다. 삼십 년 동안 그 탓을 했다.
명희가 떨어뜨린 게 아니었다. 누가 주워 갔다.
“그럼 열쇠도.”
“열쇠도.”
“그 손님이 사장님 물건을 삼십 년 동안…….” 태오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휴대폰을 쥔 손이 바지에 문질러졌다. 땀이 났다. “사장님, 이거 그 사람이 사장님 집에…….”
“반지는 가게에서 없어졌어. 설거지할 때.”
“가게면 가게 안에 들어왔다는 거잖아요.”
명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통을 끌어당겨 안을 봤다. 바닥에 하나가 남아 있었다. 태오가 일부러 꺼내지 않고 남겨 둔 하나였다.
“그건 첫날 거예요.” 태오가 말했다. “작년 십일월 이일. 제가 오기 전이라 사장님이 설거지하다 주워서 계산대에 올려 두셨던 거요. 제가 와서 보니까 거기 있길래 통에 제일 먼저 넣었어요.”
자개 단추였다. 엄지손톱만 했고, 가장자리에 금이 한 줄 가 있었다. 명희는 그 단추를 손바닥에 올리고 한참 있었다. 형광등 빛이 자개 위에서 무지개처럼 미끄러졌다.
1996년 십이월이었다. 식당을 연 첫 겨울, 열두 시 반에 오던 손님이 있었다. 그 손님 코트 앞섶에 단추 하나가 떨어져 실만 삐죽 나와 있었다. 명희는 반짇고리를 가져왔지만 맞는 단추가 없었다. 그래서 자기 카디건에서 제일 아래 단추를 가위로 잘랐다. 밤색 카디건이었고 자개 단추가 다섯 개 달려 있었다. 명희는 손님 앞에 서서 그 단추를 코트에 달았다. 실을 이로 끊었다. 손님은 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명희는 그 손님 이름을 묻지 않았다.
석 달 뒤 그 손님은 「이사 갑니다」라고 말하고 오지 않았다.
명희는 그 뒤로 몇 주 동안 열두 시 반이면 문 쪽을 봤다. 대식이 자는 걸 확인하고 가게로 나와 불을 하나만 켜 두고 앉아 있었다.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잠깐 그랬다가 말았다.
“사장님, 경찰에 가요.”
태오가 말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컸다. 홀이 넓어서 그 목소리가 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가서 이거 다 보여 줘요. 지금 가요. 아니 내일 아침에 가요. 아니 지금 신고해요. 112 누르면 되잖아요.”
“가면 안 와.”
“안 오면 좋은 거잖아요.”
“안 오면 어디 있는지 몰라.”
태오가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명희는 자개 단추를 쥐었다. 주먹 안에서 단추 가장자리의 금이 손바닥을 눌렀다. “삼십 년이야, 태오야. 삼십 년 동안 내가 뭘 떨어뜨리면 그걸 주웠어. 그럼 삼십 년 동안 내 옆에 있었다는 거야. 나는 한 번도 못 봤고.” 명희는 바닥에 늘어선 물건들을 봤다. “지금은 알아. 열두 시 반에 창가 세 번째. 경찰이 오면 그 사람은 그 자리에 안 와. 그럼 어디 있는데? 또 삼십 년 동안 못 보는 데 있겠지.”
“그러니까 경찰이 잡으면 되잖아요!”
“뭘로 잡아. 단추 준 걸로?”
“준 게 아니라 훔친 거잖아요!”
“떨어뜨린 걸 주운 거야.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그럼 열쇠는요? 열쇠로 집에 들어간 건요?”
“그걸 누가 봤는데.”
태오가 일어섰다. 무릎에서 뚝 소리가 났다. 태오는 그 자리에서 한 바퀴를 빙 돌았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사람처럼 돌았다. 그러다가 계산대에 가서 이쑤시개 통을 들었다가 도로 놓았다. 명희는 그 뒷모습을 봤다. 태오는 겁이 많았다. 쥐가 나오면 의자 위로 올라갔고, 천둥이 치면 냉장고 옆에 붙어 섰다. 그런 애가 지금 홀 한가운데서 두 주먹을 쥐고 서 있었다.
“사장님이 안 가시면 제가 가요.”
“가.”
“진짜 가요.”
“가라니까.”
태오는 가지 않았다. 계산대 앞에 서서 휴대폰 화면을 봤다. 112 숫자까지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화면이 꺼졌다. 태오가 다시 켰다. 숫자가 그대로 있었다.
“증거가 있으면 가시는 거예요?”
“몰라.”
“얼굴 찍을게요.”
명희가 고개를 들었다.
“내일부터 찍을게요. 제가 그 사람 얼굴 찍어서, 나이 몇인지, 어디로 가는지, 사진으로 다 남길게요. 삼백 일 동안 저 그 사람 얼굴 제대로 본 적이 없어요. 사장님은요? 사장님은 봤어요?”
명희는 대답하지 못했다. 삼백 일 동안 명희가 본 것은 코트의 닳은 소매와 뚝배기 속 절반의 국물과 한 방향으로 접힌 천 원짜리 아홉 장이었다. 얼굴은 등으로 느꼈을 뿐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삼십 년 전에도 그랬다. 단추를 달 때 명희는 코트 앞섶만 봤다.
“태오야, 너 겁 많잖아.”
“많아요. 엄청 많아요. 지금도 다리 떨려요.” 태오가 자기 다리를 내려다봤다. 실제로 떨고 있었다. “근데 이거 다시 통에 넣고 창고에 두면 저 오늘 밤 못 자요. 어차피 못 자니까 찍을래요.”
“들키면.”
“안 들켜요. 저 원래 뭐든 찍어요. 사장님 된장 푸는 것도 찍고 배달 오토바이도 찍고 길고양이도 찍어요. 그 사람도 제가 뭐 찍는 거 봤을 거예요. 이상하게 안 볼 거예요.”
명희는 손바닥의 자개 단추를 봤다. 태오의 말은 맞지 않았다. 그 사람은 다 봤을 것이다. 삼십 년 동안 다 본 사람이었다. 그래도 명희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둘은 그 뒤로 한 시간 동안 물건을 다시 통에 넣었다. 태오가 순서대로 넣으려고 해서 명희가 그냥 넣으라고 했다. 태오는 그냥 넣지 못했다. 한 줄씩, 휴대폰 사진과 맞춰 가며 넣었다. 명희는 자개 단추만 통에 넣지 않았다. 앞치마 주머니에 열쇠와 함께 넣었다.
통 뚜껑을 닫을 때 「태양초 고추장」 글씨 위에 태오가 매직으로 뭔가를 썼다. 명희가 읽었다. 「증거물 1」.
“2는 뭔데.”
“아직 없어요. 내일부터 찍으면 생겨요.”
태오는 통을 안고 창고로 가다가 돌아서서 말했다.
“사장님, 이거 창고 말고 사장님 집에 둬도 돼요?”
“왜?”
“창고 문 안 잠기잖아요.”
명희는 한참 태오를 봤다. 창고에는 자물쇠가 없었다. 식당에도 없었다. 대식이 그렇게 정했고, 명희가 그대로 뒀다. 명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오가 통을 안고 식당 뒤로 열 걸음을 걸어가 집 현관 번호키 앞에 섰다. 명희가 뒤따라가 번호를 눌렀다. 삑삑삑삑 소리가 여름 끝의 밤공기 속에서 유난히 크게 울렸다.
길 건너 폐주유소 쪽에서 무언가가 한 번 반짝였다가 꺼졌다. 태오는 못 봤다. 명희는 봤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