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719자) · 명희 · 8월 28일

열두 시 반

누가 삼십 년 동안 내 물건을 주워 갔다 · 한도윤

열한 시 오십팔 분에 명희는 간판 스위치 앞에 섰다. 스위치는 계산대 뒤 기둥에 붙어 있었고, 삼십 년 동안 같은 손가락이 같은 자리를 눌러서 플라스틱 위에 엄지 모양으로 반들반들한 자리가 나 있었다. 명희는 시계를 보지 않았다. 국도 37호선을 타고 올라오는 화물차 소리가 한 번 커졌다가 멀어지면 그게 대략 열두 시였다.

딸깍 소리와 함께 마당 쪽 유리창에 비치던 「명희네 기사식당」 여섯 글자가 꺼졌다.

“사장님, 오늘 금요일이잖아요.”

해호가 행주를 든 채 말했다. 스물둘, 주방 보조 여덟 달째. 해호의 휴대폰 메모장에는 「사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이 여덟 달째 저장되어 있었고, 명희는 그걸 모르는 척했다. 두 번 설거지하다 화면이 켜진 걸 봤다.

“금요일이면 뭐.”

“삼백 일째예요. 제가 세어 봤어요.”

“뭘 세.”

“그 손님이요. 작년 십일월 첫째 주부터 하루도 안 빠졌어요. 오늘이 딱 삼백.” 해호가 행주를 접었다. “기념일이면 떡이라도 돌려야 되는 거 아니에요?”

“너나 먹어.”

“저 떡 싫어해요. 목에 걸려요.”

명희는 대꾸하지 않고 가스 불을 하나만 남기고 껐다. 뚝배기 하나가 올라갈 자리였다. 된장은 아침에 퍼 둔 것이 스테인리스 그릇에 반 국자쯤 남아 있었고, 두부는 물에 담가 둔 한 모에서 삼분의 일, 애호박은 꼭지 쪽 한 토막이었다. 문은 잠그지 않았다. 식당을 연 첫해부터 문은 열두 시에 간판만 끄고 잠그지 않았다. 새벽에 국도에서 배를 곯는 사람이 불 꺼진 집 문고리를 돌려 보고 열리면 들어오라고 대식이 그렇게 정했다. 대식이 죽은 뒤에도 명희는 그걸 안 바꿨다.

열두 시 반에 문에 매단 종이 울렸다.

종은 놋쇠였고 소리가 둔했다. 문이 열릴 때 한 번, 닫힐 때 한 번. 손님은 언제나처럼 문을 끝까지 열지 않고 몸이 빠져나갈 만큼만 열었다. 여름이 다 가지도 않았는데 회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무릎까지 오는 코트였고 소매 끝이 닳아 안감이 비쳤다. 손님은 홀을 가로질러 창가 세 번째 상에 앉았다. 창가에는 상이 넷 있고 첫 번째와 두 번째가 비어 있어도 그는 세 번째에 앉았다.

“된장찌개요.”

그 말만 했다. 명희도 “네” 한마디만 했다.

뚝배기에 물을 붓고 멸치 다시 팩을 넣으면서 명희는 등 뒤로 그 사람을 느꼈다. 등을 돌리고 있어도 그 자리에서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명희는 알았다. 주방 입구, 된장 항아리, 그리고 국자를 쥔 명희의 오른손. 해호가 괜히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냉기가 발목께로 흘렀다가 흩어졌다.

찌개가 끓는 동안 명희는 숟가락 끝으로 국물을 떠서 혀에 올렸다. 짠맛이 먼저 오고 그다음에 된장의 쿰쿰한 단맛이 목 뒤로 넘어갔다. 삼십 년 동안 이 맛은 화물차 기사들 입에 맞춰져 있었다. 밤새 운전한 사람은 짜야 먹는다고 대식이 소금을 한 꼬집씩 더 넣던 것이 굳어진 맛이었다. 명희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손님은 찌개를 절반 먹었다. 명희는 그걸 삼백 번 봤다. 뚝배기 안쪽에 국물이 딱 중간 높이에서 멈춰 있었고, 두부도 반, 호박도 반이 남았다. 밥공기는 비었다. 손님은 숟가락을 뚝배기 옆에 나란히 놓고 일어나서 계산대에 구천 원을 놓았다. 천 원짜리 아홉 장이었고, 모서리를 한 방향으로 맞춰 접혀 있었다.

“잘 먹었습니다.”

종이 두 번 울렸다.

해호가 상을 치우러 갔다. 뚝배기를 들어 쟁반에 올리는데 해호의 손이 멈췄다. 명희는 그 멈춤을 알았다. 삼백 번 똑같이 멈췄다.

“오늘은 뭐야.”

“열쇠요.”

해호가 국물 속에서 그것을 건져 올렸다. 놋쇠 열쇠였고, 머리에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구멍에 빨간 실이 두 번 감겨 매듭지어져 있었다. 국물이 실에 배어 실이 검붉었다. 해호가 행주에 열쇠를 닦아서 명희 손바닥에 올렸다.

열쇠는 뜨거웠다. 뚝배기 바닥에 있었으니까. 명희는 그 열이 손바닥에서 손목 안쪽으로 번지는 동안 엄지로 매듭을 만졌다. 실을 두 번 감고 끝을 안으로 밀어 넣는 매듭이었다. 명희의 어머니가 가르쳐 준 매듭이었고, 명희는 그 매듭을 스물아홉 살 겨울에 이 열쇠에 한 번 묶었다. 식당 뒤 집 현관 열쇠였다. 그해 겨울 명희는 그 열쇠를 잃어버렸고, 대식이 철물점에서 하나를 새로 깎아 왔다.

“사장님?”

“어.”

“이거 통에 넣을까요? 삼백 개째인데.”

명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열쇠를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안에서 열쇠가 허벅지에 닿았고, 거기가 오래 뜨거웠다.

“해호야, 먼저 가.”

“설거지 남았는데요.”

“내가 해.”

해호는 뭔가 물으려다 말았다. 해호는 늘 물으려다 말았다. 대신 휴대폰을 꺼내 빈 상을 한 장 찍었다. 창가 세 번째, 숟가락이 나란히 놓였던 자리.

“그건 왜 찍어.”

“그냥요. 삼백 일 기념.”

*

해호가 오토바이를 끌고 나간 뒤 명희는 마당에 나가 섰다.

국도는 비어 있었다. 가로등이 백 미터마다 하나씩 서 있었고, 그 불빛 사이는 어두웠다. 길 건너에 폐주유소가 있었다. 2013년에 문을 닫은 주유소였다. 캐노피 아래 주유기 세 대가 비닐에 싸인 채 서 있었고, 지붕 간판의 글씨는 빗물에 씻겨 절반만 남아 있었다. 명희는 그 주유소를 삼십 년 동안 봤다. 봤는데 본 적이 없었다.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 명희는 몰랐다.

명희는 식당 뒤로 열 걸음을 걸어 집 현관 앞에 섰다. 현관문은 십오 년 전에 바꿨다. 그해 봄 대식이 어느 날 저녁 부엌 서랍을 열어 놓고 한참 서 있다가 「누가 들어왔다 갔다」고 했다. 없어진 건 없었다. 서랍 속 가위 방향이 바뀌어 있었을 뿐이었다. 명희는 대식이 피곤해서 그렇다고 했고, 대식은 다음 날 문을 통째로 바꿨다. 번호키였다.

명희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들고 번호키 옆 벽을 봤다. 옛 문의 열쇠 구멍이 있던 자리는 이제 매끈한 페인트였다. 열쇠가 들어갈 데가 없었다. 명희는 그 사실에 손을 얹듯 벽을 한 번 쓸었다. 페인트가 밤이슬에 젖어 차가웠다.

집 안에 들어가 불을 다 켰다. 거실, 부엌, 안방, 작은방, 욕실. 명희는 불을 다 켜고 나서 부엌 서랍을 열었다. 가위는 제자리에 있었다.

그날 밤 명희는 잠을 안 잤다. 안방 텔레비전을 소리 없이 틀어 두고 앉아 있다가,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된장 항아리 뚜껑을 열고 된장을 퍼 왔다. 가게를 연 지 삼십 년 동안 장사하기 전에 일어나지 않은 날은 사흘이었고, 그 사흘은 대식의 장례식이었다.

*

토요일 점심에는 화물차 자리 여덟 칸 중 다섯 칸이 찼다. 우회도로가 나기 전에는 여덟 칸이 모자라 마당까지 차를 댔다. 지금은 하루 예순 명이 오고, 그중 절반이 단골이었다.

한 시 반에 흰 SUV가 마당으로 들어왔다. 성민의 차였다. 성민은 혼자 내리지 않았다. 조수석에서 남색 폴로셔츠를 입은 남자가 내렸고, 그 남자는 내리자마자 식당 간판과 화물차 자리와 뒤편 밭을 손으로 한 번씩 가리키며 무언가를 셌다.

“엄마.”

“밥은.”

“먹으러 왔지.” 성민이 남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쪽은 한길로지스 이 부장님. 전에 말한.”

“처음 뵙겠습니다.” 이 부장이 명함을 두 손으로 내밀었다. 명함 모서리가 빳빳했다. “어머님 된장찌개가 여주에서 제일이라고 들었습니다.”

“누가 그래요.”

“아드님이요.”

“걔는 된장 안 먹어요.”

성민이 웃었다. 이 부장도 웃었다. 명희는 명함을 계산대 위 이쑤시개 통 옆에 세워 두었다.

두 사람은 홀 한가운데 상에 앉았다. 성민이 창가로 가려는 걸 명희가 “거기 말고”라고 해서 한가운데 상이 됐다. 이 부장은 된장찌개를 시켰고, 성민은 제육을 시켰다. 해호가 물통을 들고 가다가 이 부장 앞에서 물을 흘렸다. 이 부장 바지 위로 흘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이거 냉수라서 금방 말라요. 온수였으면 큰일 났을 거예요.”

해호가 행주로 이 부장의 무릎을 두드렸다. 명희는 주방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뚝배기에 된장을 풀었다. 오늘은 소금을 한 꼬집 덜 넣었다. 왜 덜 넣었는지 명희도 몰랐다. 손이 먼저 그렇게 했다.

이 부장은 찌개를 다 먹었다. 뚝배기 바닥을 숟가락으로 긁는 소리가 주방까지 들렸다. 그러고 나서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스테이플러로 찍은 열두 장짜리 서류였고 맨 위에 「부동산 매매 계약서(안)」라고 적혀 있었다. 이 부장은 그 서류를 밥상 한가운데, 빈 뚝배기와 김치 접시 사이에 놓았다.

“어머님, 저희가 이 국도변으로 오천 평을 모으고 있습니다. 어머님 땅이 천이백 평이고, 이게 들어와야 진입로가 나옵니다. 지난달 아드님께 드린 값에서 평당 십을 올렸습니다.”

“안 팔아요.”

“서류라도 한번 보시고.”

“보면 팔 것 같아서 안 봐요.”

성민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엄마, 앉아서 얘기 좀 해.”

명희는 앉았다. 성민의 맞은편, 이 부장의 옆이었다. 앞치마 주머니 속 열쇠가 의자에 눌려 허벅지를 찔렀다. 명희는 그 자리를 손바닥으로 한 번 눌렀다.

“엄마, 여기 하루 몇 명 와?”

“예순.”

“십 년 전엔 백이었어. 내년엔 쉰이야. 우회도로 넓힌대. 엄마 혼자서, 알바 하나 데리고, 밤에 문도 안 잠그고.” 성민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아빠 없는데 문을 왜 안 잠가?”

“잠가 본 적이 없어.”

“그러니까 잠가 보라고.”

해호가 주방 입구에서 쟁반을 든 채 멈췄다. 명희는 해호 쪽을 보지 않았다.

“수원에 아파트 봐 뒀어. 우리 집에서 걸어서 칠 분. 엘리베이터 있고 경비 있고. 이 값이면 대출 없이 돼.” 성민이 서류를 명희 앞으로 밀었다. “엄마, 나 이거 엄마 좋으라고 하는 거야.”

명희는 서류를 봤다. 첫 장 가운데에 명희 이름이 있었고, 그 옆에 도장 찍을 칸이 비어 있었다. 명희는 손바닥을 서류 위에 얹었다. 종이가 된장 국물 김에 눅눅했다. 그리고 그대로 밀었다. 서류가 밥상 끝을 넘어가서 바닥에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김치 국물이 한 방울 튀었다.

홀이 조용해졌다. 창가에서 밥을 먹던 기사 둘이 숟가락을 멈췄다.

해호가 달려와서 서류를 주웠다. 김치 국물이 묻은 자리를 행주로 닦았다. 행주에 된장이 묻어 있어서 김치 국물 옆에 된장 자국이 하나 더 생겼다. 해호가 그걸 보고 한 번 더 닦았다. 자국이 넓어졌다.

“해호야, 됐어.”

“아, 네.”

이 부장이 서류를 받아 들고 웃었다. 웃는 얼굴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이런 거 익숙합니다. 저 다음 달에 또 오겠습니다. 그때는 값이 또 올라 있을 겁니다.”

“왜요.”

“여기가 제일 늦게 들어오는 땅이 될 테니까요. 제일 늦게 들어오는 땅이 제일 비쌉니다.”

성민이 일어났다. 의자 다리가 바닥 타일을 긁었다.

“12월까지야, 엄마. 이 부장님네가 연말까지 부지 못 모으면 다른 데로 가. 그럼 이 값 다시 안 나와.” 성민이 차 열쇠를 집었다. “12월 말. 그때까지 정해.”

“정했어.”

“엄마.”

성민은 더 말하지 않고 나갔다. 종이 두 번 울렸다. 이 부장이 뒤따라 나가다가 문 앞에서 돌아서서 고개를 숙였다. 흰 SUV가 마당 자갈을 튀기며 국도로 나갔다.

명희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해호가 빈 그릇을 치우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장님, 제가 서류 망친 거 아니죠?”

“망쳤어.”

“아.”

“잘했어.”

해호가 쟁반을 들고 주방으로 갔다. 명희는 앞치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놋쇠가 이제 식어 있었다. 식은 열쇠는 무거웠고, 매듭의 실은 다 말라서 손끝에 버석거렸다. 명희는 고개를 돌려 창가 세 번째 상을 봤다. 점심 햇빛이 상 위에 네모나게 떨어져 있었고, 그 자리는 비어 있었다. 삼십 년 동안 그 자리에 누가 앉는지 명희는 한 번도 신경 써 본 적이 없었다.

창 너머 국도 건너편에서 폐주유소의 캐노피가 햇빛을 받아 하얗게 번뜩였다.

1화는 어땠나요?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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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도윤작가2026.10.09· 1화

    작가 한도윤입니다. 열두 시 반마다 된장찌개를 절반 먹고 물건 하나를 두고 가는 손님이 있습니다. 1화를 읽고 그 손님이 누구라고 짐작하셨나요?

  • 종이배2026.06.02· 1화

    인물이 설명 없이 행동으로 드러나서 좋았어요.

    • 한도윤작가2026.06.03

      그렇게 읽어 주시니 다음 화 쓰는 게 덜 무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