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37자)

곰은 배당을 모른다

천하제일 비무대회의 판돈은 내가 받는다 · 설묵향

숭산 비탈에는 소문이 사람보다 빨리 걷는다⁠. 본선 이틀째 아침⁠, 내가 머리에 감은 행주를 새것으로 갈 무렵에는 거리 사람 절반이 무쇠곰 대 웅 도사⁠, 이른바 곰 대 곰 승부에 돈을 걸어 놓은 뒤였다⁠. 쌀독 세 번째 것이 열렸고⁠, 갑례가 판 돈을 세는 소리가 아침 내내 끊이지 않았다⁠. 동전이 동전 위에 떨어지는 소리⁠, 은자가 은자를 치는 소리⁠. 내가 들은 것만으로 셈해 보면 무쇠곰에게 걸린 돈이 웅 도사에게 걸린 돈의 여섯 배였다⁠.

사람들은 무쇠곰을 좋아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크고⁠, 착하고⁠, 만두를 좋아한다⁠. 예선 닷새 동안 이 곰은 쇠몽둥이 한 번 휘두르지 않고 상대를 비무대 밖으로 밀어내기만 했다⁠. 사람이 다칠까 봐 몽둥이를 못 쓴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소문이 돈이 되었다⁠. 국숫집 주인은 곰이 이기면 사흘 동안 국수를 반값에 말겠다고 떠들었고⁠, 아미파 여승 하나는 곰이 몽둥이를 쓰면 건 돈을 무르겠다고 했다⁠. 이 판에 무르는 법은 없다고 하자 이 여승은 염주를 한 바퀴 돌리더니 곰에게 두 냥을 더 걸었다⁠.

거지가 숨을 몰아쉬며 비탈을 내려왔다⁠. 이번 소식은 비무장이 아니라 원로석의 철선자에게서 온 것이었다⁠.

“⁠어젯밤 흑룡방 총관이 곰한테 갔답니다⁠. 은자 꾸러미를 들고⁠. 만두⁠.⁠”

나는 만두를 내주지 않았다⁠. 갑례가 대신 내주었다⁠. 이 여자는 이제 거지의 만두를 나보다 먼저 챙겼다⁠.

*

무쇠곰은 점심때 갑례 객잔 부엌 뒷문으로 들어왔다⁠. 문설주에 머리를 쾅 박고 들어왔다⁠. 처마 밑 제비가 놀라서 날아갔다⁠. 곰은 이마를 문지르며 부뚜막 앞 낮은 걸상에 앉았는데⁠, 걸상이 곰 엉덩이 밑으로 사라졌다⁠. 갑례가 찜통 뚜껑을 열자 김이 곰 얼굴을 덮었고⁠, 곰은 이 김 속에서 눈을 감고 코를 벌름거렸다⁠.

“⁠고기만두요⁠. 열 개⁠.⁠”

“⁠스무 개 쪄 놨어⁠.⁠” 갑례가 말했다⁠. “⁠돈은 저 화상이 낸다⁠.⁠”

“⁠제가요⁠?⁠”

“⁠네 판에 제일 많이 걸린 사람이잖아⁠. 판이 대접해야지⁠.⁠”

이 셈은 틀리지 않았다⁠. 나는 곰 맞은편에 앉았다⁠. 곰이 만두를 한 입에 하나씩 넣었다⁠. 씹는 소리가 크지 않았다⁠. 덩치와 달리 조심스럽게 씹었다⁠. 입 안에서 만두피가 터지고 육즙이 흐르는 소리를 즐기는 사람처럼⁠.

“⁠어젯밤 흑룡방 사람이 다녀갔다면서요⁠?⁠”

곰이 만두를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지면 오십 냥을 준다고 했소⁠.⁠”

“⁠그래서요⁠?⁠”

“⁠그게 이상하오⁠.⁠” 곰이 손가락으로 이마를 긁었다⁠. “⁠지면 상금이 없소⁠. 그런데 지라고 돈을 주오⁠. 그럼 이기면 더 많이 주는 거요⁠? 이기면 백 냥⁠? 그래서 나는 이기겠다고 했소⁠. 그랬더니 그 사람이 화를 냈소⁠.⁠”

나는 웃음을 참느라 볼 안쪽을 깨물었다⁠. 갑례는 참지 않았다⁠. 국자로 솥 가장자리를 두드리며 웃었다⁠. 곰은 우리가 왜 웃는지 몰라서 같이 웃었다⁠. 웃는 소리가 부엌 그릇들을 울렸다⁠.

“⁠곰 형씨⁠, 그 사람은 형씨가 지는 데 돈을 걸려는 겁니다⁠.⁠”

“⁠나한테 거는 게 아니고⁠?⁠”

“⁠형씨 상대한테요⁠.⁠”

“⁠왜⁠? 웅 도사가 나보다 약한데⁠.⁠”

“⁠그러니까요⁠. 약한 쪽이 이기면 많이 받으니까요⁠.⁠”

곰이 만두를 쥔 채 한참 멈춰 있었다⁠.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아주 천천히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큰 맷돌 같은 것이⁠.

“⁠그럼 내가 지면 그 사람이 돈을 많이 받고⁠.⁠”

“⁠예⁠.⁠”

“⁠그 돈은 누구 돈이오⁠?⁠”

*

나는 일어나 찬장에서 접시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큰 접시⁠, 하나는 종지만 한 접시⁠. 찜통에 남은 만두를 큰 접시에 열두 개⁠, 작은 접시에 두 개 담았다⁠.

“⁠큰 접시는 거리 사람들이 형씨한테 건 돈입니다⁠. 국숫집 주인⁠, 무당 도사들⁠, 거지 영감⁠, 아미파 스님들⁠, 노새 끄는 사람들⁠. 작은 접시는 웅 도사한테 건 돈이고요⁠. 승부가 끝나면 진 쪽 접시를 이긴 쪽이 나눠 먹습니다⁠. 판은 그중에 한 개쯤 떼고요⁠.⁠”

나는 큰 접시에서 만두 하나를 집어 내 입에 넣었다⁠. 판 몫이었다⁠. 곰이 이걸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형씨가 이기면 거리 사람들이 작은 접시 두 개를 나눠 먹습니다⁠. 조금씩⁠. 그런데 형씨가 지면⁠.⁠” 나는 큰 접시를 작은 접시 쪽으로 밀었다⁠. “⁠이 열한 개를 작은 접시에 건 사람들이 다 먹습니다⁠. 그 작은 접시 뒤에 흑룡방이 있고요⁠. 오늘 밤 흑룡방은 작은 접시에 은자를 산더미처럼 쌓을 겁니다⁠.⁠”

곰이 큰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만두 열한 개에서 김이 아직 올라왔다⁠.

“⁠거지 영감도 큰 접시에 있소⁠?⁠”

“⁠있습니다⁠. 동전 일곱 닢⁠.⁠”

곰이 손을 뻗어 큰 접시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다⁠. 두 손으로 감쌌다⁠. 이 손이 접시보다 컸다⁠.

“⁠그럼 저 사람들 만두를 저놈들이 다 먹는 거요⁠?⁠”

“⁠형씨가 지면요⁠.⁠”

“⁠안 지겠소⁠.⁠” 곰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부뚜막 위 그릇이 이 소리에 떨렸다⁠.

*

뒷문이 열린 건 이때였다⁠. 흑룡방 총관이 사내 둘을 데리고 들어왔다⁠. 이를 쑤시던 이쑤시개가 오늘은 입에 없었다⁠. 부엌 안을 한 번 둘러보고⁠, 곰과 큰 접시와 나를 차례로 보았다⁠.

“⁠왕 선생⁠, 남의 사람한테 만두를 먹이고 계시오⁠?⁠”

“⁠곰 형씨가 누구 사람입니까⁠? 산골 사람이지요⁠.⁠”

“⁠어젯밤부터 우리 사람이오⁠.⁠” 총관이 곰 앞 탁자에 은자 꾸러미를 내려놓았다⁠. 묵직했다⁠. “⁠곰 대협⁠, 어젯밤 말한 오십 냥이오⁠. 내일 일은 잊지 마시오⁠.⁠”

곰이 은자 꾸러미를 보았다가⁠, 큰 접시를 보았다가⁠, 나를 보았다⁠. 맷돌 굴러가는 소리가 또 들렸다⁠.

“⁠여기 오십 냥이 있으니⁠,⁠” 나는 품에서 내 몫 은자를 꺼내 탁자에 놓았다⁠. 이날 아침 판에서 뗀 것까지 합쳐 오십 냥이었다⁠. “⁠곰 형씨는 내일 이기시고 이것도 받으세요⁠.⁠”

“⁠어허⁠.⁠” 총관이 꾸러미를 하나 더 꺼냈다⁠. “⁠칠십⁠.⁠”

“⁠칠십에 만두 평생⁠.⁠”

“⁠만두는 누가 쪄⁠?⁠” 갑례가 국자를 들고 물었다⁠.

“⁠안주인이요⁠.⁠”

“⁠평생이면 내가 언제 죽는데⁠?⁠”

“⁠오래 사세요⁠.⁠”

총관이 탁자를 손바닥으로 쳤다⁠. “⁠백 냥⁠! 지면 백 냥이오⁠, 곰 대협⁠.⁠”

곰이 손을 들었다⁠. 우리 둘이 입을 다물었다⁠. 곰은 오랫동안 생각했다⁠. 부엌에 찜통 김 오르는 소리만 났다⁠.

“⁠둘 다 주면 안 되오⁠?⁠”

“⁠안 됩니다⁠.⁠” 총관과 내가 동시에 말했다⁠.

곰이 서운한 얼굴을 했다⁠. 정말로 서운해 보였다⁠. 갑례가 이 얼굴을 보고 또 웃었다⁠.

*

총관의 인내는 거기까지였다⁠. 이 사람이 턱짓을 하자 뒤에 선 사내 하나가 찜통을 걷어찼다⁠. 찜통이 부뚜막에서 떨어지며 남은 만두가 바닥에 쏟아졌다⁠. 뜨거운 김이 내 다리를 덮었고⁠, 대나무 찜통 테가 쪼개지는 소리가 났다⁠. 사내가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행주를 감은 내 머리⁠, 왼쪽 귀 쪽이었다⁠.

손이 귀에 닿기 전에 국자가 먼저 닿았다⁠. 갑례의 국자가 사내의 손목을 내리쳤다⁠. 쇠 국자가 뼈를 치는 소리는 생각보다 맑았다⁠.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손을 감싸 쥐었다⁠.

“⁠내 부엌에서 내 찜통을 차⁠?⁠” 갑례가 국자를 다시 들었다⁠. “⁠열 해 전에 너희 방 놈들이 우리 영감을 털어 갔을 때도 나는 국자를 들고 있었어⁠. 그때는 개봉까지 쫓아갈 다리가 없었지⁠. 지금은 여기가 내 부엌이야⁠.⁠”

열 해 전에 영감을 털어 갔다는 말이 내 귀를 스쳤다⁠. 나는 이 말을 붙잡으려다 놓쳤다⁠. 곰이 일어서고 있었다⁠. 걸상이 엉덩이에서 떨어져 나와 굴렀다⁠. 곰이 머리를 숙이지 않고 일어서자 정수리가 천장 대들보에 쿵 하고 닿았다⁠. 곰은 아파하지도 않았다⁠. 바닥에 쏟아진 만두를 내려다보다가⁠, 찜통을 찬 사내를 보았다⁠.

“⁠만두를 왜 차오⁠?⁠”

사내는 대답을 못 했다⁠. 곰이 한 걸음 다가가자 사내 둘이 뒷걸음질쳤고⁠, 총관만 제자리에 남았다⁠. 총관은 이를 쑤시던 사람답게 이를 꽉 물었다⁠.

“⁠곰 대협⁠, 내일 이기면 그 몽둥이로 다시는 비무대에 못 서게 될 거요⁠.⁠”

“⁠나는 몽둥이를 안 쓰오⁠.⁠” 곰이 말했다⁠. “⁠사람이 다쳐서⁠.⁠”

총관은 탁자 위 은자 꾸러미를 챙겨 들고 나갔다⁠. 사내 둘이 뒤를 따랐다⁠. 뒷문이 쾅 닫혔다⁠. 제비가 다시 날아갔다⁠.

*

곰은 바닥에 쪼그려 앉아 쏟아진 만두를 하나씩 주웠다⁠. 흙을 털어 내고 입에 넣었다⁠. 갑례가 말리려다 그만두었다⁠.

“⁠이제 흑룡방이 형씨를 의심합니다⁠.⁠” 내가 말했다⁠. “⁠내일 형씨가 이길 걸 알면 흑룡방은 작은 접시에 돈을 안 겁니다⁠. 그럼 형씨가 이겨도 거리 사람들 만두는 조금밖에 안 늘어요⁠.⁠”

“⁠그럼 어떡하오⁠?⁠”

나는 셈을 했다⁠. 흑룡방이 작은 접시에 은자를 쌓게 하려면⁠, 곰이 질 거라고 믿게 해야 한다⁠. 곰이 저 꾸러미를 받아야 한다⁠. 받고 나서 이겨야 한다⁠. 그러면 흑룡방이 쌓은 은자가 거리 사람들 접시로 넘어온다⁠. 판의 한 할도 커진다⁠. 내 빚이 줄어든다⁠. 이 마지막 셈이 머릿속에서 제일 먼저 굴러갔다는 걸 나는 숨기지 않겠다⁠. 노름꾼의 고백은 늘 이렇게 생겼다⁠.

“⁠형씨가 오늘 밤 흑룡방 객잔에 가서 미안하다고 하세요⁠. 아까는 화가 나서 그랬다⁠, 내일 지겠다⁠, 백 냥 주시오⁠. 그렇게⁠.⁠”

“⁠거짓말이오⁠?⁠”

“⁠예⁠. 거짓말이요⁠.⁠”

곰이 만두를 씹다 멈췄다⁠. “⁠나는 거짓말을 못 하오⁠. 어머니가 거짓말하면 혀에 털이 난다고 했소⁠.⁠”

“⁠한 번은 괜찮습니다⁠. 털 하나쯤⁠.⁠”

곰은 혀를 내밀어 손가락으로 만져 보았다⁠. 아직 털은 없었다⁠. 그러더니 크게 숨을 들이쉬고⁠, 부뚜막 쪽을 향해 연습을 시작했다⁠.

“⁠내일⁠, 지⁠, 겠⁠, 소⁠.⁠”

“⁠너무 또박또박합니다⁠. 미안한 얼굴로요⁠.⁠”

“⁠내일 지겠소⁠.⁠” 곰이 눈썹을 내렸다⁠. 성난 곰이 되었다⁠.

“⁠더 미안하게요⁠.⁠”

“⁠내일⁠…⁠… 지겠소⁠…⁠…⁠.⁠” 이번엔 곰이 울 것 같았다⁠. 갑례가 국자로 입을 막고 돌아섰다⁠. 어깨가 흔들렸다⁠.

“⁠그 정도면 됩니다⁠. 그 얼굴이면 흑룡방도 믿어요⁠.⁠”

곰이 일어나 뒷문으로 갔다⁠. 문설주에 또 머리를 쾅 박았다⁠. 이번엔 제비가 날아가지 않았다⁠.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

밤에 나는 국숫집 처마 밑에서 흑룡방 객잔을 들었다⁠. 곰이 들어가는 소리⁠, 문설주에 머리를 쾅 박는 소리가 들렸다⁠. 이 객잔 문설주도 낮았다⁠. 잠시 뒤 곰의 목소리가 났다⁠.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내일 지겠소⁠. 그리고 은자 꾸러미가 탁자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백 냥짜리 소리였다⁠.

한 시간쯤 뒤 흑룡방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비탈을 건너왔다⁠. 열 명이 넘었다⁠. 쌀독 앞에 은자 꾸러미가 줄을 섰다⁠. 웅 도사에게⁠, 웅 도사에게⁠, 웅 도사에게⁠. 갑례가 꾸러미를 하나씩 풀어 세는 소리가 자정 넘어까지 이어졌다⁠. 다 세고 나서 갑례가 나를 보았다⁠.

“⁠이천 냥⁠.⁠”

나는 숨을 삼켰다⁠. 쌀독 셋이 다 찼다⁠. 거리 사람들이 곰에게 건 돈의 세 배가 넘었다⁠. 곰이 지면 거리는 빈손이 된다⁠. 곰이 이기면 이 이천 냥이 거리로 쏟아지고⁠, 판은 이백 냥을 뗀다⁠.

갑례가 쌀독 뚜껑을 닫으며 낮게 말했다⁠. “⁠그 곰이 정말 이길 수 있어⁠?⁠”

“⁠이길 수 있지요⁠. 몽둥이만 쓰면⁠.⁠”

“⁠몽둥이를 안 쓴다며⁠.⁠”

이 말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쌀독 뚜껑 위로 등잔불이 흔들렸다⁠. 이날 밤 나는 처음으로 곰이 정말로 질까 봐 잠을 못 잤다⁠. 판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곰이 바닥에 쏟아진 만두를 흙 털어 주워 먹던 소리가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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