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264자)

사매의 손

천하제일 비무대회의 판돈은 내가 받는다 · 설묵향

갑례는 쌀독 뚜껑을 손바닥으로 덮고 고개를 저었다⁠.

“⁠이건 손님 돈이야⁠. 네 스승 몸값으로 못 꺼내⁠.⁠”

“⁠한 닢도요⁠?⁠”

“⁠한 닢도⁠. 이 독에서 한 닢이 엉뚱한 데로 나가면 내일부터 아무도 여기다 안 걸어⁠. 너도 알잖아⁠, 이 화상아⁠.⁠”

알았다⁠. 나도 이 여자 자리였으면 똑같이 말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층 내 방에 올라가 침상 밑 마룻장을 들었다⁠. 거기 탁문석에게 빌린 은자와 그동안 판에서 뗀 내 몫이 무명 자루에 들어 있었다⁠. 사백 냥이 조금 못 되었다⁠. 그중 백 냥을 덜어 품에 넣었다⁠. 자루가 가벼워지는 소리가 났다⁠. 돈 자루는 가벼워질 때 소리가 더 크다⁠.

내려오니 철선자가 객잔 문간에 서 있었다⁠. 원로석에서 내려와 거지한테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같이 가 주랴⁠?⁠”

“⁠어른이 가시면 칼싸움이 됩니다⁠. 저는 칼을 못 쓰니까 노름으로 가야지요⁠.⁠”

“⁠노름으로 지면⁠?⁠”

“⁠그럼 어른이 칼 들고 오세요⁠.⁠”

철선자가 휜 쇠부채를 허리에 꽂고 문간에 기대섰다⁠.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

흑룡방 객잔 일층은 쥐구멍을 숭산에 옮겨 놓은 것 같았다⁠. 탁자 여섯 개에 판이 다 돌고 있었고⁠, 기름 등잔 그을음이 천장을 까맣게 덮었다⁠. 고량주와 땀과 은자 냄새가 섞여 콧속이 텁텁했다⁠. 은자도 냄새가 난다⁠. 손을 많이 탄 은자는 쇠 비린내에 사람 손때 냄새가 섞인다⁠. 방 안쪽 창가에 탁문석이 앉아 있었다⁠. 찻잔 하나⁠, 아무것도 깔리지 않은 탁자⁠. 이 옆에 총관이 이를 쑤시며 서 있었다⁠.

문 옆 구석 탁자에는 하남 청년이 혼자 앉아 있었다⁠. 본선에 올라간 애송이가 승부 전날 밤에 노름방 구석에서 술잔만 돌리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칼집은 여전히 흠집 하나 없었다⁠. 이 애의 본선 상대는 화산파 검객이었는데⁠, 이 검객이 져 줄 값을 흑룡방이 아직 못 맞췄다는 말이 거리에 돌았다⁠. 술잔이 이 애 손에서 떠나지 않는 까닭이 이것이었다⁠. 이기게 된 놈은 이기게 해 주는 손이 언제 거둬질지 몰라 밤마다 술을 마신다⁠. 나는 지나가면서 이 애 탁자를 손가락으로 한 번 두드렸다⁠. 청년이 움찔했다⁠. 탁문석 흉내를 낸 건데⁠, 내가 하니까 그냥 탁자를 두드린 소리였다⁠.

“⁠왕 선생⁠, 이 앓는 머리로 여기까지 오셨소⁠?⁠”

“⁠이가 아니라 귀입니다⁠.⁠”

“⁠알고 있소⁠.⁠” 탁문석이 찻잔 옆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구 노인 빚이 백 냥이오⁠. 한 판이면 갚을 수 있는데 노인이 갚을 생각이 없다니⁠, 위층에서 생각을 좀 하시라고 했소⁠.⁠”

“⁠제가 갚겠습니다⁠.⁠”

“⁠돈으로 갚으면 재미가 없지⁠.⁠” 탁문석이 턱으로 가운데 탁자를 가리켰다⁠. 동매가 거기 앉아 대접을 닦고 있었다⁠. “⁠동매와 한 판 두시오⁠. 이기면 노인을 데려가고 왕 선생 백 냥도 도로 가져가시오⁠. 지면 백 냥은 내가 받고⁠, 노인은 오늘 밤 위층에서 주무시오⁠.⁠”

“⁠한 판이면 너무 짧지요⁠. 세 판 해서 두 판 먼저⁠.⁠”

“⁠좋소⁠.⁠”

이렇게 쉽게 좋다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건 개봉에서 배웠다⁠. 나는 동매 맞은편 의자로 갔다⁠. 그런데 동매가 일어나 의자를 옮겼다⁠. 내 맞은편이 아니라 내 왼쪽으로⁠. 대접도 같이 왼쪽으로 끌려왔다⁠. 행주로 감싼 내 왼쪽 귀 바로 앞이었다⁠.

방 안 노름꾼들이 웃었다⁠. 이 여자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숲에서 누가 베였는지⁠.

*

나는 의자를 돌렸다⁠. 앉은 채로 몸을 비틀어 오른쪽 귀를 대접 쪽으로 들이밀었다⁠. 목이 꺾이고 어깨가 탁자 모서리에 걸렸다⁠. 모양이 영 안 좋았다⁠. 뒤에서 누가 학이 모이 쪼는 자세라고 했고⁠, 방 안이 또 웃음바다가 되었다⁠. 총관은 이쑤시개를 떨어뜨리고 웃었다⁠.

“⁠왕 선생⁠, 그게 팔괘장이오⁠?⁠”

“⁠팔괘장 셋째 초식입니다⁠. 이름은 귀를 기울이는 학⁠.⁠”

웃음이 더 커졌다⁠. 동매만 웃지 않았다⁠. 이 여자는 내 꼬인 자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사부님이 저를 두고 당신을 데려갔습니다⁠.⁠”

목소리가 낮아서 웃음소리에 반쯤 묻혔다⁠. 나만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열 해 전 겨울이요⁠. 그 판에 손이 필요하면 저를⁠, 귀가 필요하면 당신을⁠. 사부님은 귀를 고르셨지요⁠. 그리고 그 판에서 당신이 틀리게 불렀고⁠, 사부님은 도망갔고⁠, 흑룡방은 남은 사람을 찾았습니다⁠. 남은 사람이 저였어요⁠. 당신은 개봉 골목으로 숨었고 저는 흑룡방 부엌에서 대접을 닦았습니다⁠. 손이 이렇게 된 건 그 부엌에서입니다⁠.⁠”

이 여자가 대접을 들어 올렸다⁠. 손목이 가늘었고 손가락 마디마다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대접을 수천 번 닦은 손이었다⁠.

나는 몰랐다⁠. 사부에게 다른 제자가 있었다는 것도⁠, 내가 틀리게 부른 손가락 하나가 이 여자의 열 해를 부엌에 묶었다는 것도⁠. 노름꾼은 자기가 판 바깥으로 밀어낸 사람을 셈하지 않는다⁠. 셈하면 판을 못 연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도 됩니까⁠?⁠”

“⁠판이나 두세요⁠.⁠”

*

나는 품에서 이 빠진 주사위 한 쌍을 꺼내 탁자에 놓았다⁠.

“⁠제 주사위로 하겠습니다⁠.⁠”

탁문석이 고개를 들었다⁠. 동매가 이 주사위를 내려다보았다⁠. 깨진 모서리를 보는 순간 이 여자의 눈썹이 움직였다⁠. 이 주사위를 아는 눈이었다⁠. 사부가 품고 다니던 것⁠, 그리고 어느 날 사라진 것⁠.

“⁠손님 주사위로 하는 판은 판꾼이 거절할 수 있소⁠.⁠” 총관이 말했다⁠.

“⁠거절하지 않습니다⁠.⁠” 동매가 주사위를 집었다⁠. 손바닥 위에서 두 알을 한 번 굴려 보더니 대접에 넣었다⁠. “⁠사부님 주사위로 사부님 제자가 지면⁠, 그게 맞는 셈이지요⁠.⁠”

첫 판에서 동매의 손목이 움직였다⁠. 대접 안에서 주사위가 벽을 쳤다⁠. 나는 오른쪽 귀로 들었다⁠. 그런데 왼쪽에서 들려야 할 소리가 행주와 붓기에 먹혀 둥글게 뭉개졌다⁠. 벽을 친 횟수가 둘인지 셋인지 갈라지지 않았다⁠. 대접이 엎어졌다⁠.

“⁠다섯하고 둘⁠.⁠”

동매가 대접을 들었다⁠. 다섯하고 셋이었다⁠. 방 안 사람들이 휘파람을 불었다⁠. 나는 숨을 한 번 내쉬었다⁠. 귀가 반쪽이면 반쪽으로 듣는 법을 찾아야 했다⁠.

두 번째 판에서는 귀를 대접에 대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감고⁠, 방 안의 모든 소리를 다 들었다⁠. 등잔 심지가 타는 소리⁠, 옆 탁자 투전 패가 넘어가는 소리⁠, 위층 마룻장이 삐걱대는 소리⁠, 탁문석이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 다리 밑에서 노인이 가르쳐 준 대로였다⁠. 다른 걸 다 들으면 귀가 닫힌다⁠. 다 듣고 나니 남는 게 있었다⁠. 대접 안에서 깨진 모서리 놈이 반 박자 늦게 멈추는 소리였다⁠. 이 주사위를 나는 열 해 동안 손바닥에서 굴렸다⁠. 늦게 멈추는 놈이 무슨 눈으로 눕는지 나는 소리의 길이로 알았다⁠.

“⁠넷하고⁠, 늦은 놈이 하나⁠.⁠”

넷하고 하나였다⁠. 동매의 입술이 조금 다물렸다⁠.

마지막 판이 되자 방 안이 조용해졌다⁠. 노름꾼들이 판을 멈추고 우리 탁자로 몰려왔다⁠. 숨소리들이 내 뒤통수에 닿았다⁠. 탁문석은 찻잔을 들지 않았다⁠. 동매가 대접을 잡았다⁠. 이번엔 손목이 아니라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다⁠. 개봉 쥐구멍에서 들었던 이 소리가 났다⁠. 한 알이 벽에 붙어 미끄러지고⁠, 대접이 엎어지는 소리가 이 미끄러짐을 덮으려고 크게 났다⁠. 손이 빠른 사람이었다⁠. 어떻게 하는 건지 나는 지금도 모른다⁠. 다만 이 미끄러지는 소리는 열 해 전 노인이 흔들던 대접에서 딱 한 번 들은 적이 있었다⁠. 사부의 손이었다⁠.

“⁠여섯하고 여섯⁠. 둘째 여섯은 처음부터 여섯이었고⁠, 첫째 여섯은 늦게 멈췄다⁠.⁠”

동매가 대접을 들지 않았다⁠. 손을 대접 위에 얹은 채로 나를 보았다⁠. 이 눈 안에서 무언가가 오래 버티다가 내려앉았다⁠.

“⁠사부님 손을 들으셨군요⁠.⁠”

“⁠사매 손이 사부님 손을 닮았으니까⁠.⁠”

이 여자가 대접을 들었다⁠. 여섯하고 여섯이었다⁠. 깨진 모서리 놈이 위를 보고 있었다⁠. 방 안에 숨소리가 한꺼번에 터졌다⁠. 누가 탁자를 쳤고⁠, 누가 욕을 했고⁠, 누가 박수를 쳤다⁠. 이 소란 밑으로 탁문석의 손가락이 창가 탁자를 톡⁠, 톡 두드리는 소리가 깔렸다⁠.

“⁠데려가시오⁠.⁠”

*

구팔봉은 흑룡방 사내 둘에게 양팔을 잡혀 내려왔다⁠. 왼쪽 눈두덩이가 퍼렇게 부었고 입술이 터졌는데 표정은 잔칫집에서 나오는 사람 같았다⁠.

“⁠왔냐⁠? 늦었다⁠.⁠”

“⁠세 판 했습니다⁠.⁠”

“⁠두 판에 끝냈어야지⁠. 첫판은 왜 졌냐⁠?⁠”

“⁠귀가 하나라서요⁠.⁠”

“⁠핑계는⁠.⁠” 노인이 사내들 손을 털어 냈다⁠. “⁠이놈들이 저녁을 안 줬다⁠. 빚쟁이도 밥은 먹어야지⁠. 흑룡방 인심이 열 해 사이에 이렇게 박해졌어⁠.⁠”

탁문석이 일어났다⁠. 발소리 없이 내 앞까지 와서 섰다⁠. 가까이서 보니 탁문석의 숨에서 차 냄새가 났다⁠. 오래 우린 찻잎의 떫은 냄새였다⁠.

“⁠왕 선생⁠, 노인은 데려가시고⁠, 하나만 들고 가시오⁠.⁠” 탁문석이 목소리를 낮췄다⁠. 방 안 사람들은 못 들을 만큼⁠. “⁠어젯밤 소나무 숲에 올라간 것 말이오⁠. 내 사람들 눈은 솔잎보다 많소⁠. 하 소저 곁에 한 번 더 가면⁠, 그 동생 손가락이 아홉이 되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숲에서 칼끝이 내 귀에 닿았을 때보다 지금이 더 차가웠다⁠. 내가 거기 간 값을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치른다⁠. 판에서 제일 비싼 건 사람이라고 노인이 말했다⁠. 이 값을 내가 남의 손가락으로 치를 뻔했다⁠.

“⁠알아들었소⁠?⁠”

“⁠…⁠…알아들었습니다⁠.⁠”

탁문석이 탁자를 두드리듯이 내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

동매가 판을 정리하며 내 주사위를 내밀었다⁠. 나는 이것을 받으려다 말았다⁠.

“⁠사매가 가지고 있어⁠.⁠”

“⁠무슨 뜻입니까⁠?⁠”

“⁠사부님 주사위는 손이 기억하는 게 맞아⁠. 귀는 그 소리를 이미 다 외웠으니까⁠.⁠”

동매는 주사위를 받지도 돌려주지도 않고 대접 옆에 놓아두었다⁠. 나는 이 여자가 이것을 집을지 말지 보지 않고 돌아섰다⁠. 보면 셈을 하게 될 것 같았다⁠. 대신 귀가 들었다⁠. 등 뒤에서 뼈 주사위 두 알이 탁자 위를 쓸려 손바닥 안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났다⁠. 아주 작게⁠, 한 알이 반 박자 늦게⁠. 이 여자는 이걸 집었다⁠. 왜 집었는지는 이 여자의 셈이고⁠, 내 셈이 아니었다⁠.

구팔봉을 부축해 문으로 가는데⁠, 노인의 무릎이 계단 아래에서 휘청했다⁠. 나는 노인을 잠깐 계단 첫 칸에 앉혔다⁠. 노인이 숨을 고르는 동안 나는 저절로 계단 위를 올려다보았다⁠. 어두운 나무 계단이 꺾여 올라가고 있었다⁠. 하나⁠, 둘⁠, 하고 소리 내어 세지는 않았다⁠. 스물둘 끝에 무엇이 있는지 노인이 이미 들려주었다⁠.

이때 위층⁠, 이것도 아주 위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판 소리와 웃음소리를 다 걸러 내고 나서야 남는 소리였다⁠. 사내 목소리가 낮게 흥얼거리고 있었다⁠. 산골 아낙들이 빨래하며 부르는 가락⁠, 끝이 올라가다가 갑자기 내려오는 노래⁠.

숲에서 이 여자가 세 마디 흥얼거린 이 노래였다⁠. 겁이 나면 부른다고 했다⁠.

구팔봉이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뭘 그렇게 듣냐⁠?⁠”

“⁠아무것도요⁠.⁠”

나는 노인을 일으켜 문을 나섰다⁠. 문간에 철선자가 휜 부채를 허리에 꽂은 채 서 있었다⁠. 구팔봉의 부은 얼굴을 보고 혀를 찼다⁠. 나는 이 혀 차는 소리 뒤로⁠, 문이 닫히기 직전까지 이 노래를 들었다⁠. 노래는 끝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중간에 끊겼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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