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297자)

스승이 판 것

천하제일 비무대회의 판돈은 내가 받는다 · 설묵향

본선 대진은 엿새째 아침 산문 돌에 붙었다⁠. 붉은 종이 넉 장에 열여섯 이름이 둘씩 짝을 지어 적혀 있었고⁠, 사람들이 이 앞에 벌 떼처럼 엉겨 웅웅거렸다⁠. 나는 돌 안쪽으로 한 발도 못 들이니 개방 거지가 대신 읽어 주었다⁠. 거지는 글을 반만 알았다⁠.

“⁠하 소저는⁠…⁠… 무슨 산 무슨 문의 아무개하고 붙고⁠, 귀면도는 무슨 강 무슨 파의 아무개하고 붙고⁠, 무쇠곰은⁠…⁠… 이건 모르는 글자요⁠. 곰 웅 자가 하나 있소⁠.⁠”

“⁠무쇠곰이 곰이랑 붙습니까⁠?⁠”

“⁠그런가 보오⁠. 곰끼리⁠.⁠”

나중에 알고 보니 무쇠곰의 상대는 웅 씨 성의 무당 도사였다⁠. 첫날 배당을 유능제강이라고 감격하던 이 도사였다⁠. 거지는 이걸 곰 대 곰이라고 퍼뜨렸고⁠, 거리 사람들은 이 승부에 제일 많이 걸었다⁠. 노름판은 그렇다⁠. 사람들은 칼보다 이야기에 돈을 건다⁠.

*

판에 돈이 쏟아지는 아침이었다⁠. 갑례가 쌀독 두 번째 것까지 뚜껑을 열었다⁠. 나는 머리에 행주를 감은 채로 탁자에 앉아 물표를 내주었다⁠. 머리에 감긴 행주 덕에 손님들이 나를 이 앓는 노름꾼이라고 불렀다⁠. 구팔봉은 내 옆에서 물표에 동그라미를 지지고 있었는데⁠, 왼쪽 귀가 먹은 나 대신 손님들 이야기를 듣는 시늉을 했다⁠. 노인의 귀도 성하지는 않아서 반은 잘못 들었다⁠.

“⁠저 사람이 하 소저한테 닷 냥이란다⁠.⁠”

“⁠열 냥이라고 했는데요⁠.⁠”

“⁠닷 냥 두 번이면 열 냥이지⁠.⁠”

이때 거리가 조용해졌다⁠. 대회장 쪽에서가 아니라 맞은편에서였다⁠. 비탈 건너편⁠, 흑룡방이 통째로 빌린 삼층 객잔 문이 열리고 여자 하나가 나왔다⁠. 머리를 뒤로 단단히 묶고 소매를 걷어 올린 여자⁠. 개봉 쥐구멍에서 대접을 흔들던 판꾼 동매였다⁠. 걸음이 가벼운데 디딜 때마다 발바닥 전체가 땅에 붙었다⁠. 대접을 흔들 때 어깨가 꼼짝 안 하던 이 몸이었다⁠.

동매는 쌀독 앞에 은자 꾸러미 하나를 내려놓았다⁠. “⁠귀면도에게⁠. 이백 냥⁠.⁠”

갑례가 꾸러미를 풀어 세는 동안 동매는 나를 보지 않았다⁠. 내 옆을 보았다⁠. 구팔봉의 손이 쇠꼬챙이를 쥔 채로 멈춰 있었다⁠. 쇠꼬챙이 끝에서 나무 타는 연기가 가늘게 올라갔다⁠.

동매가 고개를 숙였다⁠. 깍듯하게⁠, 허리까지⁠.

“⁠사부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구팔봉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노인을 보았다가 동매를 보았다⁠. 사부님이라고 했다⁠. 이 여자가 개봉에서 대접을 흔들 때 손목만 움직이고 어깨를 안 쓰던 버릇⁠, 이게 어디서 왔는지 그제야 들렸다⁠. 다리 밑에서 내가 석 달 동안 혼나며 배운 바로 이 손목이었다⁠. 다만 나는 귀를 배웠고⁠, 이 여자는 손을 배웠다⁠.

“⁠지난달 개봉에서 문서 값은 잘 받으셨습니까⁠?⁠” 동매가 말했다⁠. 목소리가 고요했다⁠. “⁠방주께서 오십 냥이면 싸게 샀다고 하셨습니다⁠. 열 해 묵은 사백 냥짜리를⁠.⁠”

동매는 물표를 받아 들고 돌아섰다⁠. 걸음은 올 때와 똑같았다⁠. 거리가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웅성거림을 하나도 듣지 못했다⁠. 오른쪽 귀만 성한데⁠, 이 귀 안에서 무언가가 계속 울렸다⁠. 열 해 묵은 사백 냥짜리⁠. 개봉 골목 열두 군데에 흩어져 있던 내 빚 가운데 가장 큰 것⁠. 내가 진 적도 없는데 내 이름이 적혀 있던 이것⁠.

고개를 돌리니 구팔봉이 없었다⁠. 쇠꼬챙이만 탁자 위에 놓여 물표 하나를 태우고 있었다⁠.

*

갑례 객잔 뒷마당에는 장독대가 있다⁠. 크고 작은 독이 서른 개쯤 줄지어 있고⁠, 독마다 뚜껑 위에 돌이 하나씩 얹혀 있다⁠. 볕이 잘 드는 자리라 된장 냄새와 간장 냄새가 데워져서 숨을 쉬면 혀가 짰다⁠. 나는 이 앞에 서서 귀를 열었다⁠. 성한 오른쪽 귀만⁠.

바람 소리⁠, 장독 뚜껑 위 돌이 볕에 데워져 아주 작게 틱 하고 갈라지는 소리⁠, 처마 밑 제비 새끼들 소리⁠. 이 모든 걸 다 듣고 나니 남는 게 있었다⁠. 쌕⁠, 쌕⁠. 맨 끝에서 세 번째 독 뒤였다⁠. 노인이 웅크리면 기침을 참느라 저런 숨이 난다⁠. 구팔봉은 숨을 참는 데 서툴렀다⁠. 이걸 가르쳐 준 사람이 정작 못했다⁠.

“⁠나오세요⁠, 스승님⁠. 숨소리가 된장 냄새보다 큽니다⁠.⁠”

독 뒤에서 노인이 일어났다⁠. 무릎에 된장이 묻어 있었다⁠. 독 하나를 끌어안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냥 장맛을 보러⁠…⁠…⁠.⁠”

“⁠문서 값 오십 냥이요⁠. 맛있으셨습니까⁠?⁠”

노인이 입을 다물었다⁠. 위로 셋⁠, 아래로 넷 남은 이빨 사이로 바람이 새는 소리가 났다⁠.

“⁠열 해 전 그 사백 냥⁠, 제가 진 적 없는 돈입니다⁠. 스승님이 그날 밤 흑룡방에 제 이름을 대고 빌린 돈이지요⁠. 제가 열 해 동안 그 이자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원본 문서를 스승님이 갖고 계시다가⁠, 지난달에 탁문석한테 파셨다고요⁠?⁠”

“⁠삼통아⁠.⁠”

“⁠그래서 탁문석이 제 빚을 다 쥐었고⁠, 제 목을 쥐었고⁠, 스승님은 그 소문을 듣고 구경 오셨고요⁠. 구해 줄 방법은 없지만 구경은 해야 한다고 하셨지요⁠.⁠”

내 목소리가 장독대에 부딪혀 울렸다⁠. 나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노름꾼은 소리를 안 지른다⁠. 소리를 지르면 패가 보인다⁠. 이걸 가르쳐 준 사람 앞에서 나는 내 패를 다 보이고 있었다⁠.

*

열 해 전 겨울이었다⁠. 개봉 북문 근처 흑룡방 큰 객잔 안채⁠, 화로 두 개가 피워진 방이었다⁠. 구팔봉은 이 판의 판꾼이었고⁠, 나는 노인 뒤에 차 시중드는 아이처럼 서 있었다⁠. 내 일은 귀였다⁠. 손님이 쥔 패와 대접 안의 주사위를 듣고⁠, 노인에게 손가락으로 알렸다⁠. 같은 해 흑룡방은 노인을 불러 큰손님을 털었고⁠, 노인은 나를 데려갔다⁠. 나는 이게 일인 줄 알았다⁠. 노인이 시키는 일은 다 일이었다⁠.

이날 손님은 숭산에서 왔다는 객잔 주인이었다⁠. 마흔 줄의 순한 사내로⁠, 몸에서 닭 뼈와 대파를 오래 고은 국수 육수 냄새가 났다⁠. 개봉에 국수틀을 사러 왔다가 흑룡방 사람에게 이끌려 이 방까지 들어왔다고 했다⁠. 처음엔 땄다⁠. 처음엔 다 딴다⁠. 자정이 넘자 사내는 은자를 다 잃었고⁠, 새벽이 오기 전에 빌린 돈까지 잃었고⁠, 마지막에 품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객잔 문서였다⁠.

나는 이 사내의 숨을 들었다⁠. 길게 들이쉬고⁠, 한참 안 내쉬었다⁠. 무언가를 참는 숨이었다⁠.

노인이 대접을 흔들었다⁠. 나는 주사위 소리를 들었다⁠. 다 들렸다⁠. 그리고 노인의 등 뒤에서 손가락을 틀리게 폈다⁠.

사내는 이 판을 이겼다⁠. 문서를 품에 도로 넣고⁠, 남은 은자 몇 닢을 쥐고⁠, 인사도 없이 방을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휘청거렸다⁠. 흑룡방 사람들이 노인을 보았다⁠. 노인은 나를 보지 않았다⁠. 대접만 내려다보았다⁠. 이날 새벽 노인은 흑룡방에 사백 냥짜리 문서를 써 주고 풀려났고⁠, 해가 뜨기 전에 개봉에서 사라졌다⁠. 문서에 적힌 빚쟁이 이름은 왕삼통이었다⁠.

*

“⁠너⁠, 그날 틀리게 불렀지⁠.⁠”

구팔봉이 장독 뚜껑에 손을 짚고 말했다⁠. 된장 묻은 무릎이 떨렸다⁠.

“⁠알고 계셨습니까⁠?⁠”

“⁠네 손가락이 그렇게 늦게 펴진 적이 없었어⁠. 그 판에서 한 번만 늦었다⁠. 나는 대접을 흔들면서 그걸 들었다⁠.⁠” 노인이 웃었다⁠. 웃음 끝에 기침이 섞였다⁠. “⁠그래서 너를 두고 갔다⁠. 저놈은 나보다 나은 놈이 되겠구나⁠. 그럼 내 빚 하나쯤은 지고 살아도 되겠구나⁠. 그게 내 셈이었다⁠.⁠”

“⁠그게 무슨 셈입니까⁠? 열 해 동안 이자만 삼백 냥 넘게 물었어요⁠.⁠”

“⁠알아⁠.⁠” 노인이 장독 뚜껑 위 돌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다섯 해 전에 흑룡방이 묵은 빚 문서를 골목 사채꾼들한테 헐값에 넘길 때⁠, 내가 그걸 열 냥에 샀다⁠. 찢으려고 샀어⁠. 찢어서 네 앞에 뿌려 주려고⁠. 그런데 너를 볼 낯이 없어서 다섯 해를 품고만 다녔다⁠. 그러다 지난달에 탁문석이 사람을 보냈더라⁠. 그 문서를 오십 냥에 사겠다고⁠.⁠” 노인이 고개를 숙였다⁠. “⁠나는 늙었고⁠, 아팠고⁠, 오십 냥이 필요했다⁠. 탁문석이 네 빚을 모으는 줄은 알았는데⁠, 목까지 모으는 줄은 몰랐다⁠.⁠”

“⁠알았어도 파셨을 거잖아요⁠.⁠”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게 대답이었다⁠. 나는 이게 화가 나기보다 우스웠다⁠. 서른 살이나 먹고 예순다섯 노인 앞에서 우는 시늉을 할 뻔했다⁠. 노름꾼한테 이보다 우스운 일은 없다⁠.

“⁠그 돈은 어디다 쓰셨습니까⁠?⁠”

“⁠약값하고⁠…⁠…⁠.⁠” 노인이 머뭇거렸다⁠. “⁠숭산 오는 노새 수레 값⁠.⁠”

“⁠수레는 제 거였잖아요⁠.⁠”

“⁠그러니까 그 돈이 남았지⁠.⁠” 노인이 품에서 은자 몇 닢을 꺼내 장독 뚜껑 위에 놓았다⁠. 돌 옆에⁠. 다섯 닢이었다⁠. “⁠남은 거다⁠. 네 빚에 보태라⁠.⁠”

“⁠사백 냥에 다섯 냥이요⁠?⁠”

“⁠열 해 이자로 치면 반 할은 되지⁠.⁠”

나는 웃었다⁠. 정말로 웃음이 나왔다⁠. 된장 냄새와 노인의 기침 소리 사이에서⁠. 이 웃음을 노인도 들었을 것이다⁠. 노인은 내 웃음이 다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장독 뚜껑 위 다섯 닢을 손가락으로 쓸어 다시 품에 넣었다⁠.

“⁠농담이다⁠. 이건 내가 쓸 데가 있어⁠.⁠”

노인은 독 뒤에서 나와 된장 묻은 무릎을 털었다⁠. 털수록 번졌다⁠. 갑례가 저걸 보면 독 하나 값을 물리겠다고 할 것이다⁠. 나는 이 생각을 하다가⁠, 내가 이 노인을 벌써 용서할 셈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노름꾼이 제일 먼저 배우는 건 셈이 아니라 셈을 미루는 법이다⁠. 오늘 받을 건 오늘 받지 않는다⁠. 판이 끝날 때 한꺼번에 받는다⁠. 이 쓸 데가 어디인지는 저녁에 알았다⁠.

*

해가 기울 무렵 구팔봉이 지팡이를 짚고 비탈을 건넜다⁠. 흑룡방이 빌린 삼층 객잔 쪽이었다⁠. 나는 쌀독 옆에서 이걸 보다가 쫓아갔다⁠.

“⁠어디 가세요⁠?⁠”

“⁠계단 스물두 개⁠.⁠” 노인이 걸음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저 객잔이다⁠. 열 해 전에 흑룡방이 숭산 대회 때마다 빌리던 집이야⁠. 일층에서 삼층 꼭대기 방까지 계단이 딱 스물둘이다⁠. 그 처자 동생은 거기 있다⁠.⁠”

“⁠그걸 어제 아셨으면서 왜 말 안 하셨습니까⁠?⁠”

“⁠어제는 네가 나를 안 미워했으니까⁠.⁠” 노인이 지팡이로 땅을 두 번 짚었다⁠. 톡⁠, 톡⁠. 탁문석이 탁자를 두드리는 소리와 박자가 같았다⁠. 노인은 이걸 모를 것이다⁠. “⁠오늘은 미워하니까 말한다⁠. 미운 놈한테는 빚을 갚기가 쉽거든⁠.⁠”

“⁠들어가서 뭘 하시려고요⁠?⁠”

“⁠동매 판에 앉는다⁠. 그리고 잃는다⁠. 내가 잃는 데는 선수다⁠. 많이 잃고⁠, 크게 떠들고⁠, 못 갚겠다고 버티면 흑룡방은 나를 위층으로 끌고 간다⁠. 빚쟁이를 손볼 때는 늘 꼭대기 방으로 데려가니까⁠.⁠” 노인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위로 셋⁠, 아래로 넷 남은 이가 다 드러났다⁠. “⁠내가 왕년에 그 방에 세 번 끌려갔다 살아 나왔다⁠.⁠”

“⁠그건 허풍이지요⁠?⁠”

“⁠두 번은 진짜다⁠.⁠”

노인은 흑룡방 객잔 문으로 들어갔다⁠. 문 앞을 지키던 흑룡방 사내 둘이 노인을 알아보고 웃었다⁠. 문이 닫혔다⁠.

나는 비탈 이쪽 국숫집 처마 밑에 서서 귀를 열었다⁠. 성한 귀 하나로⁠. 객잔 일층에서 동매의 손목이 대접을 흔드는 소리가 났다⁠. 노인의 웃음소리가 크게 터졌다⁠. 한 판⁠, 두 판⁠. 은자 떨어지는 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노인이 소리를 질렀다⁠. 갚을 돈 없다⁠, 이 날강도들아⁠. 무언가 넘어지는 소리가 나고⁠,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고⁠, 다음 계단을 끌려 올라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셌다⁠. 하나⁠, 둘⁠, 셋⁠. 스물둘에서 소리가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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