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370자)

산문 밖의 판

천하제일 비무대회의 판돈은 내가 받는다 · 설묵향

숭산의 새벽 종은 백여덟 번을 친다고 들었다⁠. 나는 이날 새벽 이걸 처음부터 끝까지 다 셌다⁠. 서른일곱 번째에서 종지기가 한 번 숨을 고르느라 박자가 늦었고⁠, 아흔 번째 근처에서는 누가 종채를 넘겨받았는지 소리가 조금 무거워졌다⁠. 셈하는 버릇은 잠을 안 재운다⁠. 구팔봉은 백여덟 번 내내 코를 골았고⁠, 마지막 종소리가 산을 타고 내려가 객잔 거리 기왓장을 흔들 때쯤 눈을 뜨더니 말했다⁠.

“⁠몇 번 쳤냐⁠?⁠”

“⁠백여덟 번이요⁠.⁠”

“⁠틀렸어⁠. 백일곱 번이야⁠. 한 번은 메아리였다⁠.⁠”

이 노인과 내기를 하면 안 된다⁠. 진 적이 없어서가 아니라⁠, 질 때마다 규칙을 새로 만든다⁠.

*

아침 해가 산문 돌 위로 올라올 무렵 나는 갑례 객잔 앞에 장대를 세우고 무명천을 걸었다⁠. 「⁠천하제일 비무 내기판⁠」 붓글씨는 갑례가 썼다⁠. 내 글씨는 지렁이가 술 마시고 기어간 것 같다고 했다⁠. 처마 밑에는 빈 쌀독 하나가 놓였고⁠, 쌀독 옆 탁자에는 구팔봉이 밤새 깎았다는 나무 물표가 수북했다⁠. 물표마다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지진 자국이 있었다⁠. 구팔봉은 이걸 왕년에 강남 큰 노름판에서 쓰던 비밀 문양이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엔 그냥 동그라미였다⁠.

“⁠안주인⁠, 동그라미가 다 다르게 생겼습니다⁠.⁠”

“⁠그래야 위조를 못 하지⁠.⁠” 구팔봉이 말했다⁠.

“⁠손이 떨려서 그런 거 아니고요⁠?⁠”

“⁠그것도 비밀이다⁠.⁠”

첫 손님은 개방 거지였다⁠. 쉰은 넘었을 텐데 다리 하나를 절었고⁠, 허리에 찬 대나무 통에서 동전 소리가 짤랑거렸다⁠. 이 사람은 장대에 걸린 무명천을 한참 올려다보다가 물었다⁠.

“⁠여기 돈 걸면⁠, 내가 이기면 돈을 주는 거요⁠?⁠”

“⁠어르신이 건 사람이 이기면 드리지요⁠.⁠”

“⁠그럼 나한테 걸겠소⁠. 나 예선 나가오⁠.⁠”

“⁠그건 안 됩니다⁠.⁠”

“⁠왜 안 되오⁠? 내가 나를 제일 잘 아는데⁠.⁠”

나는 말이 막혔다⁠. 노름판 십오 년에 이런 질문은 처음이었다⁠. 제 승부에 제가 돈을 걸면 지는 편에 걸고 져 버리는 놈이 나온다고 설명하려다가⁠, 거지의 눈을 보고 그만두었다⁠. 이 사람은 정말로 자기가 이길 줄 아는 눈이었다⁠.

“⁠어르신⁠, 남한테 거세요⁠. 이기실 거면 상금을 받으시면 되잖아요⁠.⁠”

“⁠아⁠, 그렇군⁠.⁠” 거지는 한참 생각하더니 동전 세 닢을 꺼냈다⁠. “⁠그럼 하 소저한테 거오⁠.⁠”

“⁠하원비 말입니까⁠?⁠”

“⁠작년 겨울에 낙양 다리 밑에서 그 처자가 나한테 만두를 줬소⁠. 따뜻한 걸로⁠. 그 처자가 지는 꼴은 못 보오⁠.⁠”

갑례가 동전 세 닢을 받아 쌀독에 넣었다⁠. 동전이 텅 빈 독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세 번⁠, 둥글게 울렸다⁠. 나는 이 소리가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첫 돈이 동전 세 닢이었고⁠, 이 세 닢이 하원비에게 걸렸다⁠. 벽 너머에서 칼이 칼집에 밀려 들어가던 소리가 이 위에 겹쳐 들렸다⁠.

*

해가 한 뼘 오르자 사람이 몰렸다⁠. 대회장에 들어가려는 구경꾼들이 산문 돌로 가는 길에 이 객잔 앞을 지나야 했다⁠. 처음엔 다들 웃으며 지나갔는데⁠, 누가 하나 동전을 넣자 다음은 쉬웠다⁠. 노름은 원래 그렇다⁠. 첫 사람이 제일 어렵다⁠.

고수들이 문제였다⁠. 무당파 도복을 입은 젊은 도사 셋이 탁자 앞에서 한참을 수군거리더니⁠, 그중 하나가 내게 공손히 합장했다⁠.

“⁠시주께 여쭙니다⁠. 배당이란 무엇입니까⁠? 내공을 몇 갑자 쌓아야 익히는 것입니까⁠?⁠”

“⁠내공은 필요 없고 셈만 하시면 됩니다⁠. 하원비한테 한 냥을 걸면 이길 때 한 냥 두 푼을 돌려받고⁠, 이름 없는 아무개한테 한 냥을 걸면 이길 때 다섯 냥을 받습니다⁠. 센 사람한테 걸면 적게 받고⁠, 약한 사람한테 걸면 많이 받고⁠.⁠”

도사가 눈을 크게 떴다⁠. “⁠약한 쪽이 이기면 더 받는다니⁠. 그것은 유능제강의 도리군요⁠.⁠”

“⁠예⁠?⁠”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 시주는 도를 아시는군요⁠.⁠”

나는 도를 몰랐다⁠. 하지만 도사들이 이 자리에서 이름 없는 아무개들에게 한 냥씩 걸고 감격해서 돌아가는 걸 보고⁠, 도는 몰라도 장사는 된다는 걸 알았다⁠. 이후로 나는 배당을 설명할 때마다 유능제강을 붙였다⁠. 아미파 여승들은 이걸 듣고 웃었고⁠, 화산파 검객 하나는 끝까지 이해를 못 해서 자기 사형한테 걸었다가 사형한테 뒤통수를 맞았다⁠.

그리고 산 위에서 내려온 거구가 있었다⁠. 키가 문설주에 닿았고⁠, 어깨에 쇠몽둥이를 메고 있었다⁠. 북쪽 산골에서 왔다는데 사람들은 이 사람을 무쇠곰이라고 불렀다⁠. 무쇠곰은 쌀독 안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물었다⁠.

“⁠여기 돈 넣으면 만두가 나오오⁠?⁠”

“⁠돈이 나옵니다⁠.⁠”

“⁠그럼 그 돈으로 만두를 사면 되겠군⁠.⁠” 무쇠곰은 고개를 끄덕이고 갔다⁠. 아무것도 걸지 않았다⁠. 갑례가 이 등에 대고 웃었다⁠. 이 여자가 웃는 소리를 나는 이때 처음 들었다⁠. 국자가 솥 바닥을 긁는 소리 같았다⁠.

*

정오가 되기 전에 깃발이 찢어졌다⁠.

찢는 소리부터 들었다⁠. 무명천은 질겨서 쉽게 안 찢어지는데⁠, 이 소리는 한 번에 길게 갔다⁠. 쭉⁠. 장대가 흔들리고 천이 두 갈래로 갈라져 바람에 날렸다⁠. 이 아래 회색 가사를 입은 노승이 서 있었다⁠. 쉰 후반쯤⁠, 눈썹이 하얗고 손에 염주를 감았다⁠. 뒤에 무승 둘이 곤봉을 들고 섰다⁠. 거리가 조용해졌다⁠. 국숫집 주인이 국자를 들고 그대로 굳었다⁠.

“⁠소림 계율원 장로 심운학이오⁠. 이 대회를 주관하오⁠.⁠”

소림에서 계율을 맡아 다스리는 계율원의 장로라고 했다⁠. 목소리가 크지 않은데 거리 끝까지 갔다⁠. 내공이 실린 목소리는 귀에 꽂히는 게 아니라 가슴에 와서 앉는다⁠.

“⁠노름판을 거둬 가시오⁠.⁠”

“⁠장로님⁠, 노름판이 아니라 내기판입니다⁠.⁠”

“⁠무엇이 다르오⁠?⁠”

나는 다른 점을 찾느라 머리를 굴렸다⁠. 다른 점은 없었다⁠. 그래서 말을 돌렸다⁠.

“⁠구경꾼들은 어차피 누가 이길지 저희끼리 내기를 합니다⁠. 막걸리 한 사발⁠, 동전 한 닢⁠. 그걸 한데 모아서 정직하게 세어 주는 게 제 일입니다⁠. 판을 여는 놈이 제일 바라는 게 뭔지 아십니까⁠? 깨끗한 승부입니다⁠. 승부가 더러우면 판이 망하거든요⁠.⁠”

반은 참말이었다⁠. 나머지 반은 어젯밤 벽 너머에서 들은 소리가 목에 걸려 안 나왔다⁠. 이 말을 꺼내면 이 판은 오늘로 끝이고⁠, 내 목은 보름날에 끝난다⁠.

심운학은 염주를 한 알 넘겼다⁠. 딸깍⁠.

“⁠무는 수행이오⁠. 수행하는 사람의 땀에 돈을 걸면⁠, 땀이 돈이 되오⁠. 땀이 돈이 되면 땀을 사고파는 자가 나오오⁠.⁠”

“⁠장로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도 무를 아는 사람으로서⁠…⁠…⁠.⁠”

이 말이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노름꾼은 궁지에 몰리면 제 몸에 없는 것까지 판다⁠. 구팔봉이 뒤에서 기침을 했다⁠. 그만하라는 기침이었다⁠. 나는 그만하지 않았다⁠.

“⁠저도 소싯적에 팔괘장을 좀 익혔습니다⁠. 깊지는 않지만⁠, 무인의 땀이 얼마나 귀한지는 압니다⁠.⁠”

심운학이 한 걸음 다가와 내 오른 손목을 잡았다⁠. 너무 빨라서 손을 뺄 생각도 못 했다⁠. 마른 손가락 셋이 내 맥 위에 얹혔다⁠. 숨을 두 번 쉬는 동안 아무 말도 안 했다⁠. 거리 사람들이 다 숨을 참았다⁠. 나도 참았다⁠. 참으니까 내 맥이 더 크게 뛰었다⁠.

“⁠내공이 한 톨도 없군⁠.⁠”

“⁠한 톨은 있을 텐데요⁠.⁠”

“⁠없소⁠. 팔괘장이 아니라 팔괘 점을 쳤겠지⁠.⁠”

국숫집 주인이 먼저 웃었다⁠. 다음 무당 도사들이 웃었고⁠, 다음은 거리 전체였다⁠. 스승이라는 구팔봉이 제일 크게 웃었다⁠. 나는 손목을 빼고 소매를 내렸다⁠. 맥 짚힌 자리가 화끈거렸다⁠.

*

심운학은 판을 거두라고 두 번 말하지 않았다⁠. 대신 산문 돌을 가리켰다⁠. 산문 아래 비탈 한가운데 사람 키만 한 바위가 있고⁠, 거기 붉은 글씨로 소림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저 돌 안쪽은 소림의 땅이오⁠. 그 안에서 노름과 내기를 하는 자는 산 아래로 굴려 내리겠소⁠. 돌 바깥은 관부의 땅이니 내가 손대지 않소⁠.⁠”

“⁠감사합니다⁠, 장로님⁠.⁠”

“⁠감사할 것 없소⁠. 시주는 대회가 끝날 때까지 저 돌 안으로 한 발짝도 들이지 마시오⁠. 비무장 담 너머로 구경도 하지 마시오⁠. 노름꾼의 눈이 닿으면 칼이 무거워지오⁠.⁠”

“⁠눈은 안 대겠습니다⁠.⁠” 나는 말했다⁠. 귀는 대겠다는 말은 안 했다⁠.

“⁠그리고⁠.⁠” 심운학은 염주를 한 알 더 넘겼다⁠. “⁠승부에 돈이 걸렸다가 승부가 팔렸다는 말이 내 귀에 들어오면⁠, 판을 연 자도 같이 굴리겠소⁠.⁠”

심운학은 돌아섰다⁠. 무승들이 찢어진 깃발을 장대째 뽑아 들고 따라갔다⁠. 갑례가 등에 대고 말했다⁠.

“⁠장로님⁠, 장대는 우리 집 빨랫대요⁠.⁠”

무승 하나가 장대를 도로 갖다 놓았다⁠. 갑례는 찢어진 무명천 반쪽을 장대에 다시 묶었다⁠. 「⁠천하제일 비무⁠」까지만 남고 「⁠내기판⁠」은 날아갔다⁠. 손님들은 이게 더 비싸 보인다고 했다⁠.

*

이날 오후 내내 나는 산문 돌 바깥에 서서 비무장 쪽을 들었다⁠. 비무장은 산문 안쪽 공터에 있었고⁠, 거기서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담을 넘어 비탈로 굴러 내려왔다⁠. 처음엔 다 같은 쇳소리였다⁠. 한 시간쯤 들으니 갈라지기 시작했다⁠. 날을 세워 막는 소리와 날을 눕혀 흘리는 소리⁠, 이긴 사람 발이 땅을 디디는 소리와 진 사람 무릎이 꿇리는 소리⁠. 구경꾼들의 함성이 터지기 전에 나는 누가 이겼는지 알았다⁠. 갑례가 물표를 받아 동전을 내줄 때쯤이면 산 위에서 전령이 뛰어 내려와 결과를 외쳤고⁠, 내 짐작은 거의 다 맞았다⁠.

하원비는 이날 오후 늦게 산에서 내려왔다⁠. 예선 첫 승부를 열 합 안에 끝냈다고 전령이 외친 지 한참 뒤였다⁠. 푸른 무명옷에 칼 한 자루⁠, 걸음이 빨랐고 칼집이 허벅지에 닿는 소리가 일정했다⁠. 개방 거지가 탁자 앞에서 손을 흔들며 “⁠하 소저⁠, 내가 세 닢 걸었소⁠!⁠” 하고 외쳤다⁠. 이 여자는 걸음을 멈추고 쌀독을 한 번 보았다⁠. 다음 나를 보았다⁠. 무슨 말을 할 것 같았는데⁠, 하지 않고 거지에게만 고개를 한 번 숙이고 지나갔다⁠. 칼집 소리가 이 대목에서만 한 박자 흐트러졌다⁠.

해 질 녘 쌀독 바닥이 안 보였다⁠. 갑례가 하루 셈을 마치고 말했다⁠. “⁠백사십 냥⁠.⁠” 판이 뗀 몫은 열넷⁠. 갑례 몫을 떼면 내 손에는 열두 냥 남짓이 남았다⁠. 천이백 냥까지 갈 길은 멀었지만 첫날 장사로는 나쁘지 않았다⁠.

등불이 켜질 때 흑룡방 사람들이 왔다⁠. 다섯이었고⁠, 이 앞에 선 사내의 목소리를 나는 바로 알아들었다⁠. 어젯밤 벽 너머에서 하원비에게 동생의 손가락을 세던 목소리였다⁠. 흑룡방의 살림과 사람을 맡아 부리는 총관이었다⁠. 총관은 쌀독 앞에 은자를 늘어놓았다⁠. 다섯이 한 사람씩⁠, 열두 냥씩⁠.

“⁠모레 예선 셋째 날⁠, 철선자와 붙는 이름 없는 청년한테 거오⁠.⁠”

철선자는 쇠부채 하나로 강남을 휘젓던 노고수였다⁠. 이 상대는 이름도 없이 「⁠하남 청년⁠」으로만 적힌 애송이였다⁠. 내가 매긴 배당은 다섯 배⁠. 이 사람들이 이기면 판은 삼백 냥을 물어 줘야 했다⁠. 첫날 번 돈의 두 배였다⁠.

갑례가 나를 보았다⁠. 은자를 받을 건지 묻는 눈이었다⁠. 나는 총관의 숨소리를 들었다⁠. 다섯 배짜리에 예순 냥을 거는 사람의 숨이 너무 고르게 들고 났다⁠. 노름꾼이 아니라 빚을 받으러 온 사람의 숨이었다⁠.

안 받으면 거리 사람들은 판이 큰돈을 겁낸다고 수군댈 것이다⁠. 받으면 모레 철선자가 어떻게 질지 나는 이미 들은 것 같았다⁠.

“⁠받아요⁠, 안주인⁠.⁠”

은자가 쌀독으로 떨어졌다⁠. 동전 소리와는 달리 무겁고 짧게⁠, 바닥에 박히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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