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5,400자)

결승 전날

천하제일 비무대회의 판돈은 내가 받는다 · 설묵향

하원비가 동생의 손가락을 세는 소리를 나는 부엌 문간에서 들었다⁠. 새벽 첫닭이 운 직후였다⁠. 이 여자는 어떻게 알았는지 칼도 차지 않고 맨발로 비탈을 뛰어 내려왔다⁠. 맨발이 비탈 돌을 치는 소리가 고르지 않았다⁠. 내가 들은 이 여자의 발소리 가운데 처음으로 일정하지 않은 소리였다⁠.

복길은 부뚜막 앞 걸상에 앉아 갑례가 내준 국수를 먹고 있었다⁠. 누나가 들어오자 젓가락을 든 채로 일어났다⁠. 하원비는 동생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손부터 잡았다⁠. 오른손을 펴서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왼손을 폈다⁠.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그러고는 손가락 끝마다 엄지로 꾹꾹 눌러 가며 처음부터 한 번 더 셌다⁠. 두 번째 셈이 끝나자 이 여자는 동생의 손을 놓고⁠, 이 손으로 동생의 뒤통수를 때렸다⁠. 짝 소리가 부엌 그릇을 울렸다⁠.

“⁠아야⁠, 누나⁠.⁠”

“⁠노름하지 말랬지⁠.⁠”

“⁠안 했어⁠. 혼자 했어⁠. 왼손하고 오른손이⁠.⁠”

하원비가 한 번 더 때리려고 손을 들었다⁠. 이 손이 내려오지 않고 동생의 목을 감았다⁠. 동생이 누나보다 머리 하나가 컸는데⁠, 이 여자가 끌어당기자 복길이 허리를 숙였다⁠. 국수 그릇이 걸상에서 떨어지려는 걸 갑례가 받았다⁠. 이 여자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숨만 들렸다⁠. 길게 들이쉬고⁠, 이번엔 끝까지 내쉬었다⁠. 동생이 아이 달래듯이 누나 등을 탁⁠, 탁 두드렸다⁠.

“⁠열한 개라고 할 줄 알았는데⁠.⁠” 복길이 말했다⁠.

“⁠열 개다⁠. 내가 두 번 셌어⁠.⁠”

나는 문간에서 돌아섰다⁠. 노름꾼은 남의 패를 보는 게 일인데⁠, 이 패는 보지 않는 게 맞았다⁠.

*

해가 뜰 무렵 동매가 구팔봉을 데려왔다⁠. 업고 온 것이 아니라 어깨를 내주고 같이 걸어왔다⁠. 노인의 왼쪽 얼굴이 다 부어 눈이 안 보였고⁠, 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 쪽에서 쌕쌕 소리가 났다⁠. 동매는 객잔 문 앞에 노인을 내려놓고 아무 말 없이 돌아갔다⁠. 노인이 이 등에 대고 말했다⁠.

“⁠동매야⁠, 마지막 판 손목이 좋더라⁠. 사부보다 낫다⁠.⁠”

동매가 걸음을 멈췄다⁠. 돌아보지는 않았다⁠. 잠시 서 있다가 다시 걸었다⁠. 발바닥 전체가 땅에 붙는 소리가 비탈을 건너갔다⁠.

나는 노인을 부축해 방으로 올렸다⁠. 계단 열한 개를 오르는 데 한참 걸렸다⁠. 노인은 한 칸마다 신음을 하고 한 칸마다 허풍을 쳤다⁠.

“⁠내가 왕년에 낙양에서 몽둥이 서른 대를 맞고도⁠…⁠…⁠.⁠”

“⁠어젯밤엔 몇 대 맞으셨어요⁠?⁠”

“⁠네 대⁠. 다섯째를 동매가 막았어⁠.⁠” 노인이 침상에 누우며 웃었다⁠. 웃다가 갈비뼈를 잡았다⁠. “⁠오백 냥 다 잃었다⁠. 미안하다⁠.⁠”

“⁠목은 붙어 있는 동안만 값이 있다면서요⁠.⁠”

“⁠그래⁠. 네 목 아직 붙어 있잖아⁠.⁠” 노인이 눈을 감았다⁠. “⁠그럼 됐다⁠.⁠”

*

복길은 이날 아침 곰과 누나를 따라 산문 안으로 올라갔다⁠. 나는 돌 바깥에 남았다⁠. 복길이 심운학 앞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나는 듣지 못했다⁠. 거지가 내려와서 전해 주었다⁠. 장로가 복길의 말을 다 듣고⁠, 염주를 한 바퀴 다 돌리고⁠, 결승 단상에 자기 방석을 하나 더 놓으라고 시켰다고⁠.

“⁠만두⁠.⁠”

갑례가 만두를 내주었다⁠. 거지는 이번엔 반으로 가르지 않고 통째로 먹었다⁠.

이날 오후 준결승 두 판이 열렸다⁠. 나는 감나무 밑에서 들었다⁠. 감나무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구팔봉은 침상에 누워 있었다⁠. 대신 내 옆에 복길이 앉아서 들었다⁠. 이 애의 귀도 나쁘지 않았다⁠. 누나의 칼이 상대의 칼을 쳐 내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복길이 무릎을 쳤다⁠. 장작 쪼개기⁠, 잔가지 치기⁠, 하고 중얼거렸다⁠. 하원비는 열네 합 만에 이겼다⁠. 귀면도는 또 한 합이었다⁠. 칼이 칼을 무는 찍 소리가 나고⁠, 다음 관중석이 조용해졌다⁠.

복길이 이 소리를 듣고 무릎을 치지 않았다⁠.

“⁠누나 이길 수 있소⁠?⁠”

“⁠모르지⁠.⁠” 내가 말했다⁠. “⁠그래서 판이 열리는 거야⁠.⁠”

*

결승 전날은 쉬는 날이었다⁠. 비무장이 비었고 거리가 대신 찼다⁠. 결승을 보러 온 사람들이 산 아래까지 줄을 이었다⁠. 쌀독 셋이 하원비에게 건 돈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갑례가 장독대에서 된장을 퍼내고 씻은 네 번째 독을 굴려 왔다⁠. 된장 냄새가 은자에 밸 거라고 했더니 이 여자는 은자는 원래 냄새가 난다고 했다⁠.

정오가 지나서 수레바퀴 소리가 들렸다⁠. 비탈 위에서 내려오는 소리였다⁠. 바퀴 하나가 돌 하나를 넘을 때마다 짐칸의 무게가 둔하게 내려앉았다⁠. 한 대가 아니라 세 대였다⁠. 은이 실린 수레는 소금 수레보다 무겁게 울린다⁠. 소금은 서걱거리고 은은 눌린다⁠.

수레 세 대가 쌀독 앞에 섰다⁠. 흑룡방 사내들이 짐칸의 덮개를 걷었다⁠. 은괴가 볏단처럼 쌓여 있었다⁠. 거리 사람들이 숨을 들이켰다⁠. 백 명이 한꺼번에 숨을 들이켜는 소리는 바람 소리와 비슷하다⁠.

탁문석이 수레 옆에 서 있었다⁠. 뒤에 처음 보는 사내가 하나 있었다⁠. 쉰쯤 되었을까⁠. 짙은 남색 비단옷에 허리띠가 옥이었다⁠. 손이 희고 통통했는데 손톱이 길게 다듬어져 있었다⁠. 걸을 때 비단이 스치는 소리가 사락사락 났다⁠. 몸에서 향 냄새가 났다⁠. 절 향이 아니라 관청 향이었다⁠. 개봉 황성 근처를 지나면 나는 냄새였다⁠.

이 사내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 탁문석의 등을 손끝으로 아주 가볍게 한 번 밀었다⁠. 그러자 탁문석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이 걸음에서 짚신 바닥이 땅을 디디는 소리가 났다⁠. 나는 이 사람의 발소리를 처음 들었다⁠.

*

탁문석은 쌀독 앞에 앉았다⁠. 탁자는 지난번 부러진 것 대신 갑례가 새로 들인 것이었다⁠. 이 탁자를 톡⁠, 톡 두 번 두드렸는데 박자가 조금 빨랐다⁠.

“⁠귀면도에게⁠. 삼만 냥이오⁠.⁠”

갑례가 국자를 떨어뜨렸다⁠. 쌀독 넷에 든 돈을 다 합쳐도 만 냥이 조금 넘었다⁠. 거리 사람들이 보름 동안 하원비에게 건 돈이 다 그랬다⁠.

“⁠왕 선생⁠, 판은 받을 수 있소⁠? 물레판이니 판은 안 잃지⁠. 판은 한 할만 떼면 되오⁠. 내일 해가 지면 왕 선생은 사천 냥을 쥐고 내 빚 천칠백을 갚고도 남소⁠. 축하하오⁠.⁠”

“⁠거리 사람들은요⁠?⁠”

“⁠하 소저가 지면 잃겠지⁠. 만 냥⁠.⁠” 탁문석이 웃었다⁠. “⁠하 소저가 이기면 삼만을 나눠 갖겠지⁠. 그럴 일은 없지만⁠.⁠”

“⁠동생은 빠져나왔습니다⁠.⁠”

“⁠알고 있소⁠. 그래서 삼만을 거는 거요⁠.⁠” 탁문석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차 냄새가 났다⁠. 오늘은 떫은 냄새가 더 짙었다⁠. “⁠동생이 빠져나왔으니 하 소저는 내일 제 칼로 싸우겠지⁠. 그리고 질 거요⁠. 귀면도는 처음부터 져 주는 상대가 필요 없는 칼이었소⁠. 나는 사람들이 하 소저에게 마음 놓고 걸도록 판을 깔았을 뿐이오⁠. 동생 일은 하 소저가 판을 깨지 않게 묶어 둔 끈이었고⁠. 끈이 풀렸다고 칼이 달라지지는 않소⁠.⁠”

“⁠심판은요⁠?⁠”

“⁠심판도 있지⁠.⁠”

이 사람은 심운학이 단상에 방석을 하나 더 놓은 걸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면 알면서 셈에 넣지 않은 것이거나⁠. 나는 말하지 않았다⁠. 판에서 상대가 모르는 패는 끝까지 엎어 둔다⁠.

비단옷 사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끝을 둥글게 마는 개봉 황성 말씨였다⁠.

“⁠이 판이 왕 선생 판이오⁠?⁠”

“⁠예⁠.⁠”

“⁠판이 크군요⁠. 개봉에서도 이런 판은 드물지요⁠.⁠” 비단옷 사내가 손톱 긴 손가락으로 쌀독 뚜껑을 쓸었다⁠. 된장 냄새가 밴 네 번째 독이었다⁠. 사내는 손가락 끝을 코에 대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판이 끝나면 한번 뵙지요⁠. 판을 크게 여는 분은 저희가 늘 귀하게 여깁니다⁠.⁠”

비단옷 사내는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직함도 말하지 않았다⁠. 탁문석이 사내에게 고개를 숙이는 각도가 대답이었다⁠. 내게 빚 문서를 들고 오던 사람이⁠, 저 사람 앞에서는 빚을 진 사람처럼 숙였다⁠. 본선 사흘째 아침 흑룡방 객잔 이층에서 탁문석이 한 말이 떠올랐다⁠. 돈이 내 것이 아니라고 했다⁠.

갑례가 은괴를 셌다⁠. 해 질 때까지 셌다⁠. 수레 세 대가 비고⁠, 쌀독 넷 옆에 은괴가 담장처럼 쌓였다⁠. 흑룡방 사내 넷이 이 담장 앞에 밤새 서 있기로 했다⁠. 갑례는 이 사내들에게 국수 한 그릇씩을 정가에 팔았다⁠.

해 질 녘에 이상한 일이 생겼다⁠. 은괴 담장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하나둘 쌀독 앞에 줄을 섰다⁠. 하원비에게 걸겠다는 사람들이었다⁠. 삼만 냥이 반대편에 쌓였으니 하원비가 이기면 건 돈의 네 배 가까이가 돌아온다⁠. 셈 빠른 장사꾼들이 먼저 섰고⁠, 다음엔 셈 모르는 사람들이 그냥 줄이 길어서 섰다⁠. 무당 도사들은 유능제강이라며 또 감격했다⁠. 개방 거지는 이 줄에 두 번 섰다⁠. 두 번째는 곰이 맡긴 동전이었다⁠. 곰은 발목 때문에 줄에 못 선다며 거지에게 만두 값을 얹어 주었다고 했다⁠.

*

이날 밤 방 문을 두 번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손가락 마디로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였는데⁠, 마디에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소리가 단단했다⁠.

문을 여니 하원비가 서 있었다⁠. 칼은 차지 않았다⁠. 맨발도 아니었다⁠. 머리를 풀어 내렸는데 송진 냄새가 났다⁠. 숲에서 칼을 닦다가 온 모양이었다⁠.

“⁠들어가도 되나⁠?⁠”

“⁠예⁠.⁠”

이 여자는 들어와서 문을 닫았다⁠. 등을 문에 기댔다⁠. 방에 등잔 하나가 타고 있었다⁠. 구팔봉은 옆방으로 옮겨 누워 있었다⁠. 노인의 코골이가 벽 너머에서 박자를 맞췄다⁠. 첫날 밤에는 이 방의 다른 쪽 벽 너머에서 이 여자의 칼이 칼집에 밀려 들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이번엔 이 여자가 이쪽에 있었다⁠.

“⁠빚을 갚으러 왔다⁠.⁠”

“⁠빚진 거 없습니다⁠.⁠”

“⁠동생⁠.⁠”

“⁠그건 곰 형씨가 받아 줬고⁠, 스승님이 맞아 줬고⁠, 사매가 열쇠를 줬습니다⁠. 저는 문틈에 대고 주사위 눈만 불렀어요⁠.⁠”

하원비가 숲에서처럼 숨을 한 번 내쉬듯 웃었다⁠. 이 여자가 문에서 등을 떼고 나에게 왔다⁠. 손을 들어 내 왼쪽 귀를 감은 행주를 만졌다⁠. 굳은살 박인 손가락이 행주 위를 지나 귓바퀴의 칼자국에 닿았다⁠. 이 여자가 놓고 간 약 냄새가 아직 거기 배어 있었다⁠.

“⁠아프냐⁠?⁠”

“⁠이제는 안 아픕니다⁠.⁠”

손가락이 귀에서 맨머리로 올라갔다⁠. 깎은 지 나흘 된 머리에 까끌까끌한 것이 돋아 있었다⁠. 이 여자가 손바닥으로 이걸 거꾸로 한 번 쓸었다⁠.

“⁠그럼 빚 말고⁠.⁠” 이 여자가 말했다⁠.

등잔 심지가 한 번 튀었다⁠. 나는 노름꾼이라 셈부터 하는 사람인데⁠, 이 순간에는 아무것도 셈하지 않았다⁠. 이 여자의 숨이 내 목에 닿았다⁠. 길게 들이쉬고 끝까지 내쉬는 숨이었다⁠. 칼을 쥐던 손이 내 옷섶을 풀었고⁠, 나는 젓가락 감은 손을 어디 둘지 몰라 허공에 들고 있다가 이 여자가 이 손을 잡아 자기 허리에 얹어 주었다⁠. 송진 냄새와 약 냄새가 섞였다⁠. 벽 너머 노인의 코골이가 어느 대목에서 멎었다가⁠, 한참 뒤에 다시 시작되었다⁠. 등잔 기름이 다 타서 불이 꺼진 뒤에도 나는 이 여자의 숨소리를 들었다⁠. 일정하지 않았다⁠. 이게 좋았다⁠.

새벽이 오기 전에 이 여자가 일어나 앉았다⁠. 끈을 두 번 감고 당겨 머리를 묶는 소리가 났다⁠.

“⁠내일⁠.⁠”

“⁠예⁠.⁠”

“⁠내 칼로 이긴다⁠.⁠” 이 여자가 말했다⁠. “⁠장작 쪼개기⁠, 끝에서 한 번 꺾어서⁠.⁠”

“⁠그럼 저는 아무래도 좋은 사람이 아니게 됩니다⁠.⁠”

“⁠알아⁠.⁠” 이 여자가 문을 열었다⁠. 복도의 찬 바람이 들어왔다⁠. “⁠그래서 왔다⁠.⁠”

문이 닫혔다⁠. 나는 누운 채로 이 여자의 발소리를 들었다⁠. 계단 열한 개를 내려가는 동안 이 소리는 일정했다⁠.

1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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