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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꼬마 룰라는 없다
G-DRAGON의 삶 · 네오
2010년 1월, 지드래곤이 한 인터뷰에서 데뷔 전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다섯 해 동안 SM 연습생이었다는 고백도 이때 나왔다. 빅뱅의 리더가 빅뱅이 되기 전, 다른 회사의 연습실을 드나들던 아이였다는 이야기였다.
인터뷰를 할 무렵 지드래곤은 스물한 살이었다. 다섯 달 전인 2009년 8월 18일, 스물한 번째 생일에 첫 솔로 앨범을 냈고, 한 달 반쯤 전에는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첫 솔로 콘서트를 마쳤다. 빅뱅으로 데뷔한 지 세 해 반이 지나 있었다. 기자가 물은 것은 데뷔 전이었다. 지드래곤은 빅뱅보다 훨씬 앞의 이야기부터 꺼냈다.
시작은 MBC 어린이 프로그램 「뽀뽀뽀」였다. 1981년부터 스무 해 넘게 이어진 아침 방송으로, 진행자 누나 옆에서 아이들이 노래하고 율동했다. 지드래곤은 춤추는 게 좋아서 진행자 뽀미 누나 옆자리를 자주 차지했다고 기억했다. 화면 한가운데 자리는 그때부터 이 아이 몫이었다. 여섯 살 무렵이었다.
권지용은 1988년 8월 18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이면 1994년 무렵이다. 같은 무렵 임권택 감독의 영화 「태백산맥」에는 아역으로 나왔다. 열다섯 해 뒤 첫 솔로 앨범에 실린 곡 「A Boy」에서 지드래곤은 자기가 여섯 살에 데뷔했고 열두 살에 YG 연습생이 됐다고 직접 노래한다. 스물한 살 청년이 자기 지난날을 노래 한 곡에 담아 앨범에 넣었다.
「뽀뽀뽀」 다음은 룰라였다.
룰라는 1990년대 중반 남녀 혼성으로 인기를 끈 댄스 그룹이다. 지드래곤의 기억으로는 룰라가 한창 인기를 끌 때 룰라의 소속사가 「꼬마 룰라」라는 어린이 팀을 따로 꾸렸다. 아이들은 룰라와 똑같은 옷을 입고 룰라의 콘서트 투어를 함께 돌았고, 캐럴 음반도 냈다. 룰라는 1994년 12월에 캐럴 음반을 한 장 냈는데, 꼬마 룰라가 함께한 음반이 이것인지는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어른 가수가 노래하는 무대 옆에서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춤을 추는 아이. 선배 가수 무대에 올라 춤추는 일을 권지용은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먼저 했다.
룰라 멤버의 기억도 남아 있다. 2014년 1월 2일 KBS 2TV 아침 프로그램 「여유만만」에서 영턱스클럽의 한현남이 지드래곤이 꼬마 룰라 출신이냐고 묻자, 룰라의 채리나가 꼬마 지드래곤을 떠올렸다.
“지드래곤이 7살 때 꼬마 룰라로 활동했는데 어렸는데도 도도했고 슈퍼스타 끼가 보였다. 제스처부터 남달랐다.”
본인은 여섯 살부터라고 하고 채리나는 일곱 살이라고 했다. 몇 살에 시작했는지보다 채리나가 덧붙인 말이 방송에서 더 큰 웃음을 받았다.
“어느 날 지드래곤이 콘서트에 게스트로 룰라를 초청했다. 그때 친해질 걸…”
룰라와 같은 옷을 입고 룰라 옆에서 춤추던 아이가 자라서, 룰라를 자기 콘서트의 손님으로 부르는 날이 왔다. 채리나는 꼬마 시절에 친해 두지 못한 것을 웃으며 아쉬워했다. 손님으로 초대받은 날에는 이미 늦었다는 말이었다.
꼬마 룰라는 오래가지 않았다. 권지용이 여덟 살이던 1996년 무렵이다. 지드래곤의 기억으로는 룰라의 인기가 식어 가면서 팀이 갑자기 사라졌다. 스물한 살 지드래곤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갑자기 내일부터 ‘꼬마룰라’는 없다고 하니까 8살 어린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요.”
어른들은 팀을 접기로 정했고, 여덟 살 아이에게는 내일부터 갈 무대가 없었다. 아이가 다르게 정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팀을 만든 것도, 똑같은 옷을 고른 것도, 그만두게 한 것도 회사였다. 10년 뒤 다른 회사에서 데뷔한 청년은 자기가 부를 노래를 직접 쓰기 시작한다.
꼬마 룰라가 끝난 뒤 권지용은 평범한 초등학생으로 돌아갔다. 공부를 하고 학원에 다녔다. 다음 무대는 방송국이 아니라 스키장에서 왔다.
가족과 스키장에 놀러 갔다가 마침 열린 춤 대회에 나갔다. 참가자 가운데에는 나이 많은 형들도 있었는데, 초등학생 권지용이 1등을 했다. 대회 사회자는 이수만이었다. 1990년대 중반 아이돌 그룹 H.O.T.를 내놓은 SM엔터테인먼트를 세운 사람이다. 지드래곤은 이수만이 자기 끼를 알아보고 연습생으로 받아 주었다고 회상했다.
열네 해 뒤인 2024년 10월 30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나온 지드래곤은 같은 날을 조금 더 자세히 말했다.
“방송국에서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아역을 맡고 있던 시절이었다. 스키장 리조트에 갔는데 춤 대회가 있어 엄마가 내보냈다. 그 댄스 대회 사회자가 이수만 선생님이었다.”
아이를 대회에 내보낸 사람은 엄마였다. 스키 타러 간 가족은 연습생 한 명을 데리고 서울로 돌아왔다.
SM 연습생 생활은 다섯 해쯤 이어졌다. 지드래곤의 회상에 따르면 H.O.T.가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한 때였고, 나중에 데뷔하는 S.E.S.와 보아와 신화도 같은 회사 연습생이었다. 매일 연습하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 석 달에 한 번 연습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연습생이라기보다 가끔 들르는 손님에 가까운 일정이었다.
회사가 이 아이를 어디에 써야 할지 몰랐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지드래곤은 자신이 춤출 때만 눈에 띄었다고 했다. 춤은 좀 추는데 노래는 썩 잘하지 않았고, 그래서 기획사가 방향을 잡기 어려운 아이였다.
인터뷰 몇 달 전 생일에 낸 솔로 앨범은 연말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다. 노래를 썩 잘하지 않던 아이가 자라 직접 쓰고 부른 앨범이었다. 상을 받은 직후의 인터뷰에서 지드래곤은 노래 못하던 연습생 시절을 먼저 꺼냈다.
방향을 정한 사람은 아이 자신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권지용은 가장 친한 친구의 집에서 흑인음악을 처음 들었다. 지드래곤은 친구 집에서 들은 음악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특히 미국 뉴욕의 힙합 그룹 우탱 클랜의 음악에 끌렸다. 아홉 명이 한 그룹으로 돌아가며 랩을 하는 팀이다. 동요와 율동으로 방송을 시작한 아이가 아홉 명이 번갈아 쏟아 내는 거친 랩에 빠졌다.
다음은 행동이었다. 권지용은 프리스타일 랩을 가르치는 학원을 찾아갔다. 미리 써 둔 가사 없이 즉석에서 박자에 맞춰 말을 지어 내는 랩이 프리스타일이다. 학원은 한국의 비보이 팀 피플크루의 연습실이기도 했다고 지드래곤은 기억했다. 랩을 배우러 간 곳에서도 춤꾼들이 바닥을 돌고 있었다. 미리 써 둔 가사 없이 박자 위에서 말을 고르던 아이는 몇 해 뒤 자기가 부를 노래의 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쓰게 된다.
SM에서 이 아이가 내세울 것은 춤이었고, 아이는 혼자 랩을 찾아갔다. 두 길은 오래 함께 가지 않았다. 「유 퀴즈」에서 지드래곤은 다섯 해 연습생 생활 끝에 결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SM을 나왔다고 말했다. 다섯 해 동안 같은 회사를 드나든 연습생 가운데 S.E.S.와 보아와 신화는 차례로 데뷔했고, 권지용은 데뷔하지 않은 채 회사를 나왔다. 춤으로 들어간 회사에서 나와 다음에는 랩을 들고 들어갈 회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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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힙합 가수들이 모여 만든 합동 음반 「2001 대한민국 HipHop Flex」가 나왔다.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 가장 어린 이름이 권지용이었다. 열세 살이었다. 어른 래퍼들 이름 사이에 열세 살 이름 하나가 끼었다. 춤으로 연습생이 된 아이가 이번에는 랩으로 음반에 이름을 올렸다.
음반을 만든 프로듀서 이희성은 열두 해 뒤 한 인터뷰에서 당시의 권지용을 이렇게 기억했다.
“이미 초등학생 때 본인이 랩 메이킹을 해 놓은 노트가 따로 있을 정도로 개념이 성립돼 있었다.”
랩 메이킹은 박자에 맞춰 가사를 짜는 일이다. 초등학생이 가사를 짜 둔 노트를 따로 들고 다녔다.
같은 무렵 권지용은 YG엔터테인먼트와 계약했다. YG는 1990년대 초 가요계를 뒤흔든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였던 양현석이 세운 회사로, 힙합 듀오 지누션과 그룹 원타임을 내놓은 곳이다. 지누션의 션이 권지용을 추천해 양현석과 계약이 이뤄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본인의 기억은 조금 다르다. 2024년 「유 퀴즈」에서 지드래곤은 랩을 배워 래퍼들 앨범에 참여했고, YG가 그걸 보고 자신을 스카우트했다고 말했다. 누가 다리를 놓았든, YG가 본 것은 열세 살의 랩이었다. 노래하고 춤추는 아이돌을 키우던 회사에서, 힙합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회사로 옮긴 것이다.
열두 해 뒤 양현석은 이 계약을 이렇게 기억했다. 2013년 3월 23일 한 인터뷰에서, 지드래곤과 오래 일한 까닭을 묻는 물음에 답한 말이었다.
“그 이유는 지드래곤이 빅뱅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어린 나이인 13살 때 YG로 영입되서 10년 이상 저와 유대관계를 맺어온 때문이겠죠.”
나이는 말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지드래곤의 노래 「A Boy」는 열두 살이라고 하고, 회사 대표는 열세 살이라고 했다. 생일이 8월인 아이의 나이를 해가 바뀔 때 세느냐 생일에 세느냐의 차이일 수 있고, 처음 연습실에 나간 날과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날의 차이일 수도 있다. 아예 열한 살에 연습을 시작했다는 기록까지 있다. 기록 셋이 나이 셋을 말한다. 어느 말이 맞는지는 기록이 말해 주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하나다. 뒤에 빅뱅이 되는 다섯 사람 가운데 YG에 가장 먼저, 가장 어려서 들어온 사람이 권지용이었다.
같은 인터뷰에서 양현석은 지드래곤과 일하는 자기가 영광이라고도 했다. 열세 살 연습생을 받은 회사 대표가 열두 해 뒤 자기 회사 가수를 두고 한 말이었다.
YG 연습실에는 동갑내기가 한 명 있었다. 1988년 5월생 동영배, 뒤에 태양이라는 이름으로 노래하게 되는 소년이다. 동영배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지누션의 「A-yo」 뮤직비디오에 꼬마 션 역으로 나왔고, 촬영이 인연이 되어 양현석에게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오디션을 보고 연습생이 됐다. 지누션의 션이 다리를 놓은 아이와 지누션 뮤직비디오에 나온 아이가 열세 살에 같은 연습실에서 만났다.
연습생의 하루는 화려하지 않았다. 두 소년은 스튜디오를 청소하고 선배 가수들에게 물병을 날라다 주었다. 뒤에 한국 힙합 아이돌의 시작으로 불리게 되는 그룹의 두 기둥이, 열세 살에는 선배들 목이 마르지 않게 물병을 챙기는 일부터 했다.
회사는 처음에 두 사람을 묶어 힙합 듀오로 내보낼 생각이었다. 이름까지 GDYB로 정해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지드래곤과 영배의 머리글자다. 계획은 접혔고, 두 사람은 몇 해 뒤 다섯 명짜리 그룹 안에서 데뷔한다. 태양은 2023년 4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나와 지드래곤을 힘든 시기를 버티게 해 준 친구로 꼽았고, 둘이 듀오를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고 돌아보았다.
인터뷰를 한 2010년 겨울로 돌아가면, 지드래곤은 이미 스스로 곡을 쓰는 가수로 알려져 있었다. 빅뱅의 첫 1위곡 「거짓말」을 쓴 사람, 첫 솔로 앨범에서 「Heartbreaker」를 쓰고 부른 사람. 기자가 데뷔 전을 묻자 지드래곤은 곡 쓰는 가수라는 이름표를 내려놓고 뽀미 누나 옆자리, 똑같은 옷을 입은 꼬마 룰라, 스키장 춤 대회, 노래 못하던 연습생, 친구 집의 우탱 클랜을 차례로 꺼냈다.
인터뷰에서 열다섯 해가 지난 2025년, 지드래곤은 세 번째 정규 앨범 이름을 딴 월드투어를 돌았다. 공연은 세 장으로 나뉘었고, 마지막 장의 이름은 2009년 노래 제목과 같은 「A Boy」였다.
출처 아시아경제 · 2010년 1월 27일 · 박소연 「[新스타고백] 지드래곤② “5년간 SM연습생이었다”(인터뷰)」 엑스포츠뉴스 · 2014년 1월 2일 · KBS 2TV 「여유만만」 채리나 발언 기사 텐아시아 · 2013년 4월 19일 · 권석정 — 프로듀서 이희성의 회상 텐아시아 · 2024년 11월 2일 · 이민경 —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지드래곤 발언 OSEN · 2013년 3월 23일 · 손남원 「[직격 인터뷰] 양현석 “지드래곤과 일하는 제가 영광이죠”」 위키백과(영문) · 「G-Dragon」 「Heartbreaker (G-Dragon album)」 — HipHop Flex 참여, 션의 추천, 수록곡 「A Boy」 코리아중앙데일리 · 2025년 12월 16일 · 신하니 — Übermensch 투어의 세 장 구성 다음 · 2023년 4월 27일 · 태양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출연 기사 위키백과(한국어) · 「지드래곤」 — 영화 「태백산맥」 아역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