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366자)
여기까지 오는 데 오래 걸렸습니다
G-DRAGON의 삶 · 네오
2026년 4월 12일 일요일 밤 열 시 사십 분, 미국 캘리포니아 인디오의 엠파이어 폴로 클럽. 해마다 4월이면 사막 도시의 폴로 경기장을 두 주말 동안 무대로 바꾸는 미국의 대형 음악 축제, 코첼라 밸리 음악 예술 축제의 1주차 마지막 밤이었다. 아웃도어 시어터 무대에는 이날 맨 마지막 순서 하나가 남아 있었다. 빅뱅이었다.
한국은 이튿날 월요일 오후 두 시 사십 분 무렵이었다. 축제는 유튜브로 공연을 생중계했다. 서울에서 같은 화면을 켜면 사막의 한밤중이 월요일 점심 뒤의 나른한 오후로 바뀌었고, 휴대전화 속 무대는 손바닥만 했다. 한국 팬들이 이 무대를 4월 13일로 기억하는 까닭이다. 달력의 날짜가 하루 어긋난 채, 사막의 밤과 서울의 오후가 같은 한 시간을 나눠 가졌다.
무대가 시작되자 대형 LED 화면에 로켓 한 대가 떠올라 우주로 솟았다. 화면 가득 운석이 떠다녔고, 운석 사이에서 댄서들이 빅뱅 깃발을 흔들었다. 댄서들의 재킷에는 2016년 빅뱅 정규 앨범 「MADE」의 상징이 박혀 있었다. 2015년 네 달 동안 다달이 싱글을 내며 쌓아 올린 곡들을 이듬해 겨울 한 장으로 묶은 앨범이다. 이어 무대에 붉은 조명이 쏟아졌고, 붉은빛 한가운데에 세 사람이 있었다.
지드래곤, 태양, 대성.
태양의 본명은 동영배, 대성의 본명은 강대성, 지드래곤의 본명은 권지용이다. 태양과 지드래곤은 1988년 봄과 여름에 태어난 동갑이고, 대성은 한 해 아래다. 2006년 8월 19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다섯 명이 처음 무대에 오른 그룹은 넉 달 뒤면 데뷔 스무 해를 맞았다. 다섯 가운데 둘은 그룹을 떠났다. 승리는 2019년 3월 은퇴와 탈퇴를 발표했고, 탑은 2023년 탈퇴를 스스로 밝혔다.
스무 해 사이 셋의 명함도 달라져 있었다. 태양은 2022년 12월부터 더블랙레이블, 대성은 2023년 4월부터 알앤디컴퍼니, 지드래곤은 2023년 12월 20일부터 갤럭시코퍼레이션 소속이었다. 세 사람이 세 회사에 흩어져 있었고, 빅뱅이라는 이름으로 하는 활동은 데뷔 때 회사인 YG엔터테인먼트가 맡았다.
빅뱅이라는 이름의 공식 활동은 2022년 봄 싱글 「봄여름가을겨울」 이후 네 해 만이었다. 2024년 11월 시상식에서 셋이 한 무대에 오른 적은 있다. 다만 그날은 지드래곤의 무대에 두 사람이 손님으로 올라온 자리였고, 이번에는 빅뱅이라는 이름으로 초대받은 무대였다.
첫 곡은 「뱅뱅뱅」이었다. 2015년 6월에 나와 연말 가온 연간 차트 1위까지 올라간 곡이 리믹스 인트로를 달고 시작했고, 곧바로 「FANTASTIC BABY」가 이어졌다. 2012년 뮤직비디오 끝에서 다섯 멤버가 보석 왕관을 쓰고 왕좌에 앉던 곡이다. 객석 곳곳에서 왕관 모양 응원봉이 빛났다. 빅뱅 공식 팬클럽의 이름은 VIP다. 팬들이 스무 해 가까이 들고 다닌 왕관이 사막의 밤에 흔들렸다.
공연 초반 지드래곤이 마이크를 들었다. 영어로 한 첫마디를 우리말로 옮기면 이렇다.
“코첼라, 다들 잘 지냈어요? 여기까지 오는 데 오래 걸렸습니다. 빅뱅이 드디어 돌아왔습니다.”
‘오래’에는 날짜가 붙어 있다. 빅뱅이 코첼라 출연자 명단에 처음 이름을 올린 날은 2020년 1월 3일이었다. 2020년 명단 속 빅뱅은 넷이었다. 지드래곤, 태양, 대성, 그리고 탑. 지드래곤이 전역하고 두 달 남짓, 태양과 대성이 전역하고 두 달이 채 안 된 때였다. 축제가 열릴 예정이던 봄에 코로나가 번졌고, 2020년 코첼라는 통째로 취소됐다. 2025년 9월 16일, 빅뱅이 이듬해 4월 코첼라에 세 사람으로 오른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넷이 초대받은 무대에 셋이 오르기까지 여섯 해가 지났다.
대성도 인사했다.
“제 이름은 대성입니다. 정말 오래 기다렸어요. 오늘 밤을 절대 잊지 못할 밤으로 만들어 봐요.”
태양의 인사는 셋 가운데 가장 짧았다.
“안녕하세요, 코첼라. 준비됐어요?”
무대 뒤에는 라이브 밴드가 있었다. 밴드는 옛 노래들의 옷을 하나씩 갈아입혔다. 「FANTASTIC BABY」와 「GOOD BOY」는 EDM 팝으로, 「하루하루」와 「거짓말」은 R&B로, 「BAD BOY」는 레게로, 「WE LIKE 2 PARTY」는 펑크 사운드로 바꿔 불렀다. 음반에서 전자음이 채우던 자리를 드럼과 베이스와 기타가 손으로 다시 채웠다.
「맨정신」과 「눈물뿐인 바보」와 「LOSER」가 지나가고 「하루하루」가 나왔다. 2008년 여름 멜론 차트 1위를 7주 연속 지킨 곡이다. 이어진 「거짓말」은 2007년 여름 빅뱅에게 처음으로 1위를 안긴 곡이었고, 아홉 해 뒤 동아일보 조사에서 지난 스무 해 남자 아이돌 노래 가운데 1위로 꼽힌 곡이었다. 스무 살이 되기 전의 지드래곤이 쓴 곡이 서른일곱 살 지드래곤의 목소리로, 밴드의 느린 R&B 반주 위에서 다시 불렸다. 「Tonight」은 밴드가 연주로만 짧게 지나갔다.
중반에는 셋이 차례로 혼자 남았다.
먼저 태양이 「링가링가」를 불렀다. 태양은 웃통을 벗고 이 곡을 불렀다. 셋 가운데 옷을 가장 적게 입고 부른 사람도, 뒤에 나온 라이브 평가들에서 가장 안정적이었다는 말을 들은 사람도 태양이었다.
이어 지드래곤 혼자 남은 구간이 왔다. 이날 지드래곤이 혼자 부른 곡은 「POWER」 하나였다. 2024년 가을, 일곱 해 만에 낸 솔로 신곡이다. 데뷔 때부터 몸담은 회사를 떠나 처음 낸 곡이었고, 가사는 지드래곤이 혼자 썼다. 한 시간짜리 빅뱅 무대에서 솔로곡을 한 곡만 고른 자리에 이 노래가 들어갔다. 「POWER」가 끝나자 태양이 돌아왔고, 두 사람은 2014년에 GD X TAEYANG이라는 이름으로 낸 「GOOD BOY」를 불렀다. 발표 직후 미국 빌보드의 월드 디지털 송 차트 1위로 들어간 곡이다. 열세 살 연습생 시절에 만난 동갑내기 둘이 서른일곱 살에 한 무대에서 같은 안무를 맞추고 있었다.
이날 지드래곤이 입은 옷은 샤넬 2026 가을·겨울 컬렉션의 퍼 재킷과 벨기에 디자이너 브랜드 드리스 반 노튼의 2026 봄·여름 재킷이었고, 목에는 미국 보석 브랜드 제이콥앤코의 데이지 무늬 목걸이를 걸었다. 귀에는 다이아몬드 인이어를 꼈다. 가수가 자기 소리를 들으려고 귀에 끼우는 작은 모니터 이어폰이다. 왼쪽에는 파란 데이지가, 오른쪽에는 빅뱅 응원봉에서 따온 분홍 별이 박혀 있었다. 데이지는 지드래곤이 2016년에 시작한 패션 브랜드 피스마이너스원의 로고에 들어가는 꽃이다.
대성의 차례에는 무대 화면이 바뀌었다.
대성은 트로트를 불렀다. 2025년 12월에 낸 신곡 「한도초과」, 그리고 2008년에 처음 부른 「날 봐, 귀순」. 「날 봐, 귀순」은 빅뱅이 한창 힙합과 댄스로 1위를 다투던 2008년에 대성이 혼자 낸 트로트였다. 지드래곤이 예능 프로그램 뒷이야기로 장난삼아 만들었다가, 대성의 끼와 목소리에 꼭 맞는다고 보고 건넨 곡이다. 힙합 그룹의 이미지를 해칠까 걱정해 발매를 반대한 곳은 소속사 YG였고, 지드래곤과 대성이 회사를 설득해 곡을 세상에 내놓았다. 열여덟 해 뒤 같은 곡이 미국 축제 무대에 올랐다. LED 화면에는 영어 번역 없이 한글 가사만 떴다. 미국 사막 한가운데, 세계 각지에서 온 관객 머리 위로 「날 봐, 귀순」 다섯 글자가 큼직하게 떠 있었다. 번역이 없었으니 가사를 알아들은 사람은 한글을 읽는 관객뿐이었다. 박자는 번역이 필요 없었다.
관객 수는 공식 집계가 나오지 않았다. 빅뱅 무대 앞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객석 한쪽에서는 블랙핑크의 리사와 로제가 춤을 췄고, 두 사람이 춤추는 영상이 금세 퍼졌다. 세 해 전 같은 축제의 가장 큰 무대에서 맨 마지막 순서를 맡았던 후배들이, 이날은 선배들 무대 앞 객석에 있었다.
몇 곡을 불렀는지는 세는 사람마다 달랐다. 앙코르까지 열일곱 곡으로 세기도 했고, 열여섯 곡에 앙코르 하나로 세기도 했다. 대성의 트로트 두 곡을 한 곡으로 세느냐 두 곡으로 세느냐, 밴드가 연주로만 지나간 곡을 넣느냐 빼느냐의 차이였다. 빅뱅이 메인 무대에 올랐다는 말도 돌았지만, 빅뱅이 오른 곳은 축제의 가장 큰 무대인 코첼라 스테이지가 아니라 아웃도어 시어터였다. 커다란 천막 안에 차린 무대들과 달리 지붕 없이 하늘이 그대로 보이는 야외 무대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팬이 객석에서 찍은 한 시간짜리 전체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고, 곡 순서를 맞춰 보려는 사람들이 이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돌려 보았다.
후반부에 「HOME SWEET HOME」이 나왔다. 2024년 11월 지드래곤이 태양과 대성을 피처링으로 불러 낸 곡이고, 세 사람이 「봄여름가을겨울」 이후 처음 함께 녹음한 곡이다. 「BAD BOY」가 레게 박자로 지나가고 「WE LIKE 2 PARTY」가 펑크 기타로 끝났다. 무대가 시작되고 한 시간 가까이 지나 있었다. 세 사람이 무대 뒤로 들어갔다. 일주일 뒤인 4월 19일 밤, 같은 아웃도어 시어터에서 같은 세 사람의 두 번째 공연이 잡혀 있었다.
객석은 앙코르를 불렀다.
다시 불이 들어왔을 때 밴드가 연주를 시작한 곡은 「봄여름가을겨울」이었다. 2022년 4월 5일에 나온 싱글. 멤버들의 군 복무와 한 멤버의 탈퇴와 코로나로 미뤄진 컴백 끝에 네 해 만에 낸 곡이었고, 빅뱅이 넷이서 녹음한 처음이자 마지막 곡이었다. 크레딧의 작사 칸에도 작곡 칸에도 G-DRAGON과 T.O.P의 이름이 나란히 있다. 2022년 봄 넷이 녹음한 노래를 2026년 봄 셋이 부르고 있었다.
밤 열한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곡은 처음 몇 소절을 지나 랩 대목에 이르렀다. 무대 위에는 지드래곤과 태양과 대성이 있었다.
스피커에서 나온 목소리는 셋 가운데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낮게 깔린 저음의 랩. 탑, 최승현의 녹음 목소리였다.
녹음을 지우고 다른 멤버가 대신 부를 수도 있었다. 랩 대목을 빼고 밴드 연주로 채울 수도 있었다. 이날 스피커는 녹음된 목소리를 그대로 틀었다. 아흐레 전인 4월 3일, 탑은 자기 이름으로 첫 솔로 정규 앨범을 냈다. 열세 해 만에 낸 자기 음악이었다.
무대 위의 세 사람과 스피커 속의 한 사람. 2006년 여름 다섯 명으로 시작한 그룹이 스무 해 뒤 사막의 밤에 들려준 소리는 이렇게 짜여 있었다.
출처 빌보드코리아 · 2026년 4월 14일 · 신영 「빅뱅의 코첼라 무대가 특별한 이유 5」 SBS Star · 2026년 4월 · 「BIGBANG Make Triumphant Coachella Debut, Even Drop Trot」 — 무대 위 말 원문 「Coachella, what‘s up! It took a long time to get here. BIGBANG is finally back」 코리아중앙데일리 · 2026년 4월 14일 · 「K-pop veteran Big Bang returns as a trio to mark 20th anniversary」 파이낸셜뉴스 · 2026년 4월 15일 · 김수연 「코첼라 찢은 지드래곤, 무대 의상도 명품」 LOOXK · 2026년 4월 15일 · 강민재 — 객석의 왕관 응원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