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321자)

여섯 명 가운데 다섯

G-DRAGON의 삶 · 네오

2006년 7월 15일 토요일⁠, 미국 음악 채널의 한국판 케이블 방송 MTV 코리아에서 새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제목은 「⁠리얼다큐 빅뱅⁠」⁠. YG엔터테인먼트가 데뷔시킬 남자 그룹의 연습생들을 카메라가 따라다니며 찍은 기록이었다⁠. 방송은 한 달 남짓 이어졌다⁠. 연습생은 여섯 명⁠. 데뷔하는 그룹은 다섯 명이었다⁠.

프로그램은 MTV보다 먼저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곰TV에 올라갔다⁠. 공개 두 주 만에 조회 수가 100만을 넘었고⁠, 9월 2일에는 MTV가 하루 동안 몰아서 다시 틀었다⁠. 2006년은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보는 시절이 아니었다⁠. 100만 번의 재생은 대부분 집과 PC방의 컴퓨터 화면에서 나왔다⁠.

참가자 가운데 일부를 떨어뜨리며 끝까지 남는 사람을 가리는 방식을 서바이벌이라고 부른다⁠. 「⁠리얼다큐 빅뱅⁠」은 뒤에 아이돌 연습생 서바이벌의 시작으로 꼽힌다⁠. 일곱 해 뒤인 2013년⁠, YG는 연습생 두 팀을 맞붙여 데뷔할 팀을 가리는 「⁠WIN⁠」을 Mnet으로 내보냈다⁠. 지금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데뷔로 가는 흔한 문이 됐지만⁠, 2006년 여름에 연습생 여섯 가운데 누가 떨어지는지를 시청자가 화면으로 지켜보는 일은 낯설었다⁠. 연습생들은 데뷔가 정해진 신인이 아니라 데뷔를 두고 겨루는 사람들로 카메라 앞에 섰고⁠, 시청자는 데뷔까지의 과정을 처음부터 보았다⁠.

여섯 명이 연습실 한 곳에 모이기까지 다섯 해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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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에 YG에 들어온 권지용의 연습생 시절은 짧지 않았다⁠. 동갑내기 동영배와 연습실을 쓸고 선배들 물병을 나르던 소년은 몇 해 사이 선배 가수들의 앨범에 랩으로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권지용은 연습생 시절 세븐과 휘성⁠, 렉시와 페리 같은 같은 회사 선배들의 앨범에 참여했다⁠. 데뷔하지 않은 연습생이 남의 앨범 크레딧에 먼저 이름을 올렸다⁠. 물병을 나르던 손으로 가사를 썼다⁠.

회사는 두 소년을 묶은 힙합 듀오 계획을 접고 더 큰 그룹을 꾸리기로 했다⁠. 그룹에는 랩을 맡을 사람이 하나 더 필요했다⁠. 권지용이 떠올린 사람은 중학교 시절 동네 친구였다⁠.

최승현은 1987년 11월생으로 권지용보다 한 학년 위다⁠. 두 사람은 중학교 시절 같은 동네에서 함께 춤추고 랩을 했고⁠, 권지용이 이사하면서 멀어졌다⁠. 떨어져 지내는 동안 최승현은 템포라는 이름으로 언더그라운드 무대에서 랩을 했다⁠.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고 작은 공연장과 클럽에서 활동하는 래퍼들의 무대다⁠. 같은 동네에서 랩을 하던 두 중학생 가운데 하나는 기획사 연습실로⁠, 하나는 클럽 무대로 갔다⁠.

YG가 그룹에 넣을 사람을 찾자 권지용은 옛 친구에게 연락했다⁠. 두 사람은 함께 데모를 녹음해 양현석에게 보냈다⁠. 데모는 녹음실에서 간단히 떠 보는 시험용 녹음이다⁠. 첫 오디션에서 최승현은 떨어졌다⁠. 랩은 통과했고⁠, 몸무게가 문제였다⁠.

최승현은 마흔 날 동안 20킬로그램을 뺐다⁠. 하루에 500그램씩 빠진 꼴이다⁠. 여섯 달 뒤 다시 오디션을 보았고⁠, 이번에는 붙었다⁠. 몇 해 뒤 탑이라는 이름으로 「⁠FANTASTIC BABY⁠」와 「⁠뱅뱅뱅⁠」의 랩 가사를 쓰게 될 사람이 YG에 들어간 길이 이랬다⁠. 친구가 불러 주었고⁠, 본인이 몸을 깎아 들어갔다⁠.

강대성은 1989년 4월 서울 이태원에서 태어났다⁠. 강대성은 가수가 되는 것을 반대하는 부모의 허락을 받으려고 일주일 동안 집을 나갔다⁠. 일주일 뒤 집에 돌아온 아들은 허락을 받아 냈고⁠, 오디션에 붙어 YG 연습생이 됐다⁠. 집을 떠나려고 나간 가출이 아니라 집에서 허락을 받아 내려고 나간 가출이었다⁠. 목적을 이룬 가출로는 이만한 예가 드물다⁠.

막내는 이승현이었다⁠. 뒤에 승리라는 이름을 쓰게 되는 연습생이다⁠. 이승현은 YG에 오기 전 케이블 음악 채널 Mnet이 그룹 신화의 뒤를 이을 사람을 찾던 리얼리티 프로그램 「⁠배틀 신화⁠」에 나와 처음 얼굴을 알렸다⁠. 여섯 번째 연습생은 장현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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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다큐 빅뱅⁠」의 카메라는 여섯 명의 연습과 평가를 따라갔다⁠. 연습실에서 흘린 땀과 회사 대표 앞에서 치르는 평가가 차례로 화면에 나갔다⁠. 양현석은 여섯 해 남짓한 시간 동안 멤버 선발부터 훈련⁠, 데뷔까지 직접 이끌었다⁠. 열세 살 권지용을 받은 2001년 무렵부터 2006년 데뷔까지다⁠.

결과는 한 문장으로 남았다⁠. 연습생 여섯 명 가운데 장현승을 뺀 다섯 명이 합격해 빅뱅이 됐다⁠.

여섯 해를 같은 회사에서 보낸 연습생 하나가 카메라 앞에서 떨어졌다⁠. 다섯 해를 기다린 연습생 다섯은 남았다⁠. 붙은 사람과 떨어진 사람이 한 화면에 함께 잡혔고⁠, 시청자는 둘을 모두 보았다⁠.

장현승은 프로그램이 끝난 뒤 큐브엔터테인먼트로 옮겼고⁠, 2009년 그룹 비스트의 멤버로 데뷔했다⁠. 빅뱅보다 세 해 늦은 데뷔였다⁠. 2016년 장현승이 비스트를 떠날 때에도 빅뱅 최종 선발에서 떨어진 일이 맨 먼저 다시 불려 나왔다⁠. 10년이 지나도 따라다니는 이력이었다⁠.

남은 다섯은 무대 이름을 받았다⁠. 권지용은 지드래곤⁠, 동영배는 태양⁠, 최승현은 탑⁠, 강대성은 대성⁠, 이승현은 승리⁠. 지드래곤은 본명 지용의 ‘⁠지⁠’를 영어 알파벳 G로⁠, ‘⁠용⁠’을 영어 낱말 드래곤으로 바꾼 이름이다⁠. 다섯 가운데 둘은 열세 살 무렵부터 같은 회사에 있었고⁠, 하나는 두 소년 가운데 한 사람이 데려왔고⁠, 하나는 가출로 허락을 받아 냈고⁠, 하나는 카메라 앞에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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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18일 금요일⁠, 지드래곤은 열여덟 번째 생일을 맞았다⁠. 데뷔 무대 하루 전이었다⁠. 생일 케이크를 자를 틈이 있었는지는 기록에 없다⁠.

이튿날인 8월 19일 토요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체조 경기를 치른 실내 경기장으로⁠, 1만 명 넘게 들어가는 공연장이 된 곳이다⁠. 1996년에 문을 연 YG엔터테인먼트가 10년을 기념해 소속 가수들이 한 무대에 오르는 「⁠YG 패밀리 10주년 콘서트⁠」가 이곳에서 열렸다⁠.

빅뱅은 이 무대에서 공식으로 데뷔했다⁠. 「⁠리얼다큐 빅뱅⁠」이 첫 방송을 탄 지 한 달여 뒤⁠, 리더의 생일 다음 날이었다⁠. 서울 올림픽이 열린 해에 태어난 소년이 열여덟 해 뒤 올림픽 경기장에서 데뷔했다⁠. 이날 다섯 가운데 지드래곤과 태양과 탑은 만 열여덟 살⁠, 대성은 열일곱 살이었고⁠, 막내 승리는 그보다 어렸다⁠.

열세 살에 선배들 물병을 나르던 두 소년도 다섯 가운데 있었다⁠. 꼬마 룰라 시절 룰라의 무대 옆에서 춤추던 아이에게는 10년 만에 오른 큰 무대였다⁠. 이번에는 남의 옷을 똑같이 맞춰 입은 꼬마가 아니었다⁠. 자기 이름을 단 그룹의 리더였다⁠.

데뷔 직후 빅뱅은 첫 싱글 앨범 「⁠Bigbang⁠」을 냈다⁠. 수록곡은 세 곡이었다⁠. 회사 선배이자 뒤에 2NE1으로 데뷔하는 박봄이 함께 부른 「⁠We Belong Together⁠」⁠, 「⁠눈물뿐인 바보⁠」⁠, 그리고 미국 밴드 마룬 5의 「⁠This Love⁠」를 지드래곤이 우리말로 새로 가사를 써서 부른 「⁠This Love⁠」⁠. 원곡 가사를 번역하지 않고 자기 말로 다시 지었다⁠. 데뷔 앨범의 세 곡 가운데 한 곡을 리더가 혼자 고쳐 쓰고 혼자 불렀다⁠. 앨범은 4만 장쯤 팔렸다⁠. 스무 해 뒤 코첼라 무대에서 빅뱅은 이 앨범의 「⁠눈물뿐인 바보⁠」를 다시 불렀다⁠.

방송 데뷔는 한 달 뒤였다⁠. 빅뱅은 9월 23일 MBC 음악 프로그램 「⁠쇼⁠! 음악중심⁠」에서 「⁠La La La⁠」를 부르며 지상파 무대에 처음 나왔다⁠. 체조경기장의 첫 무대는 YG 팬들 앞이었고⁠, 방송 무대는 처음 보는 시청자들 앞이었다⁠.

9월에는 두 번째 싱글 「⁠BigBang Is V⁠.I⁠.P⁠」가⁠, 이어서 세 번째 싱글 「⁠Bigbang 03⁠」이 나왔다⁠. 석 달 사이 싱글 세 장이었다⁠. 인터넷 미니홈피 서비스 싸이월드가 여는 음악 시상식은 10월 이달의 신인으로 빅뱅을 골랐다⁠. 두 번째 싱글 제목에 들어간 VIP는 빅뱅 공식 팬클럽의 이름이기도 하다⁠.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는 뜻의 영어 줄임말이다⁠. 팬클럽 1기 모집은 2006년 12월 30일에 시작됐다⁠. 데뷔 넉 달 만에 그룹을 따라다닐 사람들에게 이름이 생겼다⁠. 다섯 번째 모집 이후 한동안 멈춰 있던 회원 모집은 스무 해 뒤인 2026년 5월 1일 6기 모집 공지로 다시 열렸다⁠. 열한 해 만이었다⁠.

2006년 12월 빅뱅은 첫 정규 앨범 「⁠BigBang Vol⁠.1⁠」을 내고 첫 단독 콘서트 「⁠The Real⁠」을 열었다⁠. 정규 앨범은 차트 3위로 들어가 11만 장 넘게 팔렸다⁠. 콘서트 장소는 넉 달 전 데뷔한 체조경기장⁠, 관객은 약 1만 2천 명이었다⁠. 넉 달 전에는 회사 잔치에 끼어 오른 무대였고⁠, 이번에는 다섯 명의 이름만 걸고 1만 2천 석을 채웠다⁠.

체조경기장은 빅뱅에게 여러 번 다시 돌아올 곳이 된다⁠. 세 해 뒤 지드래곤의 첫 솔로 콘서트도 같은 곳에서 열렸다⁠.

해가 바뀐 2007년 2월 8일⁠, 「⁠The Real⁠」 공연을 담은 라이브 앨범이 나와 연말까지 3만 장이 팔렸다⁠. 봄에는 첫 지방 투어 「⁠Want You⁠」로 인천과 대구⁠, 창원과 전주와 부산을 돌았다⁠. 체조경기장에서 시작한 그룹이 서울 밖 다섯 도시의 공연장을 처음 채웠다⁠.

카메라 앞에서 여섯 가운데 남은 다섯⁠. 스무 해 뒤 사막의 무대에 함께 오른 사람은 다섯 가운데 셋이었다⁠.

데뷔한 날은 해마다 돌아왔다⁠. 스무 번째 8월 19일인 2026년 8월 19일 오후 여섯 시⁠, 빅뱅은 디지털 싱글 「⁠BiiiG⁠」을 냈다⁠. 넷이서 「⁠봄여름가을겨울⁠」을 낸 지 네 해 넉 달 만의 신곡이었고⁠, 지드래곤이 작사와 작곡에 참여했다⁠. 같은 날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는 드론과 불꽃을 띄우는 팬 행사가 열렸다⁠.

같은 달 음악 PD들은 빅뱅의 스무 해를 돌아보며 빅뱅을 힙합 아이돌의 시작이라고 불렀다⁠. 아이돌이 스스로 곡을 쓰고 앨범을 만드는 셀프 프로듀싱의 시작이라는 말도 함께 붙였다⁠. 리더가 데뷔 앨범에서부터 남의 노래에 자기 말로 가사를 새로 지어 부른 그룹이었다⁠. 2006년 겨울에 빅뱅은 아직 1위 곡이 없는 신인이었다⁠. 이듬해 여름⁠, 리더가 혼자 부르려고 써 둔 노래 한 곡이 그룹에 처음 1위를 안긴다⁠.

출처 이투데이 · 2015년 8월 19일 · 오예린 「⁠최고의 아이돌 그룹이 되기까지 빅뱅이 걸어온 9년의 시간들⁠」 OSEN · 2013년 3월 23일 · 손남원 「⁠[직격 인터뷰] 양현석 “⁠지드래곤과 일하는 제가 영광이죠⁠”⁠」 — 멤버 선발부터 데뷔까지 아주경제 · 2016년 4월 20일 · 「⁠비스트 탈퇴 장현승⁠, 논란부터 탈퇴까지⁠」 위키백과(⁠영문⁠) · 「⁠T⁠.O⁠.P⁠」 「⁠Daesung⁠」 「⁠BigBang (⁠South Korean band⁠)⁠」 — 탑의 오디션과 감량⁠, 대성의 가출⁠, 데뷔 무대와 첫 콘서트 뉴시스 · 2026년 8월 19일 · 빅뱅 「⁠BiiiG⁠」 발매 기사 라디오가가 RADIOGAGA · 2026년 8월 28일 · 「⁠음악PD들이 말하는 빅뱅 20년⁠」 — 영상 목차 MTN · 2026년 8월 12일 · 빅뱅 20주년 팬 행사 예고 기사 스타뉴스 · 2026년 5월 2일 · 빅뱅 공식 팬클럽 VIP 6기 모집 기사 나무위키 · 「⁠VIP(⁠BIGBANG⁠)⁠」 — 팬클럽 1기 모집 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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