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392자)
곁
냉동 수면 이백 년 뒤, 국보가 되었다 · 백로하
돌아온 다음 날부터 유리관 문 앞에 새 경비가 섰다. 낮에도 밤에도 섰다. 로비 편의점은 계속 열었지만, 나는 계산대와 유리관 사이 말고는 아무 데도 갈 수 없었다. 6월 7일까지 외출은 없다고 기라온이 말했다. 팔팔이는 여전히 내 오른쪽에 있었다. 녹이지 못한 낡은 경비가 녹이지 못한 낡은 국보를 따라다녔다.
끼니는 열다섯이었다. 여섯이 남았다. 곁은 없었다.
나는 두 시 시범에서 컵라면 뚜껑을 덮고 삼 분을 기다리는 동안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저 곁이 필요해요. 저랑 같이 법정에 서 주실 시민 한 분이요.”
유리 밖에서 손이 올라갔다. 백 개, 이백 개. 「옛날 사람 모임」이라는 동호회 사람들이 맨 앞줄에서 2026년 옷을 흉내 낸 차림으로 손을 흔들었다. 청바지 위에 넥타이를 맸고, 모자를 거꾸로 썼고, 그중 하나는 목에 휴대폰 충전 선을 목걸이처럼 걸었다. 껌 할아버지도 지팡이를 든 손을 들었다. 나는 이 손들을 한참 봤다. 마음이 좀 그랬다.
그런데 곁은 끼니를 본 사람이어야 했다. 유리관 앞 사천 명은 내가 일한 값으로 밥을 먹는 걸 한 번도 못 봤다. 이들이 본 건 시범이었다. 시범은 기라온의 밥이었다.
“그래도 서 볼래요!”
동호회 회장이 외쳤다. 충전 선 목걸이를 건 남자였다.
다음 날 아침 문화유산 위원회의 알림이 둑 위 전차 화면마다 떴다. 「국보의 곁을 자처하는 시민은 국보 반출 공모 혐의로 조사받을 수 있다.」 오후에 동호회 회장이 유리관 앞에 와서 무릎을 꿇었다. 충전 선 목걸이를 벗어 유리 앞에 내려놓았다. 「옛사람이여, 미안하다」라고 했는데 2026년 말투를 흉내 낸 거라 「옛사람이여, 헐」로 들렸다. 팔팔이가 「국보에 손대지 마십시오」라고 하자 회장은 울면서 갔다. 이후로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
끼니는 다른 길로 벌었다.
로비 계산대 위에는 아직 녹음기가 있었다. 마하로가 수장고로 내려간 뒤 새 학예사가 갈아 끼우던 것이었다. 박물관은 이 녹음기에 담긴 내 목소리를 「옛말 음성」으로 팔았다. 나는 이 녹음기를 엎지 않고 바로 세웠다. 그리고 새벽 세 시, 손님이 끊긴 사이에 녹음 단추를 눌렀다.
“무늬 씨. 오늘은 비빔국수 양념이에요. 고춧가루 한 숟가락에 간장 반 숟가락, 식초는 온실 사과 식초 있으면 그걸로 반 숟가락. 설탕은 넣지 마요. 넣고 싶으면 정어리 국물 한 숟가락을 넣어요. 단맛 대신 감칠맛이에요. 그리고 비빌 때 젓가락 말고 손으로 해요. 비닐장갑 없으면 그물 장갑 말고 맨손. 깨끗이 씻고요.”
나는 녹음기를 꺼내 팔팔이에게 주었다.
“팔팔아. 내 무게 재 봐.”
“국보의 무게가 이틀 동안 육백 그램 줄었습니다. 국보 훼손입니다.”
“보존 식사 하러 가야지. 정문 앞으로.”
팔팔이는 녹음기를 몸통 서랍에 넣고 정문으로 미끄러져 갔다. 정문 판은 팔팔이의 손바닥을 알았다. 정문 바깥 계단 아래에 무늬가 서 있었다. 상인회장이 묶인 몫을 풀 길을 찾는 동안, 무늬는 둑시장 자리를 잃지 않았다. 신고는 거둬졌으니까. 곁만 못 섰다.
팔팔이가 녹음기를 무늬에게 주고, 무늬는 팔팔이에게 국수 그릇을 주었다. 내가 말로 가르친 값이었다. 팔팔이가 이 그릇을 이고 로비로 돌아오는 동안 새 경비가 정문 안쪽에서 이것을 거두려 했고, 팔팔이는 「보존 식사입니다」라고 하며 지나갔다. 새 경비의 첫 규칙은 관장 명령이었고, 관장 명령은 「바깥 음식을 국보에게 들이지 마라」였다. 팔팔이의 첫 규칙은 이 위에 있었다. 로비 한가운데서 국수 그릇을 든 밥솥과 은빛 막대기가 다시 맞붙었고, 둑 경비 손님들이 둘러서서 구경했다.
“열여섯 끼.”
나는 혼잣말로 셌다. 이날 이 그릇을 내가 일한 값으로 받는 것을 본 시민은 없었다. 팔팔이는 시민이 아니었다.
기라온은 다음 주에 정문 판을 바꿨다. 팔팔이의 손바닥으로는 해 질 녘부터 해 뜰 때까지 정문이 안 열렸다. 나는 녹음을 낮 시범 직후로 옮겼다. 열이레째 끼니는 이 낮에 왔다. 다음에는 정문 바로 앞에 새 경비 하나가 더 섰다. 팔팔이는 정문 옆 청소 로봇 문으로 녹음기를 밀어 내보냈고, 그릇은 이 문으로 들어올 만큼 납작한 것으로 바뀌었다. 무늬가 국수를 둥근 떡처럼 눌러 구워서 보냈다. 「열여덟 끼」 세 끼를 버는 데 스무엿새가 걸렸다. 6월 7일까지 열여드레가 남았다.
*
이날 밤 마하로가 유리관에 왔다.
옆문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새 경비가 문 앞에 서 있었으니까. 이 사람은 유리 바깥에 서서 손바닥을 유리에 댔다. 박물관 일을 하는 사람의 손바닥이라 유리관 판이 이 손을 알아봤지만, 이 사람은 문을 열지 않았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유리 안쪽으로 갔다. 손바닥 두 개가 유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섰다. 이 사람의 손가락 마디는 여전히 하얬다.
“둑시장 새벽 네 시, 두건 쓴 손님.”
내가 먼저 말했다.
“알았어요?”
“물 많이 달라고 했잖아요. 그건 박물관 사람이 할 말이 아니에요. 박물관 사람들은 라면에 물을 얼마나 넣는지 알아요. 마하로 씨가 설명판 썼잖아요.”
“나는 그 생선죽 먹는 거 봤어요. 열네 끼째요. 상인회장이 진상 손님 재운 값이라고 하는 것도 들었어요.”
이 사람은 유리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나는 국보 일로 법에 걸린 적이 없어요. 몫도 안 묶였어요. 곁에 설 수 있어요.”
나는 유리 안쪽에서 이 사람의 손바닥 자국을 봤다. 유리에 김이 서렸다가 지워지고 있었다.
“왜요?”
“미안해서요.”
“그건 저번에 들었어요.”
“그리고 당신 말 끝까지 듣고 싶어서요. 녹음기 없이요. 당신이 잠들면 나는 녹음기를 틀어야 당신 말을 들어요. 그게 싫어요. 녹음된 「헐」은 매번 똑같아요.”
나는 손바닥을 유리에서 뗐다. 이 사람의 손바닥이 혼자 남았다.
“곁 서면 학예사 잘려요.”
“알아요.”
“몫도 반 줘야 돼요. 저한테.”
“그것도 알아요. 내 몫은 별로 안 커요.”
“순태 할아버지 깨우는 데도 써야 되는데.”
“그건 도시 몫이에요.”
나는 웃었다. 사흘 만에 처음 웃었다. 마하로는 웃지 않았다. 대신 손바닥을 유리에서 떼고 이 손으로 머리 끈을 풀었다가 다시 단단히 묶었다. 내일 할 일을 정한 사람이 하는 짓이었다.
*
다음 날 두 시, 시범 무대에 이 사람이 올라왔다.
나는 컵라면에 물을 붓고 있었다. 사천 명이 뚜껑 위에 젓가락을 얹는 내 손을 보고 있었다. 마하로가 유리관 앞에 놓인 마이크 막대를 집어 들었다. 새 학예사가 말리려다 마하로의 얼굴을 보고 손을 내렸다.
“여러분께 알립니다.”
「습니다」였다. 사천 명이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인 채로 이들은 다음 말을 들었다.
“나 마하로는 국보 오주봉의 곁에 섭니다. 나는 그가 둑시장에서 일한 값으로 밥을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열네 번째 끼니였습니다. 그가 시민 법정에 설 때 나는 그 옆에 서겠습니다. 오늘부터 내 몫의 절반은 그의 것입니다.”
사천 명이 고개를 들었다.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위원회 알림을 다 본 사람들이었다. 이 침묵 속에서 기라온이 유리관 옆문으로 들어왔다. 이 사람은 계단을 올라오지 않았다. 무대 아래에서 마하로를 올려다봤다.
“학예사는 박물관 사람이에요. 국보 반출을 꾸미는 사람을 박물관에 둘 수 없어요. 마하로 씨는 오늘로 이 박물관 사람이 아니에요.”
마하로는 마이크를 내리지 않았다.
“알고 있었습니다.”
“손바닥 내요.”
마하로가 무대 끝으로 내려와 기라온 앞에 손바닥을 내밀었다. 기라온이 이 위에 자기 손바닥을 겹쳤다. 두 손바닥 사이에서 무언가 꺼지는 소리가 났다. 마하로의 손바닥에서 박물관 문들이 지워지는 소리였다. 내일부터 이 사람은 유리관 옆문도, 수장고도, 보존실도 못 연다.
“고생했어요, 하로 씨.”
기라온이 그렇게 말했다. 이름만 불렀다. 나는 이 사람이 마하로를 그렇게 부르는 걸 처음 들었다. 이 목소리에는 화가 없었다. 그래서 더 아팠다.
마하로는 무대를 내려가지 않고 내 옆으로 왔다. 유리관 안이 아니라 유리 바깥, 내 컵라면이 놓인 탁자 옆에 섰다. 삼 분이 지났다. 나는 뚜껑을 열었다. 김이 이 사람의 얼굴로 올라갔다. 이 사람은 이 김을 피하지 않았다.
시범이 끝나고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 기라온은 유리관 앞에 남아 마하로가 정문 쪽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봤다. 나는 유리 안쪽에서 이 옆에 섰다.
“관장님도 하로 씨 아꼈죠.”
“열 해 데리고 일했어요. 그 녹음기도 내가 사 줬고요.”
“그런데 내보내요?”
“아끼는 사람을 내보내는 게 관장 일이에요. 아끼는 사람만 남겨 두면 박물관은 한 해 만에 문 닫아요.”
이 사람은 이 말을 하고 유리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습니다」를 쓰지 않았다. 화가 난 게 아니었다.
해 질 녘 팔팔이가 정문에서 납작한 국수 떡과 함께 녹음기 하나를 받아 왔다. 무늬의 녹음기가 아니었다. 마하로의 목소리가 들어 있었다. 이 사람은 정문 밖 계단 아래 무늬 옆에 서서 녹음한 모양이었다. 뒤에서 둑 위 전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시민 법정에 다녀왔어요. 스물한 끼가 차면 곁이랑 같이 가서 바로 청원을 낼 수 있대요. 접수 창구는 이십사 시간 열어요. 편의점처럼요. 받아들일지는 법정이 해 뜬 뒤에 정한대요. 그러니까 세 끼만 더 벌어요. 나머지는 내가 할게요.”
녹음 끝에 이 사람이 한마디 더 붙였다. 2020년대 말투였다.
“킹받지 마요.”
이번에는 맞게 썼다. 나는 이 녹음을 세 번 돌려 들었다. 네 번째는 팔팔이가 따라 했다. 「킹받지 마십시오.」 둑 경비 손님 둘이 이 소리에 묵념을 했다.
*
이날 저녁 보존과장이 내 팔에서 피를 뽑았다.
흰 옷을 입은 보존과장이 유리관에 들어와 내 팔꿈치 안쪽에 작은 바늘을 댔다. 팔팔이가 「국보의 피부가 상합니다」라고 했다. 보존과장이 「국보 검사입니다」라고 했다. 팔팔이의 파란 불이 오래 켜졌다가 꺼졌다. 검사는 훼손이 아니었다. 나도 이 정도는 알았다.
기라온이 이 피를 담은 작은 관을 불빛에 비춰 봤다. 기라온의 손에 검사지가 한 장 더 들려 있었다. 구내식당 국물을 잰 검사관의 검사지였다. 이 사람은 이걸 외투 안에서 꺼냈다. 버리지 않고 넣어 둔 것이었다.
“핏속 소금이 국보 기준의 세 배예요.”
“라면 먹었으니까요.”
“컵라면, 정어리 국수, 둑시장 생선죽, 배달 떡국수. 석 달 가까이 당신 몸에 들어간 소금이 국보 몸을 상하게 하고 있어요. 위원회가 정한 날까지 기다리면 위험해요.”
이 사람이 피 관을 보존과장에게 건넸다.
“국보 몸에 탈이 나면 보관자가 날을 당길 수 있어요. 처음에 말했죠. 보존 수면은 사흘 뒤예요.”
열여드레가 사흘이 되었다. 세 끼가 남아 있었다. 곁은 섰지만, 법정에 서려면 스물한 끼를 먼저 채워야 했다.
“그리고 보존 수면 앞 사흘은 물만 마셔요. 그것도 처음에 말했어요.”
보존과장이 유리관 옆 벽에 손바닥을 댔다. 벽인 줄 알았던 자리가 문이었다. 문 안에 하얀 방이 있었다. 침대 하나, 물병 하나, 밥틀 자리는 비어 있었다.
“금식실이에요.”
기라온이 이 방을 가리켰다.
“오늘부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