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527자)

스물한 끼

냉동 수면 이백 년 뒤, 국보가 되었다 · 백로하

금식실은 하얬다⁠. 벽도 바닥도 천장도 침대도 하얬고⁠, 하얗지 않은 건 물병 하나와 나뿐이었다⁠. 창은 없었다⁠. 시계도 없었다⁠. 시간은 물병의 물이 줄어드는 것으로 쟀다⁠.

첫날은 견딜 만했다⁠. 2026년에도 야간 근무를 마치고 하루를 꼬박 굶고 잔 적이 몇 번 있었다⁠. 배에서 소리가 나면 물을 마셨다⁠. 팔팔이가 문 바깥에 서 있었다⁠. 문에 귀를 대면 이 몸통 안에서 작은 원자 전지가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첫날 밤 기라온이 금식실에 들어왔다⁠. 손에 물병 하나를 들고 있었다⁠. 내 것과 똑같은 물병이었다⁠. 이 사람은 침대 맞은편 바닥에 외투 자락을 깔고 앉아 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관장님도 굶어요⁠?⁠”

“⁠사흘이요⁠. 국보가 굶는데 관장이 밥을 먹을 수는 없어요⁠.⁠”

나는 이 말이 농담인 줄 알고 웃으려다 말았다⁠. 기라온의 입술이 말라 있었다⁠. 오늘 아침부터 굶은 입술이었다⁠. 이 사람은 한 번 정한 규칙을 저 자신에게도 지켰다⁠.

“⁠보존 수면 날⁠, 순태 씨 관도 보존실에서 옮겨요⁠.⁠”

“⁠어디로요⁠?⁠”

“⁠당신이 잠들면 유리관이 빈다고 생각하죠⁠. 박물관은 빈 유리관을 두지 않아요⁠.⁠”

이 사람은 거기서 말을 멈추고 물을 또 한 모금 마셨다⁠. 더 묻고 싶었는데 배가 먼저 울었다⁠. 이 사람이 이 소리를 듣고 처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웃음을 참는 것 같았다⁠.

“⁠내 배도 울어요⁠. 들리면 못 들은 척해요⁠.⁠”

이 사람은 이 말을 하고 나갔다⁠. 십 분쯤 뒤 문 너머 복도에서 누군가의 배가 길게 울었다⁠. 팔팔이가 「⁠관장의 배입니다⁠」라고 알려 주었다⁠. 나는 못 들은 척했다⁠.

이튿날 아침⁠, 문 너머에서 팔팔이가 말했다⁠.

“⁠국보의 무게를 잽니다⁠.⁠”

파란 불빛이 문틈으로 들어와 내 발끝을 훑고 올라갔다⁠.

“⁠국보의 무게가 하루 동안 구백 그램 줄었습니다⁠. 국보 훼손입니다⁠.⁠”

“⁠알아⁠.⁠”

“⁠국보의 모양을 되돌려야 합니다⁠. 밥이 필요합니다⁠.⁠”

“⁠이 방에는 밥이 없어⁠. 그리고 이 문은 네 손바닥으로 안 열려⁠. 관장님이 바꿨어⁠.⁠”

문 너머가 조용해졌다⁠. 전지 소리만 났다⁠. 나는 침대에 누워 하얀 천장을 봤다⁠. 천장이 너무 하얘서 눈을 감아도 하얬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다⁠. 물병이 반쯤 줄었을 때 문 너머에서 쇠가 긁히는 소리가 났다⁠.

“⁠팔팔아⁠?⁠”

“⁠문의 모양이 상합니다⁠.⁠”

쾅⁠. 문이 한 번 울렸다⁠. 쾅⁠. 두 번째에 문틀에서 하얀 가루가 떨어졌다⁠.

“⁠문은 국보가 아닙니다⁠.⁠”

세 번째에 문이 안쪽으로 휘었다⁠. 네 번째에 경첩이 떨어졌다⁠. 다섯 번째에 문이 통째로 쓰러졌고⁠, 이 너머에 밥솥만 한 몸통이 서 있었다⁠. 둥근 팔 하나가 조금 찌그러져 있었다⁠. 이마의 파란 불이 아주 밝았다⁠.

“⁠보존 식사 이동을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날 밤이 깊을 때까지 지하 일 층 짐 창고의 유물 상자 사이에 숨어 있었다⁠. 둑 바깥 물길에 배를 댈 수 있는 건 물이 빠지는 새벽뿐이었다⁠. 마하로가 녹음해 팔팔이 편에 들여보낸 목소리가 그렇게 일러 주었다⁠. 새 경비 둘이 박물관을 세 바퀴 도는 동안 팔팔이는 상자 하나인 척 서 있었다⁠. 상자치고는 파란 불이 너무 밝았다⁠.

*

박물관 지하 일 층에는 「⁠물길 문⁠」이 있었다⁠. 큰 유물을 배로 실어 나르던 문이라고⁠, 마하로가 수장고에서 일할 때 알아 둔 것이었다⁠. 둑과 박물관 사이에 낮은 물길이 하나 뚫려 있었다⁠. 바다가 올라오기 전에는 하수도였던 자리였다⁠.

팔팔이가 물길 문 판에 손바닥을 댔다⁠. 문은 팔팔이를 알았다⁠. 관장이 정문 판은 바꿨지만 물길 문까지는 바꾸지 않았다⁠. 아무도 이 문으로 국보가 나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문이 열리자 어둠 속에서 비린내가 확 끼쳤다⁠. 물 위에 작은 배가 하나 떠 있었다⁠. 둑 마을 사람들이 타는 판자 배였고⁠, 노를 쥔 사람은 무늬였다⁠. 배 앞머리에 마하로가 앉아 손전등을 들고 있었다⁠.

“⁠늦었어요⁠.⁠”

“⁠팔팔이가 문을 다섯 번 쳤어요⁠.⁠”

나는 배에 올랐다⁠. 판자가 기우뚱했고 무늬가 노로 균형을 잡았다⁠. 팔팔이가 따라 올라오자 배가 한 뼘 가라앉았다⁠. 무늬가 「⁠밥솥은 왜 이렇게 무거워요⁠」라고 했다⁠. 팔팔이가 「⁠팔팔이는 밥솥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배는 물길을 따라 둑 아래 굴을 지나 바깥 바다로 나갔다⁠.

새벽 한 시였다⁠. 금식실에 들어간 지 쉰 시간쯤 지나 있었다⁠. 보존 수면은 네 시간 뒤⁠, 해 뜰 때였다⁠.

*

둑 마을은 밤에도 불이 켜져 있었다⁠. 물에 잠긴 아파트 꼭대기마다 등이 매달려 있었고⁠, 판자 다리 위로 사람들이 오갔다⁠. 무늬가 배를 한 아파트 기둥에 댔다⁠. 칠 층에서 시작해 열한 층 꼭대기에 붙었다는 이 집이었다⁠.

할머니 집 아래에서 사내 여섯이 기둥 하나를 붙들고 있었다⁠. 물이 또 한 뼘 올라와서 집을 한 칸 더 올리는 날이라고 했다⁠. 나무 기둥을 새로 세우고 집을 이 위로 들어 옮기는 일이었다⁠. 한 사람이 모자랐다⁠. 원래 하던 사람이 허리를 다쳐 누웠다고 했다⁠.

나는 배에서 판자 다리로 올라갔다⁠. 사내들이 나를 알아봤다⁠. 바닷물 바가지 장면을 다 본 사람들이었다⁠. 아무도 비켜서지 않았다⁠. 나는 빈자리로 가서 기둥을 붙들었다⁠.

“⁠하나⁠, 둘⁠, 셋에 들어요⁠.⁠”

2026년에 편의점 물건을 받던 새벽마다 하던 셈이었다⁠. 음료 상자 스무 개를 트럭에서 내릴 때⁠. 사내들이 서로 얼굴을 보다가 내 셈에 맞춰 힘을 줬다⁠. 기둥이 한 칸 올라갔다⁠. 집이 삐걱거리며 따라 올라갔다⁠. 위층 창문에서 할머니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 끝나고 사내들이 판자 다리에 주저앉았을 때 할머니가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손에 그릇 하나를 들고 있었다⁠. 미역국이었다⁠. 바다에서 건진 미역에 소금을 하나도 안 넣고 끓인 국이었다⁠. 할머니가 그릇을 내 앞에 놓았다⁠.

“⁠일한 값이다⁠.⁠”

나는 이 국을 마셨다⁠. 싱거웠다⁠. 미역에서 바다 맛이 났는데⁠, 바닷물 맛과는 달랐다⁠. 짜지 않은 바다였다⁠. 마하로가 판자 다리 끝에서 이걸 보고 있었다⁠.

“⁠기둥 한 칸이다⁠.⁠”

할머니가 말했다⁠. 이 사람은 내가 그릇을 비우는 걸 끝까지 봤다⁠. 그러고는 빈 그릇을 받아 들고 사다리를 다시 올라갔다⁠. 이 사람은 나를 용서한다고 하지 않았다⁠. 나도 바라지 않았다⁠.

“⁠열아홉 끼⁠.⁠”

마하로가 셌다⁠. 곁으로 선 뒤 이 사람이 센 첫 끼니였다⁠.

*

둑시장은 새벽 두 시에도 몇 천막이 불을 켜고 있었다⁠. 무늬의 천막은 우리가 오기 전부터 솥에 불을 올려 두었다⁠. 둑 경비 손님 열댓이 기다리고 있었다⁠. 금식실에서 국보가 빠져나갔다는 소식을 박물관보다 둑시장이 먼저 알았다⁠. 새 경비가 팔팔이를 찾아 정문을 돌고 있다고⁠, 밤 전차 기사가 알려 주었다⁠.

나는 솥 앞에 섰다⁠. 쉰 시간을 굶은 손이 떨렸다⁠. 국자를 쥐니 떨림이 멎었다⁠. 열댓 그릇을 말았고⁠, 국물을 두 번 다시 잡았고⁠, 그릇을 씻었다⁠. 손님 하나가 국수를 받다가 「⁠금식실 문은 진짜 밥솥이 부쉈어요⁠?⁠」라고 물었다⁠. 팔팔이가 「⁠팔팔이는 밥솥이 아닙니다⁠」라고 했고⁠, 손님이 묵념을 했다⁠.

무늬가 이날 밤 마지막 그릇을 솥에서 떠 내게 건넸다⁠.

“⁠스무 끼⁠.⁠”

마하로가 셌다⁠. 나는 먹기 전에 무늬를 봤다⁠. 무늬는 앞치마로 손을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 「⁠빨리 먹어요⁠. 해 뜨기 전에 하나 더 벌어야죠⁠.⁠」

*

시민 법정은 둑 안쪽⁠, 옛 시청 자리에 있었다⁠. 둑 위 전차 첫차가 아직 다니지 않아서 우리는 걸었다⁠. 팔팔이가 앞장섰고⁠, 마하로가 내 옆에서 걸었다⁠. 무늬는 큰 솥 하나와 휴대용 불판을 등에 지고 따라왔다⁠.

법정 건물은 높고 하얬다⁠. 대부분의 창이 어두웠는데⁠, 일 층 한쪽 끝의 작은 창 하나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이 창 위에 판이 붙어 있었다⁠. 「⁠청원 접수 — 이십사 시⁠」

창구 안에 야간 직원 셋이 앉아 있었다⁠. 다들 피곤한 얼굴이었다⁠. 한 사람은 머리를 책상에 대고 졸았고⁠, 한 사람은 빈 컵을 쥐고 있었다⁠. 창구 옆에 밥틀이 하나 있었는데 화면에 「⁠고장⁠」이라고 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창구 직원이 말했다⁠. 법정에서는 「⁠습니다⁠」를 썼다⁠. 나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청원을 내러 왔습니다⁠. 깨어난 사람 조항입니다⁠.⁠”

직원이 졸던 동료를 팔꿈치로 쳤다⁠. 셋이 다 일어나 나를 봤다⁠. 이들도 전차 화면을 봤을 것이다⁠.

“⁠끼니가 스물한 번 차야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스무 번입니다⁠.⁠”

“⁠그러면 한 끼가 모자랍니다⁠.⁠”

“⁠밥틀이 고장 났습니까⁠?⁠”

직원이 밥틀을 돌아봤다⁠. 사흘째라고 했다⁠. 밤 직원들은 사흘 동안 저녁을 집에서 싸 오거나 굶었다고⁠.

나는 무늬를 봤다⁠. 무늬가 등에서 솥을 내렸다⁠.

창구 앞 바닥에 불판을 놓고 솥을 올렸다⁠. 법정 로비에 정어리 국물 냄새가 퍼졌다⁠. 직원 셋이 창구 유리에 이마를 댔다⁠. 나는 라면 넷을 끓였다⁠. 물은 이번에도 선에 맞췄다⁠. 삼 분⁠. 그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졸던 직원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그릇 셋을 창구 안으로 넣어 주었다⁠. 직원 셋이 이것을 받아 들고 숟가락도 없이 그릇째 마셨다⁠. 후루룩⁠. 이 시대 사람들은 소리 내어 먹지 않는데⁠, 이들은 소리를 냈다⁠. 졸던 직원은 다 마신 그릇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바닥에 남은 파 한 조각을 손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다 마시고 나서 창구 직원이 자기 손바닥을 무늬의 판에 댔다⁠. 라면 넷 값이었다⁠.

“⁠이건 우리가 사서 당신에게 주는 것입니다⁠. 끓인 값입니다⁠.⁠”

이 사람이 남은 한 그릇을 창구 밖으로 밀었다⁠. 나는 이 그릇을 받았다⁠. 마하로가 내 옆에 섰다⁠. 무늬가 내 반대편에 섰다⁠. 팔팔이의 파란 불이 내 몸을 훑었다⁠. 나는 먹었다⁠. 법정 로비에 내 후루룩 소리가 울렸다⁠.

“⁠스물한 끼⁠.⁠”

마하로가 셌다⁠. 이 사람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빈 그릇을 내려놓았다⁠.

*

마하로가 창구 앞에 손바닥을 내밀었다⁠. 창구 판이 이 사람의 손을 읽었다⁠.

“⁠나 마하로는 오주봉의 곁입니다⁠. 열넷째⁠, 열아홉째⁠, 스무째⁠, 스물한째 끼니를 내 눈으로 보았습니다⁠.⁠”

직원이 판을 들여다보다가 나를 봤다⁠.

“⁠청원인은 손바닥을 대십시오⁠.⁠”

나는 손바닥을 댔다⁠. 판이 노랗게 켜졌다⁠.

「⁠국보 오주봉 — 보호자 동반⁠.⁠」

“⁠보관자가 아닌 곁이 함께 있으니 됩니다⁠.⁠”

직원이 판을 눌렀다⁠. 판이 한 번 깜박이더니 글자가 바뀌었다⁠.

「⁠청원 접수 — 깨어난 사람 조항⁠. 받아들일지는 해 뜬 뒤 정함⁠.⁠」

“⁠해 뜬 뒤 판사님이 보시고 정합니다⁠. 받아들이면 그때부터 재판 날까지 보관자는 청원인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합니다⁠.⁠”

“⁠해가 언제 뜹니까⁠?⁠”

“⁠한 시간 남았습니다⁠.⁠”

이 한 시간을 나는 법정 로비 의자에 앉아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법정 정문이 열렸다⁠.

기라온이었다⁠. 외투 단추는 목까지 채워져 있었다⁠. 뒤이어 보존과장이 흰 옷을 입고 들어왔고⁠, 뒤이어 새 경비 둘과 순찰관 하나가 들어왔다⁠. 순찰관은 둑시장에 왔던 사람이었다⁠. 이번에도 어깨를 들썩였다⁠.

기라온은 창구 판을 봤다⁠. 「⁠받아들일지는 해 뜬 뒤 정함⁠」 이 사람은 이 글자를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나를 봤다⁠.

“⁠법정이 받아들이기 전까지 당신은 내 보호 아래 있어요⁠. 보존 수면은 해 뜰 때예요⁠. 위원회에 그렇게 올렸고요⁠. 위는 보존과장이 비울 거예요⁠.⁠”

새 경비 둘이 내 양옆으로 왔다⁠. 은빛 손가락이 내 두 팔꿈치를 감쌌다⁠. 팔팔이가 앞으로 나서자 기라온이 말했다⁠.

“⁠국보를 보존실로 옮겨요⁠. 보존은 훼손이 아니에요⁠. 팔팔이도 알아요⁠.⁠”

팔팔이의 파란 불이 켜진 채로 멈췄다⁠. 셈하는 불이었다⁠. 이 불이 꺼지기 전에⁠, 은빛 손가락들이 나를 의자에서 들어 올렸다⁠.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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